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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화 (47/124)

제47화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들, 당장은 마벨 리그벨토는 내게 도움이 되는 존재다.

적어도 지금은 가면을 쓰고 손을 잡는 게 맞았다.

다른 형제들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내가 마벨과 손을 잡는다고 신경 쓸 양반들은 아니긴 하지.’

모두 나 하나로 판도가 바뀌기엔 세력이 너무 거대하다.

벨 리그벨토는 대외적으로 후계자가 될 거라 알려진 최고의 유망주이며.

세르바 리그벨토는 연구를 통해 쌓아올린 업적과 결과가 너무나 대단했고.

델 리그벨토는 본래 떠돌이나 은거 기인으로 살았어야 할 강자들을 끌어들였다.

결과가 없는 건, 오로지 마벨 한 명뿐.

그러니 형제들도 조금 아쉬워할 순 있더라도 날 적대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뺏을 수 있을 테니까.’

아마 마벨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뺏기기 싫으면 알아서 하겠지.

“어떻느냐?”

마벨이 살짝 초조한 듯 물었다.

난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탁, 탁, 탁.

스칼라와 아벨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둘 다 똑같이 굴리는 모습을 보니 귀엽다.

아, 이게 아닌데.

“……흠. 뭐, 좋습니다. 용의 머리라. 저도 충분히 흥미가 있습니다. 제가 책임 같은 부분을 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그러느냐?”

“하지만.”

잠시간 마벨의 눈빛에 기쁨이 맴돈다.

난 기꺼이 기쁨을 향해 어퍼컷뿐만 아니라 사커킥까지 날렸다.

“그건 제 미래이지, 현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무얼 원하느냐.”

“열화검.”

내 말에 마벨이 눈을 부릅뜬다.

마법사인 그는 쓸 수 없지만.

내가 쓰는 쇠사슬과 같이 ‘유물’의 반열에 들며, 마력을 빨아들이는 대신 가진 속성이 ‘화’인 경우 위력을 극대화해주는 유물이었다.

상당히 귀한 유물.

마력을 빨아들이는 패널티가 있지만, 위력을 1%라도 올리는 데에 목숨을 거는 마법사들에겐 문제가 되는 요소는 아니었다.

물론 마법사인 탓에 무투술이나 검술을 못 배우는 내가 쓰려고 하는 건 아니고.

‘스칼라한테 주면 딱이지.’

원래는 몰래 훔쳐서 주는데, 그 탓에 사용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있었다.

하지만 이걸 가진 본인이 넘겨준다면?

별 제한 없이 어디서든 쓸 수 있다.

“뭘 말하는지 아시겠죠.”

“……그건.”

“잘 생각해보십시오.”

드르륵.

난 자리에서 일어나, 굳어버린 마벨을 지나쳤다.

“그걸 제게 주신다면 기꺼이 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이거 하나면 다 빼먹은 거니까.

넉넉하게 한 달 정도는 팀이 되어줄 수 있다.

줄 수 있다면 말이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

난 그를 지나쳐 문을 열고 나갔다.

눈치보고 있던 스칼라와 아벨라가 내 등 뒤로 쪼르르 따라 나온다.

무슨 아기새냐? 진짜 컨셉만 아니었으면 아무때나 볼을 잡아서 늘어트리는 건데.

난 근질거리는 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 이들에게 말했다.

“가자.”

“……어디로요?”

“어머니에게.”

내 말에 아벨라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하긴…….

‘뭐, 그건 내가 밀어붙이면 그만이지.’

이제 나는 엄연한 직계였으니 말이다.

&

오로지 리그벨토 가문의 저택을 세우기 위해 사들인 영지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길치라면 정원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수준이며.

처음 오거나, 평범한 사람이 들어온다면 걷는 데에만 하루 이틀을 헤맬 정도.

유지비만 해도 웬만한 남작가의 1년 예산을 후려칠 테니.

‘나한텐 아니지만.’

내가 이곳을 몇 번을 왔는데 길을 잃겠는가.

머릿속에 남아있는 뚜렷한 경로로 걷는다.

킁킁.

정원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스칼라는 이상한 냄새라도 맡은듯 코를 킁킁거리다가 미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냄새 잘 기억해놔. 가끔 올 수도 있으니까.”

이 정원에 흐르는 건 자연의 마력이 아닌, 인위적인 마력이었으니 말이다.

전생으로 따지면…… 정원 전체에 깔끔하게 걸러진 공기만이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미세먼지나 그런 건 모두 걸러지고 말이다.

“알…… 았어…….”

스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그녀가 뭔갈 기억할 때 보이는 버릇이다.

난 그녀의 코를 누르며 말했다.

“그건 찡그리지 말고.”

“……네……?”

“나중에 가서 주름 생긴다?”

난 보이지도 않는데, 주름 생겼다고 온종일 찡찡거린 걸 생각하면.

듣지 않아도 벌써 골치가 아파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스칼라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콧잔등은 안 찡그러트렸다.

……1분 만에 다시 찡그러 트렸지만.

“어? 도련님, 도련님!”

걷다가 아벨라가 멈추며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나와 스칼라가 자리에 멈추자, 아벨라는 어딘갈 가리켰다.

내가 걷던 방향이었다.

“저기에 뭔가가……!”

……뭐야. 뭘 본 거야?

설마 내가 가려던 곳을 본 건가?

“저게 보여?”

“네? 네!”

“어떻게 생겼는데?”

“탑……? 같이 생겼어요!”

진짜네?

내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보자, 아벨라는 베시시 웃어 보였다.

“제가 눈 하나는 좋잖아요.”

헤헤 웃어 보이는 아벨라.

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애가 특별한 건 알았지만, 저걸 뚫어볼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 나쁜 건 아닌가.

“잘했어, 아벨라.”

“네? 진짜요?!”

“어.”

난 품으로 와락 달려든 아벨라의 머미를 두들겨주며.

날 빤히 보는 스칼라에게 아벨라가 가리켰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칼라.”

“……네……?”

“이상한 게 느껴져?”

“……킁킁.”

내 말에 스칼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다 내가 말한 이상한 게 뭔지 알아차린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느껴… 져….”

“그래.”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 기억해둬.”

정면으로 손을 뻗었다.

양 손바닥을 정면으로 활짝 펼친다.

뭔가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오로지 직계. 그리고 ‘혈육’, 혹은 평생을 함께하리라 약속을 맺은 연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결계.

“열려라.”

작게 중얼거리자, 허공이 갈라졌다.

쩌억-

숨겨진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탑이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우뚝 솟은 시꺼먼 탑.

다만, 이곳저곳이 무너져 있고, 깨끗한 재질보다는 벽돌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상당한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탑이었다.

그리고, 탑 앞엔 누군가가 서 있었다.

“…….”

투구를 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사가 날 바라본다.

난 문지기에게 말했다.

“어머니를 뵈러 왔다.”

[들어가도 좋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뭐, 당연하다.

애초에 이 기사는 가주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인공 생명체었으니 말이다.

난 기사에게서 풍기는 인위적인 냄새에 잔뜩 겁을 먹은 듯 해보이는 스칼라의 손을 꽉 잡아주며 탑으로 다가갔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자, 파직- 하는 느낌과 함께 몸에 전류가 짜르르 흘렀다.

“도련님?!”

“쉿.”

공격인 줄 알고 호들갑을 떠는 아벨라를 진정시키고, 문을 바라보았다.

몸에 흐르는 전류는 내 심장과 몸에 흐르는 피를 확인했다.

이내 확인을 끝낸 전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굳게 닫힌 문에서 달칵- 소리가 났다.

끼이이이익…….

문을 밀자, 잔뜩 녹슨 소리가 났다.

탑 안은 어두컴컴하기 그지 없었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여자만이 가지는 고유의 파동이 느껴졌다.

‘저기 안인가.’

“둘 다 나한테 딱 붙어서 와.”

스칼라와 아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착 달라붙는다.

난 두 팔의 묵직한 감각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갔다.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아 어두운 탑 안을 가로지르다 보니, 곳곳에 깊이 남은 검상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상당한 마력이 느껴지는 검상으로, 새겨지지 얼마 안 된 듯 해보였다.

‘초입인데 이 정도면…….’

평민 출신으로 귀족이랑 결혼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건가.

나중에 가면 이 탑을 무너트릴 정도가 되니 이상한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 내가 본 어떤 기사보다도 강한 힘에 몸이 전율하는 게 느껴졌다.

멈칫.

알 수 없는 억제력이 발이 멈춘다.

여기다.

난 자리에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켜졌다.

덕분에 내 앞에 선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잔뜩 푸석해진 머리카락과 쾡한 눈,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단련된 몸.

“……누구?”

“라온입니다.”

희미한 눈이 날 지그시 응시하다가, 내 눈과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을 보곤 휘둥그레 커진다.

뎅그랑-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떨어졌다.

검사로서 검을 떨구었다는 건 큰 수치였으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여인은 천천히 다가와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쓸어내린다.

잔뜩 흉지고 거친 손이었다.

“……그래. 라온……이로구나.”

아마 그녀가 라온을 보지 못한지 5년은 지났을 것이다.

그동안 느리긴 하지만 라온은 착실히 잘 컸으며.

몸에 두른 쇠사슬이 마력을 억누른 탓에 존재감도 옅어져 남과 지내기도 힘들었을 터.

하지만 이런 이유를 제쳐두고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 그래도 깊은 죄책감에 빠진 그녀에게 죄책감이 한 줄기 더 추가된 게 느껴졌다.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난 내 뺨을 쓸어내린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예. 오랜만이네요. 저도 순간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5년하고도 4개월 13일이나 지났으니.”

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어색하게 움직이는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지.”

잠시 말을 망설인다.

자기 몰골이 안 좋은 건 아는 모양이다.

나도 차마 좋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몰골이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깟 죄책감이 뭐라고 이리 됐을까.’

본래 그녀는 찬란히 빛나는 인물이었다.

그 빛에 가주가 반해 직접 구애를 날릴 정도였으나.

나를 낳은 이후, 그녀의 빛은 진흙에 덮여 버렸다.

가주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분명히 찬란히 빛났어야 할 운명을 타고나야 했다.

하지만 이유 모를 하자로 인해, 빛나기는커녕 진흙탕에 빠진 채 점점 깊은 곳에 빠졌으니.

[이 아이는…… 마력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체내에 관련 기능을 할 기관이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코어도… 만들지 못하고요.]

방대한 마력을 통제할 능력이 전혀 없는 라온의 문제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오갔으나.

리그벨토 가문의 피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으니.

평민 출신에 불가한 기사의 피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지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셨고 말이다.

‘어차피 그쪽 관련된 문제는 아닌데.’

적어도 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모두 높은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며.

몸에 하자가 있었다면, 절대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 테니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라온을 기른 적이 없지.’

리그벨토 가문의 아이는, 걸을 수 있는 순간부터 스스로 자라야 한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선 제대로 된 귀족으로서 자랄 수 없다- 라는 리그벨토 가문의 이해할 수 없는 육아 방침.

라온도 마찬가지로, 걸을 수 있던 3살 때부터 혼자 자라났다.

방침에 따라 라온과 떨어져 있어야하고, 그가 무시당하는 이유가 자신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이 좁은 탑에 틀어박혀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미안하구나. 널 보러 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라온은 그런 어머니를 원망했다. 육아 방침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그냥 세상의 모든 게 원망스러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아는 나는 그녀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감히 내가 그녀가 가진 죄책감에 대해 말할 자격도 없을뿐더러.

적어도 죄책감이란 감정을 가졌다는 것 자체에서, 나는 그녀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인간들은 그런 감정도 안 가졌는데 말이야.’

자기 자식이 피를 철철 흘리며 비를 맞은 채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 넌 잘 지냈니?”

“예. 제 하녀들입니다.”

난 가볍게 눈짓했다.

살짝 뒤에 서 있던 둘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왔다.

“……예쁜 아이들이구나…….”

잠시 둘을 바라보던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내 아들을…… 라온을…… 부탁… 하마.”

“……네…… 알겠…… 어요…….”

“걱정… 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제가 꼭 잘 모실게요……!”

이러다 셋 다 울겠네.

난 아벨라의 어깨에 손을 올려 살짝 뒤로 가게 하고, 말을 꺼냈다.

“모험을 떠나기 전에 잠시 뵈러 왔습니다.”

“……모험?”

“네.”

난 뚜렷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 대마법사가 될 겁니다.”

‘전 대마법사가 될 거예요!’

라온의 과거사를 볼 때 떠오르던 라온의 대사가 겹친다.

마치 내 목소리에 에코가 낀 기분이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엄마도 다시 내 옆에 와줄 수 있어요?’

“그러니……. 어머니는 제게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난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전 잘 자랐으니까.”

이건 내가 하고픈 말이자.

라온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가진 기구한 운명을 알았다.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기구한 운명을.

“…….”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 하구나…….”

툭, 툭.

어두운 바닥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살짝 적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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