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8화 (78/124)

제78화

옷 쇼핑을 시작한 지, 어언 30분.

샤흐와 데자트는 깨달았다.

부자의 ‘옷 좀 사자’의 기준은 차원이 다르다고!

“이, 이건 너무 비싼데.”

“어떻게 천이… 이런 느낌을….”

둘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이 옷 주게.”

“네! 금방 사이즈를 재 드리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해버렸다.

차라리 한 벌이라면 모르겠다. 꽤 비싼 금액이긴 했지만! 정말, 정말 한 두 개 정도는 도게자를 박는 걸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고 다른 색 전부.”

“……네?”

“여기부터 저기까지, 전부 달라고 했네만.”

“……그,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건…….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

“아. 아벨라. 너도 한 벌 사.”

“네?”

“마음에 들어서 힐끔힐끔 보고만 있잖아. 그냥 가지고 싶다고 말을 해.”

“아, 아니……. 그… 그게 아닌데….”

“스칼라.”

“…응…?”

“뭐해. 너도 가서 옷 골라. 오늘 말고 옷 안 살 거야.”

함께 다니던 이들의 옷까지 전부!

그리고 샤흐는 볼 수 있었다.

그가 카운터에 백금화 한 닢을 낸 것을!

‘미쳤어…….’

“공주님….”

처음엔 좋다고 했지만, 옷이 자꾸 늘어자 울상을 지은 데자트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아요….”

그 목소리는 라온에게까지 들렸다.

“필요하면 다시 부르지.”

“예!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직원을 물린 그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아벨라는 하녀 출신으로, 억지로 적응되었다 보니 그나마 사정이 나았고, 스칼라는 너무 어린 탓인지 정확한 금액을 모르는 느낌이라 표정이 괜찮았다.

하지만 저 두 엘프는 달랐다. 너무 잘 알아서 지금 내가 사는 옷들의 가치를 아는 모양.

너무나 부담스러운 나머지 울상이 된 표정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일부러 명품 가게가 아니라 다른 데로 왔건만.’

굳이 지구로 비유하자면.

샤넬이나 에르메스에 가려던 걸 라코스테나 오프화이트에 온 격이다.

마음 같아선 그런 비싼 데에 가고 싶었다.

‘전생의 명품과 이곳의 명품은 다르니까.’

전생의 명품은 재질과 브랜드의 가치로 값어치가 매겨진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명품은 브랜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성능. 특히나 착용자를 보호해주는 능력에 치중되어있었다.

주 고객층은 아름다우며 안전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옷을 원했으니까.

‘……뭐. 장신구로 떼워 주면 되겠지.’

나중에 몰래 작업을 좀 해놔야겠다.

“……그만 갈까?”

“네!”

“네!”

“오, 옷은 이제 그만!”

라온이 대충 던진 말에, 모두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아니… 보통 여자애들 쇼핑 좋아하지 않나?

특히 명품?

‘너무 남녀차별적인 생각인가?’

전생에서 여자들이랑 다녀봤어야 알지…….

“그래. 가자.”

그들은 후다닥 착용(강제)하고 있던 옷을 갈아 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사이, 라온은 카운터에 다가가 금화 하나를 내밀었다.

“달나라 여관으로 배달 가능하나?”

“네! 가능합니다!”

“주문도?”

“물론입니다, 손님!”

라온은 100 금화를 하나 더 내밀었다.

“옷들에 전부 보호 아티팩트를 착용시켜주게. 아주 은밀하게.”

“……오늘 저녁 내로 꼭 배달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시간에 맞춘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다면.”

라온은 살짝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과 눈을 완전히 드러내며 직원을 바라봤다.

“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뒤집어 엎을 거야.”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점장한텐 ‘라온 리그벨토’가 왔다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네?”

고개를 숙인 채 라온의 성을 들은 직원이 급히 고개를 들며 반문했지만.

라온은 옷을 갈아입은 여인들과 저 멀리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리그벨토 가문이면…….’

직원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한편, 드디어 갑갑한 옷가게에서 벗어난 데자트와 샤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살았다…….’

둘도 돈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당연히 비싼 옷도 입어보고 싶었고, 사치도 부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부담스러워!’

심지어 타인의 돈이지 않은가.

자신의 노력이 조금도 곁들어지지 않은, 순수 타인의 돈.

당연히 작은 선물로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아예 옷가게를 탈탈 털어다시피 했으니…….

‘그나마 옷을 몇 개만 사서 다행이야…….’

여러 색으로 사버린 탓에 절대적인 양이 많은 거지, 종류가 많은 건 아니었으니까.

툭!

“앗.”

누군가가 샤흐를 툭 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려던 샤흐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적의라도 있는 것마냥, 일부러 어깨를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뭐지? 술이라도 먹은 건가?’

인간들끼리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자주 봐왔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뭔가가 허했다. 뭐가 ᄈᆞ진 거 같은 느낌…….

뭐지? 대체 뭐가 빠진…… 잠만. 설마?!

“공주… 아니 샤흐? 무슨 일 있어요?”

“내, 내 지갑이!”

“지갑은 여기에 있는데.”

샤흐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분명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라온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저게 왜 저기에……?

“간수를 잘해야지. 남이 훔쳐가는 데도 못 잡고 말이야.”

“……네, 네?”

“감히 언놈이?!”

그럼, 방금 부딪힌 소매치기범이고…….

“사과라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마침 지갑을 주고 가더군. 선물이야. 데자트. 가지던가.”

“……왜 난 쓰던 거예요?!”

“새로 사줘?”

“아뇨…….”

……소매치기한테서 역으로 지갑을 훔친 거야?

저게… 귀족?

귀족들은 다 저러나?

* * *

‘아주 짜증이 났나 본데.’

난 공주를 치고 지나간 소매치기범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소매치기범을 지나간 자리.

기척을 꽁꽁 숨기고 있으며, 나보다 경지도 더 높기 때문에 아무리 나라도 쫓는 건 무리다.

당연히 지갑을 훔쳐오는 것도 무리.

하지만 내가 그놈에게서 지갑을 훔쳐올 수 있던 이유는.

‘이 정도로 대놓고 접근할 줄이야.’

아주 자기가 ‘응애, 나 아기 적. 빨리 눈치채줘’라고 하면서 다가오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더군다나 시선이 완전히 공주에게로 쏠려 비교적 나에 대한 경계심이 약했고.

그래서 일부러 그가 또 훔친 지갑을 회수하는 김에 그의 지갑까지도 훔쳤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그의 타깃이 ‘엘프’인 공주가 아니라 내가 될 테니까.

그때, 익숙지 않은 마력이 내게 다가왔다.

짜릿한 느낌.

동시에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엘프에게서 떨어져라.

전음. 심지어 꽤 먼 곳에서, 일방적인 전달 형식으로 보냈다.

강함은 내 기억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

하지만 상관없었다.

‘x까.’

난 지금보다 더 구린 상태에서도 그를 때려잡았다.

지금은 최악의 상태에서 잡았던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다.

겨우 저 정도의 암살자를 못 잡을 리가.

그런데도 내가 아직까지 붙잡지 않은 건.

그는 내가 먼저 나서서 때려잡아선 안 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언제 접근하려나.’

저놈이 ‘제대로’ 접근하여 일을 끝내야만, 천관산에 들어갈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접근해라.

그럼 그 잘난 귀부터 잘라줄 테니까.

* * *

‘흐으…… 시원하다…….’

밤.

잠을 청하기 전, 라온이 사준 옷을 입고 잠시 발코니로 나온 샤흐는 찬 밤공기를 잔뜩 만끽했다.

원래라면 이 공기를 맞으면서 잠에 들어야 할 텐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

공주라고는 하나,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저 공주라는 직함은, 왕이 낳은 유일한 자식이자 후계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은 명예는 얻게 해줄지언정, 부는 불러들이지 못했으니.

달칵-

“?”

그녀는 옆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발코니.

언제나처럼 로브를 걸친 라온이 양 손에 고급진 잔을 든 채 나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보더니, 손에 든 고급스러운 잔 하나를 살랑 흔들었다.

“마실래?”

“……네? 잠만. 그거, 엄청 비싼 음료….”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들의 계약을 잊었나?”

“…….”

그녀는 계약서 내용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의식주는 갑이 모두 해결한다.

“…….”

“이검 엄연한 식(食)이지. 계약한 지 이제 하루 됐는데, 자꾸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내가 마음이 좀 여려서 말이야.”

여려……?

그녀는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만난 지 이제 하루 된 사이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입을 다물었다.

라온도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잔에 담긴 음료를 마셨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촤르륵-

라온에게서 쇠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저거다.

“……저는, 당신에게 빚을 졌어요.”

“그래. 내가 아니라고 해도 너희는 끝까지 그리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당신을 도와줄게요.”

“이미 계약했잖아.”

“그건, 솔직히 말할게요. 아마도… 데자트가 대부분의 일을 할 거예요. 데자트가 저보다 경지도 높고, 기사다 보니 범용성도 넓으며, 아마 당신의 스타일과 맞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라온의 스타일은 웬만한 마법사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라온의 쇠사슬은 피아 식별 따위 하지 않고, 닿는 모든 마력을 빨아들인다.

이는 함께 싸우는 동료 마법사의 마력도 마찬가지이며.

그에게 마법이 조금이라도 닿거나 영향 내로 들어간다면, 발현된 마법이 취소되거나 변수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전부 다 육체파지.’

스칼라와 공주.

둘 다 육체파였으며, 멀리서 전투를 돕는 역할 따윈 없었다.

어차피 광역 마법 같은 걸 써도, 내 쇠사슬이 모조리 먹어치우니 의미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좀 다르지만.’

왜 창을 다루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겠지.

그리고 굳이 라온이 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죽을 위기나 위험한 상황이라면 꺼내들게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꺼낼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마음을 다급하게 잡을 필욘 없겠지.

“그래서?”

“그러니까, 전 제 나름대로 당신을 도복 싶어요. 예를 들어, 당신에게 필요한 걸 준다든지.”

“난 무력을 원하는데.”

“그건… 솔직히 모르겠어요. 당신이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엘프들이 내게 도움이 될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 아무리 너희들이 마력을 정순하게 만들고 자연에 한없이 가깝게 만들 수 있다고 한들, 결국 마력을 건드려야 하는 거니까.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

라온의 말에 엘프 공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라온은 그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많은 걸 오픈하나?’

좀 자제해야 하나?

…아니. 아니다.

그녀의 성격상, 그건 관계를 좁히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게 만드는 요소일 뿐일 것이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없으니까.’

애초에 내가 직접 몸으로 겪어봤냐느니, 죽어봤다느니, 네가 직접 말해줬다느니, 온갖 얘기를 꺼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대충 넘기면 되겠지.

“그래서, 네가 내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라온의 질문에 그녀는 다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작게 숨을 몰아쉬더니, 라온의 손목을 두른 쇠사슬을 가리켰다.

“당신의 무기…… 제가 더 강화시킬 수 있어요.”

“강화?”

“네. 정확히는…….”

그녀의 황금색 눈이 묘한 빛을 품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현안(賢顔)을 연상시키는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고고히 빛나며, 지그시 라온의 쇠사슬을, 아니 라온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무기를 본래 모습으로 돌릴 방법을 알아요.”

우우웅-!

처음으로.

쇠사슬이 반응하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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