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일단 오해는 풀렸으니, 데자트를 두른 쇠사슬은 풀어주었다.
그제서야 데자트의 체내에 점차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데자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살겠다…….”
“괜찮으세요?”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데자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까 고개를 들지 못하게했던 범인이 아벨라임을 알기에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데자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쩍 눈동자를 굴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뭔가 그렇게 두면 안 될 거 같아서…….”
“…혹시 협박 때문에 억지로 하신 건가요?”
“아뇨. 그건 절대 아닌데…….”
“???”
억지로 한 건 아닌데, 미안은 하고…?
뭐지, 이 이상한 착한 사람은?
데자트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아벨라는 할 말이 없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잠시 짐을 정리하던 라온은 아벨라를 힐끗 보더니,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그… 아직 사과를….”
“내가 시켜서 한 거잖아. 내가 대신 사과할게.”
“도련니이임…….”
아벨라는 감동적인 눈빛을 보냈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모습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도련님?’
왜 도련님이라 부르지?
보통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귀족의 자제에게 붙이는 호칭이 아닌가?
아니면 결혼한 사람의 동생?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나이도 둘 다 엇비슷해보였으니 말이다.
‘……저자가 귀족의 자제라고?’
이 세계에서 ‘혈통’이 가지는 힘을 생각한다면, 저 자의 강함이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왜 그런 고귀한 혈통이 이런 데에 있느냐는 거지.
심지어 데리고 온 것도 여자 둘뿐이니 말이다.
‘설마?!’
그녀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소년소녀가 단 둘이 여행을 하고, 그리고 어린아이를 대동하는……?
‘음,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금세 망상을 떨쳐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체 라온 그는…… 정체가 뭐지?
‘끄으응…….’
그녀가 끙끙거리며 고민에 빠진 사이, 라온에게 돌아가기보다는 한 번 더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 아벨라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체력 회복에 좋은 음료수 하나를 꺼낸 아벨라는 데자트에게 넘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저기, 이거라도…….”
“아, 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벨라가 내민 선물을 보곤 두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귀엽다.’
요새 인간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선함이다.
기분이 좋아진 데자트의 귀가 쫑긋거렸다.
잠시 둘을 보고 있던 라온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짐 정리에 집중했다.
그의 시선이 돌아간 걸 확인한 데자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아벨라에게 속삭였다.
“저… 혹시 대신 하나 여쭈어봐도 될까요?”
“네? 뭔데요?”
“그… 저 남자, 혹시 어디 귀한 집안인가요?”
“네?”
아벨라는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인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녀의 질문 의도를 알아차리고 작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직접 물어보시지 않고…?”
“아, 그게….”
이걸 대답하긴 조금 곤란한데…….
그때.
대답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돌아왔다.
“그건 안 돼. 엘프들에겐 있어서 성을 묻는 건, 꽤 친분이 쌓일 때에나 하는 일이거든. 특히나 종족이 다른 경우엔 더더욱이.”
“아하!”
데자트는 대신 대답해준 라온을 바라봤다.
작게 말했는데도 다 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엘프들 사이에서 성이 중요시되는 걸 알고 있던 거야?’
대체 엘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던 거지?
슬슬 무서울 지경이다.
저건 엘프 사냥꾼 ‘따위’가 쌓을 수 없는 지식이다.
진짜 엘프와 교감을 나누고 ‘친우’ 이상의 관계를 쌓아야만 알 정보를 알고 있다.
즉…….
‘이것 말고도 다른 정보들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미 ‘수호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이미 그는 엘프에 대한 지식은, 대륙의 인간들 중에선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대체 저 남자가 누구길래……?
“…….”
하지만, 대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빚을 지었다고 한들.
데자트는 성을 묻고 싶지 않았고, 라온도 성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 * *
바깥을 볼 순 없으니 대충 ‘저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즈음.
모두를 자리에 앉히고, 중심에 모닥불 하나를 피운 내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피라미드에서 나갈 거야.”
“어떻게……?”
내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있던 스칼라가 물었다.
난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들어올 때, 얘기 들었지? 나오고 싶다면, 숨겨진 왕을 찾으라고.”
“응….”
“이미 우린 정답을 알고 있잖아. 그놈을 잡으면 돼.”
“자, 잠만!”
데자트가 내 말을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잔뜩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자는 엄청나게 강합니다!”
“알아.”
숨겨진 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상급 기사 수준에서도 완숙한 경지, 이제 그 이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자트에겐 더더욱이.
허나, 그녀가 이 피라미드를 벗어나는 데엔 2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이곳에 있는 피라미드의 왕은 비록 ‘파편’에 불가하나.
엄연히 세계로부터 ‘왕’이란 칭호를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최소 마스터급.’
소드마스터 혹은 대마법사를 통칭하는 경지. 상급 기사를 ‘따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힘.
당연히 난 못 이긴다.
데자트도 함정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한 번에 힘을 쏟아부은 게 아니었다면 절대 못 이겼을 텐데.
그 이상의 실력자인 왕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나한테 다 방법이 있거든.”
하지만, 애초에 이길 필요가 없다.
이걸 아는 자는 나뿐이다.
그러니, 난 당당히 이 정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연히 얻을 것도 얻고.
“데자트.”
“…네?”
“네 빚. 여기서 청산해줘야겠다.”
“네?”
데자트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어떤 방식으로……?”
난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고, 내 옆에 앉아있는 아벨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두 명에게 기술을 가르쳐줘. ㅅ칼라는 속성을 다루는 방식을. 그리고 아벨라에게는 네 장기인 암살을.”
“……!”
“……!”
“……!”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벨라는 갑자기 자신에게 암살을 가르치라고 하니 놀란 눈빛이고, 데자트는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 자신의 장기를 내가 알고 있으니 놀란 눈빛이었다.
스칼라는… 음, 넌 왜 놀랐냐?
뭐, 아무튼.
사실 처음에는 나도 이럴 생각이 없었다.
‘본래 데자트는 죽어야만 구원받는 캐릭터니까.’
데자트는 죽어야만 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으며, 2년 동안 고통받아온 그녀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무리 내가 인성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어도, 이런 캐릭터를 억지로 살릴 생각은 없었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았기에, 더더욱이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면 이루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실력과 별개로, 애초에 ‘스승’으로 삼을 수가 없는 캐릭터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새로운 엔딩이 보인다.
안식이 아닌 생존이.
그로 인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의 이루어짐이.
그러니, 그걸 이루어주면서…… 난 내가 원하는 걸 취할 생각이었다.
“대체…… 어떻게…….”
충격받은 듯, 그녀가 입을 뻥긋거렸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내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녀가 죽기 전까지도, 마지막에 ‘공주’에 대해 언급함에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도 그녀에게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걸 알고 있느냐 하면.
‘아무리 2년이 흘렀다고 해도, 그 사이에 상급 기사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암살자들의 기술을 익힐 수 있을 리 없다.’
미치광이였던 그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쓸고 다녔고, 마지막에 내가 찾아낸 ‘안식’이 아니고서야 죽지 않을 수 있던 건.
그녀의 뛰어난 암살 실력 덕분이다.
그때 당시에 그녀는 오로지 단검만을 들고 다녔다.
평범한 단검이 아니다. 마치 부러지기라도 한 듯, 끝이 뾰족하지 않고 뭉툭했으며,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너덜거리는 검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쓰고 있는 롱소드가 부러진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암살 기술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거고.’
후천적으로 익힌 게 아니라, 처음부터 둘 다 익힌 것이다. 나중엔 장검이 부러지고 제정신이 아니어서 암살 기술만 사용했던 것이고.
“그냥 보이더라.”
난 대충 둘러댔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더 캐물어봐도, 더 자세히 말 안 해줄 거죠?”
“응.”
안 하는 게 나을 테니까.
어느 누가 자신의 최후를 듣는 걸 좋아하겠는가.
특히나, 오로지 절망뿐인 최후라면 더더욱이.
그러니, 내가 떠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라온에겐 내가 없을 때도 살아가야 하니, 말해주어야 할 테지만.’
“……마음 같아선 당신의 성이라도 물어보고 싶네요.”
“나중에 때가 오겠지. 그때 물어봐.”
내 말에 데저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견에 동의하기보다는, 스스로 체념한 것에 가까웠다.
나와 만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지나치게 그녀와 엘프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정상’의 범주라고 할 수 없기에, 스스로 이해할 포기한 것이다.
“저…….”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 데자트님께 여쭈어볼 게 있는데…”
“네? 어떤 건데요?”
“분명 예전에 누군갈 지키신다고…….”
“아… 네.”
데자트와 아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름 친분을 쌓았고, 서로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여자의 대화는 멋대로 끼는 거 아니라고, 강제로 귀가 막혀 있긴 했지만….
“맞아요. 전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암살자를…?”
“전, 주인이 다치기 전에 적을 먼저 없애는 ‘선봉대’ 역할이거든요.”
그녀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봉대들은 주인에게 찾아올 위협을 미리 언질 받고, 그에 대해 파악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역할이었구요.”
“그러면 여기에 오신 것도……?”
“네…… 미리 위험을 알아두려고 찾아왔다가. 하필이면 발을 다친 상태에서 도약을 쓰다가 실수로 거리 계산에 실패했거든요.”
그녀는 정상적으로 들어온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나가는 방법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나가는 데 2년이나 걸린 것이고.
그마저도 정상적인 탈출 방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그보다. 제가, 아벨라에게 가르친 건 무엇인가요? 단검술?”
“아니. 도약.”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웬만하면 은신술도 같이. 할 수 있지?”
“물론이죠!”
그녀는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제가 제일 잘하는 일입니다.”
탕탕!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비가 걸고 싶지?
너, 방금 자기가 말해놓고 어쩌다가 여기에 갇힌 건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지?
하지만 참았다. 아무리 내가, 아니 ‘라온’이 싸가지가 없어도 여기서 말할 정도로 무례한 건 아닌…….
“……못 도망치고 다친 거…… 아니야? 근데…… 잘하는…… 거야……?”
“…….”
“…….”
아니, 그걸 명치를 후려갈기니 스칼라야…….
“…울어?”
“아, 아니에요!”
이야, 얘 운다.
그보다 저 여린 모습에 작게 걱정이 든다.
‘……잘 가르칠 수 있겠지?’
이상하게 가르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