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톡, 톡, 톡.
마벨 리그벨토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는 시녀의 손이 덜덜 떨린다.
그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시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온 리그벨토…….’
끄드드득.
그의 손에 잡힌 형체화된 마력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냈다.
‘벨 리그벨토에게 붙을 셈이냐?’
에이드 백작가는 벨 리그벨토와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
정확히 벨 리그벨토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건 아니나, 가주와 벨 리그벨토 사이의 만남이 있었음을 확인했고.
리그벨토 가문의 전유물인 ‘워프 게이트’와 에이드 백작가의 유명한 관광지와의 협업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에이드 백작가는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런 적에게 직접 찾아간 라온은 곧 그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단언해선 안 된다. 원래라면 그냥 그가 따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했겠지만, 현재 라온이 보인 가치는 그조차 망설이게 만들었다.
설마 고위 던전에서 그리 멀쩡하게 나올 줄이야.
오히려 나왔을 당시에 있던 그의 기사 말로는 ‘부족하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니.
‘대체 누가 네게 그런 기연을 준 것이냐.’
어떻게 그 머저리에게 ‘가치’가 보일 정도의 기연을 찾았으며.
그걸 저런 가치 없던 놈에게 넘길 정도라면, 대체 어떤 은거 기인이라는 거지?
얼마나 많은 업을 쌓았으면…….
‘하지만.’
아무리 궁금한 사항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큰 비밀이 있다고 해도.
‘만약 조금이라도 적대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는 절대로 자신의 목을 노릴지도 모르는 적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죽인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피로 얼룩지던 먼지가 가득하던 상관없다.
어떤 방법으로든.
오로지 높은 곳에만 올라가면 그만이다.
* * *
후우우웅…….
일주일 만에 보는 리그벨토 영지의 풍경은 색달랐다.
그 사이에 무너졌던 건물이 다시 세워져 있고, 곳곳에 마력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내 손을 꼭 붙잡은 스칼라는 신기한 듯,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마 후드 아래의 눈은 휘둥그레 커져 있지 않을까.
다만.
“어이.”
불행히도 마음 편히 근처를 둘러볼 순 없었다.
난 내게 다가오는 기사들의 손을 바라봤다.
필요하다면 바로 검을 뽑아 들 수 있는 허리춤.
이것들이 미쳤나.
내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이들이 움찔거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예.”
“두 가지 묻겠다.”
날 보는 기사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든다.
아무래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아는 모양이다.
게임에서 봤던 성격이랑은 크게 안 달라진 거 같네.
“너희들의 선택이냐, 아니면 형님의 선택이냐?”
“…….”
“……저희의, 선택입니다.”
“그럼 두 번째. 너희한텐 가족이 없나?”
“…….”
“…….”
둘은 입을 꾹 다문다.
아무래도 침묵을 선택하여 약점을 숨기려는 모양.
그래. 저게 맞지.
“그래.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난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기사들의 키는 아직 성장기에 속한 라온의 키보다 훨씬 컸다.
머리통 한 개는 차이 날 만큼.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날 내려다보는 게 아닌,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고, 무릎도 살짝 굽혀진다.
“눈치가 없고 사람을 볼 줄 모르면 입이라도 무거워야지. 안 그래?”
툭, 툭.
난 이들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대로 침묵하고 돌아가. 그리고 조언을 하나 하겠는데. 너희 상황을 잘 알고 잘 이용해먹는 게 좋을 거야. 이왕이면 박쥐처럼 살아.”
이들이 내게 압박이라도 주기 위해 나선 이유.
아마 마벨 그놈이 엄청난 압박을 주었겠지.
뭐, 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도 이런 세력 다툼에 끼어있다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손을 들지 않았다고 한들.
마벨 리그벨토가 이들 모두를 쳐낼 수 있을 리가 없을 거라는 걸.
왜냐하면, 그에겐 그런 여유가 없으니까.
‘그놈이 제일 세력이 작으니까.’
첫째인 벨 리그벨토는 압도적인 무력과 폭넓은 사고방식, 거기에 더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카리스마와 통솔력이라는 메리트를.
둘째인 세르바 리그벨토는 뛰어난 마법 실력과 더불어 생산까지 가능한 메리트를.
셋째인 델 리그벨토는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던 은거 기인들을 끌어들이는 메리트를.
모두가 메리트를 가지고, 각자의 세력을 구축한 것에 비해.
‘마벨은 가진 게 없지.’
가주와 외형이 좀 닮긴 했지만.
셋째를 제외하면 다른 형제도 외형이 닮아있다.
마법 실력? 마벨이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언령을 사용하지 못한 인물이니까.
아마 내게 압박을 주기 위해 사람을 보낼 때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기 위해 따로 사람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기사를 몇 명 모으고, 자원할 사람을 차출했겠지.
그래야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어?”
“…….”
“…….”
“이럴 때도 입이 무거우라는 건 아닌데. 뭐, 그래도 훨 낫네.”
난 이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아벨라와 스칼라에게 손을 뻗었다.
“가자.”
“……!”
“……네!”
아벨라는 스칼라와 손을 잡은 채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기사들을 스쳐 지나가려다가.
“아!”
아벨라는 자리에 멈추더니, 주머니 안에서 포장된 음식 두 개를 꺼내어 그들에게 내밀었다.
“이거……! 하나씩 드세요……!”
‘저거 소중히 하던 간식 아닌가?’
한국에서 보던 초코바를 닮은 음식.
에이드 영지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되게 애지중지하게 사온 걸로 기억하는데, 저걸 줘?
“그거…… 맛있어…….”
‘넌 또 언제 먹었냐?’
그냥 그리 좋아하면 싸그리 쓸어오라니까, 그럼 뒤의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사지도 않았으면서…….
음.
그렇게 착하니까 나눠준 건가?
“감사…… 합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거 같은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저택이 있을 방향을 바라본다.
‘마벨 리그벨토.’
아무래도 나를 완전히 하급자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그의 사람이 되어 뜯어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하급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건 그의 사람이 아니다.
부려먹기 좋은 노예일 뿐이지.
‘짓밟아 놔야 하나.’
당연하지만 무력으로 이길 순 없다.
하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그에 대한 캐릭터 파악이 확실하고, 내게 ‘비’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는 해도, 힘을 가진 이상.
충분히 내 목숨을 지키고 그를 짓밟을 수 있다.
‘……제대로 건드는 건 비가 올 때.’
뭐든지 확실할 때 움직여야 한다.
다만.
공격하는 건 나중이라 해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경고를 날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 * *
저택으로 워프 게이트를 타고 돌아오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
원래라면 시녀가 직접 마중을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바로 주택으로 오지 않고 영지를 잠깐 들렸으니, 나에 대한 소식이 전달됐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았다는 건.
‘내가 없는 동안 또 건드렸다 이거지.’
그들이 머저리인 이상, 일부러 그 소리를 어겼을 리도 없으니, 직접 마벨 리그벨토가 개입한 게 분명할 터.
애초에 충성심을 바란 것도 아니니 별생각이 들진 않았다.
힘으로 굴복시킨 건데 충성심을 바라는 건 이상하지.
‘어차피 싸그리 갈아치워야 할 이들이야.’
그들은 아까 기사와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압박에 의해 움직인 것이었으나.
시녀들은 마벨 리그벨토가 압박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의 기미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마음에 들면 자신의 시녀로 받아들이겠다- 같은.
그래서 그들은 나와 아벨라를 괴롭혀온 것이다.
약한 자를 괴롭힘으로써 얻는 희열로 살아가기를.
그리고 조금이라도 눈에 띄여, 마벨 리그벨토의 시녀가 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애초에 그런 놈들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만.’
그걸 생각할 정도로 똑똑하면 처음부터 내 시녀로 배정이 됐을 리가 없지.
‘걱정마라, 라온아. 내가 미리 다 치워놓으마.’
우리 애를 건드린 놈들을 가만둘 순 없지.
“스칼라.”
“……네에.”
“아벨라랑 손 꼭 잡아. 지금부턴 후드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마 모두가 네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저택에는 최소 상급 기사 이상의 실력자만이 거주하고 있다.
능력치로 따지면 50대 이상.
캐릭터들이 아무리 성장해도 극 후반대, 최종 보스를 다다르기 직전에서야 다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물론 최종보스가 너무 세서 그 정도론 부족하긴 했다만은.
실력이 오로지 수치로만 계산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 더 강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아무리 이 애가 쓴 로브의 성능이 좋다고 해도 얼굴을 뚫어보겠지.’
그 정도는 상위 실력자들에게 기본이니까.
“…….”
스칼라는 긴장한 듯 내 손을 꽉 쥐었다.
말로는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무서워하지는 마.”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 정도는 막아줄 수 있었다.
“내가 있으니까.”
“…….”
내 말에 스칼라는 잠시 날 올려보다가, 최대한 손에 힘을 풀었다.
굳게 다짐한 듯이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게, 최대한 용기를 내는 모양이다.
저러고 있으니 나중에 그녀가 자랄 모습이 떠올랐다.
싸울 때마다 입술을 꾹 깨무는 게 인상적이었다
‘지금 모습을 좀 많이 담아둬야겠어.’
나중에 가면 보지 못할 모습이다.
게임에서야 어차피 리타이어하면 다시 볼 수 있던 모습이라, 지겹다고 느낄 정도로 많이 봐오긴 했지만.
내 옆에서 살아 숨쉬고 생생한 모습을 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라온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많이 봐왔던 캐릭터이기에 꽤 애정을 가진 만큼.
나는 최대한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아둘 생각이었다.
‘그때의 넌 라온을 무어라 생각했을까.’
양부모? 동료? 든든한 오빠?
‘그리고 나는 네게 어떤 게 되고 싶은 걸까.’
난 뭐든 상관없다.
든든한 부모던, 형제던, 동료던.
뭐가 됐던 등을 기댈 수 있는 존재라면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남고 봐야겠지.’
오늘도 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지금 이건.
그저 살아남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전혀 두려워할 필요도,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다.
마벨 리그벨토 ‘따위’에게 죽기엔, 내가 쌓아온 노력은 그리 부족하지 않았으니까.
“오, 동생아. 아주 오랜만이구나.”
저택 입구에 들어서자, 마벨 리그벨토가 방긋 웃으며 날 반겼다.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엔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적의가 줄줄 흐른다.
그뿐이랴? 눈동자는 내가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하기 위함인지 열심히 구르고 있다.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웠다고 저럴 줄이야.’
하기야.
내가 처음으로 그를 봤을 때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니.
내 생각보다 더 세력이 부족하고 흔들리는 모양이다.
겨우 이 정도에 내가 돌아설 거 같다고 의심할 정도라니.
‘아니면 내가 갑자기 바뀐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건가?’
아마 내가 ‘기연’이나 초월적인 존재를 만나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의지의 힘을 알고 있는 벨 리그벨토나 다른 형제들과 달리.
마벨 리그벨토는 아직 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언령을 못 가지는 거지.’
그게 그의 한계였다.
혈통으로도 넘을 수 없는 그 벽을 넘지 못해 평생을 갈구하다 바스라질 운명.
그렇기에, 나는 그가 무너지기 전.
최대한 많은 걸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빨아먹을 수 있었다.
“예. 오랜만입니다, 형님. 못 본 사이에 조금 더 수척해지셨군요.”
“……그래. 동생 걱정에 영 쉴 수가 없었구나.”
스칼라는 그의 목소리에 숨겨진 적의를 느끼고 슬쩍 등 뒤로 숨는다.
아벨라도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볼 일은 모두 봤느냐?”
“예. 밤공기와 해변이 참으로 아릅답더군요.”
“그래. 아주 즐거운 휴가를 보냈나 보구나.”
해석하자면 ‘지금 네가 놀 때가 아닌데 형편 좋게 놀고 왔구나’가 되겠다.
이거 고3 때 친구가 학원 선생님한테
다만 다른 점은, 선생은 수업이라도 하지 이놈은 수업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동생아.”
“예.”
마벨 리그벨토가 미소 지었다.
“내가 언제 네게 휴가를 가도 좋다고 말했느냐? 그리고 왜 내 편지를 무시했지?”
“편할 때 오시라고 하셔서 그랬습니다만.”
“아직 눈치가 부족하구나. 네 형이 오라하면 바로 와야 하거늘.”
‘꼰대십니까?’라고 비꼬려다가, 이 배경 상 알아듣진 못하니 돌려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 형님의 하급자가 아니라서요.”
내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역시나.
뭐, 그의 입장에선 당연할 거다.
자격이 없어서 직계의 권한까지 박탈당한 놈이다.
역사상 없던 일인만큼,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만.
그걸 내가 감안해 줄 이유는 없었다.
“감히 건방지게…….”
“돌아온 김에, 원로님들과 가주님을 만나려 합니다.”
멈칫.
강약약강의 표본답게.
분명한 ‘강자’를 언급하자, 말을 멈추고 그의 눈빛에 작게 긴장감이 감도는 게 보였다.
“……그분들은 왜?”
“이제 ‘직계’로서 권한을 되찾았으니, 한 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다.”
내 말에 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를 압박하려는 듯, 그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거리며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기지개를 피듯, 등 뒤로 마력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고오오오오-
마벨 리그벨토의 마력은 무슨 색이라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색이었다.
검은색으로도 보이고, 보라색으로도 보이고, 푸른색으로도 보인다.
그 어느 것에도 정착하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의 마력을 세계에 박아넣은 ‘언령’이라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증거였으니.
꿀꺽.
옆에서 작게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겁을 먹은 게 아닌.
배고픈 음식을 두고 마른침을 삼킨 것에 가까웠다.
“나는 너에게 직계로서의 권한을 내린 적이 없다. 넌 아직 내게 증명하지 않았어.”
난 그의 말에 비웃거나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온한 말투로 물을 뿐.
“무슨 증명을 원하십니까?”
“…….”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지 몰랐던 건지 그가 잠시간 침묵한다.
난 그가 말을 잇기 전,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생각을 분명 형님에게만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충분한 어필이었다고 생각했고, 형님도 좋은 반응을 보이셨죠. 제가 왜 형님에게만 말씀드렸으리라 생각합니까?”
“…….”
“절 인정해주신 건 벨 형님입니다. 하지만 굳이 형님에게 온 건…… 글쎄요. 형님이라면 충분히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해석하자면 대충 ‘나는 벨 형님보다 널 더 높이 평가했고 훌륭한 지도자’라 생각해서 왔다가 된다.
다만, 그건 조금 평범한 사람에게나 해석될 의미이고.
프로 불편러인 그는 입술을 악물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용의 꼬리로 살 바엔 차라리 뱀의 몸통이로든 머리로든 사는 게 낫다고.
그의 입장에선 내가 그를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로 만들어줄 인물이라고 보았다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눈치는 빨라.’
“넌. 내가 용으로 보이지 않느냐?”
“글쎄요.”
난 조금씩 꿈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칼처럼 변할 거 같은 마력에게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용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이제 보니 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킹!
난 내게 날아온 칼날을 쳐냈다.
쇠사슬에 흡수된 칼날이 바스라진다.
얼마나 힘을 담은 건지, 곧바로 마력 수치가 70퍼에서 71퍼로 오를 정도였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정녕 네가-”
“저는 후계자 경쟁엔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난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승자에게 붙어야, 제게 받아먹을 콩고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네놈!!!!!!”
“너무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형님.”
아, 이렇게 건드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래도 저택 안이라 다행이다.
지금 이걸 막아줄 사람이 나왔으니까.
“장로님께서 보고 계시거든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훽 돌린다.
거기엔 가주를 직접 가르친 장로가 서 있었다.
장로의 수염이 바람에 휘날리는 걸 본 그는 핏발 선 눈으로 날 노려본다.
“너는…….”
장로의 눈앞이기에 대놓고 나를 공격하진 못하나.
원로에게 들리지 않도록 마력으로 막을 두르며, 내게 살벌한 말을 남겼다.
“죽을 것이다.”
“아뇨.”
난 그에게서 몸을 휙 돌렸다.
“전 죽지 않을 겁니다.”
라온 리그벨토가 행복해지기 전까진.
절대로.
나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