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아이는 내가 어떻게 알았냐는 경악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하기야.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는 내가, 이 아이의 정체를 아는 게 이상하긴 했다.
‘묘족.’
인간의 모습을 알고 있으나 고양이의 특징인 귀와 꼬리가 달린 종족으로,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이종족.
언제인지 모를 과거부터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인간과 함께 살아온 종족으로,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묘족이 가진 고유 능력 또한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나마 드러난 정보로는 육안으로 드러나는 귀와 꼬리는 완전히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과.
정을 나눈 인간의 혼을 쏙 빼내어 자신의 정체를 누구에게도 탄로되지 않게 만들게 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나는 누구도 모르는 이 묘족의 숨겨진 특성을 알고 있었다.
‘마력 흡수.’
말 그대로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부터 마력을 빨아들인다.
사실 빨아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음식물 섭취를 통하여 부족한 마력을 채우고 에너지로 쓸 수 있어 잘 쓰이지 않는 능력이다.
잘못 사용했다간 바로 정체를 들켜 토벌당하게 되고, 이와 같은 사례가 역사에 기록되어있었다.
‘이 같은 경우는 보통 묘족보다는 흡혈귀로 기록되었지.’
그 덕분에 묘족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인간과 엘프, 드워프 사이의 이종족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말이다.
허나, 드물게 묘족 사이에선 오로지 상대방으로부터 빨아들인 마력만으로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 돌연변이가 태어나곤 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 돌연변이 중 하나.
‘흡혈귀…… 랑 비슷하긴 한가.’
생긴 거만 보면 정령에 가까운데 말이지.
사실 정령도 선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성격은 웬만한 마법사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흉포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순수악이라고 해야 하나.
뭐, 내 앞에선 순수악이고 뭐고 꼬랑지를 말고 도망치지만.
“어…… 떻게…….”
“고대 서적에서 봤어. 그리고 말이지.”
난 도망가려는 아이의 모자를 살짝 잡았다.
그거 하나로 도망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꽤 귀여웠다.
아, 이게 조카를 괴롭히는 기분인 건가?
난 도망가려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네 특징 하나 못 느낄 거 같애? 지금도 조금씩 먹고 있으면서.”
“!!!”
아이의 몸이 흠칫 떨렸다.
물론 아벨라야 내가 이 방대한 마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애 같은 경우는 그걸 전혀 몰랐다.
당연히 내가 마력량에 걸맞는 실력자가 생각할 터.
그러니 내 이 말에도 쏙 넘어왔고.
난 마력 흡입을 멈추려는 아이를 끌고 와 내 팔에 손을 얹혀주었다.
“그냥 더 먹어. 마력은 넘치도록 많으니까.”
“……그래도, 돼요?”
“어.”
“허락… 도, 안 받았… 는데….”
“방금 했잖아.”
“…….”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 했지만, 아직은 그 정도로 어휘력이 있진 않았다.
또한 팔에 손을 얹혀주면서, 직접적인 신체 접촉으로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이상 그런 거에 신경 쓸 틈도 크게 없었다.
“……!”
극소량이지만, 제대로 마력을 빨아먹기 시작한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그 모습을 보니.
게임에서, 친밀도를 한계치까지 올려놓고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녀가 말했던 지금의 느낌이 떠올랐다.
‘10일 동안 굶고 닭 튀긴 거 먹어봤어? 딱 그 기분이야. 근데 신기하게 속도 안 느끼하고 몸도 좋아진다? 진짜 신세계였어. 이래서 내가 당신 옆을 못 벗어난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마력이나 내놔.’
‘…….’
‘아, 미안, 미안! 그거 쇠사슬 들지 마! 꺄악! 잘못했어요! 내 궁뎅이! 숙녀의 궁뎅이를 치는 게 어디 있……! 아니! 꺅!’
음, 이런 얌전한 애가 그런 말괄량이 된단 말이지?
이제 여기가 현실이라 그런가.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애초에 이 어린 애가 5년 뒤면 성인이 된다는 것도 더더욱이.
‘그보다 마력 흡수된다는 메시지 안 뜨네. 너무 극소량이라 그런가?’
그녀 입장에서야 열심히 빨아먹고 있겠지만, 나한텐 모기한테 물려서 빨리는 양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숨 쉬면 알아서 나가는 수준.
나중에 가야 좀 체감될 정도로 빠져나갈 터.
난 머리를 긁적이며 우리 둘의 대화를 모두 들었을 아벨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벨라.”
“네, 네?!”
“다 들었지?”
“……어어.”
아벨라는 멍을 때리고 있다가 질질 흐를 뻔한 침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애는 또 왜 넋이 나가 있어?
아, 지금 상황이 좀 갑작스러운가?
그래서 넋을 놨을 수도 있겠네.
“……어, 그러니까.”
내 예상대로.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건…… 아니라는 거죠?”
“어. 나한텐 좋지.”
“그럼 괜찮아요!”
아벨라는 믿음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한테 좋은 거니까!”
“…….”
참. 이런 믿음을 받으니 기분이 간질간질하네.
“그리고 귀엽잖아요!”
“에?”
하지만 딱 여기서 그쳤으면 분위기도 좋았을텐데.
그녀의 이어진 말에 다 깨버렸다.
“앗. 껴안아도 돼요? 아가야. 껴안아도 되니?”
“우…… 응…….”
“접촉 안 해도 먹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
와락!
“으에엑…….”
묵직한 살덩이에 눌린 아이가 허우적대며 답답해했다.
아벨라는 그거마저도 귀엽다며 볼을 부비적거리고 있었지만.
……그냥 날 믿는 게 아니라 귀여워서 저러는 거 같은데.
난 볼을 긁적이며 마력 흡수를 멈춘 아이를 바라봤다.
“배부르냐?”
끄덕끄덕.
아이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난 손짓으로 그녀가 아이를 내려놓게 했다.
바닥으로 내려온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배를 쓰다듬었다.
“배가…… 빵빵…….”
배가 빵빵이래. 아, 귀여워.
역시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보는 거라 그런가.
행복함이 내게도 전달되는 기분이다.
이게 딸을 키우는 맛인가?
“그럼 여기에 앉아.”
난 내 옆자리의 소파를 두드렸다.
아이는 이제 나에 대한 경계심은 완전히 풀린 것인지, 내 옆에 탁 앉았다.
아벨라도 내 옆자리에 앉을 줄 알았는데, 내 옆으로 오는 대신에 뒤로 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 도련님 어깨 주물러드릴게요.”
“거기 날개뼈쪽 좀 눌러봐.”
“이 정도면 돼요?”
“어.”
난 그녀의 마사지를 느끼면서 아이의 머리를 가지고 꼼지락거리다가.
문득, 아직 아이에게 이름과 나이를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
“너 몇 살이냐?”
물론 난 그녀의 나이 같은 신상 정보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에 필수적으로 영입해야 하는 동료 중 하나였고, 게임 초반에 입수한 만큼 쌓인 정보가 수두룩하기 때문.
아마 내가 그녀 스스로보다 훨씬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이 이상으로 그녀에 대해서 아는 걸 드러낸다면, 경계를 살 수 있기 때문이며.
‘정보가 있다고 없던 친밀도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같이 전투에 나서야 하는 만큼, 이리 소소한 추억부터 쌓아가 친밀도를 높이는 게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내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조막만한 손을 활짝 펴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녀의 손가락이 7개 접혔을 때 즈음.
아이는 손가락을 접는 걸 멈추고 날 멀뚱멀뚱 올려다봤다.
“7살?”
끄덕끄덕!
“생각보다 많네요……?”
뒤에서 아벨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덩치나 말하는 것만 보면 5살처럼 보일 테니까.
‘다만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게 문제지.’
이 아이는 인간과 접촉 없이, 버려진 이후로 혼자 지내왔다.
물론 ‘그’ 존재에게 생존법이나 사냥법 정도는 배웠을 테지만.
인간과 자란 건 아니니, 기초적인 상식이나 지식, 그리고 발달은 느린 상태였다.
‘어차피 금방 따라잡겠지만.’
“이름은?”
“스… 칼라…….”
“스칼라. 예쁜 이름이네. 네가 지었어?”
도리도리.
아이는 고개를 젓고, 양팔을 크게 휘젓더니 ‘이따만한’ 크기를 몸으로 표현했다.
“나무… 할아버지가….”
“나무 할아버지? 별명이신가요?”
“아니… 진짜 나무….”
“?!”
아벨라는 그녀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놀랍게도 저 말은 사실이었다.
이종족도 있는데 나무 인간이라고 없을 리가.
물론 나무 인간보다는 정령에 가까운 존재이긴 했다.
아무튼 그녀가 살던 숲에는 자아를 가진 나무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나중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불타버렸던 지라 찾을 수가 없었지.
‘이번엔 찾아갈 수 있겠지.’
게임에선 아카데미 때문에 제대로 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런 억제제가 없으니까.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나무는 설명만 들으면 영물(靈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스칼라.”
“……네에.”
“난 널 데리고 내 집으로 갈 거야.”
“…집…?”
스칼라는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럼 여기는? 라고 묻는 듯한 그녀의 시선에 웃으며 말해주었다.
“여긴 내 집이 아니라 친구 집.”
“친구… 집….”
“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내 집에 갈래?”
굳이 묻는 이유는.
그녀 스스로 선택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다.
아마 그녀는 빠르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은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까지 함께 하게 된다는 이야기.
다른 사람은 10년에 걸쳐 이루어내는 성장을 절반에 가까운 시간 안에 이루어내니, 이런 자잘한 요소가 굉장히 중요했다.
내가 애를 몇 번 키워봤겠는가.
그동안의 노하우를 통하여, 스칼라를 완벽하게 키우겠다.
전투용 동료가 아닌, 함께 지내는 가족처럼.
그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 그녀를 대우할 것이다.
이게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으… 응… 갈래요.”
아이는 소심하게 내 옷소매를 붙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옆이 편하니까…….”
“귀여워……!”
아벨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전생이었다면 100% 입을 틀어막았다.
아, 컨셉 때문에 못 하는 게 한이다, 한.
“껴안아도 돼?!”
“……껴안아?”
“응! 너무 귀여워!”
스칼라는 껴안는다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후회할 텐데.
“진짜 너어무 귀엽다아!”
“으게엑…….”
스칼라는 아벨라에게 쏙 안겼다.
여자치고 상당한 키와 체격을 가진 아벨라다. 더군다나 내 쇠사슬을 평소에 대신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했다.
덕분에 그녀에게 안긴 스칼라는 볼을 부비적당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답… 답… 살덩이….”
“살덩이라니! 나 살 안 쪘거든?!”
요새 많이 먹어서 그런가 살덩이란 말에 욱한다.
음, 통통한 건 아니지만 마른 체형은 아니긴 해.
살이 한 곳에 유독 몰려있을 뿐이지.
“가슴이라는 이쁜 단어를 써야지!”
“가슴…… 짱 커…… 답답해…….”
음, 이거 남자가 들어도 되나?
난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냥 둘의 사이가 좋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듣는 게 싫으면 여기서 대화를 안 하겠지.
‘이제 다음 계획을 짜볼까.’
에이드 영지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우선 원로와 가주를 만날 생각이었다.
아벨라를 통해 일주일 동안 외출한다고 사실을 알리긴 했으나, 직계가 되자마자 탈출했으니 시선이 좋게 보이지 않을 터.
남이 날 어떻게 보던 신경이야 잘 쓰지 않지만, 이건 내 목숨과 연관된 문제였다.
‘장기간동안 가문을 벗어나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다를 바 없었으니.
‘가주한테 물어볼 것도 있고.’
라온 리그벨토의 아버지이자 가문의 주인인 가주는 대마법사라는 경지에 올라 있다.
세계의 기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거물.
그런 존재인 만큼, 고대에 있었으리라 추측되는 마왕과 영웅들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영웅의 후손은 아니겠지?’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리그벨토의 직계라면 대부분 물려받는 재능 때문이었다.
‘영웅’이란 칭호를 받을 정도라면 세계에 업을 많이 쌓았을 것이고.
이는 후손들에게 뛰어난 재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리그벨토 가문은 공작가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마왕이란 존재를 죽이고, 재의 영웅을 살해함으로써 업을 더 쌓았다면. 지금까지 이어질 재능을 남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으니.
‘……그럴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 리그벨토를 세운 초대 가주는 영웅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 너무나 많은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가 있었다.
반드시 매일 마법을 일정량 이상 사용하거나, 방출해야 하는 저주나 다름 없는 마력.
그러던 어느 날. 마법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버려지는 내 마력이 너무 아깝구나!’
이는 마법사가 가진 강박증과 소유욕으로 비롯되었고, 이내 자신의 마력을 빨아들여 보관할 수 있는 수많은 아티팩트를 발명해냈다.
‘내가 나중에 써먹을 아이템들이기도 하고.’
그뿐이랴?
아예 한 인간의 몸을 개조하여, 그가 배출해낸 마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가 바로 리그벨토 가문의 선조.
단지 마력 보관함으로 쓰이고 있던 선조는 어느 날, 마력의 이치를 깨달았고, 이를 바탕으로 마법사를 죽인 이후, 수없이 많은 업적을 쌓아 리그벨토라는 가문을 세웠다.
……아무리 봐도 영웅의 역사가 아니긴 한데, 그거야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싸그리 죽었을 가능성도 있고.’
영웅의 혈통이 끊어지는 경우는 많다.
역사에서는 뛰어난 이를 질투하여 죽이는 일이 흔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운이 좋지 않아 씨를 뿌리지 못했다던가.
‘또 해야 하는 건…….’
뭐가 있던 거 같은데.
뭐더라?
난 눈살을 찌푸리며 최대한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중요한 게 아닌가?
‘중요한 거라면 나중에 생각나겠지.’
됐고 다른 동료들의 루트나 아이템의 위치나 정리해봐야겠다.
이를 위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아 맞다!”
“?”
그때 스칼라의 뺨을 잔뜩 괴롭히고 있던 아벨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벨라는 뭔갈 떠올린 듯, 낭패한 표정으로 급히 스칼라를 내려놓고 내게 다가와 내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그, 브루아이 자작님께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냥 내비둬. 둘 다 차면 치레는 크게 신경 안 쓰니까.”
“안 돼요! 도련님이 밀려 보이잖아요! 우리 도련님은 항상 이기셔야 한다구요! ……무서운 다른 도련님들 빼고!”
“내가 더 못생겼다는 거냐?”
“……아뇨?”
이 자식이?
내가 눈꼬리를 치켜들자, 그녀는 바보같이 실실 웃음을 흘리며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풀어주었다.
“헤헤. 당연히 우리 도련님이 못생겼다는 건 아니죠! 다만 브루아이님은 정식 후계자이신 데다가 자작 작위까지 가지고 계시니까… 항상 멋지게 꾸미고 다니시니까요. 저희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 이거죠!”
“흠…….”
사실 저 말은 극구 공감했다.
둘 다 인사치레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다.
또 난 직접적인 작위는 없더라도, 공작가의 직계로서 귀족으로 취급받고, 브루아이는 아예 ‘자작’이란 작위까지 있으니 괜히 돌 수 있는 소문을 주의해야 했다.
‘기초 예의라는 것도 있고.’
나랑 브루아이가 완전히 친한 건 아니니까.
아벨라의 품에서 벗어난 스칼라는 조심스럽게 내 앞에 앉았다.
천장을 보듯이 고개를 올린 스칼라는 날 보며 큰 눈을 깜박이다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잘… 생겼어.”
“오.”
“근… 데… 무섭게… 생겼… 어….”
“…….”
욕이야 칭찬이야?
똑똑.
턱으로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 응징해줄까하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느껴지는 인기척이 익숙하다.
난 아벨라에게 가볍게 턱짓했고, 아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칼라의 손을 잡고 일어나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가벼운 화장과 가벼운 옷차림을 한 브루아이가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돌아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찾던 사람을 찾았다던데.”
“예. 덕분에.”
“어머.”
브루아이는 스칼라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귀여운 아이네요. 용케도 멀쩡했군요?”
보통 드물게 예쁜 노예인 경우, 팔리지 않거나 이미 망가진 경우가 대다수다.
상인이 본인의 성욕을 이기지 못하거나, 그냥 자기 노리개로 쓰거나, 이미 팔리거나.
노예는 아름다운 외모마저 저주로 다가왔으니.
“저주 때문에 로브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아 참. 그게 오히려 저주가 아니라 기적이었군요. 그보다 저주는……?”
“제가 풀었습니다.”
애초에 그건 열지 못하도록 막아놓기보다는, 열려는 상대의 힘을 빨아들이는 방향에 가까웠으니까.
물론 그걸 모르는 브루아이는 되게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자꾸 날 강하다고 착각하는 거 같은데.
착각.
곤란.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친구에게 일단 데려갈 생각입니다.”
“만약 부모가 찾으면…….”
“이 아이의 부모는 이제 그들이 아니에요.”
이 아이를 낳은 생물학적인 부모는 있지만.
이미 그들은 자식을 버림으로써, 스스로 그 위치를 포기했다.
만일 나중에라도 부모로서 찾아온다면.
‘그땐 가만 안 두지.’
물론 게임하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하긴. 저도 동의해요.”
스칼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브루아이가 말했다.
“참. 할머니께서 당신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내일 뵙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저도 가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가문을 벗어난 지 벌써 6일이 지났다.
슬슬 외출 허락 기간도 끝나가고, 가문으로 돌아가서 할 일도 있으니 가야했다.
브루아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실례라뇨. 저도 좋았는걸요.”
아마 그녀의 할머니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내게 ‘희망’을 본 것 같은 눈빛을 보내는 건지.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모를까, 긍정적인 감정을 받아보는 건 거의 처음이기에.
남의 시선을 통해 감정을 읽기 쉬운 내 특기가 거슬릴 정도였다.
“참.”
“?”
“편지 하나가 왔더라고요. 이걸 드리려고 했던 건데, 깜빡했었네요.”
그녀는 품에서 꺼낸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발신 장소는 리그벨토 가문.
설마 원로들이 내게 뭐라 하려고 보낸 건가?
난 편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라온 리그벨토는 복귀 시, 당장 내 방으로 올라와라.
-마벨 리그벨토.
상당히 화가 난 듯, 마력이 담긴 채 꾹꾹 적힌 편지.
‘아 맞다.’
이 양반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