제86화
몬스터들간의 영역 다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나 먹이를 넘어서 수명, 더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있는 업이 직결되는 문제이니 더욱더 예민하다.
그런 면에서 구미호, 어쩌면 눈앞에 있는 지룡보다 더 상위의 존재는 그들에게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이지?]
“더 강해지고 싶지 않냐고 물었어.”
또한, 지룡은 천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게 단순히 운이 좋아서 되는가?
아니다.
무언갈 이루고 싶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이나 염원이 있기 때문에, 천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아마도 강함이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설령 목표가 아니라고 한들.
몬스터가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 없었으니까.
“구미호를 잡는 걸 준다면, 심장과 꼬리 2개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너에게 주겠다.”
[!!!]
내 말에 지룡의 눈에 휘둥그레 커진다.
[구미호의 사체를? 진심이냐?]
“그래.”
몬스터들이 강해지는 방식은 인간과 다르다.
인간은 몬스터 혹은 강자를 죽임으로서 얻는 업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고 마력을 더 많이 받아들이며 강해지지만.
몬스터들은 사냥에 성공한 먹잇감의 사체를 포식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상위 몬스터, 어쩌면 천 년을 산 지룡보다도 더 높은 존재의 사체를 포식한다면?
그럼 얼마나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너 정도의 강자가 업에 대해서 모르진 않을 터. 정말로 내게 업을 넘길 것이라는 이야기냐?]
“그래.”
하지만, 저 말에는 어폐가 있다.
말했다시피, 인간은 몬스터를 죽임으로서 ‘업’을 얻는다.
그렇다면 몬스터와 인간이 협업하며 한 사냥감을 사냥한다면.
그리고 사냥감의 마지막을 인간이 마무리한다면?
‘이미 상대방의 업은 인간에게 흡수된 상태.’
뒤에 남은 사체는 그저 마력덩어리일 뿐, 업이고 뭐고 남지 않은 고깃덩어리에 불가하다.
아마 이들은 모를 것이다.
이러한 법칙을 아는 건, 퓨수엘이나 나와 같이 법칙에 대해서 잘 꿰고 있는 자들뿐이니.
인간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역사’가 없는 한, 이들이 정보 측면에서 우리를 능가할 순 없었다.
‘강해지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기운이 정순하다고 선(善)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구미호를 섭취하여 지룡이 지나치게 강해진다면?
그걸로 천마신교를 건드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천마라는 존재를 아는 놈이 그럴 거 같진 않다.
당연히 도시를 습격할 것이고,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잠깐!]
그때, 멀리서 우릴 지켜보고만 있던 우두머리 중 하나가 다가왔다.
화려한 무지갯빛의 공작새.
그러나 크기는 웬만한 거목을 상회할 정도로 거대했다.
우지끈!
근처의 나무들을 부수며 나타난 공작새가 부리를 벌려 내게 말했다.
[이 지렁이 말고 나와 협업해!]
“뭐?”
[네가 잡고자 하는 놈, 이런 무식한 놈보단 내가 더 잘 잡을걸? 난 원거리라고!]
[시끄럽다, 월조. 이 자는 수장인 나와 협약을 맺고 있으니 뒤로 빠져라.]
[누구 마음대로 수장이야?]
공작새와 지룡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둘의 기싸움이 시작되자, 우릴 지켜보던 다른 우두머리들 또한 나타난다.
재규어를 닮은 거대한 짐승, 코끼리보다 코가 더 거대하고 상아가 길게 뻗어진 짐승.
이름이 따로 있지만 기억은 나지 않으니 편의상 비슷한 동물로 칭하겠다.
‘재규어, 공작새, 코끼리, 지렁이… 무슨 조합이야?’
난 속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그 사이 엘프들은 무기를 수납하고 내 곁으로 돌아왔다.
데자트는 으르렁거리는 괴물들을 보고 경악한 표정으로 내게 속닥거렸다.
“아니…… 무슨 짓을 벌이시는 거예요?! 하나 같이 싹 다 괴물이잖아요! 다 잡을 수 있어요?!”
“아니. 그보다 소리 지르지 마. 나 속 울렁거리니까.”
[마력 흡수량이 75%로 조정됩니다!]
쇠사슬의 흡수량을 조금 더 늘리고, 식은땀이 맺힌 스칼라의 손을 조금 더 강하게 잡아주었다.
“……계획이 있죠?”
공주가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나름 각오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없다면, 제가 구해줄게요. 도망치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으니까.”
“저도요. 저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았어요.”
쉬익. 아직 전투폼을 풀지않은지라 아벨라의 목소리에 거친 숨소리가 섞인다.
난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다들 날 믿고 가만히 있어.”
“…알겠어요.”
“네.”
“그래도 데자트, 넌 혹시 모르니 준비하고.”
“나한테만 그래….”
난 이제는 아예 전투를 벌일 거 같이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는 우두머리들을 쳐다보았다.
“어이, 짐승들.”
[정했나?]
[나지? 나지? 봐! 내 화려한 깃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송곳이면 한 번에 아홉 꼬리의 여우를 죽일 수 있다.]
[…….]
기다렸다는 듯이 시끄럽게 떠들며 날 쳐다본다.
유일하게 재규어만이 고고한 자태만큼이나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눈빛에 담긴 탐욕을 보면 내 의도를 알아차린 거 같진 않다.
‘웃기네.’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받아먹을지 고민하는 모습들이라니.
나름 이것도 장관이라면 장관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서- 방금 떠오른 방벙블 입 밖으로 꺼내었다.
“대신에 이렇게 하자.”
[?]
[?]
[?]
난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두머리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제일 데미지를 많이 입히는 놈에게 시체를 주는 걸로.”
자, 알아서 싸워라.
* * *
구미호의 공략 방법은 간단하다.
다구리.
상급 기사 수준 이상의 강자들만을 모아 한 번에 공격한다.
그게 내가 나서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제일 효과적인 공략 방법이었다.
[어서 오거라, 짐승들아.]
공간이 비틀어지며 허공에 나타난 푸르스름한 구멍의 앞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우릴 보며 말한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금발, 불길하기보다는 신비롭고 보석처럼 보이는 붉은 눈동자, 입가를 가린 부채.
몸에 걸친 옷은 판타지 배경의 옷보다는 무림에서나 볼 법한 복장이었으니.
만약 등 뒤로 살랑거리는 불투명한 9개의 꼬리가 아니었다면, 그저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만 보였으리라.
‘예쁘기는 더럽게 이쁘네.’
개발진의 취향이 잔뜩 들어갔으리라 추측되는 외형이다.
무슨 판타지 게임에 무림 스타일의 옷이야?
하긴. 판타지 배경에 허주도 나왔는데 구미호라고 못 나오는 것도 이상한가?
[호오. 인간들과 엘프들까지 왔구나. 너희만으론 본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낀 것이냐?]
[너 또한 짐승이거늘, 말이 많구나.]
[어머. 난 지렁이한테 짐승이라고 한 적은 없거늘. 혼자 찔리는 것이냐, 아니면 짐승이라도 되고 싶은 것이느냐?]
[곧 죽을 여우가 말이 많구나.]
[죽을 건 너겠지.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지렁이야. 아, 거기 인간아. 얼굴 참 잘생겼구나. 너는 침대 위에서 일을 잘하니? 경험은 있고? 아주 궁금하거나.]
미친.
왜 구미호를 잡을 땐 절대 여자친구랑 함께 잡으면 안 된다고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저런 대사가 있었지…….
‘여기 전체이용가다, 미친년아.’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무어라 하기 전.
탁!
내 앞을 두 그림자가 막아섰다.
“…그 눈 치워.”
“말 참 싸가지 없게 하시네. 그리 말해서 다리 밑이 허한 게 사라지겠어요? 아,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 남자도 안 꼬셔지나?”
데자트와 아벨라.
아니, 너희 둘 다 원래 이런 애들 아니었잖아… 갑자기 왜 이래.
나 무서워.
[어머, 무서워라. 그리고 남자도 못 꼬신다니요. 전 멋진 낭군님을 기다리는 순수한 여인이랍니다.]
“아무나와 몸이나 섞는 천한 것이 뭘. 그 꼬리도 싸그리 남자들 정기나 뺏어먹고 키운 거잖아요? 제가 차마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겠는데, 아무한테나 유혹하는 여인이랑 다를 게 뭐예요?”
[호… 호호…]
오, 열 받았다.
“근데 틀린 말도 아닌데, 왜 화가 났지.”
그래서 일부러 더 자극했다.
내 말에 구미호가 인간과 가까웠던 눈을 여우처럼 변화시킨 채 날 노려본다.
짐승의 동공이 날 샅샅이 훑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결정했어.]
“뭘? 자기가 천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로?”
[그 얼굴이 아까우니 죽이지는 않으마. 하지만 오늘 내 상처 받은 마음이 모두 치료받을 때까지 침대에서 못 나가게 될 거란다.]
“침대에 누울 허리는 남아있으시고?”
[…….]
쏴아아아아아아-
내 마지막 도발에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듯, 그녀의 온몸에서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위 던전 내부에 들어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짙고 어두운 마력!
꽈아악.
“이 손 절대 놓지 마.”
“으응….”
난 하늘을 보며 말했다.
“빨리 일이나 해라, 라우르.”
[알고 있거든-!]
동시에, 하늘이 어둡게 변했다.
구미호의 마력이 아니었다.
하늘이 가려질 정도로 거대한 공작새, 라우르.
푸두드드득-!
나와의 계약에 따라 구미호를 사냥하기 위해 그녀가 날개를 강하게 휘둘렀다.
수많은 깃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아래에 홀로 서 있는 구미호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보였으나.
[비키렴, 닭아.]
그녀는 태연하게 부채를 휘둘렀다.
[-난 너 따위에게 낭비할 시간 따위 없으니까.]
……화르르르르르르륵!
부채로부터 수십 개의 여우불이 튀어나와 깃털들을 불사질렀다.
1페이즈, 인간 폼.
레이드의 시작이었다.
* * *
“치솟아라!”
우드드득!
공주의 외침과 함께 나무들이 땅 아래에서 치솟아 그녀의 몸을 옭아맸다.
구미호의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인다.
불길함을 상징하는 보라색의 여우불, 마치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홀릴 거 같은 영롱함.
그것이 그녀의 몸을 옭아맨 나무 줄기를 불태우기 전.
[음모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코끼리가 상아를 빛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쿠구우우우웅!
[천한 것이 어디서.]
달려든 코끼리가 장벽처럼 치솟은 여우불에 막힌다.
마치 장벽처럼 치솟아 있던 여우불이 몸집을 부풀리더니 그대로 코끼리를 집어삼켰다.
[음모오오오오오오!]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여우불은 마치 마른 장작에 붙은 것마냥 코끼리의 온몸에 달라붙는다.
코끼리가 벗어나기 위해 코를 휘두르지만, 이미 몸이 묶인 상태에서 코만 씰룩거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
스가악!
의외로 코끼리를 구해준 것은 재규어였다. 마치 암살자처럼 은밀하게 나타난 재규어의 발톱이 여우불을 찢어발겼다.
분노하며 튀어나온 코끼리가 다시 발굽을 굴리며 구미호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코끼리를 보조하기 위함인지 다시 깃털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어머.]
구미호의 온몸이 여우불에 휘감겼다.
보호막을 두르려는 건가?
그 순간, 여우불이 내 머리 위로 화르륵 타올랐다.
“!”
[마력 폭주도: 63%]
촤아아악!
여우불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 쇠사슬을 휘둘러 흐트렸다.
마력이 빨려 들어오며 여우불이 타오르지 못하고 꺼진다.
다시 본래 있던 자리에 나타난 구미호가 아쉽다는 듯 눈을 휘어 웃었다.
[어머, 아쉬워라. 그대로 백치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는데.]
“정면이나 조심하시지.”
[괜찮단다. 본녀는-]
구미호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상아를.
그대로 맨손으로 붙잡아버렸다.
[힘도 강하거든.]
끼이익!
그녀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상아는 그녀의 손을 뚫지 못하고 멈춰 선다.
코끼리 또한 마찬가지.
[…어, 어떻게 내 돌진을?!]
[너무 약하구나.]
구미호는 살포시 웃으면서 코끼리의 코를, 그대로 붙잡아버렸다.
[더 훈련하고 오렴.]
[우오오오오오오-!]
코끼리의 몸이 그대로 날아갔다.
거대한 몸뚱어리가 몰래 접근하려던 재규어와 부딪혔다.
뒤엉킨 채 날아가는 두 우두머리의 위로 깃털이 쏟아져 내렸다.
푹! 푹푹!
코를 휘둘러 깃털들을 막아낸 코끼리가 울부짖었다.
[라우르으으-!]
[어머, 미안. 실수란다, 실수.]
난 혀를 쯧쯧 찼다.
“병신들.”
[본녀가 너무 만만해 보였구나.]
저 셋의 불화를, 누구보다 감정에 예민한 구미호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녀의 부채가 휘둘러짐과 동시에, 여우불로 이루어진 기둥이 내리꽂혔다.
[---!]
[----!]
‘너무 압도적인데.’
상성이 너무 나쁘다.
아무래도 꼬리 하나에만 여우불을 담은 게 아닌 듯, 다른 구미호들에 비해 여우불이 강력했다.
그나마 희망을 품을 만한 건…….
[모두 비켜라.]
지룡인가.
난 거대한 마력이 응축된 지룡의 주둥이를 쳐다보았다.
초반에 시비를 걸 때를 제외하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지룡.
[브레스.]
지룡이 입을 쩍 벌린 순간, 마치 용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쿠과아아아아아아아아!
구미호가 다급히 여우불로 장벽을 세웠지만, 브레스는 무식하게 힘으로 뚫었다.
코끼리의 돌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
쿠와아아아아아아앙!
구미호의 몸이 브레스에 휩쓸렸다.
먼지가 미친 듯이 몽실몽실 치솟는다.
공주가 손을 휘젓자, 바람이 불어오며 먼지가 걷혔다.
[이건 좀 아프네…….]
곱게 빚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입고 있던 옷 곳곳에 구멍이 난 구미호가 콜록거렸다.
하지만 드러난 살갗에는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아, 진짜 괴물 같네.
하지만 지룡은 충분한 가능성을 본 듯, 잔뜩 자신감이 충만해진 채 버럭 외쳤다.
[네 잘난 꼬리를 싸그리 불태워주겠다!]
[지렁이가 나불바둘…… 어머, 그런데 인간아. 넌 안 끼어드니?]
그녀는 지룡보다 내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 날 보며 물었다.
눈동자가 이상하다. 어디 동인지에서나 볼 것 같이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동공에는 하트 모양이 둥둥 떠 있었다.
농담 안 하고 어디 야겜이나 야설의 일러스트로 나올 거 같은 분위기에 모습이다.
이 모습에 홀리고 그냥 몸을 내던지는 유저들이 이해가 될 정도.
‘이게 매혹인가.’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넌 내 취향이 아니거든. 난 아무나랑 뒹구는 X이랑 안 놀아.”
난 순애파거든.
[…진짜 보자보자하니, 잡것들이 자꾸 본녀를 모욕하는구나.]
“모욕이 아니라 팩트잖아.”
라온 리그벨토가 ‘응, 모욕 아니쥬? 응 팩트쥬? 아주 너덜너덜하고 넓어서 목소리가 메아리 울리쥬?’ 같은 말을 못 하는 게 한이다.
말로만 조질 자신 있는데 말이다.
[……오냐. 그리 원한다면 싸그리 불태워주마.]
“다들 뒤로.”
난 애들에게 눈짓을 보내 뒤로 보냈다.
여우불이 잔뜩 분노를 품은 채 내게 쏘아진다.
난 날아오는 여우불을 향해 쇠사슬을 휘둘렀다.
화르르르르륵!
쇠사슬이 여우불을 이루던 마력을 빨아 들였다.
하지만 화기(火氣)는 바로 사라지지 않고 쇠사슬에 들러붙은 채 계속해서 몸집을 키우고자 한다.
이전에 뇌기를 흡수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
이게 내가 노렸던 바다.
“응축.”
오랜만에 마법을 다루는 듯한 느낌에 팔찌가 울부짖었다.
쇠사슬에 들러붙어 있던 불꽃이 내 마력에 의해 강제로 내 손바닥 위로 응축된다.
소형 파이어볼. 하지만 화기가 잡아먹고 있는 것은 내 마력이기에, 본래 위력보다 10배는 강력할 터.
난 씨익 웃으며 파이어볼을 던졌다.
“옛다, 선물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여우불이 치솟기도 전,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간 파이어볼이 그대로 구미호에 닿으며 폭발했다.
[아하하하핫!]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듯, 공작새 라우르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하강했다.
[내 꺼야아아아아앗!]
라우르의 부리가 구미호가 있던 곳을 꿰뚫기 전.
여우불이 마치 폭발하듯이 치솟았다.
깜짝 놀라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강을 멈춘 라우르의 가슴팍에 기다란 선이 그어졌다.
……화르르르르르륵!
[꺄아아아악!]
선을 따라 불꽃이 치솟자,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저 멀리 어디론가로 추락했다.
아니, 뭐야. 갑자기 왜 저리 강해졌지?
[…그래. 왜 나서지 않는지 깨달았어.]
화아아악!
먼지가 걷히며, 등 뒤로 거대한 9개의 거리가 활짝 펼쳐진 구미호가 걸어나왔다.
이제는 아예 인간처럼 보이지 않겠다는 듯, 머리 위로 여우 귀가 삐죽 튀어나왔고, 뺨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구미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너, 마력을 전혀 다룰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