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처음에는 왜 거기에 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데?’
어차피 내가 얻으려는 아이템을 얻으려면 천관산에 가야 한다.
가는 김에 아이템도 얻고 엘프 공주도 회수… 아니 영입할 수 있다.
즉. 일석이조인 셈!
‘그런데 원래도 천관산에 갔었나?’
아마 엘프 공주에게는 영향을 준 게 없으니, 원래도 천관산에 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어떻게 안 들킨 거지? 자기 앞마당에서 찾던 놈이 있는데 못 찾았다고?
공주가 잘 숨은 건지, 아니면 천마신교가 병신인 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뭐… 그래도 상관없나.
“어떻게 할까요?”
“거기 있으라고 전해. 잘 숨어 있고. 우리가 간다고 해.”
“그러다가 다치시면 어떡해요…….”
“이미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병신들한테 들키겠어? 그리고 천관산이면 텔레포트를 타고 갈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아! 그럼 되겠네요! ……잠만. 텔레포트, 귀족 아니면 못 쓰잖아요?”
“그렇지.”
“돈도 엄청 들 테고.”
“그렇지.”
“……돈 많아요?”
“많아. 천관산에 가서 푹 쉬게 해줄 테니까, 빨리 메시지 보내.”
“네!”
그녀는 숙소에 가서 쉰다는 말에 신이 난 듯,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검신을 신나게 두들겼다.
저렇게 해서 통신이 되는 건가?
나중에 아벨라나 스칼라의 무기에 새겨놔야겠다.
“다 했어요.”
“그럼 바로 출발하자.”
“어… 그런데 이 마을은 안 치워요?”
“어.”
난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모래들이 휘날리고 있다.
그냥 평범한 현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근처에서 마물의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은 즉.
“모래 폭풍이 오고 있으니까.”
“……그걸 왜 지금 말해요!”
데자트는 기겁하며 후다닥 짐을 챙겼다.
어차피 짐이라고 해봤자 다 내가 챙기고 있지만 말이다.
검을 허리춤에 넣은 그녀는 아직 기절해있는 아벨라의 상처와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업고 뛸 정도는 되겠어요. 제가 아벨라를 업고 뛸게요. 그게 나을 테니까.”
“기다려봐.”
<고정>
난 아벨라의 몸과 목에 마법을 걸었다.
응급 환자를 호송할 때 주로 쓰는 마법으로, 마차를 통해 호송할 때의 흔들림으로 인해 2차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데자트가 뛰는 데에만 집중하면 마차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테니, 이 정도 준비는 필수였다.
“그럼 스칼라는 내가 업는다. 스칼라. 업혀.”
“…등에…?”
“응. 좀 흔들려도 참고.”
“알겠… 어….”
스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릎을 굽히고 등을 보여주자, 스칼라가 폴짝 뛰어올라 등에 업혔다.
음, 너무 가볍네.
역시 더 먹여야겠어.
물론 그냥 음식으론 의미가 없으나, 더 먹인다는 건 접촉을 늘린다는 이야기였다.
썩어나는 게 마력인데, 얼마든지 맥여야지.
“내 목에 팔 두르고.”
“으응…”
“그럼 데자트.”
난 데자트에게 시선을 보냈다. 내 시선을 받은 데자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
쾅!
우리는 근처 도시를 목적으로 삼은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본래라면 모래바람 같은 자연에 방해받아 도착하는 게 느려야 했다.
하지만 피라미드 왕을 죽인 보상으로 더 이상 모래바람에 방해를 받지 않았고, 이는 ‘나’만을 배제하는 게 아닌 근처에도 영향을 주는 식이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데자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즉. 사막을 다니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
“슬슬 밤이다. 온도 안 떨어지게 조심해.”
“당연히… 하고 있어요!”
온도가 떨어져서 추운 건 막아낼 수 없지만, 대처는 가능하다.
데자트와 아벨라에게 온도 보전이 가능하도록 마법을 걸어주고, 뒤에 있는 스칼라에겐 아티팩트를 건네줬다.
금세 추워진다. 냉기가 몸에 스며들진 않으나 근처를 맴도는 게 느껴졌다.
귀를 뾰족하게 세운 데자트는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그보다 당신, 몸 괜찮아요? 전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제 속도 맞추기 힘드실 텐데.”
“그걸 지금 물어보냐?”
“……헤헤.”
“포션 먹으니까 괜찮아.”
꿀꺽꿀꺽-
체내의 마력을 증발하여 신체 컨디션을 회복해주는 포션.
효율이 좋지 않아서 잘 쓰이지 않는 포션이지만, 내게 이만큼 좋은 물건은 없었다.
마력도 쓰고, 신체도 회복하고.
얼마나 좋은가.
‘물론 머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지끈-
작은 두통이 몰려왔지만, 금세 떨쳐냈다.
편두통과 결혼했다고 과언이 아닌 빙의 이전을 생각하면 이건 두통도 아니었다.
“그리고 잠자면 다 나아.”
“……잠이 만병통치약은 아닌데.”
“나한테는 맞아. 계속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정면 봐.”
“쳇.”
데자트는 아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잠시 딴짓을 하긴 했지만, 밤을 새면서까지 달리니, 금세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자하라 사막에서 유일하게 ‘도시’라 불릴만한 장소인 아벨론.
본래 내가 도착했어야 할 목적지였다.
“잠깐! 정지, 정지!”
아벨론의 성문 밖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우릴 보며 버럭 외쳤다.
나름 무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하급 기사급이다.
웬만한 진상이나 몬스터는 상대할 만하나, 동상이 걸릴만한 추위의 사막을 가로지를 정도의 실력자를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조금 겁을 먹은 것인지,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게 보인다.
그는 창을 우리들에게 내밀며 말했다.
“신분을 확인하겠습니다. 혹시 가지고 있는 신분패가 있으시다면….”
팅!
난 품에서 신분패를 튕겼다.
용케도 신분패를 잡은 병사가 신분패를 확인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확인했나?”
“예, 예! 확인했습니다!”
“그럼 당장 사제 불러오도록.”
“그,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난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네 윗대가리들도 싹 다 불러와.”
* * *
도시를 통치하는 자작, 마르딘은 급히 고급 여관으로 달려갔다.
귀족이 된 이후로 달려본 적이 없던 탓에 무릎이 쑤시고 숨이 찼지만, 그걸 생각할 틈 따위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신이 다스리는 이 도시가 개판인 건 알았다.
아무리 좋게 다스리려고 해도, 무법지대인 자하라 사막에 자리 잡은 곳인데 개판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실에서도 위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원을 보내주긴 했다.
다만, 딱 그뿐.
도시 이상으로 나아가기엔 너무 무리라서, 그저 관광지로 굴리고 있었는데…….
설마 그 가문의 직계가 올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괴물 가문의 직계가……!’
리그벨토 가(家).
제국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 중 하나이자, 오랜 세월과 역사를 통해 쌓아 올린 업적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마법 명가.
너무나도 강력한 핏줄로 인해 방계조차 없다고 알려진 가문으로, 위대한 가문을 이을 혈통이 귀하기 때문에, 직계는 웬만한 귀족과 동급으로 취급을 받았다.
당연히 귀족이라고는 하나 자작에 불가한 그는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그 유명한 망나니…….’
라온 리그벨토. 그의 이름은 귀족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리그벨토 가에 걸맞지 않는 머저리이자 실패작.
언제나 완성작, 그 이하라고 한들 마법의 역사에 한 줄기의 글귀를 남길 수 있는 괴물들만이 우글거리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리그벨토 가의 치욕이로군! 설마 실패작이 나올 줄이야.’
‘그러게 말일세. 리그벨토 가도 슬슬 저무는 해인 게 아닌가?’
그래서 그런 의심을 받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그 뒤로 벨 리그벨토가 직접적으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는 그 말이 쏙 들어가긴 했었지만.
아무튼 라온은 리그벨토 가의 치욕으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거 들었나? 리그벨토 가문의 치욕이 이번에 아카데미를 자퇴했다더군.’
‘정말인가? 정말 심각할 정도인가 보군. 어떻게 아카데미를….’
‘그런데 오스큘라 가의 후계자를 꺾었다고 하던데.’
‘……???’
‘그리고 직계로서 다시금 인정받았다고 하더군.’
‘……지금 날 놀리는 겐가???’
‘내가 자네를 왜 놀리겠는가. 반응도 재미없는데.’
귀족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하루만 공부나 수련을 쉬어도 1년이 밀린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실패작으로 취급을 받으며 몇 년씩이나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그가 오스큘라 가의 후계자를 꺾었다고?
심지어 다시금 인정을?
‘전부 믿지는 않지만 기억해둘 필요는 있겠어.’
마르딘은 소문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게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외지에서 사막의 도시나 신경 쓰는 자신은 그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잊고 있었는데…….
-워프 게이트를 조작해라. 사막 어딘가에 던져버려.
-그, 후, 후폭풍은…….
-이번에 ‘우연히도’ 도시에 후원이 하고 싶어져서 말이야. 그런데 하지 못한다면, 음. 기분이 안 좋아져서 사막에 나들이를 갈 수도 있겠어.
-!!!
어느 날 찾아온 ‘그’에게 협박당해 워프 게이트를 조작했다.
그 뒤로 흔적도 찾을 수 없어 실종되었다고 해서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리 멀쩡히 찾아올 줄이야!
‘나, 난 이제 죽은 목숨이로구나…….’
그에 대한 소문이 진짜라면, 자작인 자신은 죽을지도 몰랐다.
물론 자작이라고 해도 이런 무법지대의 도시를 다스리는 직책인 만큼, 상당히 중요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눈이 돌아간 그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을 터.
설령 그를 죽인다고 해도, 미래의 마법을 이끌 인재이니 큰 벌을 받진 않을 테고, 사라지는 건 마르딘의 목숨뿐일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는 라온이 머무는 여관의 방문 앞에 서서 고민했다.
저택에 조용히 숨 쉬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랬다간 그가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기에, 결국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도 좋다.”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변성기가 완전히 끝나진 않은 듯, 살짝 얇은 느낌이 있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무슨 마력이…….’
나름 중급 기사라는 경지까지 올랐기 때문일까.
그의 감각에 목소리에 담긴 마력이 뚜렷하게 잡혔다.
원한다면 이 도시에 대마법을 떨어트려 초토화 시키고도 남을 방대한 마력이!
‘이 정도면…… 벨 리그벨토랑 동급 아닌가……?’
그의 경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닌지라 정확하게 알 수 없을 터인데도, 이 정도라면 도대체…….
마음 같아선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귀족과 귀족의 대화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대화 아닌가.
하지만 그랬다간 이 도시 전체가 날아갈 것이 분명하기에, 한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덜컥-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라온의 모습이었다. 늑대를 연상시키는 긴 뒷머리, 이마를 완전히 덮은 회색 머리카락, 그 아래로 색이 바랜 듯한 눈동자, 발아래에 널브러진 쇠사슬들.
고위 가문의 직계라기보다는 범죄자, 혹은 비밀 병기가 더 어울릴 거 같은 모습에 입이 바싹바싹 탔다.
라온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침대 위에 곤히 잠든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건 아픈 연인보다는 아픈 동생, 혹은 후배가 아픈 걸 보는 눈빛이었다.
그런 그의 무릎에는 한 아이가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으며.
후드를 쓴 누군가는, 벽에 기댄 채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자는…….’
후드를 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힘을 숨기려는 생각이 없는 듯 기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소 상급 기사 초입. 혹은, 완숙한 경지에 올랐을지도 모르는 실력자!
‘망했다.’
“왔군.”
그런 그의 생각에 ‘응, 넌 망했어’라고 말하듯이 라온이 입을 연다.
라온이 고개를 돌려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꿀꺽-
분명히 그보다 한참 어린 이인데도 불구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크게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그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다는 것!
‘최대한 저자세로 나간다.’
그럼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 터.
잠시간 마르딘을 바라보던 라온이 입을 열었다.
“일단 먼저 뭘 해야 하는지 알 텐데.”
“예!”
마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쿵!
그리고, 바로 자리에 머리를 박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죄송합니다악!”
“목소리가 작군.”
“죄송합니다아아악!”
라온은 바로 저자세로 나오는 그를 내려다봤다.
‘본래의 라온이라면 못할 짓이지만.’
직계의 자리를 되찾은 이상, 이런 하급 귀족쯤은 권위로 찍어누를 수 있었다.
나중에 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긴 했지만.
‘딱 적당히 벌만 주면 오히려 호감이지.’
웬만한 고위 귀족은 인성이 좋지 않다.
정확히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워프 게이트를 조작해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트려 놓다니. 실수라고 한들, 목숨을 위협한 중죄였고 당장 내가 그의 목을 베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이 귀족은 나름 도시를 잘 통치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죽였다가 이상한 귀족이라도 오면?
그대로 이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날 터.
그게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들일지 모르니, 적당한 추궁만 할 정도였다.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는 필요하니까.’
누가 손을 쓴 건지 몰라도, 가만히 있는 건 얕보일 수도 있었다.
사실 얕보이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고.
제일 문제는,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
괜히 계획이고 뭐고 다 틀어질 수 있으니, 텔레포트 장치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이 일은 해결을 해야 했다.
“누가 나를 사막에 떨어트리라는 명령을 내렸지?”
“그….”
“난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누가 뭘 말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할 거 같군.”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신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금 쓸 수밖에 없었다.
내 이런 생각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잠시간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제게 지시를 내리신 분은…”
나는 그가 말한 사람의 이름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