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화 (45/124)

제45화

내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것일까.

알렝과 로랑은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서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검 끝이 다시 내 목을 노리고, 기운이 사납게 휘몰아치지만.

정작 그들의 눈에는, 굳센 결심이나 다짐보다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왜 내가 이런 기회를 주는지 궁금한가 보지.’

뭐, 그들 처지에서야 내가 스토리니, 진행이니 뭐니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전음>

난 팔찌에 저장된 마력을 이용해 아주 작게 전음을 날렸다.

-난 너희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

“!”

그리고 바로 전음을 끊는다.

이 이상은 저 늙은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가주는 알아차렸을 테지만.’

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믿었다.

이 정도의 비밀 정도는 충분히 지켜주리라고 말이다.

“준비는 끝났나?”

내 말에.

로랑과 알렝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둘의 눈동자에는 의문 따윈 자리 잡지 않은 굳은 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떻게든, 도련님을 꺾겠습니다.”

쿠우우우우우!

중급 기사 둘이 온 힘을 드러낸다.

직계를 해칠 수 없다는 본능을 이겨내고, 오로지 나를 이기겠다는 결심 하나로 힘을 드러낸 것이다.

무기가 진검이 아니긴 했으나, 마력을 두른 순간부터 웬만한 진검의 위력을 상회한다.

‘이제 나도 진심으로 가야겠네.’

원래 내 전투 방식으로는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련이라는 유리한 배경을 무시할 정도의 패널티를 가지고 있는 상황.

난 자세를 잡았다.

“하아아아아!”

“흐아아아아!”

두 기사가 달려드는 걸 보면서.

정면으로 주먹을 내뻗었다.

* * *

쿠우우웅!

기사와 마법사의 충돌에 건물이 작게 떨린다.

원로원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라온과 기사 둘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구나.’

분명히 이건 라온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검사와 마법사의 전투는 얼마나 거리가 가깝고 싸움에 능숙하냐에 갈린다.

두 명은 분명히 완숙한 경지는 아니었으나, 엄연히 중급 기사 수준이었고.

진검은 쓰지 못하나 검기를 쓰는 이상 의미 없는 제한이었으니.

그러나.

라온의 움직임 하나로 유리함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라온의 움직임은 마법사라고 보기엔 너무나 부드럽고 간결했으며 날카로웠으며, 상대의 경지가 더 뛰어남에도 우위를 점했다.

마치 직접 무술이라도 배운 듯.

아니, 배운 걸 넘어서, 본인의 몸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하고 한계치가 어디인지, 얼마나 팔다리가 움직이는지, 어느 부분이 제일 잘 돌아가는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파악하여 다루는 느낌이었다.

‘어디서 네게 그런 걸 가르친 것이냐.’

혼자 익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라온에겐 그만한 재능이 없다.

라온이 가진 능력이라곤 타고난 마력이 대마법사와 비견될 수준이라는 것뿐.

뭘 익히거나 그걸 몸에 녹여내는 데에는 조금의 재능도 가지지 않았으니.

‘저건 단순히 익힌다고 되는 게 아니다.’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으며 익혀야 보일 수 있는 움직임.

이는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중급 기사 둘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니, 그가 보기엔 라온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분명 보고에 듣기론 쇠사슬을 다르게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평범하게 주먹에 둘러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로만 쓰고 있었다.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냐.’

대체 뭘?

너의 가능성을?

너의 힘을?

‘그래봤자다.’

그래. 뛰어난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다른 형제에 비하면 뛰어난 점이 없다.

벨, 아니 제일 수준이 낮은 마벨 리그벨토만 저기에 나서도 1초면 끝낼 전투다.

육탄전?

마법사가 육탄전을 해서 뭐하나. 육탄전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나 무투가가 있는데.

‘너는…….’

원로원주는 라온의 몸 안에 담긴 마력을 쳐다보았다.

‘담지 못한 걸 대신 담아놓은 쓰레기통일 뿐이다.’

한편, 벨 리그벨토는 어느 때보다 흥미롭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저 두 기사가 저런 힘을 가지고 있었나.’

로랑과 알렝.

둘 다 알고 있는 기사다.

정확히는 ‘기사’들의 정보를 모두 외워두는 벨이기에 알고 있다고 해야겠지.

둘 다 마벨 리그벨토의 수하로서, 딱히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을 보이진 않았다.

꽤 젊은 나이에 중급 기사 수준에 다다른 건 맞으나, 딱 그뿐.

완숙한 경지에 이르지도 못했고, 두 명이서 함께 움직이는 것치곤 가능성이나 실적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만 본다면…….

‘점점 완숙해지고 있다.’

벨 리그벨토가 직접 나서 포섭한 재능 있는 기사들이 다다르는 완숙한 경지.

상급 기사에서도 나름 이름을 날리는 수준에 다다르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저 모습만으로 저 둘을 포섭하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흥미롭구나.’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누구인가.

벨 리그벨토는 보고서에서 봤던 전투 방식은 온데간데없고 접근전을 활용하여 중급 기사를 상대하는 라온을 바라보았다.

나름 힘든 듯해 보이나, 전혀 티 내지 않고 움직임도 전혀 둔해지지 않았다.

저주받은 유물을 차고 움직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패널티를 장점으로 화하는 재능.

‘너는 괴물이로구나.’

저건 벨 리그벨토조차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벨 리그벨토는 확신을 가졌다.

‘너는 나의 대적수가 될 수 있다.’

형제들 중, 가장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던 이가, 이제는 제일 높은 가치를 보이다니.

아마 그의 넷째 형제인 마벨이 들으면 아주 발광을 하지 않을까.

‘너희들은 부족하다.’

둘째인 세르바 리그벨토는 아예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었고, 셋째인 델 리그벨토는 없는 척 숨기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지만.

그가 가진 가능성은 자신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넷째인 마벨도 마찬가지.

그는 가진 가능성도, 의지도, 생각도, 모든 게 부족했다.

아니. 처음에는 라온이 있기에 비교적 낫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라온 스스로가 찬란히 빛나기 시작하며, 마벨은 초라한 별이 되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내가 더 뛰어난 가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네가 더 뛰어난 가주가 될 수 있을까.

벨 리그벨토는 그것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

가주는.

그저 조용히.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대련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 *

“후우.”

난 심장이 터질 거 같은 걸 느끼면서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시린 공기가 들어와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드러누워 버리고 싶지만, 아직 ‘대련’은 완전히 끝났으니 그럴 순 없었다.

대신에, 두 눈에 힘을 주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허억, 허억, 헉…….”

“흑, 헉, 큭…….”

처음엔 꽤 선전했으나, 계속된 쇠사슬과의 접촉 끝에 마력이 모두 빨려 탈진한 둘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난 뻐근한 손목을 풀며 말했다.

“아직 힘 분배할 줄 모르는군.”

내가 이길 수 있던 이유는 오직 그 하나다.

만약 정말로 싸움에 능숙하고 힘을 분배할 줄 알았다면, 마력이 빨리지 않도록 목검에 검기 따위 두르지 않았을 터.

아직 능숙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전력을 다하진 나로서도 이길 수 있었다.

여러 상황이 좋게 적용하기도 했고.

로랑은 흐릿한 시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죽이실…… 겁니까?”

“아니.”

내가 미쳤다고 여기서 너흴 죽이냐?

“난 사이코가 아니거든.”

이들은 날 적대하긴 했지만, 순수한 적대심보다는 상급자로 인한 적대였다.

이걸 가지고 팔다리를 자르거나 죽일 정도로 난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건 사이다패스나 그러는 거고.

“다만.”

그래도 지금 ‘싹’이 남아있으니.

이건 제대로 뿌리 뽑아야겠지.

“대련은 끝난 거 같습니다만.”

난 언제나 그들의 ‘눈’이 존재하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같은 곳에 눈을 두었기에.

난 당당히 바라보며 말할 수 있었다.

“무언갈 더 원하십니까? 원로원주님.”

[돌발 이벤트 클리어!]

[보상을 확인하세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 * *

인지하기도 전에 나는 어느새 다시 원탁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원로와 가주들, 그리고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대련이 끝나자마자 함께 텔레포트 한 모양인데.

‘이럴 거면 애초에 왜 이동한 거야?’

좀 효율적으로 살면 안 되나?

뭐, 기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이런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양반이라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훌륭하구나.”

원로 원주가 입을 연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나.

역시나 권력을 가지고 정치를 해본 이답게, 입만은 부드러이 미소 지은 채 달싹이고 있었다.

“벨의 안목은 전혀 틀리지 않았어. 어쩌면 이 늙은이보다 더 훌륭할지 모르겠어.”

“감사합니다.”

벨에게 짧게 축하 인사를 건넨 원로원주가 다시 날 바라본다.

“라온 리그벨토.”

원로원주의 늙은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너의 자리를 되찾은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벅차다든가, 기쁘다든가, 짜릿하다든가 하는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로원주의 속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날 인정할 생각이 없다.’

한 번 기회를 잃은 자는 다시 기회를 쥘 기회 따위 없다.

원로원주가 가진 신념이다.

그는 신념대로 이미 한 번 기회를 잃어 권한을 모두 잃은 나를 배제해두고 있으며.

나를 가문의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도 기회를 잃은 줄 모르고 말이야.’

“네가 후계자 경쟁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어쩌면 벨과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벨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정말 말 그대로 무미건조했다.

내가 경쟁자가 되는 건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난 이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었다.

그딴 시간도 없었고.

난 원로원주의 손을 손등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저는 가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

“!”

원로들 사이에서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원로원주 또한 당혹함을 숨기지 못한 채 눈살을 찌푸렸다.

“……뭐?”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다시금 되물었다.

“가주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하였느냐?”

“예.”

“그럼.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냐?”

“예.”

“그걸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을 텐데?”

가주가 되지 못한 직계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죽는 건 상당한 손실을 불러오며, 리그벨토라는 이름 아래에 쌓이는 업의 손실을 불러온다.

그렇기에.

“아뇨. 예외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예외?”

가문에는 유일한 예외를 두었다.

“……설마?”

한 원로가 중얼거린다.

내가 기억하기로 ‘세르바 리그벨토’를 지지하는 원로였다.

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예.”

직계인 세르바 리그벨토는 가주의 자리에 관심이 없다.

허나, 그가 사라질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전 대마법사가 될 겁니다.”

“……!”

“……!”

머지않아, 라온 리그벨토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리고 대륙에 몇 없는 ‘대마법사’라는 경지에 다다를 마법사였으니.

내 충격적인 발언에 몇 원로들이 입을 열었다.

“대마법사가 무엇인지 아느냐?”

“네까짓 게 입에 담을 경지가 아니다.”

“멀쩡한 직계들도 제대로 다다르지 못하는 경지이거늘. 네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으냐?”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마법’을 통해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업을 쌓아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든, 마법을 사용하여, 세계가 판단하기에.

마력을 ‘완벽’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통제하고,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야만 다다를 수 있는.

마법사라면 모두가 바라는 지고의 경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거라. 지금 한 번 네게 말을 고칠 기회를 주마.”

본디 높디높은 경지인 대마법사는, 본래라면 ‘실패자’에 불가한 라온은 다다를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그리 말했다.

내가 집을 나왔을 때도.

처음으로 영상 제작을 시작했을 때도.

망캐로 유명한 라온 리그벨토를 플레이했을 때도.

최종 보스에까지 도달했을 때도.

“아뇨.”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

“전 대마법사가 될 겁니다.”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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