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0화 (80/124)

제80화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그림자에서 치솟았다.

옆구리를 붙잡고 있는 인영은 근처를 빠르게 훑더니, 빠르게 바닥에 발로 무언갈 쓱쓱 그렸다.

마법진.

발에 묻은 흙을 바탕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짧게 빛을 토해내더니, 이내 그녀를 집어삼켰다.

“후우우….”

짧게 점멸한 빛이 사라지자, 그제야 그녀의 집이 보였다.

아니, 집이라고 하긴 뭐 했다.

그저 잠을 취하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천막과 침낭만이 존재하는 장소.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곳 앞에 앉은 그녀는 후드를 젖혔다.

“크흐으….”

후드가 젖히며 그녀의 흉측한 몰골이 드러났다.

본래 뾰족한 귀가 있어야 할 곳은, 마치 뭉툭한 칼로 억지로 뜯어낸 듯이 흉측한 단면만이 남아있었고.

본래 하얘야 했던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마치 다크 엘프를 연상시키는 모습.

그러나 다크 엘프는 그 모습 나름대로 고귀함과 신비로움을 품은 반면, 그녀는 그 어떤 것도 품고 있지 않았다.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녀는 상처에 포션을 들이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리그벨토라는 성을 가진 괴물 마법사가 마지막에 날린 건 <강타>.

아직 전투에 능숙하지 않은 초보 기사들이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기초 중의 기초 마법.

‘겨우 그딴 걸로 내 뼈가 부러질 줄이야…….’

아니, 애초에 모든 게 의문이다.

그 정도의 실력이 되는 마법사가 왜 굳이 마력을 흡수하는 저주받은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마법을 날려 목을 베어내면 될 것을 굳이

‘최소한 회복 시간은…….’

그 순간.

휘리리릭!

“흡?!”

그녀의 머리 위에서 쇠사슬이 쏘아졌다.

급히 반응하려 했으나, 이전에 서늘한 감각이 목에 닿는다.

이건 칼!

그녀는 쇠사슬보다 칼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 즉각 반응하려고 했으나.

“!!!!”

투쾅!

검의 뭉툭한 면이 그녀를 그대로 후려치는 게 빨랐다.

날아간 그녀가 벽에 처박혔다. 검의 단면에 제대로 얻어맞은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급하게 마력을 둘렀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빌어먹을…….’

이 정도의 실력자는 한 명뿐이다.

수호자 데자트. 공주를 지키고 수호하는 자.

“일어나라.”

평소 사용하던 장검이 아니라 대검을 걸친 데자트가 그녀를 싸늘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죄인, 이사벨라.”

“수호… 자….”

“자애를 베풀어 추방으로 끝냈거늘. 다시 그 추악한 면모를 우리 앞에 다시 드러냈구나.”

추방으로 끝내?

자애를 베풀어?

너무 화가 나면 웃음이 나온다고 했던가.

“크…… 크흐흐…….”

돌연 얼굴을 가리고 웃음을 흘린다.

한참을 웃음을 흘리던 이사벨라에게서 웃음이 돌연 뚝, 끊겼다.

얼굴을 가리던 두 손이 내려가며 그녀의 시뻘건 눈이 드러난다.

아니, 시뻘건 눈이 아니었다.

본래의 색으로 추정되는 검은 눈동자는 똑같았으나, 본래 흰자가 위치해 있어야 할 부분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충혈이라도 된 듯이.

“차라리 그때 죽이지 그랬어?”

“……뭐?”

“그때 차라리 죽이지 그랬냐고! 왜 비참하게 추방을 내려서 날 이리 만들어!”

“죄인 주제에 말이 많구나. 오냐. 죽고 싶다고 했느냐?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반응할 새도 없이 데자트의 다리가 그녀를 후려쳤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팔로 보호한 그녀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쾅!

굉음과 함께 다시 벽에 처박힌다.

만약 직빵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면 뇌진탕이 오거나 머리가 그대로 박살이 났겠지만, 팔로 보호한 탓에 그러진 않았다.

먼지 속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인영을 보며 데자트가 비웃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더니. 아주 멀쩡히도 일어나네.”

“너 컨셉 깨졌다.”

“아, 조용히 해요. 기껏 분위기 잡았더니만.”

데자트는 툴툴대며 대검을 고쳐잡았다.

라온은 이사벨라가 처박힌 벽 쪽을 바라봤다.

이제는 이대로 처맞고 있지는 않겠다는 듯, 마력이 치솟고 있었다.

손끝이 저릿거렸다. 마력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 만약 마력의 영향으로 몸에 영향을 주었다면 라온이 바로 알아차렸을 테니까.

이건 단순한 살기다. 그러나 몇 년간 지독하게 쌓아온 원망과 적의의 집합체이기에 환각이 보일 정도로 짙은 살기.

그 탓인지, 그녀의 기운이 몇 배나 많은 걸로 느껴졌다.

하지만.

‘대충 중급… 아니, 상급 초입?’

라온은 그런 것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녀의 원래 힘을 파악했다.

기운 자체는 2년 후와 달라진 게 없다.

그에 비해 경험은 한참이나 부족하다.

즉. 자신은 나설 필요조차 없다는 것.

‘경험이 늘어난 건, 단순히 세월의 문제인가?’

2년 동안 공주만 쫓아다녔던 놈이?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이건 나중에 알아봐야겠어.

라온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아벨라와 스칼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앗?!”

휙!

방금까지 아벨라가 있던 자리에 단도가 박힌다.

라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데자트에게 말했다.

“야. 일 똑바로 안 해?”

“흠칫!”

“빨리 처리해.”

“……알겠어요!”

좀 멋진 모습 좀 보여주려고 했는데…… 라며 입을 삐죽거리는 데자트를 무시하고 턱을 까딱거렸다.

데자트는 작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그녀의 기세가 뒤바뀌었다.

“수호자 데자트.”

수호자란 무엇인가. 공주, 혹은 왕을 지키는 이들을 칭한다.

진정한 수호란, 단순히 적으로부터 주인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적이 다시는 주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배제(排除)하는 것.

그것이 수호자의 또 다른 진면모.

쿠우우우웅!

그녀의 마력이 오로지 죄인 ‘이사벨라’를 죽이기 뿜어져 나왔다.

“죄인을 심판합니다.”

우우웅!

대검을 중심으로 마력이 퍼져나오며 이 공간 전체를 둘러싼다.

공간 지배.

그리고, 그림자가 사라졌다.

“!!!”

강제로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이사벨라.

그녀를 향해 데자트가 검기가 맺힌 대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검기가 골목 전체를 강타했다.

* * *

“쿨럭! 커헉!”

데자트의 검기를 온몸으로 받아낸 이사벨라가 입에서 검은 피를 게워냈다.

데자트는 이젠 검은 동공까지 붉게 물든 듯한 이사벨라와 눈을 마주치며 코웃음을 쳤다.

“일부러 살려놨더만, 은혜도 모르고 그런 눈으로 봐요? 정말 다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요?”

“망할… 창녀가….”

“그게 남자 경험도 없는 숙녀에게 할 말이에요? 아이 경박스러워라.”

뻐어억!

데자트의 발길질에 이사벨라가 다시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나뒹군다.

이내 그녀의 가죽 장화가 그녀의 머리를 잘근잘근 짓밟았다.

혹여 도망치지 못하도록 힘주어 누른 그녀는 내 등 뒤에 숨어 있는 샤흐에게 물었다.

“이 여자 맞아요?”

“……응. 맞는 거 같아. 그런데 다 패고 물어보는 거야?”

“일단 두들겨 패야 안 도망치니까요.”

퍽!

“감히 죄인 주제에, 공주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도주 하나 못하겠어요?”

그리 말하는 그녀의 어조엔 짙은 경멸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잠시 드러났을 뿐이고, 나 말고는 알아차린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언제 살벌한 목소리를 냈냐는 듯, 활발한 목소리로 돌아와 아벨라에게 말했다.

“봤죠? 암살자는 이렇게 잡는 거예요.”

“은신 기술도… 한계가 있구나….”

“저희 엘프들은 마력 사이에 숨어드는 은신술을 사용하죠. 이건 다른 은신술보다 더 정밀하고 은밀하게 숨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공간 전체의 마력이 다른 이의 통제하에 들어간다면, 쫓겨난다는 단점이 있죠.”

아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도 꽤 상대하기 어렵고.”

암살자가 마법사를 잘 상대한다는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실력이 낮은 경우다.

만약 둘 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면, 승리 확률이 더 높은 건 놀랍게도 마법사였다.

평소 마법사는 마력 소모를 감안하더라도 몸에 보호막을 두르고 다녔고, 이를 파훼하기 위해선 한 방으로는 부족했으며.

들킨 순간, 근처의 공간 전체가 들어내져 은신술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니.

“하지만 걱정 마요. 진짜 일류 암살자는 이것도 피할 수 있으니까. 저도 할 수 있고요.”

“진짜?!”

“네. 그러니까 나중에 가르쳐드릴게요. 일단은…….”

데자트는 이사벨라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들어 올렸다.

“이 죄인이 왜 공주님의 지갑에 손을 댔는지부터, 들어볼까요?”

“…….”

공주는 그녀를 보며 복잡한 눈을 했다.

데자트는 내가 동족을 죽인 걸 느꼈다. 그렇다는 건 공주인 그녀도 이사벨라가 동족을 죽였다는 사실 또한 알 터.

그러나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바로 책망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제 지갑을 훔치신 건가요?”

“…….”

꽈아아악-

“대답.”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

그녀의 말에 공주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제일 무서운 거?

“……나라의 적대?”

“아니야.”

이사벨라는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가족에게 버려지고, 동족에게 버려지고, 차가운 길바닥에 내던졌던 것만큼이나.”

그런 눈만큼이나, 그녀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짙은 독기가 깃들어 있었다.

“돈이 없는 게 제일 무서워.”

“…….”

“…….”

틀린 말은 아니다.

행복의 기준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나, 전부가 아닐 뿐이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돈이 없다면 그 무엇도 이룰 수가 없다.

물론, 그건 ‘인간’ 기준이었다.

“……저흰 엘프잖아요. 그런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요. 숲으로 가면…….”

“‘저흰’?”

엘프라면 언제든지 숲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죄인이 되어 추방된 것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사벨라는 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숲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희가, 날 추방했잖아!”

“그건… 당신이 죄를 저질러서잖아요.”

“그건-!!”

“입 닥쳐봐.”

모든 건 그녀의 ‘업보’였지만 말이다.

“이사벨라의 죄목. 동족 살해. 독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동족을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리지 않고 목을 잔인하게 난도질하여 살해. 그 죄로 죽어 마땅하나, 그동안 이룬 업적을 고려하여 추방으로 조치한다.”

“…….”

난 한순간에 입을 다문 그녀를 보며 비웃었다.

“그러게, 왜 그때 열등감을 터트렸어? 얌전히 목이나 베어주고 위로나 받을 것이지.”

“그건…… 그건……!”

데자트가 입을 다물게 하려는 듯,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난 손을 살짝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웬만하면 원작의 흐름대로 흘러가게 두어, 같은 결과값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압하는 과정이 훨씬 쉽긴 했지만 뭐…… 암튼 상황 자체는 똑같으니까.

“지키기 위함이었어!”

“?”

“그때 내 동료가 당한 독이 뭔지 알아? 뇌혈독! 몸이 아닌 뇌를 망가트리고 강제로 미친 상태로 만들어 학살자로 만들어버린다고……!! 백치 상태로 살게 냅두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친구가 그렇게 부탁했다고!”

“알아.”

“뭐?”

“그런데, 이건 확실해야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 죄목은 동족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잖아. 동족을 처참하게 ‘난도질해서 살해’가 원인이지.”

“그, 그건…….”

“쯧쯧. 아예 정신이 나가서 자기합리화까지 했구만.”

달라진 게 없네. 딱히 들을 필요도 없었군.

본래 그녀는 처음에는 죄악이라 생각해, 스스로 벌을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돈도, 인맥도, 뭣도 없이 뒷골목에서 처절하게 살아가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난…… 난 잘못한 게 없어. 모두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흔히들 말하는 자기합리화. 이런 거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녀 같은 이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이리 만든 이들을 원망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 따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게 이런 이들의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뒷골목에서 쓰레기나 주워 먹으며 살아가다가, 공주를 발견했고.

‘다…… 저놈들 때문이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끓는 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처참하게 살해하여 엘프들의 희망을 아예 없앨 목표를 세우고서.

아, 생각하니까 열이 오르네.

뚝! 뚜둑!

난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워낙에 살벌한 소리가 나서 그런지 아벨라가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주물러주었고, 팔이 안 닿는 스칼라는 내 손을 주물럭거렸다.

대충 안마를 받으면서 공주를 불렀다.

“공주.”

“……네…….”

“이 여자를 어떻게 할지 정해라. 아니면 내가 직접 나서겠다.”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공주는 눈을 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 원작에서 내가 그녀를 만난 시점이었다면, 즉결 처형을 내렸을 것이다.

동족이라고 해도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원흉이다. 아마 이사벨라만 없었어도 제국에서의 생활이 세 배는 편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괴롭힘 받은 거라곤 지갑을 빼앗긴 것뿐이며, 그건 나를 통해 해결했다.

또한 이사벨라의 죄는 이미 ‘추방’으로 끝이 맺어졌다.

더 이상 공주에겐 이사벨라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건, 자신을 해하려던 죄뿐.

아마 그녀 성격상 그걸 그리 신경 쓰지는 않을 테니…….

“……애매하네요…….”

우유부단한 판결이 나올 수도 있겠다.

지금의 유한 그녀라면 말이다.

“좋아요. 결정했어요.”

난 쇠사슬을 만지작거렸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만일 위험 요소를 남길 판결을 내린다면 제거할 생각이었다.

이는 데자트도 마찬가지인 듯해 보였고.

잠시 그녀와 시선을 나눈 사이.

“죄인, 이사벨라.”

공주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엘프 공주로서 가질 수 있는 고유 능력인 <판결>.

죄를 지은 동족에게 벌을 내리거나, 공을 세운 동족에게 상을 내릴 수 있는, 오로지 왕(王)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만이 다룰 수 있는 능력.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쿵-!

<판결>의 결과를 통해 부여될 강제성이 이사벨라의 몸을 옥죈다.

“당신은 저를 괴롭히려고 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 지갑을 훔쳤고, 죄를 저질러 추방당한 이후로도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죠.”

“그건… 그니까….”

“그러니 당신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겠습니다.”

역시 이대로 내버려 두는…….

“조용히 숲으로 돌아가세요.”

……응?

“당신의 죄악을 스스로 밝히고 용서를 구하세요. 그리고, 용서받을 방법을 찾으세요. 이건 저의 직위를 걸고 내리는 ‘판결’이며, 당신은 결코 거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광기에 휩싸여 누군갈 공격하는 일 없이 건강한 정신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강제력이 그녀의 몸을 휘감는다.

이사벨라의 상처 입은 몸은 여전했으나, 충혈된 눈이 본래 색으로 돌아오고 악마를 연상시키던 붉은색이 사라진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를 지배하다시피 한 광기가 싸그리 없어진 것이다.

‘와, 미친.’

저걸 저렇게까지 쓸 수 있는 거였어?

“아… 아아…….”

제정신을 차린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어느새 데자트도 그녀의 머리채를 잡던 걸 그만두고 가만히 내려보고 있었으니.

“죄, 죄송…….”

“당신이 사과할 엘프는 제가 아닙니다.”

공주는 어느 때보다 공주다운 모습으로 그녀의 사과를 거절했다.

“당신이 죽인 동료의 가족이지.”

“…….”

“포션을 하나 드릴 테니, 회복하면서 가세요. 가서 당신의 죄악을 고하고 뉘우칠 기회를 얻으세요. 당신은 아직 갱생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그녀가 내민 포션을 받았다.

“다음에… 다시 뵙는다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꼭…… 은혜를 갚을게요……!”

스르륵-

그 말을 남긴 그녀는 그림자 속에 스며들었다.

난 조용히 생각했다. 설마…… 한순간에 한 엘프를 갱생시킬 수 있을 줄이야.

이게 대륙, 아니 한 종족을 대표하는 ‘왕’의 힘인가.

완벽한 것도 아닌, 그저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로 가진 능력.

그럼 진짜 왕은 얼마나…….

“하아…….”

그녀가 내뱉는 한숨에 상념이 깨진다.

힘이 풀린 듯, 뒤로 쓰러지는 그녀의 등을 받쳐줬다.

후다닥 달려와 공주를 안은 데자트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한 위험이었어요.”

“맞아. 위험하지.”

“그냥 콱 죽어버리게 내버려 두시지.”

“하지만 아직 나를 죽이려 들지 않았잖아. 아직은 딱 도난만 했어. 다행히 내 능력이 통할 수준이기도 했고.”

그리고- 라며 그녀는 덧붙였다.

“죽인 생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거야.”

“그래도……. 히잉…….”

데자트는 지독히도 이사벨라가 싫었던 것인지, 입을 계속 삐죽거렸다.

하지만 대놓고 그녀의 판결에 반대하지는 않는 것이 나름 존중하는 듯 해보였다.

판결을 내리는 데에 상당히 힘을 사용한 듯, 지쳐 보이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다 끝났네요.”

“그렇지. 이 건만 따지면.”

“……네?”

나도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난 데자트에게 눈짓했다.

데자트는 그제야 이 공간을 둘러싼 마력의 장벽을 해제했다.

그제야 보이는 기사 한 명.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갑주와 투구, 황금으로 빛나는 가문의 문양.

“손님이 왔다.”

기사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데자트가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자,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적당한 위치에 멈춰섰다.

“라온 리그벨토님 되십니까?”

“그래.”

“기사, 마르벨트 가르오가 인사를 올립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가 귀족에게 올리는 격식을 차리고 인사를 올렸다.

와… 감동인데?

원래는 이게 정상이다. 기사가 귀족을 만나면 제대로 된 격식을 차리는 것이 예다.

하지만 그동안 만난 것들이 정상이 아니다 보니 이게 오히려 비정상처럼 느껴졌다.

“여긴 무슨 일이지?”

“당신을 뵙고 싶어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황금의 쌍둥이 별께서 당신을 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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