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너…… 네가 왜 여기에…….”
쌍x이 입을 연다. 난 더 이상 듣지 않고 발을 거세게 벅차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허! 아직 나는 네게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
더 이상 저걸 들을 이유는 없다.
난 속이 들끓는 걸 느끼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쇠사슬을 길게 잡는다. 내게 손을 뻗는 왕의 손을 보며 쇠사슬을 휘둘렀다.
“꺼져, 병신아.”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정확히 ‘손등’을 후려쳤다.
그 순간, 몸에 느껴지던 압박감이 사라진다.
난 데자트를 향해 소리쳤다.
“데자트! 아벨라! 스칼라!”
“…예!”
본래 작전은 단순했다.
피라미드의 왕은 첫 번째 방문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점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고, 스칼라가 불을 다룰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
‘작전을 바꾼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두 번째가 된 시점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제압부터.’
“작전 변경. 데자트. 먼저 상대하고 있어. 난 먼저 저년부터 잡는다.”
“…알겠어요.”
투쾅!
바닥에 치솟은 벽을 쇠사슬로 박살 낸다. 애초에 모래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부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순간에 쌍년과 얼굴이 가까워진다.
왜 내가 처음에 못 알아봤는가 싶었는데, 내 기억 속의 얼굴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묘족처럼 보인다.’
이전에 그녀를 보았을 때에는, 분명히 묘족임에도 불구하고 묘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체적인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그러했고.
스칼라는 분명 인간처럼 보이나, 분명히 묘한 다른 느낌이 들었던 반면.
그녀는 온전한 ‘인간’처럼 느껴졌었다.
‘대체 어떻게?’
피라미드의 왕과 계약이라도 했나?
‘뭐, 이상한 건 아니지.’
나는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고 있으나, 이런 년들은 그런 걸 알지 못한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한들, 이 쌍년은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가 현재 상단주의 아내로서 관리하는 ‘에시안’ 상단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년이었으니까.
“!”
급히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정면으로 뻗었다.
손바닥을 중심으로 마력이 뭉쳐 든다.
뭉친 마력이 차가운 냉기를 머금으며 얼음의 구로 화했다.
쩌저저저저적-!
얼음의 구가 근처의 공기를 얼리며 내게 쇄도했다.
얼음의 구는 무시하고 정면으로 쇠사슬을 내지른다.
마치 끝에 무거운 게 달린 듯, 정면으로 쏘아진 쇠사슬이 그녀의 목을 노렸다.
“!!!”
그녀는 설마 내가 공격을 신경 쓰지 않으리라 생각도 못 한 듯, 눈을 크게 뜨며 급히 자신의 앞에 얼음의 벽을 만들어내었다.
자연스레 내게 날아온 얼음의 구가 약해진다.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얼음의 구와 부딪혔다. 차가운 냉기가 부딪힌 부분을 중심으로 온몸으로 퍼지려 든다.
그러나 그 전에 내 쇠사슬이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냉기를 빨아들였다.
냉기 또한 결국 마력의 속성.
쇠사슬은 마력이라면 뭐든지 빨아먹기 때문에, 이런 냉기조차 흡수한다.
쩌저저저저적-!
마치 내가 마력을 덧씌운 것처럼, 당장 삼키지 못한 냉기가 쇠사슬의 표면을 덮었다. 표면에 얼음이 맺혔다.
촤라라라라락-!
얼음 때문에 살상력이 더해진 쇠사슬을 다시금 휘둘렀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냉기의 벽이 한순간에 두꺼워졌다.
쨍그랑!
얼음과 얼음이 부딪히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얼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쇠사슬이 다시 냉기를 빨아들이자 다시금 표면에 얼음이 맺힌다.
“……!”
위기라고 느낀 것인지, 그녀의 마력이 벽에 집중됐다. 벽이 한순간에 더 두꺼워지며 위력이 약해지고, 이어 등 뒤로 마력이 모여든다.
쇠사슬을 붙잡은 채 뒤로 촤라락 휘둘렀다. 뒤에 생겨난 얼음의 창이 쇠사슬과 부딪히며 사라진다.
내가 등을 보이자, 그 틈을 노려 그녀의 벽에 수많은 얼음 가시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또한 이미 계산했다.
<강타>
이미 휘둘러진 힘에, 힘을 더하고 몸을 더 강하게 회전시켜 원 상태로 되돌아온다.
강하게 담긴 힘이 벽을 후려쳤다. 얼음의 벽이 그대로 반으로 박살났다.
아예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계산한 그녀가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한순간에 바닥이 얼어붙는다.
난 신발 바닥에 마법을 걸었다.
<거친 단면>
얼음 위에서도 걸을 수 있도록 신발 바닥이 거칠고 접착력이 강해졌다.
원래라면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지만, 이미 이런 상대를 몇 번이고 상대해보며 적응한 지 오래다.
한순간에 미끄러움에 적응하고, 오히려 속도를 역이용해 그녀가 예상하지 못할 속도로 접근한다.
“!!!!”
한순간에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기 전, 손바닥을 활짝 펼쳐 그녀의 복부 위에 손을 올렸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증폭>과 <방출>의 조합으로 배를 박살 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있을 일에 문제가 생기니, 그리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응축>
현재 반지에 저장된 마력을 싸그리 모아, 한번에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이다.
콰아앙!
꽤 큰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벽에 처박히기 전, 겨우 중심을 잡고 자리에 멈춰 선다.
그 짧은 사이에 반응한 것인지, 복부에서 얼음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난 손바닥을 쥐었다가 피며 그녀를 바라봤다.
‘……나중에 내가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하다.’
그 사이에 크게 다친 건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총량이 딱, 그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딱 전투를 경험해본 적 없는 중위 마법사 수준.
허나, 지금은 어떤가. 중위 마법사 수준에서도 꽤 전투 센스가 있고 마력 총량도 충분한 수준이다.
그렇다는 건…….
‘인간이 되기 위해, 저 힘을 포기했다는 거겠지.’
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멍청하긴.’
겨우 저딴 걸 얻기 위해서, 자기 힘을 포기하고 자식을 버렸단 말인가?
권력. 그래. 중요하다. 인생을 사는데 권력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
그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한들.
그걸 위해서 자식을 버린다고?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자식을 낳질 말았어야지.
볼 때마다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걸 외부로만 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우 속에서 들끓는 열불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입가에서 시린 냉기를 뿜은 쌍년이 날 보며 물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지?”
“뭐가.”
“분명히 저 아이는 내가 그 숲에 버렸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인간 따위가!”
“한 번만 더 그 아가리를 나불거리면.”
난 얼음이 녹아내리지 않은 쇠사슬을 양손으로 강하게 잡았다.
“그 입. 찢어버린다.”
“감히 인간 주제에….”
“뭐. 인간인 게 왜. 인간이랑 이리 싸우는 게 수치스러워?”
입꼬리를 안 올리려고 해도 알아서 올라간다.
이러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었다.
어찌 그냥 가만히 있겠는가.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걸 비웃지 않고서야, 참을 수가 없다.
“그리 자기 종족이 자랑스러운 주제에, 왜 인간이 되고 싶대? 그리 권력이 좋던?”
“……!!!!!”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그 모습이, 스칼라가 완전히 성장했을 대랑 비슷해 보여서.
더 화가 들끓었다.
“……너. 내 비밀을…….”
“더 입 열지 마.”
쇠사슬이 내 감정에 반응하여 웅, 웅, 울부짖는다.
현재 안에 담긴 마력의 수치를 조절한다.
몇 퍼센트를 하락시키자, 안에 담긴 냉기가 담긴 마력을 배출하고, 냉기가 알아서 모여든다.
<응축>
팔찌에서 마력을 뽑아내어 뿜어진 냉기를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응축시켰다.
냉기가 꽤 기다란 형태의 장검으로 빚어지고.
허공에 떠 있는 장검을 붙잡은 난 입꼬리를 비틀었다.
“자식을 버린 짐승 년이, 사람 말을 지껄이는 거 보면 아주 역겨우니까. 짐승이면 짐승답게 지껄여.”
“……감히 천한 인간 주제에 날 짐승으로 모욕해?”
“리그벨토 가(家).”
난 내 가문의 이름을 말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너 같은 것이 감히 천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핏줄은 아니지. 안 그래?”
그제야 그녀가 내 머리카락과 눈을 살핀다.
리그벨토 가문의 가주를 닮은 얼굴은 아니나, 머리카락과 눈동자에서 드러난 특징과.
어려 보이는 외향에 비해 비해 강한 마력을 느낀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그 괴물 가문의……!”
“그래.”
난 쇠사슬을 왼쪽 팔에 두르고, 오른손으로 검을 잡으며 달려들었다.
단숨에 목을 베어내기 위해 휘두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급히 냉기를 뿜어내어 막아낸 그녀를 보며 말했다.
“천한 것 주제에 귀족을 건드렸으면 죽어야지.”
저년이 그토록 좋아하는 우월사상으로 짓밟아 주겠다.
크그그그그그그극!
얼음의 검이 그녀가 만들어낸 벽을 거세게 긁고 지나간다.
깊게 파인 틈 사이로 검을 쑤셔넣는다.
벽이 자연스레 내 검을 부수기 위해 힘을 주나, 애초에 이 검은 그녀의 냉기로 빚어진 것.
또한, 이 검을 둘러싸고 있는 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력이었다.
남이 보기에 나를 고위 마법사 이상이라 착각할 수준의 농도!
쩌저저저저적-!
얼음 검이 역으로 얼음을 빨아들인다.
부서지기는커녕 금 사이로 냉기가 빨려들어와 더 단단해지고, 더 거대해진다.
장검에서 대검으로 변해가는 검을 본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만!”
“네 딸이 이랬으면 봐주기는 했을 거냐?”
그냥 무시하고 죽였을 주제에.
난 입꼬리를 비틀며 대검을 두 손으로 치켜들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새로운 주인을 반긴 냉기가 날뛰며 내 몸에 조금씩 스며든다.
감히 내 몸이 얼어붙게 만들 수는 없으나, 슬슬 폭주도가 조금씩 올라갈 정도로 마력이 거칠게 만드는 건 가능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깔끔하게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후반부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벤트가 엉망이 된다.
또한…… 이 x을 죽일 거라면. 적어도 스칼라에게 강제로라도 속죄하게 만들고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꼬리든, 귀든, 신체의 일부만 자른다.’
그 정도면 나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데에는 충분하겠지.
그러면서 알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순 있을 터.
그녀가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x은 절대 그럴 x이 아니었으니까.
쐐액!
대검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쌍년이 눈을 질끔 감는다.
그대로 귀를 잘라버리려던 찰나.
“자, 잠깐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난 끼어든 이의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하필이면 이때…….
‘쯧.’
마음 같아선 이대로 베어버리고 싶지만.
이 캐릭터는 여기서 죽어선 안 된다.
아니, 정확히는 웬만해서는 내가 살려두고 싶은 캐릭터라는 게 옳겠지.
“꺄악!”
결국 검로를 틀어 검신으로 끼어든 이의 몸을 후려쳤다.
일부러 뭉툭한 부분으로 후려쳤으니, 크게 다치진 않았을 것이다.
냉기에 영향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뭐… 그거야 끼어든 본인이 감수해야 할 일이고.
“뭐야, 이건.”
대검을 어깨에 걸친 채 튕겨나간 이에게 다가간다.
역시 예상대로 내가 알던 인물이었다.
언제나 쌍년의 옆에 붙어서 여러 일을 보좌하는 보좌관.
다만, 머리가 너무 꽃밭인지라 쌍x 도 굳이 더러운 일에 참여시키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나마 이 쌍x과 떨어트려 놔야 좋은 인물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걸 괜히 티 내선 안 되니.
난 일부러 살벌한 표정과 목소리를 내며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넌 뭐냐? 왜 끼어들어? 뒤지고 싶어?”
“으, 으으….”
“대답 안 해?”
난 뾰족 튀어나온 그녀의 귀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억지로 들어 올려진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순수무구한 동글동글한 눈동자에 비해 살벌한 내 눈매가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