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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3화 (83/124)

제83화

잊혀진 신의 추종자, 퓨수아.

언제부터 살아있었을지 모르는 진정한 장수족이자, 실종된 신을 찾아다니며 고위 던전이 있는 곳에서만 나타나는 존재.

당연하지만 그가 나타나는 장소는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일단 확실한 건, 아즈벨라 도시에는 나타날 일이 없다는 것.

“하하, 오랜만이구만? 그동안 잘 지냈나?”

…방금까지는 그랬다.

난 내 앞에 선 키 큰 노인을 올려다 보았다.

대체 이 양반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당신이 왜 여기에 있지?”

퓨수아가 웃었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어서 잠시 보러 왔다네.”

“고위 던전이 열렸나?”

“오, 정답일세. 저 산 안에 열렸네. 뭐, 딱히 위험해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왔지만.”

저 숲에 열렸다고?

‘…원래 게임에선 그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역시 메인 이벤트 이전이라 그런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만일 고위 던전이 열려 이 도시가 난리가 났다면 분명 내가 알고 있었을 테니까.

아니면…….

‘천마신교에만 사고를 치나?’

하지만 대주교도 있을 것이고, 주교도 있을 것이고, 대주도 있을 텐데, 일개 던전 하나에 영향을 받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저기에 모인 강자들만 해도 웬만한 백작가 하나 정도는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훨씬 성장했군.”

“?”

“신체를 옥죄던 족쇄가 조금 느슨해졌구나. 심장은 여전히 복구가 안 됐지만, 네 손을 잡은 아이 덕분에 안정화됐구나. 그리고….”

“…….”

“너의 언제나 슬픔과 고통을 동반할 운명을 함께 이겨내 줄 좋은 친구들을 구했구나. 훌륭하도다.”

“…….”

“던전에서 얻은 것들도 아주 유용하게 쓰는 것 같고.”

대체 얼마나 경지가 높은 것인지, 날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다.

단순히 내 몸 상태만이라면 말도 안 한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내가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활용하여 전투를 벌인다는 것까지 전부 안다는 이야기 아닌가.

진짜 뭐 하는 괴물이야, 도대체?

“허허, 이 늙은이는 뿌듯하구나.”

털털한 웃음을 흘린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짚었다.

난 인상을 찌푸렸다.

“치워.”

“허허.”

오랜만에 ‘라온 리그벨토’답게 사납게 말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내 머리를 헤집었다.

치우고 싶어도 힘이 나보다 몇 배로 세니 당연히 치우기는커녕 손도 올릴 수가 없었다.

결국 강제로 머리카락이 헤집어지는데, 옆에서 스칼라가 잔뜩 경계 어린 눈을 한 것이 보였다.

퓨수엘은 스칼라에게 부드러이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반갑구나. 퓨수아라고 한단다.”

“…스칼라… 라고 해요….”

“묘족의 아이로구나.”

“…네….”

스칼라는 순순히 대답은 하고 있었지만, 털을 바싹 세운 고양이마냥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퓨수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턱을 쓰다듬으며 태연히 말했다.

“흠. 마력을 빨아먹는 체질이더냐? 아주 귀한 것이 태어났어.”

“…귀한…?”

“그럼. 너희 묘족들은 돌연변이니 뭐니 배척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명 중에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 같은 특이 체질은 오히려 귀하게 여겨져야지. 그래. 지내는 데에 불편함은 없고?”

너무 부드러운 태도에 적응이 안 되다가도, 스칼라의 나이를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7살. 내 마력을 빨아먹으면서 몸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테지만, 본래 나이가 어린 건 다르지 않다.

특히나 고대부터 살아왔을 거라 추측되는 퓨수엘에게는, 빠르게 성장하든 말든) 어린애임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오빠… 덕분에… 괜찮아요….”

“아주 좋은 인연을 만났어. 둘 다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겠구나.”

인상 좋은 할아버지처럼 웃던 그는 옷 소매를 걷었다.

“아, 그렇지. 한 번 내 마력을 먹어보겠느냐?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관리한 마력이란다. 맛이 좋을 게야.”

저리 말하니 뭔가 좀 이상한데….

아벨라도, 공주도, 데자트도 그걸 느낀 것 같지만, 뭐라 더 말하지는 않았다.

아벨라는 일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있기도 했었고.

공주와 데자트 정도 된다면, 그가 얼마나 강할지 알 수 있을 테니까.

“…….”

스칼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이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귀를 쫑긋 세우며 날 바라봤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먹어봐. 평생 내 거만 먹고 살 순 없으니까.”

“난… 괜찮은데….”

“네가 괜찮아도 상황이 안 괜찮을 수가 있어.”

스칼라는 별로 바라지는 않아 보이지만, 내가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퓨수엘의 팔에 손을 올렸다.

“음, 마력을 생각보다 많이 먹는 구나. 아주 식성이 좋아. 커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

그리 말하지 말라고. 그림이 좀 이상하다니까?

“…….”

퓨수엘의 마력을 음미하던 스칼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별로인가?

그녀는 말없이 퓨수엘에게서 손을 떼고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표정이 한층 편안해졌다.

“…오빠께 더 맛있어….”

“…….”

아니, 진짜?

나름대로 고대부터 살아온 양반이라 마력의 농도 같은 게 엄청날 텐데.

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로부터 이긴 것 같은 기분.

“크흠! 흠!”

씰룩거리려던 입꼬리를 누르고 있자, 소매를 다시 평평하게 핀 퓨수엘이 말했다.

“둘이 아주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구나.”

“그런 모양이지. 스칼라. 잘했어.”

“…나 잘했어?”

“응.”

“머리 쓰다듬어줘….”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사이, 그는 날 빤히 바라봤다.

왜 저래?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 빤히 보더니, 갑작스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내가 소개해준 친구를 잘 만난 모양이구나.”

“…당신 친구 맞아? 성격이 아주 개판이던데?”

“하하, 인성이 조금 안 좋은 면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강자들 중에 선한 이들이 드문 것을.”

그럼 본인도 성격이 더럽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내 불순한 시선을 느낀 그가 허허 웃으며 손을 들었다.

꽝!

“끄윽!”

이 미친!

난 커다란 혹이 난 듯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존나 아프네…….

“자네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배려해준 사람에게 그런 불순한 시선이라니.”

“난 죽을 뻔했거든?”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닌가?”

진짜 쓸만한 보상을 받은 게 아니었다면 복수하는 건데. 아니, 조금만 더 힘이 있었으면 조지는 건데!

“그래. 그래서 어디까지 들었나?”

“…무슨 소리지?”

“‘고대’에 대해서 말일세.”

난 반사적으로 애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말을 듣지 못한 듯,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는 내 손을 잡은 스칼라 또한 마찬가지.

“걱정하지 말게. 소리는 모두 차단해주었으니.”

아이고 친절하기도 하셔라.

‘이걸 말해도 되나?’

난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 정보를 알 수 있게 도와준 것은 퓨수엘이다.

퓨수엘이 나를 적대할 일은 없다고 보면 되고, 내가 정보를 알려준다면 그 이상의 정보를 돌려줄 사람이니…….

‘충분히 말 할 만해.’

“천마, 피라미드 왕, 마왕, 배신한 영웅들까지.”

“많은 걸 알았구나.”

그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나의 잊혀진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기쁘도다. 그래. 그래서 그를 죽였나?”

“아니. 협약을 맺었지.”

“협약이라… 훌륭한 선택이구나. 나를 제외한다면 살아있는 고대의 인물을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

스스로를 고대의 인물이라 인정하는 건가.

나는 그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이상은 그만.”

그는 단호한 기색이 느껴지는 손길로 내 앞을 막았다.

“아직 때가 아닐세. 자네가 쌓은 업이 하늘에 닿아 제자리를 찾을 때, 그때 이어서 이야기해주겠네.”

하여간 이해 못 할 말은.

그래도 대충 어떤 뜻인지는 잘 알았다.

‘업적을 쌓으라는 이야기겠지.’

지금처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이제 볼 일은 다 봤나?”

난 주제를 돌렸다.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미 그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으니.

난 굳이 그 선을 넘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 아주 반가운 얼굴도 있지만……. 아직은 크게 인사할 때가 아닌 거 같군.”

퓨수엘은 공주와 데자트 쪽을 힐끔 본다.

둘은 퓨수엘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살짝 굳었다.

하지만 퓨수엘은 더 이상 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물었다.

“이제 자네는 어디로 갈 셈인가?”

“고위 던전이 열렸다면서? 거기로 가야지.”

“이번에도 던전을 막을 셈인가? 사람으로서? 귀족으로서?”

“사람으로서.”

이번엔 귀족으로서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영지가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는데 나서는 건 오지랖에 불가하니.

“저 안에 내가 얻을 게 있어서.”

그리고 이런 대답은 퓨수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신을 모시는 사제로서, 누구보다 많은 오지랖을 부려온 사람이다.

‘오지랖은 아무리 선한 의도여도, 오지랖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았네. 그걸 미리 알았어야 하거늘.’

머릿속에 떠오른 그의 한탄은 지운다.

언젠가 다시 들을 수도 있는 대사이니, 벌써부터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퓨수엘은 던전의 보상을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자네의 특이한 체질이라면, 저 안에 있는 보상이 도움이 되겠어.”

역시 이미 봤나.

난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상에 대해 물었다.

“보상은 뭐였지?”

“옷이었네. 비록 삿된 것이 만든 거긴 하지만, 자네 정도의 마력이라면 별 상관 없겠지. 오히려 도움이 될 걸세.”

“삿된 것?”

난 숲을 가리켰다.

“저 숲에 있는 놈들과 같은 삿된 것?”

“그렇네.”

‘…던전 안에 천마신검이 있다고?’

아니, 잠만.

“옷이라고?”

“그렇네만?”

“……왜?”

아니, 대체 왜?

진심으로 황당해하며 물었지만, 퓨수엘 또한 황당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는 진심으로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니, 왜 옷이지?

분명히 검이어야 하는데?

“아, 옷이 아니었네.”

“그럼 역시 검….”

“로브였지.”

“…….”

그게 그거잖아.

난 매가리가 풀리는 걸 느꼈다.

대체 왜 저 안에 천마갑주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잠만.

“설마 저기에 천마도 있나?”

“없네. 그는 아직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건 그나마 다행인가. 만약 천마까지 있었다면 난 지금 바로 튀어야 할 테니까.

“……만약 저대로 방치되었다면 어찌 할 생각이었지?”

내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폭주가 일어났다면 내가 막으러 왔겠지. 저건 생태계를 망가트릴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는 그리 말하며 산을 힐끔 쳐다보았다.

“뭐, 저 안에 있는 삿된 것들이 그냥 놔둘 거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즉, 저 말은 본래 게임에선 천마신교가 고위 던전을 내버려 두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퓨수엘이 직접 나서 폭주한 고위 던전을 없앴고, 그 결과 본래 있어야 할 보상이 산에 묻혔다.

그리고 그걸 내가 찾았고.

‘…이게 진짜 말이 되나?’

천마신교는 사실 병신인 게 아닐까?

지들이 그렇게 찾던 걸 잡지도 못하고 말이야.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았다는 게 아니면 이럴 리가 없다.

정말 병신이라면 좋겠지만, 만약 의도한 거라면…….

‘조금 조심해야겠어.’

그놈들이 무슨 수작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정말 ‘만약’에 ‘혹시’에 불가하더라도, 저들은 어떤 변수를 일으킬지 모르는 위험 분자들이다.

당연히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했다.

“이제 슬슬 가야겠군.”

퓨수엘은 웃으며 내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너무 많은 정보를 풀 순 없으니,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머리 만지지 ㅁ…….”

“다음에 더 성장해서 보았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마.”

아니, 해줄 거면 다 해줄 것이지 다음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건 또 뭐야?

그리 말하고 싶지만, 나름 얻은 게 많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지.

슬슬 시간도 너무 많이 끌었으니, 천관산에도 들어가야 했고.

“그럼 다음에 또 보지.”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퓨수엘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진짜 신출귀몰이네.

“머리 정돈해드릴게요.”

“아, 어.”

아벨라가 엉망이 된 내 머리를 다시 빗겨주는 사이, 공주와 데자트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둘은 잔뜩 소름이 돋은 팔을 벅벅 긁었다.

“무, 무슨 괴물이야….”

“으으… 온몸에 소름 돋았어요….”

“아니, 당신 진짜 정체가 뭐예요? 어떻게 저런 괴물이랑 친분을?”

“할아버지… 친절했는데….”

“그건 스칼라가 어려서 그래요….”

하긴, 그 양반이 어린 애에게 유독 친절하긴 하지.

“어쩌면… 아버지도 더 위일지도….”

저 말을 들으니, 예전에 들었던 대사가 떠올랐지만.

굳이 더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원래는 내일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네?”

“오늘 밤에 들어간다.”

“…네?”

“둘 다 앞장설 준비해.”

“…네?!”

던전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고, 또 천마신교가 어떤 걸 해놓았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진입한다.

만약에라도 던전이 터져버린다면, 난 퓨수엘처럼 소리소문없이 정리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까 일해라, 노예… 아니 엘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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