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꽤 괜찮은 스승이었다.
“자. 절 따라 해봐요. 요렇게 발을 뻗는 거예요. 평소와는 다르게 걸어야 해요. 이건 일상적으로 녹아들면 안 되는 거니까요.”
“일부러… 구분 짓는다….”
“네. 자, 절 따라해봐요.”
그녀의 보폭이나 움직임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한순간에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나, 쓰면 쓸수록 발이 닳고 닳아 수명이 줄어드는 방식.
오로지 짧고 굵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고안된 보법.
“발을 조금만 오른쪽으로. 발끝을 움직인다고 생각해봐요.”
아벨라가 집중한 채로 발의 움직임을 아주 살짝 바꿨다.
쑤욱!
한순간에 그녀의 몸이 녹아든다.
대체 어떤 원리인진 모르겠지만… 대충 보기에는 블라인드 뒤에 숨은 느낌이 들었다.
마력 뒤에 숨어드는 건가?
지금 저 보폭은 마력의 허점을 찌르기 위함이고?
데자트는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잘하네!”
“헤헤….”
“발은 안 아파요?”
“별로요…?”
“타고난 신체도 엄청 좋고… 사실 암살 가문에서 태어나신 거 아니에요?”
“네? 저 고안데….”
“아….”
잠시 머쓱해진 분위기.
하지만 금세 분위기가 되돌아오며, 가르치는 데에 재미가 붙은 듯 열심히 가르쳤고.
아벨라 또한 배우는 재미가 붙은 듯, 열심히 듣고 배우고 있었다.
‘역시 천재는 천재네.’
아주 짧은 시간, 미쳐버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익힌 암살 기술로도 나를 죽였으며, 이후로 가문의 가솔 절반을 죽였을 수준이니.
저 정도의 성장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방심하긴 했지만, 초보 암살자에게 죽을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
잠시 아벨라가 암살 기술… 정확히는 ‘은신술’을 배우는 걸 보며, 입을 열었다.
“데자트. 그거 다음에, 네가 숨어들 때 같이 숨어들 수 있도록 도와줘.”
“네? 하지만 그건….”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
내가 굳이 아벨라에게 암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오로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적어도 위험이 찾아왔을 때, 은신으로 숨어들 수준은 되어야 하고.
지금은 좋은 스승이 있으니, 스승의 그림자에 함께 숨을 수준으로도 충분했다.
‘스칼라는…… 그냥 데자트에게 안겨주면 되고.’
이런 내 생각은 모르는 듯.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은 그녀에게 말을 덧붙였다.
“나머지는 나가서 가르쳐도 돼.”
“나가서…?”
그녀의 시선이 ‘나가서도 같이 있으라고?’라는 생각을 담았다.
난 픽 웃으며 말했다.
“왜. 빚도 안 갚고 그냥 가려고?”
“아뇨, 아뇨. 절대로 그럴 리가요!”
엘프는 누구보다 빚에 예민한 종족이다.
물론 빚이란 것이 정확히 세계가 지정해준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에 쌓인 빚이 남아있는 한, 데자트는 낸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 안에 친밀도를 좀 쌓고 공주의 위치를 알아낸다.’
아니면…… 몰래 뒤라도 쫓아가야지.
“…….”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스칼라는 내 손을 꼭 쥔 채, 연습을 하는 둘을 보고 있었다.
손에 힘이 담긴 걸 보면… 아무래도 자기도 저렇게 쭉쭉 성장하고 싶은 듯해보였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데자트가 이마에서 땀을 훔치며 내게 다가왔다.
“후우우… 미안해요. 너무 집중해버렸네.”
“괜찮… 아요….”
“좋아요. 그럼 저랑 같이 마력을 끌어올려 볼까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칼라가 체내에 있는 마력을 조금 회전시켰다.
마력이 깨끗하게 청소해놓은 마력 회로를 타고 온몸에 흐른다.
스칼라의 마력을 본 데자트가 감탄했다.
“오…… 엄청나게 정순하네요. 마력 회로도 깔끔하게 뚫려있고. 스스로 뚫은 건가요?”
“으응… 아니… 오빠가….”
스칼라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데자트는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가, 다시 스칼라와 시선을 마주치며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좋아요. 거기서 심장에게 말을 걸어봐요. ‘내 불꽃을 끌어 올려줘’하고 말이에요.”
“입으로…?”
“속으로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아요. 자, 그럼 같이 해 볼까요?”
데자트의 말에 스칼라가 눈을 감고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속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력이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본래라면 이대로 마력이 열기를 품어야 하나….
이상할 정도로, 그녀의 마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스칼라가 다시 눈을 뜨자, 그녀와 상냥하게 눈을 맞춘 데자트가 물었다.
“심장이 뭐라고 했어요?”
“싫어… 라고 말했어요….”
“기분이 들었다는 거예요, 아니면 진짜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는 거예요?”
“목소리가 들렸어요….”
“으음….”
그녀의 말에 데자트가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에 빠진 표정. 나 또한 최대한 표정 관리는 했지만, 의문은 숨기지 못한 채 스칼라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심장에 말을 걸라는 건, 그녀 스스로 심상 상태를 보라는 것과 같다.
즉. 현재 그녀의 심상은…….
“이상하네… 혹시, 이 아이. 학대나 버림받은 적이 있나요?”
매우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다.
불안정한 심상은 속성을 열 수 없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위험한 일에 속하거늘,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용했다간 심상이 싸그리 타버려 백치가 될 수도 있었다.
<침묵>
난 스칼라의 귀를 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에 그녀의 콧잔등에 새겨진 주름이 깊어졌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해결할 방법이 없나?”
“글쎄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들은… 으음, 확실하지가 않아서요.”
“확실한 건 뭐지?”
“이 아이를 학대하거나 버린 장본인을 만나는 거죠. 이왕이면 제 손으로 죽이거나 해서, 온전히 떨쳐내는 것.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조금 잔인한 방법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제 손으로 정신을 망가트린 대상을 이겨낸다면, 그 순간 트라우마는 사라진다.
스칼라의 경우, 아예 심상 자체가 거부할 정도로 강력한 트라우마이니, 제 손으로 죽이는 정도의 충격은 죽어야 할 터.
그런데 이게 왜 갑자기 방해를 하는 거지? 원랜 없었는데?
‘……너무 이르게 만났나?’
그나마 추측되는 이유다. 그녀를 만나야 할 시점은 1년 뒤, 그 사이에 그녀는 온갖 일을 다 겪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멘탈이 강해지거나, 더 많은 상처를 받았겠지.
그리고 멘탈을 보존하기 위해, 점차 그런 고통에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그 상태로 1년이 지났으니, 저런 트라우마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정도 심상이 안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또 상처를 줄 순 없어.’
이 방식은 최악의 방법이다. 마지막에 마지막이 되어서도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되는 방법.
많은 부작용이 잇따를뿐더러, 사람에 따라 무감각해지기는커녕 상처가 더 벌어져 자살을 택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냥 이겨내게 해야 하는데.’
하지만 여기서 부모를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고.
또, 이르게 만난다고 해도 나중에 있을 일을 위해 죽일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제일 좋은 방법일까?
어떻게 하면 그녀를 치료해줄 수 있을까…….
“…….”
“…….”
우리 둘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내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아벨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있는 트라우마를 없앨 순 없다.
최대한 부작용 없이, 자연스레 이겨내게 해주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나… 아무것도 안 들려….”
“아.”
스칼라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침묵 마법을 풀어주었다.
스칼라는 말없이 내 품에 포옥 안겼다.
잠시간 품에 안겨 있던 스칼라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나…… 못 강해져……?”
“들었어?”
“아니… 그냥… 분위기가….”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
여기서 거짓말하는 건, 괜한 희망 고문을 하는 거겠지.
결국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칼라가 고개를 뚝 떨구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막 강요한 줄 알겠어?”
난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런 걱정을 하는 그녀가 대견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응….”
“속성 정도는 못 다뤄도 돼.”
“…응?”
내 말에 스칼라가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옆에 있던 데자트도 마찬가지.
‘뭐지? 비틱질인가?’하는 표정에 작게 웃었다.
“속성 따위 없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어.”
“어떻… 게…?”
“내가 보여줄게.”
속성, 아니- 그 이상을 넘어 마력 없이도 살아남는 방법을.
물론 이론을 가르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실전에서 알려주는 게 제일 좋겠지.
난 힐끔 아벨라를 바라봤다. 이제 슬슬 익숙해진 게 보인다.
“슬슬 출발할까.”
“네? 아직 준비가….”
데자트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기야, 보통은 이 정도 시간이면 익히기는커녕 이제 막 감을 잡은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애초에 아벨라의 재능은 ‘보통’이란 범주에 속해 있지 않다.
“아벨라. 할 수 있지?”
“…네!”
재능이 한 곳으로만 치우친 게 아닌, 여러 방면으로 넓게 퍼진 완벽한 육각형의 재능.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한 번 발을 뻗는 것만으로도 방금 가르친 보법을 완전히 따라했다.
<그림자 밟기>
쑤욱!
한순간에 그녀가 마력 뒤로 숨어들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겨우 1시간 배운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
옆에서 데자트가 입을 쩍 벌렸다.
충격받은 표정에, 마력 뒤에서 벗어난 아벨라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좀…… 이상한가요?”
“아니… 대체 어떻게… 마력이… 엄청 저항할 텐데….”
“도련님 마력보단 되게 잔잔한걸요.”
“나는 이거 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는데….”
잠시 천장을 쳐다보던 데자트는 날 바라봤다.
“당신이 괴물인 건지, 당신 사람들이 괴물인 건지. 난 전혀 구분을 못 하겠어.”
그녀의 질린 눈과 허탈하듯이 내뱉은 말에.
난 그냥 픽 웃을 뿐이었다.
* * *
피라미드의 숨겨진 왕이 나타나는 위치는 랜덤이다.
만약 내가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면, 정확한 위치를 알 테지만.
여긴 나중에 데자트에 의해 무너지는 곳이니, 위치를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오는 위치는 대체로 비슷하지.’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실한 건.
숨겨진 왕이 있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위험한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이다.
우르르르르!
바닥이 뒤집어지며 미라들이 기어 올라왔다.
평범한 미라들이 아니다.
붕대 사이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입가 사이로 독가스와 같은 마력을 뿜어낸다.
“멈춰요!”
뒤를 경계하고 있던 데자트가 미라들을 발견하더니 버럭 소리쳤다.
“독 미라들이에요! 놈들의 독에 한 번 당하면 바로 죽을 거예요!”
독 미라. 피라미드의 최상층, 숨겨진 피라미드의 왕을 지키는 첫 번째 가디언.
놈들이 뿜어내는 독은 육체를 오염시키기보다는 마력을 오염시켜, 마법사나 기사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긴다.
이들을 모두 쳐죽인 데자트는 제대로 해독하지 못해, 나중엔 마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었다.
스릉!
만약에라도 독에 당하면 그런 미래가 찾아오는 걸, 데자트는 겪어보진 않았어도 충분히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자트는 날 멈춰 세우고, 긴장 어린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여긴 제가 막을게요! 그러니 당신은 다른 길을-”
“아니.”
텁!
난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뒤로 잡아당겼다.
어, 어? 하는 사이에 그녀가 뒤로 밀려나고, 난 날 보며 으르렁거리는 미라들을 노려보았다.
독… 독이라.
독은 치명적인 게 맞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마력을 오염시키는 독은 하찮기 그지없다.
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독에 오염되려면, 최소한 최종 보스격인 ‘고밀라’가 뿜어내는 우주 방사선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스칼라.”
이 정도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촤르르르륵-
스칼라에게, 마력을 다루지 못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봐.”
촤르르륵!
쇠사슬이 내 팔을 휘감으며 울부짖는다.
미라들이 날 보며 독가스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난 미라들을 덤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리고 네가, 속성 따위에 좌우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