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화 (44/124)

제44화

“좋습니다.”

“좋다. 그럼 그동안 쉬다 왔으니 바로 시련을 시작해도 좋겠지?”

“예.”

원로원주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형제들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원로원주는 더 이상 내게 시선을 주지 않으며 몸을 휙 돌렸다.

“아래로 내려가면 ‘마릴라’가 널 안내해줄 것이다. 거기서 대기해라.”

팟!

그의 몸이 짧은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

벨을 필두로 텔레포트를 통해 자리에서 사라지고.

제일 늦게 사라진 건 마벨이었다.

그는 텔레포트로 이동하는 마지막까지 날 노려보고 있었다.

‘제일 능력이 부족해서 시전도 늦게 하는 주제에 눈이나 부라리고 말이야. 어디서 싸가지 없게…….’

아.

반사적으로 속으로 욕하다가 흠칫했다.

‘……또 건드렸다.’

아니 근데 저쪽이 계속 건드리는 걸 어떡해.

사람 화나게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아무리 자극하고 물고 뜯고 씹어도, 그가 워낙에 불리한 상황인지라 결국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를 볼 때마다 내 말의 리미트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되게 조금 풀린 거지만…….’

뭐, 나중에 살살 달래면 풀리겠지.

마벨 주제에 안 풀리면 어쩔 거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려다가, 아직 원로와 가주가 남아있음을 인지하고 손을 멈춰 세웠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날 바라보는 원로들과 가주의 시선.

‘이 양반들은 왜 안 가는 거야?’

게임에선 원로원주가 자리를 비우면 함께 사라졌는데.

아무리 원로원주가 그들의 상급자가 아닌 대표하는 자리에 불가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통은 함께 움직이는 게 보통이다.

몇 명 사라지긴 했지만.

절반 정도는 남은 채,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으니.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내가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가만히 날 보던 가주가 입을 열었다.

“……아니. 없다.”

‘저거 걱정하는 거 같은데.’

하지만, 가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텔레포트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른 원로들도 마찬가지.

원로들이 모두 사라진 방 안은 을씨년한 분위기를 풍겼다.

난 막혔던 숨을 내뱉으며 팔을 주물렀다.

‘……왜 같이 사라진 거지?’

본래 원로와 가주는 다른 파벌이다.

둘 다 가문을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임은 맞으나.

정치판이 그렇듯, 원로는 원로들만의 권력을 원했고, 가주는 그런 원로들의 존재를 거슬려 하는…….

그런 사이가 대다수였다.

‘원래 게임에서도 그런 사이인 걸로 알고 있고.’

전대에서까지는 원로와 가주 사이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으나, 현 가주가 집권한 이후로는, 가주 쪽으로 힘이 치중된 걸로 안다.

가주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건 원로들도 마찬가지이나, 그들은 노쇠했고 더 이상 대마법사 너머의 경지를 볼 수 없다.

그러나 가주는, 리그벨토라는 이름에 흐르는 힘만이 아닌 본인이 쌓아 올린 경지와 깨달음으로 대마법사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王)이라 불리는 경지.

마법사의 가치는 지금 이륙한 경지만으로 따질 수 없다. 미래에 도달할 수 있을 가능성까지 모두 포함하여 계산하는 것이 마법사의 가치.

즉.

고대라는 아득한 시간부터 지금까지, 역사에 몇 없는 ‘왕’이란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는 가주는 전례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고밀라, 그놈도 왕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 했었지.’

최종 보스 고밀라.

그를 처음으로 맞이할 때 내뱉는 순간, 이 대사를 내뱉곤 한다.

[나를 쓰러트리려면 왕(王)급은 와야 할 것이니라!]

왕급이 얼마나 강한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고밀라의 배경이 ‘우주’라는 걸 생각하고, 당시 공개된 스토리에선 최강자라는 컨셉을 가진 이상.

왕이라는 경지는, 동급 혹은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건…….

리그벨토라는 가문을, 한층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얘기.

‘그래서 원로들도 붙은 건가?’

그럼 왜 게임에선 그렇지 않았던 거지?

겨우 2년이다.

내 처지에서야 긴 시간이지, 평범한 사람으로선 살기 힘든 시간을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서 찰나의 불가한 순간.

그 시간 안에 가주가 가진 가치가 사라질 리 없었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당장의 일을 먼저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난 아까 떠올랐던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돌발 이벤트!]

[원로원주와 원로가 당신에게 시련을 내렸습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높은 난이도의 시련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죽이는 데에 집중할 것입니다.]

[살아남으십시오.]

[보상]

1. 보유 아이템 내구도 상승.

2. 마력 제어력 상승(??)

3. 명성 상승.

‘오.’

나쁘지 않은 보상이다.

원래는 대장장이를 찾으러 가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명성도 나쁘지 않았고.

‘어차피 나에 대한 소문은 퍼질 수밖에 없어. 최대한 악명이 아니라 명성 쪽으로 퍼지도록 해야 해.’

첫 단추만 잘 꿰면 술술 풀릴 테니, 이 시련을 잘만 이겨낸다면 얻을 이득은 상상 이상일 터.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어떤 상대던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아니.

없더라도 만든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으니까.

* * *

마… 어쩌고 하는 시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지하.

지하에는 리그벨토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는 넓은 대련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대 가주가 직접 예산을 투자하여 만든 곳인 만큼.

바닥과 천장, 벽 모두 비싸고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고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웬만해선 잘 안 부서지겠군.’

이루어진 재질도 재질이지만은, 둘러싼 마법은 대마법사 수준이 아니고서야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고 단단했으니.

난 손목과 발목을 이리저리 풀며, 내 시련의 대상으로 나온 이들을 바라봤다.

“너희냐?”

“…….”

“…….”

아까 내가 경고를 날렸던 기사 둘.

그들은 내게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 합니다.”

“이미 저희에겐…… 너무 많은 게 걸려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둘이 뺨은 퉁퉁 부어있다.

아무래도 그들의 주인인 마벨에게 직접 맞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설마, 직접 보복할 줄이야.

‘생각보다 더 멍청하네.’

아니면 세력이 줄어드는 걸 고려하더라도 위엄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뭐가 되었던 그에게 이득이 되는 건 없었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그의 상태를 한 수하들이 호시탐탐 그를 노렸을 것이고, 위엄을 위해 이들을 처벌했다면, 과한 처벌이라며 그를 향한 신용과 명성이 떨어지고, 수하들이 곁을 떠나가는 결과를 낳게 되겠지.

제일 중요한 건 그 중간을 차지하는 것인데.

마벨은 그 선을 지키지 못했다.

‘생각 외로 무덤에 들어가는 게 빠르겠는데.’

“그래.”

난 두 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RPG게임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들의 선택과 미래 때문이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자신이 내린, 혹은 배경에 따라 내리게 된 선택에 따라 미래가 바뀌고 내 스토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게임에서는 ‘아, 잘 구현했네’ 정도의 감상에 불가했지만.

‘여긴 현실이다.’

게임 속이라고 한들, 바람이 불고 바닥의 감촉이 모두 느껴지며.

나는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곳은 이미 내게 현실이었고, 이들은 ‘캐릭터’가 아닌 한 명의 인간.

‘어떻게 바뀔까.’

두려우면서도 궁금하다.

이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고, 내겐 어떤 영향이 찾아오게 될지.

그게 설령, 본인이 원했던 선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경고를 날릴 거라 생각한 건지, 잔뜩 긴장하는 게 보인다.

다만.

나는 공격하는 전에.

친절히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여긴 너희의 능력을 눈여겨볼 사람이 많거든.”

“……!”

“……!”

“최선을 다해라. 나 또한 그럴 터이니.”

사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하지만 내 말이 도움이 된 것인지, 기사들의 눈이 뒤바뀌었다.

[모두 다 준비 끝났나?]

“예.”

“……예!”

“……끝났습니다!”

[이 대련의 규칙은 간단하다. 우리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싸우거나, 혹은 상대방이 모두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밸런스를 위해 진검은 사용 불가하되, 다른 모든 건 사용할 수 있다.]

‘참 내.’

목검에 마력을 두르면 웬만한 진검보다 날카로운데, 밸런스는 개뿔이.

뚜렷한 적의가 느껴지는 규칙에 헛웃음이 나온다.

웬만하면 규칙에 반발하겠으나, 규칙이 불리하다고 내빼는 건 리그벨토답지 않았다.

불리한 규칙임에도 이겨내어 당당히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것.

리그벨토 가문은 그런 가문이었다.

‘뭐, 얼마든지 해봐.’

그리고.

불리하게 만든 만큼, 적에게서 뜯어낸다.

난 원로원주가 있을 곳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만큼 뜯어내주마.’

원래는 뭘 뜯어낼 생각이 없었지만.

이리 나온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가 소중히 다루고 있을 유물.

‘가져야겠다.’

새로운 목적이 생겼다.

그 순간.

목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스각!

옆으로 목을 틀자, 방금까지 내 목이 있던 자리에 검기가 스쳐지나갔다.

시린 냉기에 목에 난 작은 상처가 얼어붙는다.

곧이어 달리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이 양옆으로 날 포위하며 달려들었다.

‘패턴은 똑같다.’

난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둘의 검로와 움직임을 파악했다.

원래라면 곧바로 쇠사슬을 날려 내가 원하는 흐름으로 만들겠지만, 이번에는 그 방식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접근전만으로.’

때마침 신체 능력도 일부 되돌아왔으니.

그걸 써먹어 볼 때다.

휘리리릭!

난 내 팔과 주먹을 쇠사슬로 휘감으며 달려든 검사의 검을 붙잡았다.

단순히 붙잡아서 막아내려는 건 당연히 무식한 일이다.

그렇기에 찌르는 힘은 놔두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검을 틀었다.

캉!

검과 검 끝이 부딪히며 갈리는 소리를 낸다.

두 명은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같이 싸우는 경험이 많았고 합을 맞춰왔다.

그래서 둘의 검이나 검로가 부딪히지 않도록 항상 체계적으로 맞춰왔다.

그것이 나로 인해 강제로 깨져버린 것이다.

‘역시 아직 실전을 많이 안 해봤군. 많이 어리고.’

그러면 맞아야지.

난 당황한 기사의 품에 파고들어 목을 손으로 꽉 쥐었다.

보호막으로 목을 보호하려 했으나, 이전에 내 쇠사슬이 보호막을 이루는 마력을 빨아들이는 게 훨씬 빨랐다.

“!”

목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크으으윽!”

상당한 고통인 듯 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나름 기사답게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잡으려 들고.

움직임이 봉인된 내 등 뒤로 기사가 달려들었다.

빡!

“크학!”

사정없이 이마로 그의 이마와 부딪히고, 힘이 빠지자 바로 옆으로 굴렀다.

기사가 기겁하며 옆으로 비키자,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검이 틀어박혔다.

드러난 등을 향해 본능적으로 쇠사슬을 던지려던 걸 참고 쇠사슬을 주먹에 쥔 채 정면으로 내뻗었다.

검을 회수한 기사가 반사적으로 내뻗은 주먹과 내 주먹이 부딪혔다.

지이이잉!

“큭!”

맨손으로 쇠사슬과 부딪힌 탓에 상당한 고통을 느낀 그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역으로 내 쇠사슬을 덥석 잡아버렸다.

자리에서 일어선 기사가 빈틈을 노리고 내 옆구리를 향해 검이 휘두른다.

하지만 이 또한 이미 파악한 패턴이었다.

‘회수.’

휘리리리릭!

내 몸에 휘감기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쇠사슬이 내 몸으로 되돌아오며 검을 막아냈다.

검에 둘린 검기가 빨려 들어가며 사라진다.

당황한 표정을 지은 그의 사타구니를 향해 발길질했다.

“컥!”

거길 맞은 그가 옆으로 꼬꾸라지고.

되돌아온 쇠사슬에 검이 묶여 잠시 빈틈을 노린 기사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끄으으으으!”

코피가 터지고 부러진 이빨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름 중위에 오른 기사라고 하지만, 경지가 얕다.

리그벨토 가문의 소속이라는 이름값과 훌륭한 장비, 그리고 체계적인 수련 덕분에 오를 수 있는 경지이지, 본래라면 닿을 수 없을 터.

특히나 지금은 모든 힘을 쓰지도 못하니 말이다.

‘규칙은 막지 않지만, 이들 본능이 막는 거지.’

기사는 자신이 모셔야 하는 리그벨토 가문의 혈통을 해할 수 없다.

본능에 새겨진 감각.

이전의 리그벨토라면 그 감각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을 테지만, 이들이 나를 확연히 ‘직계’라 인식했기에, 너무나 쉽게 상대할 수 있던 것이다.

‘그때와는 확실히 달라.’

예전에, 게임에서 둘을 상대해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둘은 마벨의 꼭두각시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마벨에게서 얻을 걸 모두 얻었다고 판단하여 배신한 나를 죽이기 위해 쫓아왔었다.

그때엔 상당한 난이도를 가진 탓에, 처음에 봤을 땐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 뒤 운이 좋아 리타이어하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너무나 부족했음을 알기에, 일부러 죽어 다시 되돌아가 그들의 패턴을 파악했다.

그 탓에 이들을 30번 다시 상대했지만, 덕분에 이들이 가진 모든 패턴을 파악했고, 혹시 모를 변수까지 모조리 파악하여 완벽하게 이겨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알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이 둘이 꼭두각시로 살아야 했던 이유까지도 알게 되었고.

‘그 때에 비하며 확연히 약해. 이래선 안 돼.’

이래선 그냥 토사구팽당할 뿐이다.

적어도 나는 이들이 살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흐름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으니.

그럼 차라리, 흐름을 뒤바꾸되, 내게 호의를 가진 이들이 흐름을 주도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너희 둘.”

난 그들에게 달려들어 제압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지?”

모두가 들으라는 의미로.

“……제 이름은 알렝입니다.”

“……저는 로랑입니다.”

“그래. 알렝. 로랑.”

난 추한 몰골을 한 그들에게 손가락을 내뻗었다.

“둘 다 전력으로 달려들어라. 안 그러면.”

스윽.

손가락이 그들의 목을 갈랐다.

“너희는 여기서 죽는다.”

나한테든, 기사로서든.

살아남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설령 지는 결과를 낳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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