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나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다음 날.
잔뜩 긴장한 채로, 어제 데자트와 얘기를 나눈 대로 함께 다니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샤흐는 잔뜩 긴장한 채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꼭 쥐었다.
‘만약 거절하면…….’
어떡하지?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데자트가 그가 그런 걸 거절할 성격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확실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도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0년 동안 친구로 지냈는데도 성격 차이로 인해 다툼을 벌여 손절하는 경우도 여럿 있지 않은가.
라온과는 길어봤자 2주일 정도밖에 같이 지내지 않은 데자트가, 그의 성격을 전부 파악했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니 잔뜩 긴장한 채 말을 기다리고 있자.
“난 위험한 곳에 다닐 거야.”
라온은 거절하는 대신,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어투로 대답을 해주었다.
“자칫하면 죽어. 아니면 흉터가 남을 수도 있고.”
“괜찮… 아요.”
“엘프의 재생력을 믿는 거라면 추천하지 않는데.”
흉터, 라는 단어에 라온이 힐끔 옆에 있는 하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분명히 예쁜 외모였으나, 목을 가로로 그은 목의 흉터 때문에 예쁘다는 생각이 덜 드는 외모였다.
게다가 흉터가 얇다 보니, 마치 심한 목주름처럼 보이기도 해서, 솔직히 미관적으로 보기 좋지 않았다.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만큼, 그만큼 덕을 받아왔을 테니 저런 흉터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터.
더 이상, 아름다운 외모가 빛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걸 알 텐데…….
‘저렇게까지 평온한 표정이라니….’
하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엘프라면, 그래. 이해할 수 있다.
엘프에게 있어서 미(美)라는 것은 하찮고 의미 없는 것에 가까우니.
하지만 인간이 미(美)라는 것에 얼마나 집착하고 매달리는지 아는 그녀는, 도저히 저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믿으면…….’
그를 따라갔다가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았음에도, 여전히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럼, 자신이 따라가도 괜찮지 않을까?
처음 보는 인간에게 가질 만하기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생각이었지만.
왠지 그녀는 이 생각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가 보고 싶어.’
-훌륭한 귀감(龜鑑)을 찾아 배우거라. 너를 더 좋은 훌륭한 길로 이끌 것이니. 허나, 현자라고 모든 걸 믿지는 않는 것이 좋다. 아둔한 자들에 의해 원하지 않으나 현자로 불리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모든 건, 너의 선택에 달렸다. 샤를로트 공주.
-……샤흐라고 불러주시지 않는 건가요.
-이제 너는 나의 딸이 아니라 공주니까.
엘프의 왕이자 그녀의 아버지가 남겼던 말.
어쩌면, 그녀가 찾던 귀감이 바로 라온일 지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그리고 데자트는, 당신을 따라다니며 빚을 갚고 싶어요.”
그녀가 한 번 더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자.
라온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떤 느낌으로 동행할 거지?”
“……네?”
“동료로 다닐 건지, 아니면 모험가처럼 고용 느낌으로 다닐 건지, 아니면 가사를 처리해주는 역할로 다닐 건지.”
어? 그런 것도 정해야 하는 거야?
슬쩍 데자트에게도 시선을 보내자,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한 표정.
결국 샤흐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라온이 내뱉은 말 중에 적당한 한 가지를 겨우 골랐다.
“고용… 느낌으로….”
“고용이라… 어떤 역할로? 호위?”
“……그, 그렇죠?”
……솔직히 호위가 맞나 싶긴 하다.
솔직히 하는 이야기만 들으면, 데자트와 샤흐 둘이 덤벼들어도 질 거 같은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굳이 집지 않고 넘어갔다.
“흠, 그러면 원하는 시급은?”
시급? 그런 건 또 알아서 맞춰주는 거 아니었어?
데자트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훨씬 배로 흔들렸다.
결국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답을 꺼내었다.
“……원하시는 대로?”
이러면 적당히 잘 챙겨주지 않을까?
“그렇단 말이지.”
“도련님 종이 여기요!”
“그래. 고마워.”
“아벨라… 언니… 나도….”
“응. 스칼라 것도 있어.”
하녀… 그러니까 아벨라라고 불린 여인이 내민 종이에 무언갈 끄적거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한 달이면 갚겠네.”
“네?”
“최저 시급으로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야. 네가 일을 더 잘하면 더 받겠지.”
라온은 보라는 듯이 종이를 내밀었고.
“!!!!”
[백금화 1닢]
본 경험이라곤 아버지를 통해서 본 적밖에 없는 귀한 화폐에, 그녀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겨, 겨우 한 달에 이, 이 정도를 받는다고……?!
‘예전에 언니들이 1년만 일해도 인간 기준으로 먹고 살기엔 충분할 정도로 번다고는 했는데…….’
이 정도였어?!
“보아하니 최저 시급 같은 개념도 몰랐던 거 같은데.”
라온은 놀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계약을 할 거면, 최저 시급 같은 개념은 공부하고 하는 게 좋아. 아니면 호구로 잡히기 좋으니까.”
“호, 호구…….”
“넌 방금 능력에 비해 싸게 부려먹힐 뻔한 위기를 넘긴 거야. 이걸로 뭔갈 배웠으면 좋겠군.”
“……!”
샤흐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배웠다’라. 마치 자신의 상황을 알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그녀는 인간 세상에서 많은 걸 배워가야 했다.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선 다른 종족과의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재를 할 줄도 알아야 하니, 그 종족에 대한 이해는 필수였다.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무언갈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방금 라온의 말에 탁 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랑 같이 다니면…….’
안전은 물론, 많은 걸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배려에 감사드려요.”
“이건 기본이지. 자. 그래서 조건은 어떻지?”
“…좋아요. 제가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난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니까. 만약 너희가 정식으로 신분을 드러낸다면 모르지만.”
그녀는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자신이 공주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중위 마법사’ 수준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었다는 이야기.
아니, 그런데 수준은 어떻게 알았지?
‘……뭐, 어떻게든 알았겠지.’
워낙에 앞서가는 모습을 봐서일까, 그가 자신의 일개 경지 하나 못 알아볼 거 같진 않았다.
사실 경지를 구분하는 건, 상대방이 다루는 마력이나 마력의 양만 본다면 구분하기 쉬우니까.
대다수가 이러한 방식으로 강함을 구분하기도 하고 말이다.
“자. 그럼 계약서를 적지.”
자연스럽게 로브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낸 라온이 그녀에게 내밀었다.
대체 왜 주머니에서 계약서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의문은 제쳐두고 조심스레 계약서를 받았다.
‘계약서…… 처음인데…….’
“일단 읽어봐.”
꿀꺽.
마른침을 삼킨 그녀는 계약서를 살폈다.
[계약서]
갑(이하 라온)은 을(샤를로트, 데자트)로부터 무력을 제공 받는다.
이에 갑은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한 달을 주기로 백금화 한 닢을 지불한다.
이외로 을에게 필요한 의식주(衣食住)는 모두 갑이 부담하며, 추가 비용 또한 모두 갑이 부담한다.
계약 기간: 한 달.
‘무슨….’
그녀는 계약서를 적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 조건이 말도 안 되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 무엇보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어떻게 내 본명을…….’
계약서에 적힌 ‘샤를로트’.
세계수와 왕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알아서도 안 되는 그녀의 진명(眞名).
죽음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며, 공주이자 여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그녀의 미래 이름이기도 했다.
‘애초에 샤흐라는 이름도 안 알려줬는데…….’
대체, 이 남자는 뭐지?
그녀는 슬슬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
“아.”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
라온은 계약서를 다시 가져가더니, 쓱쓱 수정했다.
“내가 배려가 부족했군.”
샤를로트
샤흐.
“…….”
샤흐는 진심으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게 맞나…?
-의문이 많은 표정이군.
그때, 귓가에 전음을 통해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왜 네 진명을 아는지 궁금하지?
“!!!”
-이유는 말해줄 수 없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는 정보니까.
그녀는 공주답게 빠른 눈치로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말할 수 없다는 건, 묵언(默言)이 걸려 있다는 뜻이며.
저런 이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건, 초월적인 존재뿐이다.
현 세계에 유일한 왕(王)인 아버지의 힘은 느껴지지 않으니, 아마도 세계로부터 입막음을 당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나에 대한 정보를… 세계로부터…?’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왜 아버지의 흔적도 없는데 공주와 수호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아는지, 엘프에 대해서도 잘 아는지, 자신의 진명에 대해서도 아는지.
‘세계’라는 단어는 이 모든 의문을 이해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왜… 저에게 그걸 알 알려주는 거죠?
-네가 불안해하니까.
-그러니까 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원수가 너무 적어 한 몸 한뜻으로 생활하는 엘프들과 달리, 인간은 개체수가 넘쳐나며,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는 편이다.
그것이 인간들의 생존 방식이었으니까.
-…….
잠시간 샤흐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라온이 말했다.
-난 네가 내 동료로 들어왔으면 한다.
-동료…?
-그래. 동료.
라온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난 너의 힘이 필요하다. 공주로서도, 샤를로트로서도 아닌, 샤흐, 너의 힘이.
그리 강한 힘은 아니다. 마력도, 의지도 담지 않은 목소리이건만, 이상하게도 듣는 순간 마음이 끌리는 힘이 담겨 있었다.
‘내가… 필요해?’
공주 샤를로트가 아닌, 엘프 샤흐로서의 힘이 필요하다.
이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언제나 공주로서 살아왔던 삶. 받은 게 너무나도 많기에 불만은 없지만, 가끔은 ‘샤흐’로서만 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숲을 벗어난 이후부터는 데자트에게 공주보다는 샤흐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런 만큼, 마음 같아선 네! 할게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에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래도 저는 아직 빚이….
-지금 당장 동료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는 충분히 부분을 생각해놓았던 것인지 금세 해결책을 꺼내주었다.
-빚을 갚고 나서, 내 동료가 되어서 함께 다니자. 당연하지만 의식주는 내가 해결해줄 것이고, 네가 돌아가야 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도와줄 거야.
네가 원한다면 따로 계약서도 작성할 거고.
지금은 너 스스로가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힘들겠지. 그러니 한 달 동안 같이 다니면서 잘 생각해봐.
“…….”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다.
너무 좋았다. 일부러 그가 그녀의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좋아요.”
“자. 그럼. 그보다 데자트는 안 봐도 돼?”
“네?”
이미 스칼라, 아벨라와 함께 간식을 주워먹고 있던 데자트가 고개를 들었다.
햄스터마냥 볼에 꽉꽉 채워놓은 모습에 라온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웃기긴 한데…… 저러고 있어도 되나? 나름 계약서가 오가는 자리인데?
‘……쟤는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너무 믿는 건지.’
라온은 속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래에 이름과 지장을 찍는 (인)을 보던 샤흐가 물었다.
“마력 도장으로 찍을까요?”
“아니. 그냥 도장으로.”
“……네?”
샤흐는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엘프들의 문화가 인간들에 비해 많이 발전한 건 아니지만, 고유 마력을 담아서 지장을 찍는 정도로는 발달했다.
더군다나 ‘고유 마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조작이나 사기가 불가능하니,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사용한다고 해도 무방했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라온 정도의 강자라면 얼마든지……
“아.”
“그럼 찍지.”
맞다. 이 사람, 마력을 못 다룬다고 했지?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숨기며 미리 챙겨온 지장을 꺼냈다. 라온은 그녀가 지장이 없다면 주려고 했던 것인지, 슬쩍 꺼냈던 지장을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후우… 그럼… 찍을게요.”
“그래.”
샤흐는 잔뜩 긴장한 탓에 살짝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혹시 미끄러져서 지장이 잘못 찍히지 않을 걸 대비해 단단히 고정하고, 손에 땀이 묻을까봐 급하게 옷에 쓱쓱 닦고 다시 지장을 잡는 모습.
라온은 슬쩍 입가를 가렸다.
‘……이건 좀 귀여운데.’
겨우 지장 하나 찍는 데 저렇게 긴장하다니.
본래 게임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 심지어 어린 엘프의 형태를 했다 보니 몇 배로 귀여웠다.
마치 어린 조카가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연습하는 모습을 본 느낌이랄까.
“크, 크흡….”
“…바보 같애.”
아벨라도 라온과 같은 생각을 한 듯, 입을 틀어막은 채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고.
스칼라는 그 둘을 보며 두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둘은 웃음을 참느라 보지 못했지만.
“돼, 됐다!”
한 5분 동안 계약서와 사투를 벌이고 나서야, 겨우 지장을 찍은 샤흐가 기뻐하며 외쳤다.
그러다 눈에 거슬리는 것을 발견했는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앗… 조금 삐뚤어졌는데….”
“그 정도는 상관없어.”
이대로 갔다간 진짜 하루가 세겠다.
라온은 그녀에게서 계약서를 가져와 자신의 지장을 찍었다.
마력을 걸고 건 약속이 아니기에, 강제력이라던가 그런 게 없긴 했지만.
‘암튼 이걸로 연은 맺었다.’
동료까지는 아니나, 그 직전까지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라면 굉장히 빠른 속도다.
본래 게임에선 대화를 붙이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렸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한 달 내에 동료로 만들 수 있어.’
심지어 데자트까지 함께 딸려올 터.
‘겨우’ 백금화 한 닢, 천만 원 정도로 그 둘을 영입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어차피 라온이 쓰는 돈은 그의 돈도 아니었다.
그의 노동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 남의 돈.
그러니 그는 얼마든지 돈을 펑펑 쓸 자신이 있었다.
“쓸만한 장비 없지?”
“네?”
“장비부터 맞추러 가지.”
그녀를 동료로 영입하는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남은 건 그녀의 지갑을 훔쳐간 도둑과 천관산의 일뿐이다.
당연히 둘 다 해결하려면 적당히 장비가 필요하다.
지금 샤흐는 맨몸에 불가했으니.
‘여기서 제일 비싼 가게가…….’
그녀에게 어떤 장비를 줘야 적당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니에요. 그건 안 받을래요.”
“?”
샤흐가 거절의 의사를 비쳤다.
라온이 뭔 개소리냐는 눈빛을 보내자 살짝 움찔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당당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
“빚을 더 지기 싫어요…….”
“빚이 아니라 합당한 대가야. 의식주 중에 의(衣)라고.”
“하나도 아니잖아요! 너무 과해요!”
‘쯧.’
그냥 적당히 그러려니하고 얌전히 받을 것이지, 괜히 애가 너무 착해빠져서…….
‘하긴. 넌 원래 그랬지.’
-부디 받아주십시오! 제 목숨값입니다!
-……필요 없어.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이.
-네?
-가져와.
-……옙.
너무 착해서 받아야 할 몫을 받을 때도 미안해하거나 거절하던 아이다.
까칠한 척하지만, 그저 공주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던 애.
인간 기준으로 1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어리고도 어렸다.
“그래.”
이때 억지로 집어넣는 건 부담을 늘리는 일이다.
그녀의 성격상, 당연히 거절할 테니까.
그럼 계약서에 적힌 대로 이행하는 수밖에.
‘마음 같아선 장비도 모두 부담한다고 적고 싶지만.’
의식주처럼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 거와 달리, 장비는 너무 눈에 띄어서 못 넣었다.
당연히 그녀가 거절할 테니까.
이미 그녀가 받아들이는 선 같은 요소는 모두 파악한 지 오래다.
“그럼 옷을 사러 가지.”
“진짜 옷만이죠?”
“그래. 옷 사는 김에 밥도 먹고.”
동료 영입하는 방법 세 번째.
금전 감각 흐트러놓기.
‘그래야 내가 돈지랄하기 편하지.’
자, 금전 타락(金錢 墮落)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