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데자트는 처음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마력을 못 다루는 게 왜 나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얘는 속성을 다루지 못하는 거지,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게 아닌데. 예시부터 잘못 든 거 아닌가?
하지만 그가 싸우는 걸 보면 볼수록,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됐다.
‘말도… 안 돼.’
촤아아아악!
그는 조금도 마력을 다루지 않고 있었다.
아니,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거라면, 마력이 흘러나오는 걸 완벽하게 통제했을 것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마력은 몸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는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듯, 마력을 마구잡이로 흘러나오고 휘몰아치며, 체내를 어지럽히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는 마력이 새어나오면서 체내를 어지럽혀도 통제하지 않았다.
분명히 상당한 고통일 텐데, 그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랴.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멀쩡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더한 조건에서도 멀쩡히 움직이는 자신을 보며 용기를 얻으라고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데자트는 속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는 괴물이다.’
저건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재능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그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기껏해야 이제 막 성인이 되었거나, 되지 않았거나 하는 수준이다.
저 정도에 저런 경험을 쌓는 게 가능하다고?
그럴 리가. 가능할 리 없다.
저건 단순히 ‘노력’으로 따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로지 시간만이 채울 수 있는 영역.
그 영역에 벌써부터 발을 들였다는 건, 오로지 ‘재능’으로만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늘이 내린 축복.’
어지간한 재능의 영역은 노력으로 메꿀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오로지 ‘재능’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저것이 바로 그 영역이다.
어린 나이로서 절대 쌓을 수 없는 경험과 능력을 타고나서부터 익히는 것.
단순히 ‘재능’을 가진 천재라 하기엔, 다른 천재에 비해선 약해 보이고, 그렇다고 천재가 아니라고 하기엔 재능이 너무나도 빛난다.
그렇기에.
그녀는 라온을 보고 괴물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움직임도 말이 안 된다.’
이제야 느껴지는 거지만.
그의 신체 능력치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인간들의 기준에서, 기껏해야 기사 지망생을 졸업할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활용도가 뛰어났다.
상급 기사에서도 다음 경지인 ‘소드 마스터’를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데자트마저 제압할 수준으로 말이다.
그리고 또…….
휘리리리릭!
라온의 쇠사슬이 미라의 목을 휘감는다. 미라가 두 손으로 쇠사슬을 떼어내려 하지만, 그 전에 라온이 강하게 잡아당겼다.
휙!
마치 물 흐르듯. 누군가가 조작이라도 한 듯, 강제로 당겨진 미라와 달려든 미라가 부딪혔다.
한순간에 미라 둘을 제압한 라온의 손에 쇠사슬이 휘감아졌다.
곧바로 주먹을 뻗는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미라의 입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독가스에 피부가 노출되었음에도 조금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라온은 주먹을 꽂아 넣은 채로 팔을 움직였다.
으직!
미라와 미라의 머리가 부딪쳤다. 허물어지는 미라 사이로 덤벼든 미라 한 마리의 머리가 날아온 쇠사슬에 그대로 박살났다.
마치 일부러 구상이라도 해놓은 듯,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당연히 미리 짜놓았을 리는 없고.
이런 흐름이 가능한 건.
‘……이 전투의 흐름을 조종하고 있어.’
상대방의 움직임과 특징, 그리고 행동반경, 이 모든 걸 파악하고 원하는 흐름대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실천하기엔 너무나 큰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전투 방법이 머릿속에 들어있고 몸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전투라도 할 수 있는 만능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가진 고유의 전투 방식 하나만 다루기도 벅찬 데다가,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오로지 하나에만 투자한다고 알려진 지금.
라온 같은 방식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조차도 오랜 시간을 바탕으로 검술과 단검술, 이 두 가지밖에 익히지 못했으니까.
‘……저 유물도.’
오랜 세월을 살며, 몇 번 유물을 봐온 그녀가 보기에 너무나 까다로운 성격의 유물이다.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탐욕스러움과 끝이 보이지 않는 용량.
저런 유물은 웬만한 실력자는 물론, 대마법사 같은 존재라고 한들 멋대로 건드리지 않을 물건인데.
라온은 저걸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으며, 유물이 라온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따르고 있었다.
분명히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희미한 자아를 바탕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임을 조절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진짜 그는…….’
라온은.
그저, 그녀가 느끼기에 하늘이 내린 괴물이었다.
그녀가 쫓고 있던 집단이 신으로 모시는 존재가 인간으로 내려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무심코 그리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드르륵….
그리고.
천장 위에서 모래 부스러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미라를 모두 없애는 데에는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
더 빠르게 없애고자 한다면, 없앨 수 있었겠지만.
이건 스칼라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이 정도 속도면 충분했다.
‘잘 보였나?’
난 힐끔 그녀를 바라봤다.
아벨라의 곁에서 모든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스칼라는.
“와… 와아….”
입에서 감탄사를 토해내며,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바를 제대로 느낀 듯 해보인다.
난 만족스레 웃으며 팔을 내렸고, 싸움이 끝났음을 알아차린 스칼라가 내게 달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손을 들어 다가오는 걸 막았다.
“아직 오지 마. 독 다 안 떨어졌으니까.”
몇 번 손을 털자, 금세 독에 오염된 마력이 떨구어진다.
독에 오염되어 약해진 마력을, 체내의 다른 마력이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게 그나마 몇 없는 라온의 장점이다.
뭐…… 사실 다른 주인공들도 이런 독 따위에 당하지 않는다.
라온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이제 됐어.”
내 말에 스칼라가 양팔을 벌리고 두다다 달려와 내 품에 와락 안긴다.
가볍게 등을 두들겨주자, 내 품에 얼굴을 부비적거린 그녀가 한결 편한 소리를 냈다.
“으응….”
“이제 좀 괜찮아?”
“응….”
몇 번 더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그녀는 여전히 날 꽉 안은 채, 고개만 들어올려 날 바라봤다.
“방금 싸운 거….”
“어.”
“나도… 가르쳐줘….”
“엄청 힘들걸.”
“괜찮아….”
진짜 엄청 힘들텐데.
일단 나처럼 싸우려면,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에 대한 모든 걸 외워야 한다. 그 다음에 패턴을 모두 외우고, 이를 의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수도 없이 연습해야 한다.
아마 한 3일 정도 하면 힘들다고 때려치지 않을까.
뭐… 사실 나처럼 미친놈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애초에 그녀에게 나 정도의 철저함은 필요없다.
부족한 정보는 내가 채워주면 그만이고, 그녀는 나처럼 정보에서 우위에 서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일단 가자. 여기부터 클리어하고, 알려줄게.”
“으응…!”
“데자트.”
“…네, 네?”
왠지 모르게 쭈뼛쭈뼛 서 있는 그녀에게 턱짓했다.
“이제 앞장서.”
“……네?”
“나 방금 힘 다 뺐잖아. 이제 네가 해야지. 네가 나보다 세잖아.”
“……거짓말도 정도껏….”
“뭐?”
“아니에요….”
사실 이 다음은 내가 상대하기 까다로워서 말이지.
원래라면 NPC들을 고용해와서 싸우는 건데.
지금, 고용한 임시 NPC들보다 든든한 상대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 그럼 출발.”
* * *
“헉, 헉, 헉… 대체… 당신은… 어디서 이런… 정보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땅바닥에 드러누운 데자트가 내게 물었다.
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대답했다.
“아주 잘.”
“허억, 헉….”
“그보다, 너. 조심성이 너무 없어. 두 번이나 죽을 뻔한 거 알아?”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녀는 2년 전보다 약하다.
육체적인 강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아직 그녀는 약했다.
특히나 암살자도 할 수 있는 주제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약했다.
애가 둔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하긴, 나도 여기서 한 100번 죽었나.’
뭐, 그래도 다행이다.
여긴 리셋이 없으니, 실수라도 죽어버리면 큰일이었는데, 모두 살았으니 말이다.
“자. 이제 다 쉬었지?”
“후우… 후… 네.”
“가기 전에 이거 마시고.”
난 주머니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어 색이 다른 반 정도만 들이키고, 나머지를 데자트에게 내밀었다.
당연히 입은 안 댔다.
“…그걸 왜?”
“체력 회복에 좋은 거.”
“그런데 왜 마시던 거를….”
“부작용 있는 부분만 내가 마셨으니까. 나머진 네가 마셔.”
“부작용이요??”
그녀는 왜 그런 걸 마시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짧게나마 나와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워서인지 의심하지 않고 내게 포션을 마셨다.
“크흐으… 와, 갑자기 체력이….”
“좋은 거랬잖아. 그거 1시간 정도 유지되니까, 그 안에 싸움을 끝내야 돼.”
“알겠어요. 그보다, 당신이 받은 부작용이 뭔가요? 아무리 당신이 저보다 강하다고 해도 부작용은….”
“아. 부작용은 부작용이긴 한데, 나한텐 좋은 거야.”
“??”
그럼 부작용이 아니지 않나? 라는 표정이 얼굴에 담긴다.
진짜 얘는 생각이나 감정이 얼굴로 다 보이네.
신기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더 설명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내가 더 설명해주지 않으리라 생각한 건지, 적당히 납득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벨라. 스칼라.”
“…네.”
“…응….”
“둘 다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네! 물론이에요!”
“절대 내가 말한 구역에서 벗어나지 마. 그리고 은신술, 최대한 유지하고.”
“네…!”
“응…!”
둘에게 한 번 더 당부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하늘이 막혀 있는 평범한 천장이다.
하지만, 이미 저 천장의 정체를 아는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아주 작은 틈 사이로 빛이 세어들어오고 있으며.
겉으로 보면 흠집이 나있는 것 같지만.
저건 문고리.
즉… 저건 천장이 아닌.
‘문’이었다.
“진입한다.”
난 그리 말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흐으으읍……!
한계까지 숨을 들이켠다. 그리고 팔찌가 빛을 뿜었다.
<목소리 증폭>
“이리 오너라-!!!”
잔뜩 증폭된 목소리가 이 공간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덜컹!
천장이, 아니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며칠 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우리들의 눈을 순간 멀게 할 정도로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다.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운다.
“……”
어느샌가 근처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지붕을 지탱하는 수많은 기둥이 일렬로 쭉 서 있고.
바닥에는 일렬로 황금빛의 양탄자가 깔려 있었으며.
기둥과 양탄자가 이어진 끝자락에는.
거대한 왕좌(王座)가 놓여 있었다.
“……저자는.”
“쉿.”
난 데자트의 입을 가리고 왕좌를 바라봤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왕좌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어서 오라, 도전자들이여. 나를 찾아온 두 번째 손님이로구나.]
[숨겨진 피라미드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