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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화 (40/124)

제40화

노예 시장은 에이드 가문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유명 관광지인 해변과는 정반대 편.

이름만 떠올리면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길 거 같지만.

노예 시장의 소비층은 돈으로 사람을 사고팔 수 있는, 귀족이라는 이름만을 달고 있는 하위 귀족들 혹은 돈이 많은 상인들이었고.

이곳은 제국이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나름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봐. 오늘 또 노예 가격이 올랐나? 이번 노예는 좀 비싸군.”

“으잉? 뭔 소린가? 이 노예가 조금 더 가능성이 큰 게지. 보게! 아직 어린 데도 벌써 돌을 이 정도나 깎을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노예라고 한들, 사람이며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비싸게 팔렸다.

하나만 잘 팔면 1년은 놀면서 먹고살아도 문제가 없다는 소문이 돌만큼.

그 탓일까.

노예 상인들은 입에서 침이 튀기도록 열심히 자신의 노예를 팔고 있었다.

“자, 자! 상태 좋은 전투 노예 판매합니다!”

“에이! 저런 노예를 누가 삽니까?! 자자! 키가 2m가 넘고 근육질인 전투 노예 팝니다! 웬만한 노예는 보자마자 꿇어 버릴 이 흉악한 눈빛! 싸게 팝니다!”

“거기 형씨! 혹시 예쁜 여노예 하나 안 필요하신가? 한 번도 경험이 없는 처녀일세. 자. 얼굴을 보게. 이 정도면 굉장히 보기 드문 미인일세. 아들 같아서 그러는데, 싸게 해 줄 테니 하나 사지 않겠는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침이 튀기도록 말하거나, 옆의 노예 상인과 경쟁하며 자신의 노예 가치를 더 높이거나, 호구로 보이는 한 명을 붙잡는 등.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는 상인들을 팔짱 낀 채 바라보던 노예 상인, 메탄은 혀를 찼다.

“쯧. 쓸모없는 것들.”

이는 그의 팔과 연결된 쇠사슬에 묶인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둘 다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후드를 꾹 눌러쓰고 있었고, 입고 있는 로브는 몸의 윤곽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펑퍼짐하다.

최대한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어 감정을 자극하는 노예 시장에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메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체 어디서 그딴 저주가 깃든 귀물(鬼物)을 주워 온 거야?”

“…….”

“어? 내가 이딴 푼돈을 받으려고 너흴 먹이고 재워 준 줄 알아? 적자라고, 적자!”

벗기고 싶어도 벗길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저주인지 모를 저주가 걸려 있는 옷이었으니까!

메탄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식히며 그들에게 걸린 가격표를 다시 바라봤다.

‘단돈 10실버!’

얼굴도 확인 안 돼, 신분도 확인 안 돼, 저주 아이템은 벗길 수도 없어.

파는 거야 어찌어찌 가능했지만 비싼 값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밥값? 10실버는 그냥 하루에 넉넉히 먹으면 다 쓸 수 있는 돈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노예 상인에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들에게 투자한 금액만 해도 30실버는 넘을 텐데……!

“……!”

“……!”

그때 두 아이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덕에 손가락에 쇠사슬이 부딪힌 메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내가 분명히 그 귀 드러내지 말라고…….”

쿠우우웅.

“!!!!”

한순간에 온몸이 짓눌리는 감각에 메탄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노예 상인으로 활동하며 마력 노출에 예민해져 있던 메탄의 감각이 한 곳을 가리켰다.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을 등뒤로 숨기며, 감각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노예 시장의 입구.

온몸에서 묵직하면서도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는 로브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철그럭, 철그럭.

그가 걸을 때마다 쇠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그뿐이랴?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밀려오는 쇳내에 마른침이 자동으로 넘어간다.

메탄과 같은 걸 느낀 노예 상인들은 장사를 멈추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노예인가?”

“죄수 출신 같은데? 쇠사슬 소리가 나지 않는가. 그래도 여기에 팔려 올 정도면 그리 흉악한 놈은 아닐걸세.”

“냄새를 맡게, 냄새를. 아주 쇳내가 진동을 하는구만. 아주 흉악한 놈일 게야. 저기 공용 노예로 쓰기 위해 온 겐가?”

공용 노예.

아직 노예에 흥미를 갖지 못한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세워둔 체험판 비슷한 존재였다.

온갖 짓을 할 수 있고, 비용 또한 무료다.

시간제한과 횟수 제한이 있긴 했지만, 이때 노예를 다루는 데에 재미를 느낀 이들이 노예를 사는 경우가 많았고.

평범한 노예를 이런 데에다 소비하기는 아까우니, 보통 큰 사고를 친 죄수 출신의 노예를 써먹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그런 의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쯧쯧. 오래 가진 못하겠구만.”

공용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특히나 멋대로 다룰 수 있다는 가정이 있다면 더더욱이.

이상한 취향을 가진 이에게 겁탈을 당할 수도 있고, 팔다리가 잘려 나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정신이 마모되고 무너지는 모습을 죽을 때까지 그냥 방치해 둔다.

이는 ‘너희도 법을 어기면 이리 될 것이다’라고 신분을 숨기고 들어온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날리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범죄자를 써먹으니 문제 될 것도 없고.

그걸 알기에 노예 상인들도 그저 혀를 끌끌 차기만 할 뿐이었다.

“…….”

“…….”

로브를 쓴 흉악범(?)은 근처를 조금도 훑지 않고 빠른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마치 기적처럼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섰다.

손님으로 찾아온 이들도 본능적으로 그의 위험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사로 보이는 이들은 아예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는 일절도 신경 쓰지 않고, 이런 더러운 곳엔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척.

그런 그가 어느 상인의 앞에 멈춰 섰다.

그가 가까워져 올수록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있던 메탄의 안색은 어느새 시체처럼 변해 있었다.

메탄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아니, 시발 그 많은 상인 중에 하필이면 나한테……!’

멈춰 선 그가 상인과 아래에 달린 노예를 훑었다.

로브 아래로 살짝 눈이 드러났다.

마치 늑대처럼 흉악한 눈매에다가 색이 바랜 회색 눈동자.

그 살벌한 눈동자에 메탄은 자기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뭐, 뭐야? 노예 주제에 감히 눈을 그리 뜨…….”

퍽!

“컥!”

메탄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그의 몸이 허물처럼 쓰러진다.

주먹을 날려 그를 기절시킨 남자가 로브를 입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먼저 나서서 죄송합니다. 감히 무례를 범하는 모습을 보니…….”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찾는 사람이 이 둘 맞습니까?”

“예. 정확히 이 두 명 맞습니다.”

덜덜덜…….

남매처럼 보이는 둘은 서로를 껴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 둘을 그는 조용히 바라보다가.

쓰러진 남자에게 뭔갈 툭 던졌다.

땡그랑!

돈끼리 부딪히는 소리.

굳이 그를 깨우지 않고 대충 값을 지불한 그는 둘을 묶은 쇠사슬을 쥐었다.

그리고.

으직!

맨손으로 쇠사슬을 으스러트렸다.

“……!”

“……!”

둘은 상상외의 괴력에 놀란 듯 남자를 쳐다보았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둘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껴 있는 가죽 장갑은, 상당히 헤져 있었다.

“…….”

“…….”

그 탓에 잡기를 망설였다. 둘 다 막말로 손이 깨끗하다곤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둘을 자리에서 일으키고.

양손에 각기 손을 잡은 채, 둘을 데리고 거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나갈 때까지.

“…….”

“…….”

시끌벅적했던 노예 시장은, 침묵으로 맴돌고 있었다.

* * *

노예 시장을 벗어나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난 마차 안에 타자마자 후드를 벗었다.

하!

“답답하군.”

“수고하셨습니다.”

“그쪽도 수고하셨습니다.”

난 후드를 쓰고 있던 탓에 오른 열을 손부채질하며 식혔다.

그러다 나와 함께 마차에 탄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

“!”

“!”

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깜짝 놀라며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옆에서 수행원으로 동행한 남자가 뭐라 하고 싶은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난 손을 들어 제지하고, 상냥하게 살짝 무릎을 굽혀 그들과 눈을 마주쳐 주었다.

“왜. 신기해?”

“…….”

“…….”

둘은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눈빛으로 ‘조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 상처받거나 그런 건 아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라온은 꽤 무서운 인상에 속했으니까.

“내가 좀 무섭게 생기긴 했지.”

“…….”

“…….”

둘은 순순히 인정하는 내가 신기한 듯 빤히 바라봤다.

난 둘이 날 빤히 볼 수 있게 두며, 속으로 만족스레 웃었다.

‘의외로 쉽게 얻었다.’

본래라면 이 둘.

아니, 정확히는 이 ‘한 명’을 얻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 신분으론 노예 시장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필수적으로 위장은 물론 가짜 신분까지 준비했어야 했었으니.

이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더럽게 오래 걸렸고, 최소한 두 번은 아카데미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입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었다.

‘이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걸 그리 돌아가야 했으니.’

역시 학교는 만악의 근원이라니까.

“…….”

“…….”

“…….”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확인해 볼까.’

난 둘이 쓰고 있는 로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란 듯, 뒤로 주춤 물러나다가 등이 막혀 물러나지도 못하고.

두 아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가 뻗은 손을 붙잡았다.

“아, 안 돼요!”

오, 목소리 낸다.

원래 게임에서도 그녀는 게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게임 속의 캐릭터였다.

살아숨쉬는 인간이 아닌.

하지만, 지금은 내 눈앞에서 살아숨쉬고 있었다.

“?”

내가 왜 안 되냐는 눈빛을 보내자, 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잡으시면…… 큰일 나요…….”

실제로 이 로브를 멋대로 벗기려다간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다만 나한텐 별문제가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수행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려 했다.

“이제 네 주인이신 분이다. 어디서 감히 그런 무례를…….”

슥.

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 다른 손으로 로브의 후드를 붙잡았다.

“!!!”

깜짝 놀란 듯, 다른 손으로 막아 보려 하지만.

이미 내 한쪽 손을 붙잡느라 두 손, 아니 네 손을 쓰고 있는 상황.

나는 로브로부터 느껴지는 저항감을 가볍게 무시했다.

“나쁘지 않네.”

뚜두둑!

로브의 후드 부분이 억지로 들어 올려지며 마력이 쑥 빨려 들어갔다.

이 로브는 착용자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의지로 강제로 벗겨 낼 시, 마력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웬만한 실력자는 물론이고, 일반인은 아예 기절할 수도 있는 위력이기에 웬만해선 못 벗기지만.

마력이 빨려 들어가 봤자 기별도 안 가는 나한텐 별문제가 아니었다.

“마력이……. 빨려…… 들어갈 텐데…….”

“이 정도는 간지러운데.”

난 이어 다른 아이의 모자까지 뒤로 젖혔다.

“어?”

뒤에서 수행원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시야가 갑자기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얼굴로 던진 천을 반사적으로 잡은 그에게 말했다.

“보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가 이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한 이유.

그건 이 둘이 쌍둥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똑같을 수밖에 없지.

“보시면…… 안… 되는데…….”

애초에 이 아이는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 * *

“도련님!”

에이드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벨라가 바로 뛰쳐나왔다.

“죄송해요……. 늦게 일어나서…….”

“괜찮아.”

난 아이의 손을 잡고 아벨라에게 내밀었다.

“이 아이나 씻겨.”

“어머. 이 아이는……?”

아벨라는 신기한 듯 눈을 깜빡이며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살짝 숙였다.

내가 후드를 벗긴 후로 후드를 벗고 있던지라 얼굴이 다 보였다.

고양이를 닮은 인상. 뾰족한 코와 단발이 인상적인 소녀.

어리다고 한들, 로브가 아니었다면 들어오자마자 팔려 나갔을 정도의 외모였다.

“이 아이는 누구예요, 도련님?”

“새 하녀.”

“네?!”

노예로 산 거긴 하지만, 노예로 둘 생각은 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노예 취급을 해?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아벨라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기겁했다.

기겁한 걸 넘어서 아예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까지.

“이, 이제 저 같은 하녀는 필요 없으시다는……?”

“……그건 아니고.”

그리 받아들일 수도 있네?

난 머리를 긁적이며 해명을 할까 하다가.

아무리 봐도 ‘라온 리그벨토’가 할 일은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특이한 아이라서 데려온 거야. 됐고 씻기기나 해. 옷은 대충 네 옷 입혀.”

“그럼 여기가 안 맞을 텐데…….”

아벨라가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대충 입혀. 정 아니면 내 거 입히던가.”

“네에.”

내 것도 엄청 오버 사이즈이긴 할 텐데, 흘러내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줄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하녀복은 잘 모르겠지만.

쿵!

“도련님!”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준 아벨라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내게 두두두 달려왔다.

난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손을 쥐었다가 펴며 말했다.

“그…… 욕하는 건 아니고! 아이를 만질 때 되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도련님 쇠사슬을 대신 들어 줄 때처럼…….”

“그러겠지.”

난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아이에게 손짓했다.

어색한 듯, 옷을 질질 끌며 다가온 아이의 머리를 토닥여 주며 말했다.

“얘는 마력을 먹으니까.”

“……!”

아이의 눈과 아벨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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