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현재 자하라 사막은 하나의 왕국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처음 자하라 사막이 발견되었을 땐 작은 마을 수준에 불가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막의 범위는 전염병이 퍼지듯이 천천히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 죽은 자연은 되돌릴 수 없으며.
죽은 자연은, 살아있는 자연을 증오하며 똑같이 죽이고자 만든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자하라 사막은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 근처에 떨어진 건가, 아니면 원래보다 영역이 한참 짧은 건가.’
저 주홍빛의 모래는 일종의 안전지대를 의미한다.
죽어가는 자연 속에서도,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곳이며.
사방에 자리 잡고 있고, 주로 오아시스가 있으며, 소수 민족… 혹은, 추방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자연의 선의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정작 범죄자들의 거처로 쓰이는 것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자연의 선의는 인간들에게 악의를 주는 이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준 셈이 된 것이다.
만약 정말 자연이 사람 같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현타가 오지 않았을까.
사실 진짜로 현타가 와서 계속 죽어 나가는 걸 수도.
‘뭐, 나한텐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저희 바로 저기로 가요?”
“아니. 준비하고 가야지.”
말했다시피 저 구역엔 추방자들이 살고 있다.
다들 마탑에서 추방되면서 힘이 약해졌다고 하나, 일반인 수준인 아벨라와 스칼라 정도는 죽일 수 있었다.
그러니, 둘의 정체를 숨길 도구가 필요했다.
“자.”
찰그락.
난 품에서 미리 챙겨온 초커들을 내밀었다.
“다들 이거 껴.”
“이게 뭔데요?”
“목… 걸이…?”
“초커. 이걸 목에 차.”
이걸 차는 이유는 간단했다.
주로 마법사들이 자기 노예를 표시할 때 애용하는 도구가 초커였기 때문이다.
즉. 이 둘이 추방자 역할을 하지 않는 한, 노예인 척을 해야 하니 이 초커는 필수로 착용해야 했다.
“내가 추방자인 척을 할 거고, 너희 둘은 내가 데리고 온 노예인 척할 거야. 할 수 있지?”
“…노… 예…?”
“어. 마음 같아선 너희도 추방자라고 속일 수 있지만, 아직 약해서 안 돼.”
마음 같아선 초커를 안 채우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추방자인 척 연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넘쳐나서 괜찮았지만.
이 둘은 추방자인 척 연기했다간, 금세 들통나 살해당할 게 분명했다.
아무리 내가 지켜준다고 한들, 그거에 한계는 명확했으니.
“답답해도 좀만 참아줘. 금방 끝낼 테니까.”
“알았어요.”
“…알았… 어….”
다행히 내 뜻을 이해해준 듯, 스칼라와 아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커를 가져갔다.
초커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조심스럽게 목에 찬다.
철컥.
“어… 때…?”
스칼라는 초커를 찬 목을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음, 저러니까 그냥 패션 같네.
하긴 지구에선 초커를 패션으로 많이 쓰긴 했지.
이 둘이 찬 것도 최대한 디자인이 이쁜 걸로 가져오기도 했고.
“저는 어때요?”
옆에서 아벨라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얘들아.
너희 노예인 척해야 한다니까?
뭐… 그래도….
“괜찮네. 그래도 얼굴은 너무 보이진 마. 최대한 나랑 붙어 다니고.”
“네에.”
둘은 이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로브를 꾹 눌러썼다.
난 가면을 착용하고, 스칼라의 손을 잡았다.
반대쪽 손도 아벨라와 손을 잡을까 하다가, 이제 다 큰 애랑 손을 잡자니 그림이 좀 뭐해서, 그냥 소매를 내밀었다.
“이거라도 잡아.”
“네에.”
찰그락.
아벨라는 내 소매 사이로 손을 넣어 쇠사슬을 붙잡았다.
“……?”
그걸 잡으라고 한 게 아닌데.
어… 그래도 암튼 붙은 거니 된 건가?
난 머리를 긁적이며 슬슬 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스칼라가 내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래봤자 어린아이의 힘이었지만.
“?”
“오빠… 나도….”
왠지 모르겠지만 스칼라가 눈을 반짝이고 있다.
난 아벨라가 잡고 있는 쇠사슬을 조금 더 길게 잡아 늘어트리며, 살짝 흔들어보였다.
“뭐, 이거 쇠사슬?”
“응… 나두 잡아… 볼래….”
“절대 안 돼.”
난 단칼에 잘랐다.
“절대로.”
마력으로 영양분과 에너지를 채우는 그녀에게 있어서 이 쇠사슬은 독이다.
다른 마법사야 아무리 마력이 바닥나도, 죽지는 않지만.
스칼라는 정말 말 그대로 말라 죽는다.
마력이 바닥에 가까워질 경우,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마력을 급하게 흡수하여 목숨을 연장할 수 있지만.
쇠사슬처럼 강제로 흡수하는 아티팩트로 바닥이 날 경우, 체내에 마력이 조금도 남지 않아 수분이 빨려 나간 인간처럼 죽을 가능성이 컸다.
‘진짜 큰일 나.’
미라가 된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알았어.”
“그런데, 도련님.”
“왜?”
“그, 저희가 이렇게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노예처럼 안 보일 거 같은데….”
“그러진 않을 거야. 이상한 취향을 가진 놈들이 많거든. 게다가 너희 둘 다 여자니, 알아서 오해하겠지.”
일부러 빙 둘러 말하긴 했지만, 둘 다 내가 뭘 말하려고 아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스칼라와 아벨라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싫어.”
“진짜 최악이네요.”
“그래. 나도 싫어.”
저런 더러운 데가 다 그렇지.
마음 같아선 안 가고 싶지만, 필요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얼른 끝내고 나오자.”
“네에.”
“응….”
자, 그럼 들어가자.
우린 굳은 결심을 품은 채 추방자들의 영지로 들어섰다.
* * *
추방자들.
마탑의 권위에 도전하여 쫓겨난 이들로.
대부분 마탑이 금지한 술법에 손을 대거나, 마탑의 심기에 거슬려 쫓겨난 게 대다수였다.
그런 이들 중, 나름 힘을 갖춘 자들만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 안전지대였다.
‘하나같이 전부 상위급 마법사.’
모두 ‘벽’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으나.
엄연히 강자의 측에 속하는 이들.
‘애초에 이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실력은 있어야겠지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싸우는 게 아니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난 날 빤히 바라보는 마법사들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마법사들이 잠시 움찔거리더니, 이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선다.
‘강할수록 나야 편하지.’
강한 마법사일수록 마력의 흐름에 예민하다.
당연히 이들은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오는 내 마력을 느낄 것이고.
자연스레 나를 ‘강자’로 착각하여 덤벼들지 않겠지.
잘하면 나를 ‘트리아’로 착각할 수도 있고.
‘추방자들 주제에 쓸데없는 권력욕만 많아서.’
우습게도 추방자 중에서도 계급이 있다.
이곳의 존재조차 모르는 ‘수드라’부터, 상위 마법사급이자 마을에 거주하는 바이샤, 자하르 사막 사방(四方)에 존재하는 구역을 지배하는 ‘트리아’까지.
바이샤 수준까지는 기세로 제압할 수 있지만.
‘트리아는 만나면 끝이다.’
모두 잔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넘어서.
트리아 모두가 대마법사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언령’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이자.
한 명 한 명이 내 형제인 벨 리그벨토 수준.
아마 내 기세에 속지 않고, 내가 마법을 다룰 수 없는 반쪽짜리에 가깝다는 걸 금방 알아차리고 죽이려 들 터.
‘그래도 모두 제약이 있으니, 살아남으라고 하면 살아남을 순 있겠지만.’
마탑도 머저리는 아닌지라, 강자 반열에 이르는 이들을 그냥 추방하지는 않았다.
모두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족쇄를 걸어놓으며, 대마법사인 마탑주가 직전 걸어놓은 족쇄인 만큼.
족쇄를 벗어던지기 위해선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서야 했다.
그러니, 벽 직전까지 다다랐다고 한들, 대마법사는 아니었으니 모두 족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의 마력 흐름이 굉장히 불안전하니, 잘 이용하면 죽이진 못하더라도 도망은 칠 수 있었다.
‘……대신에 이 둘은 죽겠지만.’
그러니 절대 만나선 안 된다.
다행인 점은, 이 구역에는 트리아가 없다는 점이었다.
‘북쪽의 구역은 마르간이 지키고 있지.’
도살자 마르간.
내가 이전에 사칭했던 추방자이며, 네 명의 트리간 중에서도 무력만으론 톱을 달리는 자였다.
물론 지금은 없지만.
‘그놈은 나중에 일어날 탈옥 이벤트까지 나타날 일이 없다.’
그러니,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한다.
물론 그래도 큰 사고는 칠 수 없다.
언제나 ‘혹시’라는 점이 있으니 말이다.
-저….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내가 힐끔 바라보자, 아벨라가 글자를 새로이 적었다.
-뭘 찾으시려는 거에요?
-물약.
난 전음으로 대답했다. 전음을 처음 들은 듯, 그녀가 살짝 놀란 듯했지만, 금세 티를 내지 않고 다시 내 손바닥에 글자를 그렸다.
-구매하시려고요?
-아니?
-네?
난 비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아벨라에게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그걸 왜 돈 주고 사.
-그러면…?
-뺏어야지.
범죄자한테 돈 주고 사는 게 멍청한 거 아니야?
아벨라는 생각도 못한 답변인 듯, 잠시 굳어버렸고.
스칼라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경계 어린 눈으로 근처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찾았다.’
난 마을에서도 유독 낡은 집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덜거리는 문.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듯한 흔적에, 씨익 웃으며 문을 걷어찼다.
쾅!
“어이.”
“누, 누구냐!”
문이 박살 나며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더벅머리를 하고 모래가 잔뜩 끼어 지저분한 행색의 남자가 고개를 내민다.
불안한 듯, 덜덜 떨리는 눈동자에 가볍게 턱을 까딱였다.
“프레드. 지금 우리 사이에 이러기가 있나?”
“다, 당신이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자네가 납품하지 않아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 평범한 상인이지.”
쾅!
난 문을 거칠게 닫았다.
어차피 일부밖에 남지 않아 문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했지만, 압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털썩.
난 스칼라와 아벨라를 양옆에 세워둔 채 의자에 걸터앉았다.
팔걸이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며 나와 거리를 둔 프레드를 향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가면이라고 해도 입은 보이니 가능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자네 때문에 보게 될 손해를 어떻게 메꿀 거지?”
“대체 무슨 소리를……!”
“난 지금 장난하러 온 게 아니야. 더 열받게 하지 마, 프레드. 이대로 널 잡아서 마탑 새끼들한테 던져놓기 전에.”
찰그럭.
내가 팔에 찬 쇠사슬을 흔들어 부딪히는 소리를 내자, 프레드가 후다닥 내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전투보다는 생산 쪽에 치중된 마법사이긴 했지만, 나름 경지가 있는 만큼 쇠사슬의 성능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난 덜덜 떨며 정수리를 내보이는 프레드를 내려다보았다.
‘이놈이 2년 후에 세르바 리그벨토와 연을 맺지.’
독약의 거장, 프레드.
지금은 마르간이 하는 사업에 물약을 보내는 일이나 하고 있지만.
2년 후에는 연구에 미친 마법사인 세르바 리그벨토의 시선에 들게 되어 독약을 미친 듯이 만들어 뿌리게 되고, 덕분에 발생한 돌발 이벤트로 라온을 죽이는 놈 중 하나였다.
‘지금도 독약은 계속 만들고 있을 터.’
4년 전부터 계속 모아왔다고 했으니, 양은 적더라도 지금도 독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숙성할수록 효과가 진해지는 ‘마력 저주의 물약’을 말이다.
그땐 10년 이상 묵혔다고 설명창에 적혀 있었으니, 당연히 지금 있겠지.
난 그걸 챙기러 온 것이었다.
‘운반책 연기도 할 만하네.’
마르간이 운영하는 사업에 직접 물약을 운반하는 운반책인 척을 하고.
평소에도 프레드를 은연중에 무시하고, 가끔 폭력을 휘둘렀으니, 밖에서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프레드도 마르간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내가 이렇게 군다고 한들 의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마르간이 사라진 걸 아는 줄 알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