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빚이 크긴 큰가 보군.’
설마, 벌써부터 이 정보를 말할 줄이야.
원래라면 호감도를 더 쌓아야 겨우 들을 수 있는 귀한 정보인데.
어쩌면, 그녀는 지금 아직 고난을 겪지 않은 공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때의 내가 만난 공주는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방인이었고.
지금의 공주는,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순수한 존재였으니.
이런 정보를 더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부족한 걸 수도 있었다.
우우웅- 우웅-
‘어차피 언젠가 찾긴 해야 했지만…….’
현 쇠사슬이 유용한 건 맞다.
하지만, 쇠사슬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검처럼 뭔갈 베어낼 수도 없고, 망치처럼 무언갈 깨버릴 수도 없고, 창처럼 찌를 수도 없다.
여태까지는 마력을 흡수한다는 능력으로 때우고, 보조 마법으로 자잘히 보조하는 식으로 부족한 파괴력을 때우기는 했지만.
결국 한계가 올 것이다. 결정적인 파괴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쇠사슬이 무기로 만들어졌으나, 가면 갈수록 구속구라는 역할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존재했다.
“철퇴(鐵槌)인가?”
“……네. 맞아요.”
쇠사슬 끝에 무기 혹은 철로 이루어진 구를 매달아 휘두르는 방식의 무기.
그리고, 내가 메인스토리 최종 보스, 고밀라를 사용할 때까지 사용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이 쇠사슬의 최종 형태.
“……그 무기에 원래 달려 있어야 할 구를. 저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
“세계수?”
“…네.”
이미 내가 이 정도 사실을 아는 건 놀랍지도 않은지,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만에 적응한 건가?
나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럼 좀 늦게 찾아가겠군.”
“…네…?”
“넌 충분히 많은 걸 익히고, 왕으로부터 돌아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야 숲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
이때까지 봤던 것보다 훨씬 크게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아, 여기까진 아직 적응이 안 됐나?
미래에 가면 그녀 스스로 말해줄 사실이지만, 이제 우리는 하루 본 사이였다.
비밀을 말해주기는커녕, 비밀을 알지 않을까- 하고 경계를 할 만한 사이.
‘내가 너무 조급했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예요? 이건… 상식선을 넘었어요.”
그녀는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뾰족한 귀를 중심으로 마력이 조금씩 모여들고,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입 한 번 잘못 뻥긋하면 마법이 날아올 만한 분위기.
하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내 정체가 뭐냐라.’
무어라 대답해주어야 할까.
게임 하면서 공주가 내게, 아니 정확히는 ‘라온 리그벨토’에게 저리 질문했던 적이 많았다.
내가 워낙에 기상천외하게 플레이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저런 질문을 하도록 정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내가 고른 선택지는 언제나 같았다.
-라온 리그벨토.
선택지가 바로 그것 하나였으니.
영웅의 문에선,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눌시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일상 같은 대화에선 ‘직접 선택’이라는 칸이 만들어져, 내가 생각한 선택지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예외는 없었다.
“글쎄.”
빙의 이전까지는.
난 달을 쳐다보았다.
‘라온 리그벨토라고 말해도 될까.’
나는 라온 리그벨토가 아니다.
그저, 라온 리그벨토라는 몸에 무단 침입한 게임유저일 뿐.
만약 적당히 모르는 사람이거나, 친분만 유지하는 사이라면 얼마든지 나를 라온 리그벨토라고 밝히겠지만.
10년 동안 플레이해온 게임에서 항상 동료로 삼고, 나뿐만 아니라 라온 리그벨토와 감정 교류까지 해온 친구이자 동료인 공주, 샤흐에게 말하긴 조금 꺼려졌다.
거짓으로 말해도 될까.
‘……아니. 오히려 그녀니까, 더 거짓으로 말해주어야겠지.’
나중에 내가 이 세상의 엔딩을 보고, 본래 몸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아닌, ‘라온 리그벨토’의 곁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이전에 말한 거 같은데.”
지금은 밤이니 달이 태양을 대신해서 세상을 비추고 있지만.
다시 낮이 찾아올 때, 해에게 내 역할을 넘겨주어야겠지.
때가 되면 돌아갈 나의 역할은 딱 달에 어울렸다.
“나는 라온 리그벨토다.”
그녀는 달을 지키는 별이 아닌.
낮이 되어 다시 떠오른 해를 지켜주는 구름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 * *
끼이익…….
데자트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문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발코니의 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 샤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자트는 묵직한 눈을 비비면서 겨우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샤흐… 어디 다녀왔어요…?”
“아… 잠이 안 와서 바람 좀 쐬고 왔어. 얼른 자.”
“네에….”
데자트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거부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금세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에 든다.
샤흐는 손을 닦고,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우면서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머릿속에선 라온이 남긴 말이 아직도 아른거리고 있었다.
‘왜지?’
라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난 라온 리그벨토다.
리그벨토 가(家).
숲에 있던 시절에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마법 명가.
일개 인간이 세웠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가문.
정말로 라온이 리그벨토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가 돈이 많은 것도, 왜 그리 괴물처럼 강한 지도, 성격이 특이한 것도, 왜 굳이 돈이 많음에도 모험을 하는 건지도, 모두 납득이 가능하다.
‘거짓말은 아닐 거야.’
귀족 사칭은 중죄다.
들키는 순간 당사자는 눈이 뽑히고 사지가 잘린 채 광장에 방치된 채 죽어갈 것이다. 가족 또한 두 눈이 뽑힌 채 성욕에 미친 죄수들에게 던져지겠지.
이런 고급 여관에서, 그것도 탁 트인 발코니에서 대놓고 사칭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겠지만.
‘왜…….’
그런 눈으로, 날 본 거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이름을 밝혔을 때 응시하던 눈빛은.
적대하던 것도, 슬픈 것도 아니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어떤 느낌이냐면…… 그래.
‘꼭, 자기가 죽는 미래를 보는 것 같았어.’
도대체 왜?
머리가 복잡했다.
인간은 조금만 아파도 예민하고 까칠해진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죽음을 앞두기까지 했다면…….
그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 대체 어떤 것이 그처럼 강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일까?
‘……모르겠어.’
그가 자신의 시련에 대해서 아는 것도.
세계수에 대해 아는 것도.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걸 아는 것 같은 기분도.
모르겠다.
‘……같이 지내다 보면, 알겠지.’
이건 그녀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응. 절대 아니야.
단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야 하니까.
정보 노출로 숲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친해지는 거야.’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무리 같이 다녀도, 그는 자신을 절대 해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쏴아아아아-
쌀쌀한 밤공기가 불어온다.
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날 경계하려나.’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풀었다.
어느 정도는 모르는 모습을 보여야 했었는데…….
‘이것도 버릇이야, 버릇.’
아는 정보가 있으면 전부 다 풀고 보는 것.
그걸 통해서 새로운 루트가 개척되길 원하는 것.
빙의 이전의 나는 그런 걸 바라왔고, 얻는 정보가 있다면 재깍재깍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업로드했다.
그걸로 많은 수익을 땡기긴 했지만, 솔직히 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어떻게든 ‘라온 리그벨토’가 살아갈 길을 만드는 것.
최종 보스를 잡은 이후에, 스토리가 끝이 난 이후에도, 멀쩡히 살아 숨쉬며 게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게 목표였으니까.
‘원래는 공주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빠르게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이기도 했고.’
공주는 엘프왕이 내린 명령을 모두 수행하거나, 엘프왕이 직접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까진 돌아갈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잔뜩 데이고 지치며, 온갖 고난과 역경을 넘어온 그녀는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오로지,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만난 당시엔,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을수록, 많은 지식을 풀수록, 호감도가 쭉쭉 올라갔었다.
‘사실 지금이 정상이지.’
그럼, 이제 중요한 건 정상인 그녀를 지키는 것.
경계심이 올라갔다면… 슬프겠지만, 회유하는 방법은 많았으니까.
난 고개를 돌려, 여관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나와라.”
“…….”
“나오지 않는다면 네 정체를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어. 수호자를 감당할 자신은 있나 봐?”
내 말에 지붕을 덮은 어둠이 작게 일렁거린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스르륵- 어둠이 내려왔다.
이내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치솟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녀가 말했다.
“그녀에게서 떨어져라.”
“왜?”
“떨어지지 않는다면, 너도 죽이겠다.”
짙은 살기와 적의. 후드 사이로 보이는 목의 흉터.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날?”
“너에 대한 정보는 이미 파악했다.”
“아니.”
난 로브의 헐렁한 부분에 넣어둔 쇠사슬을 빼내어 그녀에게 휘둘렀다.
캉!
쇠사슬이 단도에 막힌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움직임은 아니다. 날아온 순간 당황하는 게 느껴졌으니까.
뒤이어 날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게 느껴졌지만, 이전에 내 손이 쇠사슬을 먼저 꽉 쥐는 게 빨랐다.
<구속>
촤르르르륵!
“!!!!”
쇠사슬이 기형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그녀의 팔을 휘감았다.
급히 그녀가 내 쇠사슬을 떨쳐내기는 했지만.
한순간에 상당히 마력을 많이 빨린 듯, 그림자에 숨지 않고 날 노려볼 뿐이었다.
“왜. 놀라워?”
완전히 이전과 같지는 않다.
아직 덜 익었다. 원래라면 이런 변칙적인 공격 따위 막았어야 정상이나, 제대로 막지 못하고 마력이 빨렸다.
2년이란 세월이 큰 건가? 엘프들에게 있어선 2달이라는 찰나에 가까운 세월에 가까울 텐데.
“정말…… 죽고 싶은…….”
이를 빠득 갈며 날 노려보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죄인 이사벨라는 들어라.”
“……!!!”
“한 번 더 왕족 시해라는 죄를 저지르려고 하면.”
난 충격에 손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추방이 아닌, 처형으로 ‘처벌’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
“너…… 대체 어떻게……!”
“지금 움직이면 데자트가 깰 텐데. 계속 해 볼 건가?”
흠칫-
데자트란 이름에 그녀가 흠칫 떤다.
나에게야 그냥 좀 모지리 같은 느낌이지만, 데자트는 엄연히 상급 기사였다.
다음 경지인 소드마스터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완숙한 경지이며, 가능성 또한 넘치는 인재.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약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하루 주겠다.”
결국 물러나기로 결정한 듯, 그녀는 물러섰다.
하지만 물러서면서도 날 노려본다.
엘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뻘건 눈동자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네 소중한 사람부터 죽이겠어. ”
“해봐.”
동시에, 우리 둘은 서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 전에 네가 살아야겠지만. 죄인씨.”
촤르르르륵!
퍽!
촤악!
주륵….
* * *
다음 날 아침.
달그락, 달그락-
우리는 모두 귀신같이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있었다.
잠이 부족하지만 내가 가는 곳은 따라가겠다며 억지로 따라온 스칼라는 내 어깨에 기댄 채 졸고 있었고, 공주는 어제 늦게 잠이라도 든 듯 깨작거리며 먹고 있었고.
아주 푹 잔 듯한 데자트는 순식간에 5그릇을 먹어 치웠다.
“…….”
아벨라는 그걸 보더니 나름 승부욕이 붙은 듯 입에 잔뜩 집어넣었다.
와, 살다가 엘프랑 인간의 푸드파이트를 다 보네.
“데자트…!”
“으벱?”
“그렇게 막 넣으면 어떡해…!”
“괜압아오…!”
“내가 안 괜찮아!”
공주는 그런 데자트가 부끄러운 듯, 귀를 벌겋게 물들인 채로 깨작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으응….”
난 고양이마냥 작게 갸르릉거리는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조금도 손대지 않은 음식 그릇을 공주 쪽으로 밀어주었다.
“더 먹어.”
“네?”
“난 배불러.”
내 말에 공주가 그릇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담았다.
어제 괜히 나 때문에 심란해져서 잠을 못 잘 것 같았으니까.
‘잠을 못 자면 든든하게라도 먹어야지.’
“…….”
내 호의는 부담스러운데, 또 먹고는 싶은.
그런 표정을 지은 그녀는 눈에 띄게 갈등했다.
그러다 먹기로 결정한 듯, 손을 뻗은 순간.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을게요!”
휙!
데자트가 가져갔다.
난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릇을 내려놓았다.
“……라고 할 뻔? 사실 전 슬슬 배가 불러서….”
“그럼 제가 이긴 거죠?”
“네?”
인간과 엘프의 푸드파이터는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무튼.
“와… 맛있어….”
그녀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이라 그런지,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금세 그릇을 비웠다.
싸그리 비우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린 듯 허리를 피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래봤자 이미 다 봤지만.
내 시선을 느낀 듯, 귀를 붉힌 그녀는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당신… 엄청 적게 먹었는데… 이걸 저한테 줘도 돼요…?”
난 적당히 찬 배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소식하는 편이라.”
“나중에 배고프실텐데… 그보다 그, 아이는….”
그녀의 말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샤흐가 몽롱한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 저는… 밥을 안… 먹어서….”
“네? 밥을 왜…?”
“전… 오빠의 마력만… 먹어서….”
“마력을 먹어…?”
공주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음, 지금 시점에서는 모르나?
엘프 사이에서 알던 지식이 아니라, 인간 세상으로 나오면서 알게됐나보군.
난 새롭게 알게 된 정보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대충 둘러댔다.
“특이 체질이지.”
괜히 애 앞에서 돌연변이니 뭐니 하는 건 교육에 좋지 않다.
난 그냥 별 생각 없이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은 채 내 손길을 받아들이던 그녀는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
“오빠…….”
“응?”
그녀가 내 팔을 걷어 올렸다. 팔 안쪽에 생긴 긴 자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왜… 상처 났어…?”
“아, 이거?”
어떻게 알았지? 향수까지 뿌렸는데.
난 대충 둘러냈다.
“신경 쓰지 마. 파리 쫓다가 긁혔어.”
“파… 리…?”
“어. 파리. 빠르더라.”
갈비뼈를 부러트리긴 했는데, 그 대가로 팔에 큰 자상이 생겼다.
몰래 붕대를 감아서 감추긴 했는데, 워낙에 긴 상처이고 팔을 움직이다 보니 붕대가 말려 올라간 모양이다.
이래서 혼자서는 싸우려고 안 했던 건데.
“당신이… 파리를…?”
“파리는 원래 최강의 생명체야. 아, 그건 모기던가?”
원펀치 빡빡이도 못 잡는 모기씨다.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잡겠어?
“??”
“??”
물론, 지구식 유머이다 보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파리… 나빠….”
“그렇지. 아. 오늘치 돌.”
“마석… 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녀는 돌, 아니 마석을 받으며 작게 물었다.
난 그녀가 먹는 걸 잠시 보다가, 슬슬 아벨라의 폭풍 먹방도 끝난 듯하여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랑 파리 잡으러 갈 사람이랑 엘프?”
내 말에 전부가 손을 들었다.
……나도.
“???”
“스칼라….”
“미안… 해보고… 싶었어….”
내 손은(팔은 안 움직였다) 대신해서 들은 스칼라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내 팔을 내렸다.
그리고 내 말을 지적했다.
“……그리고… 오빠… 방금 문장이… 이상해…….”
“쟤네보고 사람이라고 할 순 없잖아.”
“…….”
“…….”
“왜 그리 보는…… 욕으로 한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