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1화 (81/124)

제81화

황금 명가, 이즈벨라 가(家).

마법 명가, 검술 명가, 무투 명가로 불리는 다른 공작가와 비교하자면 특이한 명칭이 붙은 가문이다.

하지만 황금 명가, 라는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가문이기도 했다.

황금으로 쌓아 올린 명예와 부, 그리고 업.

검으로, 마법으로, 무투로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이들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부를 자랑하는 가문은.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 아니 제국 전체를 사버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웬만하면 엮이기 싫었는데…….’

다른 공작가는 상대하기가 비교적 쉽다. 둘 다 힘을 숭배하는 집단에 가까우니, 역으로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황금 명가는 철저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

이전 게임에선 아무리 빠르게 진행해도 이미 라온을 향한 이미지는 바닥을 치고 있었고, 황금 명가가 매긴 라온의 가치는 0에 수렴했다.

당연히 황금 명가의 사람을 만날 일은 없었고, 만난다고 해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왜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거지?’

지금은 내가 직계라서?

생각해보니 황금 명가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일 거 같긴 했다.

평범한 직계라면 모를까, 한 번 직계에서 추방당했으나, 극적으로 형제들과 겨루어 직계 권한을 되찾고, 원로들로부터도 인정받았다.

‘황금 명가 측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이긴 하네.’

여기 방문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와 찾아온다는 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워낙에 의심이 많은 양반이니, 이상한 건 아니겠지.’

그럼 이제 문제.

이 부름에 답해야 하는가?

이전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받았을 것이다.

‘직접 초대한다는 건, 충분히 나를 존중하고 원한다는 이야기.’

즉, 가기만 해도 얻을 게 많다는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귀찮은데.’

황금 명가라고 해도 내가 찾는 물건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이 뒷세계에서 운영하는 것중엔 쓸만한 게 있을 순 있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천마라는 존재가 사용하던 무기보다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럼 다른 애들 장비를 챙겨주는 건데…….

‘하나하나가 다 빚이란 말이지.’

정확히는 투자라 해야 옳겠다. 본래 투자는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 주지 못한다면 그건 빚이 될 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황금 명가는 투자를 그런 식으로 사용했다.

갚을 자신은 있으나, 그러고 싶진 않다.

애초에 나는 투자를 받을 이유조차 없으니까.

‘……친분 자체는 나쁘지 않으려나.’

하지만, 투자를 받지 않는 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천관산 안에도 들어가야 한다. 몰래 들어가서 안 들킬 자신이 있지만, 언제나 혹시 모를 일은 있는 법.

특히 사람이 엮인 일이라면 절대 자만해선 안 됐다.

“가지.”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뒤에 계신 일행분들도 함께 오셔도 됩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내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자, 애들도 날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스칼라는 작게 내 손을 당기더니, 내가 고개를 숙여주자 내 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오빠… 우리… 어디로 가…?”

“다른 공작가 집.”

“거길… 왜…?”

“얻을 게 있어서.”

대충 대답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스칼라는 금세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갸르릉 거리면서 내 손길을 느끼는 모습은 마치 고양이 같았다.

아, 얘 고양이 맞지?

“귀여운 여동생이군요.”

“그렇지.”

그런 모습이 귀여웠는지, 기사가 한 마디 덧붙인다.

난 한 번 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뒤로 젖혀진 후드를 다시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앗…….”

“다들 후드 눌러 써. 괜히 시선 쏠리게 하지 말고.”

“아, 괜찮습니다. 이미 인식 왜곡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알고 있다. 단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할 뿐이야.”

내 말은 어찌 보면 황금 명가를 경계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자분들을 아끼시는군요.”

“……?”

이게 뭔 개소리야.

“심지어 엘프가 두 분이라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같은 남자로서 존경심까지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다.

아니, 상식적으로 어린 엘프가 있는데 배우자는 개뿔이…….

‘아, 맞다.’

쟤 지금 어린 엘프 모습이 아니지?

난 공주의 역할을 한다고 다시 본래 나이의 모습을 한 공주를 눈짓했다.

하긴, 겉으로 보면 성숙해보이긴 한다.

나야 워낙에 평소에 하는 행동이 있어서 어리게 보는 거지, 타인이 보기에는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가지는 고귀함과 분위기에 성인이라고 볼 터.

‘그래봤자 160살인데.’

인간 기준으로 16살밖에 안 된다.

하프 엘프면 또 모를까.

음, 그러고 보니 다 여자이긴 하네.

……그림이 좀 그런가?

* * *

황금 명가의 별장은 으리으리했다.

별장이 아니라 백작이 직접 지내는 저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직 입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감상이라니.

‘게임에서 상당히 표현을 잘 해놨었네.’

그땐 일러스트니까 조금 과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덜 표현하면 덜 표현했다 싶을 정도다.

황금으로 바르지 않았으나, 대리석 같아 보이는 재질로 이루어진 장벽과 입구, 그리고 근처의 배경까지, 모든 조화가 완벽했다.

그뿐이랴? 입구에는 보기만 해도 혀가 쳐질 정도로 수많은 방범 마법이 걸려 있고, 저택을 둘러싼 장벽 또한 고위 마법으로 둘둘 감겨 있었다.

짐승이나 몬스터는 물론이고, 실력이 뛰어난 암살자마저 침범할 수 없는 공간.

“뚫을 수 있어?”

“네? 당연하죠?”

혹여 엘프도 못 뚫나 해서 물어보자, 그녀는 뭘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엘프들에게는 이런 방범은 의미가 없어요. 마력 사이로 숨어드는 방식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인간 일류 암살자 정도는 막겠네요.”

‘돈을 얼마나 퍼부은 거야?’

이게 겨우 별장 하나라고?

아즈벨라 도시의 가치가 높으니 이 정도로 투자했겠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역시 돈지랄의 가문.

내가 그리 생각하는 사이, 안과 제대로 연락이 닿았는지, 기사가 입구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그래.”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며 별장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택까지 쭉 이어진 길, 그 중간에 놓인 커다란 분수대와 그 옆으로 펼쳐진 수풀과 나무로 우거진 정원, 드문드문 어둡지 않게 은은한 빛을 내뿜는 아티팩트까지.

상상 속의 귀족의 저택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와….”

“무슨….”

뒤에 있는 두 엘프가 감탄하는 게 느껴졌다.

스칼라도 짧게 놀란 듯 해보였지만, 금세 관심을 껐고, 아벨라는 애초에 리그벨토 공작가의 저택에서 지냈기에 익숙했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즉. 둘 다 촌티가 났다.

“둘 다 촌티 내지 마.”

“네?!”

“초, 촌티라니! 저흰 엄연한…!”

“아주 신분을 다 밝히고 다니겠군.”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저택은 기사인 제가 봐도 매일매일 놀랄 정도로 아름다우니 말이죠. 아, 얼른 들어가시죠. 안에서 두 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접 마중까지?

이번만큼은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그 둘이 직접 나올 줄이야.

“어디서 기다리고 계시지?”

“분수대 앞에 계십니다. 그럼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사는 허리를 숙이며 물러나고, 이내 문이 닫힌다.

난 뚜렷한 시야로 분수대 앞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마법인가.’

무슨 마법을 이리 많이 덕지덕지 붙여놓은 거야?

뭐, 그래도 안전성 면에서는 단연 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을 보여야 적을 죽일 테니, 보기조차 힘들 테니 말이다.

“저기 분수대 앞에 두 명 있네요. 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지?”

데자트는 마법을 뚫어본 것인지, 두 외모를 감탄했다.

엘프 기준으로도 감탄할 만한 수준이라.

일러스트 그 이상인가?

하긴. 최소 조연급 캐릭터들은 모두 일러스트 이상으로 잘생기고 아름다웠다.

감히 그림 따위가 담을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일까.

‘성격도 좀 유순해졌으면 좋겠네.’

머리 쓰는 건 싫은데.

속으로 한숨을 쉬며, 천천히 분수대 쪽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시야가 뒤바뀐다. 어디론가로 이동되거나 그런 게 아닌, 이 정원이 얼마나 아릅답고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각이 풀리면서, 분수대 앞에 앉아있는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외모가 개사기네.’

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보고 있던 두 명이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렸습니다.”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은빛의 머리카락, 황금을 연상시키는 찬란한 황금빛 눈동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 닮은 중성적인 외모.

황금 명가의 쌍둥이별.

둘은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아펠니오스.”

“저는 알론.”

““저희들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라온 리그벨토라고 합니다.”

난 그들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소름 돋게도, 손의 감촉과 온기까지 모든 게 똑같았다.

마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이 둘이 쌍둥이인 이유는 이즈벨라 가의 혈통 때문이었다.

결코 쌍둥이 남매 말고는 태어나지 않는 혈통의 특징.

철저한 규칙으로 방계를 만드는 것을 금하는 리그벨토 가와는 느낌이 달랐다.

거긴 철저한 규칙으로 피가 낭비되는 걸 막으나.

여긴 몸에 흐르는 피 자체가 방계를 만드는 것을 거부했으니.

황금을 쌓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건 지략과 무력이다.

머리가 있어야 돈을 쌓을 산업을 굴릴 수 있고, 무력이 있어야 산업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각자 무력과 지략을 담당하며, 완벽히 역할 수행을 해내었다.

마치 태양과 달처럼, 하늘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고고한 거대한 별처럼 말이다.

‘태양이 아닌 별이라고 한 이유는, 황가 때문이긴 하지만.’

황가를 상징하는 것이 태양이니, 괜히 태양이라고 말했다간 황가를 향한 도전이라고 받아질 수 있다.

황금 명가가 대단하긴 하지만, 황가만큼은 아니다.

제국을 세웠으며, 한 번도 혁명이나 반란을 성공시킨 적 없는 고귀한 혈통.

만일 버블경제마냥 돈의 가치가 뻥튀기된다면 모를까, 다른 왕국이 버블 경제가 오면 왔지, 제국에 올 일은 없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물론 완전히 상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황금 명가가 돈줄을 끊어버리면 황가도 곤란해지니까.

‘서로 협업하는 관계지.’

황가도, 공작가도, 모두 서로가 필요했다.

황가는 제국을 지탱해줄 힘이.

공작가는 업을 쌓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배경이.

물론 절대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영 장소가 좋지 않군요. 접견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이 둘이 친절한 모습을 보이니 너무 어색하다.

일단 이것부터 적응해야겠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 * *

접견실의 내부는 화려했다.

공주와 데자트는 눈을 덜덜 떨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집사가 다가와 차를 건네자, 아까보다 2배는 덜덜 떨며 찻잔을 받는다.

아마 저게 백금화 하나 값일 텐데.

‘진짜 돈지랄이군.’

이거면 내가 돈지랄을 해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내 앞에 ‘지략’을 담당한 남자, 아펠니오스가 앉았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제가 직접 우린 차입니다.”

“향이 좋군요.”

후룩-

음, 독은 안 탔나. 독뿐만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들어있지 않았다.

오로지 ‘일반인’만을 위한 차.

난 이 차에 대해서 빠르게 알아차렸다.

“직접 드시는 차입니까?”

“맞습니다. 제가 보다시피 몸이 허약한지라. 저의 어여쁜 동생에게 많이 의지를 하거든요.”

솔직히 겉으로는 구분이 안 간다.

둘 다 똑같이 생긴 데다가 체형까지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말하면 호감도는커녕 관심도 못 산다.

여기서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스스로를 낮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가문에서 어떤 위치를 맡고 계시는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

내 말에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5단계 중 3단계 미소였다.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뜻의 미소.

‘잘 넘어갔군.’

투자를 받거나 할 생각은 없으나, 사이를 나쁘게 해서 좋을 게 없다.

최소한 평타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야 적어도 내 앞길은 방해하지 않을 테니.

“본 도시의 감상은 어떠셨습니까?”

“훌륭하군요. 왜 황금 명가에서 이리 많은 투자를 하는지 알 거 같습니다.”

“후후. 공자께서도 보신 모양이군요.맞습니다. 다만…… 가게들은 마음에 드시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

난 잠시 그의 말에 의아해했다.

방금 좋다고 말했는데, 대체 어디서…… 아.

“그저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챙겨온 것뿐이니. 곧 험한 곳으로 갈 것 같아서요.”

“아하. 그럼 다행이군요. 혹여 이 도시의 인프라가 부족하셨을까 걱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설마 그러겠습니다. 단지 곧 찢어질 옷이라 굳이 과한 걸 입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제 친구들도 그를 원하는 것 같고.”

“검소한 친구분들이시군요.”

아펠니오스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나 또한 뒤로 시선을 돌렸다.

애들은 내 말대로 후드를 잘 눌러쓰고 있었다.

다만 손까진 완전히 숨길 수 없었는데, 덕분에 데자트와 공주의 떨리는 손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값… 싸? 이게??’

아마 말풍선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뜨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래서.”

탁.

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 대화는 길어질수록 내게 불리하다.

정계를 휘어잡는 능구렁이 같은 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일개 게이머였던 나는 어느새 대화의 흐름에 휩쓸릴 수도 있었으니까.

“저를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저 만나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요새 사교계엔 공자의 대한 소문이 아주 자자하거든요.”

“……사교계 말씀이십니까?”

“네. 직계의 자리를 되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게 왜 사교계에 퍼져?

“부끄러운 일이지요.”

“가주께서도 흥미 있게 들으셨는지, 따로 제게 말씀도 하시더군요. 그래서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즈벨라 가주는 또 왜?

그 양반이 나에 대해서 왜 이야기 해?

가주가 직접 소문을 퍼트리는 수준이 아니라면 소문에 관심도 안 가지는 양반이…….

“그렇군요. 그래서. 어떠십니까?”

내 질문에 그가 미소 지었다.

“……훌륭하시군요.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공자.”

대체 뭘 보고 저리 만족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아하면 됐다.

난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이걸로 끝…….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이것도 연인데, 이걸로 좋은 관게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뭐야. 아예 투자까지?

아니지. 만약 이게 투자라면 그가 직접 언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는 건, 나를 떠본다는 것이겠지.

물론 몰라도 된다. 다만 그건 ‘투자’가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갚아야 할 돈이 될 터.

“‘투자’입니까, 아니면 ‘선물’입니까?”

“…….”

달칵.

내가 직접적으로 묻자, 그는 당황하지 않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4단계 미소.

꽤 흡족한 미소.

“‘선물’입니다.”

“그리고 제 다른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괜찮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겨우 선물 하나로 끝날 관계가 아니니.”

원래라면 끝날 관계가 맞다. 힘을 보태줄 세력 하나가, 적대 세력에 합류한 꼴이 되니까.

하지만 황금 명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황금 명가는 돈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가문이다.

아무리 리그벨토 가문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으며, 다른 이와 손을 잡는다고 해도 내치거나 적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게 손해니까.

받을 건 받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실력만 증명한다면 알아서 투자를 늘리거나 더 깊은 관계를 맺을 터이니.

‘즉. 황금 명가는 아무나와 손을 잡는 게 이득이라는 거지.’

아마 다른 형제도 투자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관계 정도는 유지하고 있을 터.

그럼 나도 관계 정도는 맺어두는 게 좋겠지.

“좋습니다. 보다 저만 받는 게 조금 부담스럽군요.”

“하하, 괜찮습니다. 제 일방적인 선물이니.”

“그럼 저도 일방적인 선물을 하나 드려야겠군요.”

천관산에서 얻을 쓸만한 아이템이 하나 있다.

물론 나는 못 써서 그냥 푼돈에 팔아버리거나, 그냥 아공간 주머니에 처박아두었던 아이템이지만.

이들에게는 충분히 쓸만할 터.

“다음에 만났을 때, 제 일방적인 선물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보다, 어떤 물건을 원하십니까?”

어떤 물건이라….

검을 받을까? 아니면 지팡이? 갑주?

‘다 크게 필요하진 않아.’

그렇다면…….

“목에 찰 수 있는 아티팩트가 좋겠군요. 이왕이면 흉터를 가려줄.”

“육체파십니까, 아니면 마법파십니까?”

“육체입니다.”

“착용자의 성별은?”

“여자입니다. 흉터를 가릴 용도이니 적당한 크기로 부탁드립니다. 이왕이면 일반폼과 전투폼이 따로 있으면 좋겠군요.”

“금방 좋은 물건으로 가져다드리죠. 아, 그리고.”

“?”

그가 집사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

아펠니오스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질은 어떤 걸로 원하십니까? 요즘 목에 차는 아티팩트는, 실전에서도 쓰고 밤에도 쓸 수 있는 재질로 많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움직이기 편한 걸로 주십시오.”

“아쉽군요.”

아쉽긴 뭐가,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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