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엘프 공주에 대한 정보는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아니, 아예 그 수준이 아니라 같은 엘프가 아니라면 모르는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나이, 성별, 키, 몸무게, 특징 등 어떤 정보도 퍼져 있지 않았으니까.
아마 인간 중에서 엘프의 모습에 대해 아는 건 오로지 나뿐일 것이고.
저기 훌쩍이는 꼬마 엘프의 정체 또한, 데자트를 제외한다면 나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 기억 속보다 조금 더 어린 모습이긴 하지만.’
엘프 공주의 능력 중 하나가 현재 나이에 따라 신체 크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공주가 맞는데?’
엘프 공주와의 만남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천관산 앞의 도시가 발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 하나 찾지 못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다.
더군다나 둘 다 나름의 소통 방법이 있을 테니, 빠른 시일 내에 만날 거라곤 생각했지만…….
“크흐흥… 흐엥….”
이런 모습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내가 엘프 공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아벨라가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도련님? 어딜 보시는 거예요? 뭐가 있어요?”
“어. 쓰레기통 옆에.”
“쓰레기통 옆에……?”
아벨라와 스칼라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기울어졌다.
“어… 디…?”
“어디요…?”
“안 보이나 보네.”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모양이다.
하긴 그 정도의 생각은 할 줄 알겠지.
아니면 진작에 들켰을 테니까.
“야. 야.”
“……네, 네?”
“저기 네 공주 있는데, 안 가냐?”
“…잠시만요, 제가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크흑, 소리를 내며 가슴을 움켜쥔 데자트가 잠깐 몸을 움츠렸다.
아픈 건 아닌 것 같고…….
음, 귀여운 조카를 봤을 때 보이는 반응이군.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크게 소리치며 엘프 공주에게 달려갔다.
“공주니이이이이임!!!”
“으응?”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닦던 엘프 공주가 고개를 들었다.
데자트를 목격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데자트?!”
“보고 싶었어요!!!!!”
와락!
데자트는 달려가는 힘 그대로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얼마나 강하게 껴안고, 얼마나 강하게 달려갔던 것인지 부딪힌 벽이 움푹 파였다.
하지만 둘은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꼬마 엘프에 불가했던 엘프 공주의 몸이 16살 정도로 되어보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어디 다친 덴 없어?!”
“네!! 공주님은요?!”
“나도!!”
꺄악거리며 상봉을 즐기는 둘.
그 사이,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건물주로 보이는 그는 움푹 파인 건물과 파편을 보곤 절망했다.
“거, 건물이….”
난 품에서 주머니 안에 있던 금화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던졌다.
“여기.”
“가, 감사합니다! 나으리!”
“거스름돈을 줄 테니 손수건을 사와줬으면 좋겠군.”
“예!! 얼마나 원하십니까?!”
“저 가게에서 파는 전부.”
“……네?”
* * *
엘프(Elf)란 무엇인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종족이다.
인간은 대체로 자연과 어우러지기보다는 발아래에 두어 이득이 되도록 다루는 편이고.
엘프는 그 반대로, 자연과 어우러지며 자연에게 축복을 받고 받은 축복으로 자연을 지키는 역할을 하곤 했다.
특히나, 그런 엘프들을 통솔할 왕(王)이 될 운명인 엘프 공주가 품은 자연의 축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육체 성장을 제외하면 모든 게 우월하지.’
육체 성장도 그저 세월의 흐름을 앞서나가지 않을 뿐, 몸에 근육이 붙고 뼈가 튼튼하게 자라는 건 다른 엘프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뿐이랴.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품은 정순한 마나를 흡수하고 체내에 쌓으며 무기를 다루던, 마법을 다루던, 어떤 것이든 질 높은 마나를 쓰게 만들어준다.
단순히 흘리는 눈물이나 땀은 더러운 분비액이 아닌 당장 마셔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깨끗하며, 순식간에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자연의 물이다.
즉, 걸어 다니는 자연이라고 무방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라고 해도 인간의 악의를 피해가진 못한 모양이었다.
“지갑을…… 도난당했다고요?”
데자트는 그녀가 꼬질꼬질해진 이유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잔뜩 심각해진 얼굴로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댄다.
당장이라도 범인을 찾아내어 베어버릴 거 같은 분위기.
‘못 찾을 텐데.’
당연하지만, 난 그녀의 지갑을 훔칠 만한 인물을 알고 있었다.
물론 엘프 공주가 지갑을 도난당했다는 이야기 자체는 처음 들었다.
다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이가 이 도시에 한 명뿐이니 대충 추론하는 것뿐이었다.
정말로 ‘그놈’이라면, 무력면으론 데자트가 앞서겠지만, 은신 같은 면에선 밀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괜한 헛수고나 하지 말라고 말하려 할 때.
“응…… 크흥…….”
“아이 참. 그만 울어요. 그깟 지갑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자, 흥!”
다시 꼬마 엘프 모습이 된 공주가 코를 훌쩍이자 금세 태도를 바꾼다.
살벌한 표정을 지운 그녀는 코를 풀 수 있게 손수건을 가져다 대줬다.
엘프 공주가 손수건에 크게 코를 풀었다.
“킁!”
“…….”
무슨 기분이랄까…….
원래라면 첫 만남 때, 임무를 하던 도중에 만난 것이다 보니 이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좀 친해지고 나서야 본래 모습으로 추정되는 말량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님이랑 같이 온 코찔찔이 꼬맹이를 보는 기분이다.
“이제 코 좀 풀렸어요?”
“응….”
“그럼…… 음, 일단 씻어야겠네요. 지갑은 언제 잃어버리셨어요?”
“한 3일 전에….”
“3일이나 노숙하셨어요?!”
“응…….”
“크흑… 죄송해요. 제가 공주님을 옆에서 지켰어야 했는데……!”
“아니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데자트가 잠깐 없다고 지갑이나 잃어버리고……!”
“공주님……!”
“데자트……!”
“…….”
진짜 뭐하냐 니들?
난 꽁트를 찍는 분위기의 둘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귀엽긴 한데, 어이가 없달까.
그래……. 어떤 느낌이냐면.
공주라고 하기엔, 너무 하찮았다.
‘저래서 안 들킨 건가.’
엘프 공주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천마신교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자신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구상했다.
즉. 저런 말괄랑이이자 하찮은 모습은 아예 구상이 없다는 것.
자연을 지키는 수호자인 엘프의 왕이 될 운명을 지닌 자가, 저런 모습인 건 ‘상식’적으로 안 되었으니 말이다.
‘그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인식 방해 마법.
쓰레기통 옆에서 훌쩍거리고 있고, 꼬질꼬질한 데도 외모가 빛남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선이 끌리지 않는다.
최소 중위 이상의 경지.
숨 쉬듯이 자연스레 펼치고 있는 걸 보면, 실제 경지는 더 높거나,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엘프가 사기긴 사기야.’
인간은 대부분 마법과 무기를 동시에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엘프에겐 남는 것이 시간이다.
둘을 동시에 통제할 방법은 엘프 기준으로 10살이 넘어가기 전에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고, 엘프 공주는 공주답게 모두 중(中) 이상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원래 만나는 시기에는 상위 마법사 수준이었지.’
엘프 기준으로는 ‘겨우’ 2년 뒤이긴 하지만, 그때엔 데자트가 죽은 상태였고 나름 고난을 겪은 상태였다 보니, 지금과 분위기와 경지가 달랐다.
창술 또한 상급 기사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그때는… ‘오, 네가 공주라고?’ 하면 납득할 거 같은데, 지금은 ‘왜 네가 공주임?’이라고 할 거 같은 느낌?
‘이래서 안 들켰나?’
잠시 볼일이 있어 인식 방해 마법을 풀었다고 한들, 머리카락 색이나 눈동자, 귀는 가렸을 것이고.
아마 도망칠 땐 본래 나이의 모습으로 달렸을 테니, 저런 꼬마가 공주일 거라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본래 게임에서도 지갑을 도난당했으니, 비싼 물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마을로 갔을 가능성도 크고.
코를 손가락으로 쓱 닦은 엘프 공주가 우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야?”
“아, 이분들이요? 절 도와주신 분들이에요.”
“너를……?”
“네! 이분들 덕분에, 제가 피라미드에서 나올 수 있으셨거든요!”
데자트는 활기차게 나와 아벨라, 스칼라에 대해 말해주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공주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저 남성분, 공주님과 저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나한텐 다 들렸지만.
데자트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뜬 공주가 날 빤히 바라봤다.
태양을 연상시키는 황금빛의 눈동자가 날 꿰뚫어 보듯이 응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처음 보는데……?”
“네? 그럼….”
“아버지도 아니야. 전혀 냄새나 흔적이 남지 않았어.”
“……네?”
난 그녀가 무엇을 한 지 알아차렸다.
통찰안(洞察眼).
엘프 공주의 고유 능력 중 하나.
공주는 엘프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은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신비로운 눈을 내려주었고, 덕분에 그녀는 상대방에게 남은 엘프에 대한 흔적을 잡을 수 있었다.
통찰안은 내가 품은 방대한 마력마저도 뚫고 내 영혼을 살핀 것이다.
“오히려 다른 게 있네.”
“어떤…?”
“동족을 살해한 흔적.”
한순간에 공주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자연의 색인 초록색의 머리카락이 마력의 영향으로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벨라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품에 넣어둔 단검을 쥐었고, 옆에서 스칼라가 깨작깨작 먹고 있던 화 속성의 돌을 품에 넣었다.
“자, 잠깐! 거기엔 이런 사정이 있어요.”
살벌해진 분위기 속에서 데자트가 급히 공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공주의 눈이 시시각각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얼굴 피부까지 바뀌었다.
아주 창백하게.
“……진짜?”
“네.”
“헉… 그럼 어떡하지…. 아니, 그런데 대체 어떻게 나와 너에 대해서……?”
“그러니까요…….”
잠시 속닥거리던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보다 훨씬 쭈글해진 태도였다.
내게 쭈뻣쭈뻣 다가온 그녀는 내게 허리를 숙였다.
“일단 죄송합니다…….”
기억 속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바로 오해하고 뭐라 한 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일단 난 전혀 아니었다.
일단 어리지 않는가. 시간을 오래 지냈다고 한들, 밸런스 패치를 위해 엘프는 대체로 정신적인 성장이 느린 편이었고, 숲에서만 지낸 탓에 그 영향이 더더욱 컸다.
특히나 그녀가 같은 엘프에게가 아닌, 인간에게 공주로서 나서는 것도 처음일 테니까.
‘어차피 동료로 영입도 해야하고.’
그러니, 난 화를 내는 대신에 조언 하나를 던졌다.
“통찰안이 만능은 아니지.”
“!!!”
“!!!”
엘프 공주는 내가 입을 열자 충격을 먹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피노키오가 살아 움직이는 걸 본 할아버지도 저렇게 놀랄 거 같진 않은데.
웃긴 건, 데자트가 옆에서 똑같이 놀랐다는 점이다.
넌 아까까지만 해도 나랑 대화 잘했잖아.
“그걸… 어떻게…”
더 말이 이어지기 전.
난 기감에 잡힌 인기척에 손을 들었다.
“잠깐. 사람이 온다.”
“앗. 잠시만요…….”
공주는 양손을 펼치더니 마법진을 소환해냈다.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을 손바닥 위에 떠올린 그녀가 가볍게 조작한다.
그러자 마력의 파장이 아주 가볍게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인식 방해 마법을 확장시킨 모양.
……문제는 나와 부딪힌 순간, 인식 방해 마법이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왜 안 걸리지?”
“마력이 너무 많아서…?”
데자트가 옆에서 합당한 추측을 던졌다.
그 말에 공주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 떠졌다.
“헉. 어떻게 이렇게 많은 마력이?!”
“…….”
“…….”
우리들은 왜 그걸 이제야 눈치채는 시선을 보냈다.
나름 공주이면 알아볼 만한데, 그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통찰안은 정말로 엘프에 대한 흔적만을 보여주기에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들의 시선을 느낀 엘프 공주가 쭈그려들었다.
“다른 기운이 더 독하단 말이… 아니, 말이에요….”
‘피라미드 왕의 영향인가?’
당장 추측되는 건 그 정도.
일단 어쩔 수 없으니 나를 제외하고 마법을 걸려 했고, 내겐 기척을 죽이는 보조 마법을 걸었다.
골목길의 어둠에 숨어있으면 이 정도로 충분할 테니까.
잠시 숨어있자, 양아치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망할 엘프 년.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형님. 그냥 아무 엘프나 붙잡고 ‘이놈입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까?”
“이승하직하고 싶어? 난 아직 죽기 싫다. 그리고 명분이 없잖아. 멀쩡한 엘프를 붙잡으면, 뭐. 따먹기라도 하게? 우리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빚을 진 엘프는 명분이라도 있으니 우릴 못 건드려서 잡는 거지, 다른 엘프는 안 된다. 꿈 깨.”
“예에…….”
“우린 돈만 받으면 된다. 아니면 무력을 쓸 수 있는 집단에게 넘기거나.”
“…….”
“…….”
“…….”
“…….”
엘프 공주와 데자트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척보니 공주가 한 짓은 아닐 테고.
‘돈만 받으면 된다는 건…….’
아무래도, 그녀의 지갑을 훔친 도둑이 별짓을 다 한 모양이다.
엘프에 대한 악의가 느껴질 정도.
덕분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놈이 맞네.’
그렇다면.
‘잡아서 조진다.’
일단 그 전에.
“어이.”
“누, 누구-”
뻑!
“그 의뢰를 어디서 받았지?”
“벼, 별빛 고래점입니다, 형님!”
일단 지금 사태부터 수습하자.
하는 김에 엘프 공주도 영입하고.
난 주먹을 닦은 다음, 돌을 거의 다 먹어치운 스칼라에게 새로운 돌을 주며 뒤의 이들에게 말했다.
“가자.”
“……네? 거길 왜요?”
꿀팁, 지금만 풉니다.
“뒤처리하러.”
엘프 공주 동료로 영입하는 방법 첫 번째.
돈으로 꼬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