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화 (39/124)

제39화

에이드 가문은 대대로 백작 작위를 유지해 왔다.

그럼 어떻게 이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아무리 귀족이 푸른 피라 불리며 고귀한 혈통이라 칭해진다고 한들, 능력이 없다면 직위는 빼앗기게 되어 있다.

하지만 에이드 가문은 역사에서 한 번도 백작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건 바로 가문의 혈통이 타고나는 ‘눈’ 때문이었다.

‘역사에 기록하라. 나의 눈은 대대로 나의 혈통에 내려져 갈 것이다. 이는 직계든 방계든 능력 있는 자에게 주어질 것이며, 내 혈통이 이어지는 한, 영원토록 이어지리라.’

에이드 가문의 혈통은 ‘눈’으로 마력을 볼 수 있다.

상대방이 얼마나 많은 마력을 품었는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이는 마법사들의 약점과 상태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강점이며, 상대방이 가진 가능성까지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능력이었다.

즉. 쉽게 말해 ‘재능’을 볼 수 있다는 뜻.

이로 인해 눈을 이어받던 후손들은 이 능력에 취해 나태해지고 점점 썩어 가고 있었으나.

방계임에도 눈을 이어받은 현 에이드 가주는 썩은 체제를 뒤엎고, 가주 본인이 직접 나서 인재를 채용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어 몸이 늙어, 가문을 이어받을 뜻이 없는 자식의 자식인 손녀의 눈은.

선조들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고 아름다웠다.

‘아가. 눈이 아주 예쁘구나. 참 예뻐.’

‘눈이요?’

‘그래. 혹시 이 할미의 심장이 보이니?’

‘……심장이 보이면 큰일 나는 거 아녜요? 사제 불러야 하는데?’

‘거기에 모인 기운이 보이냐는 이야기란다.’

‘아.’

브루아이는 자신의 눈이 가진 가능성을 알고 있기에, 가문을 물려받겠다 한 후 후계자의 자리에서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한 눈은 상대방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때문에 라온을 처음 본 순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그가 가진 마력의 총량을, 모든 걸 으스러뜨릴 것 같은 사나운 성질을.

사나워 보이는 눈매나 분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흉폭함을!

‘괴, 괴물…….’

처음으로 리그벨토 가주를 보았을 때 느낀 감정과 똑같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고 눈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간다.

그녀는 식은땀으로 가득한 손바닥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이 정도면, 벨 리그벨토. 그 괴물 이상 아니야?’

벨 리그벨토도 괴물이었으나.

이 정도로 공포를 느끼진 않았다.

양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며.

가진 성질이 다르다.

벨 리그벨토는 시리고 차분한 분위기의 성질이었다면, 라온 리그벨토는 모든 걸 박살 내지 않고서야 성질을 못 죽이는 거친 성질이었다.

‘……잠만. 양이 비슷한 것도 문제 아니야?’

마법사의 경지는 양과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이 체질이 아닌 이상, 경지가 오를수록 가진 마력의 양이 늘어나고 순도가 높아진다.

물론 라온 리그벨토가 마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게 거짓 소문일지도…….’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힘을 숨기는 건 꽤 흔한 일이니까.

저 쇠사슬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마력 흡수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 저 정도 양의 마력이라면, 빨아들인다고 한들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차하면 그냥 놔 버리면 그만 아닌가.

또, 지금 그녀가 보는 게 마력이 흡수당한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제거…… 는 무슨. 저거랑 싸우다간 우리 가문이 풍비박산 나겠어.’

물론 제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벨 리그벨토가 아무리 ‘언령’을 사용하며, 대마법사 직전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한들.

이 가문에도 상위에 올라 완숙한 경지에 이른 이들이 몇 명인데, 양으로 밀어붙인다면 제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거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을 가주부터 시작하여 상위에서도 완숙한 경지에 올라 있는 다른 형제들.

그리고 공작가에 모여들 수많은 인재들.

공작가가 대부분 괴물이라 불리는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다.

상위에 이른 실력자는 백작가에서도 구하기 힘든데, 혈통을 이은 이들은 개나 소나 상위에 이르질 않나.

가문이란 이름값에 이끌려 넘어오는 실력자들이 있지 않나…….

수많은 실력자의 이름과 피로 쌓아 올려진 가문의 위상과 혈통은, 더 강한 혈통으로 지우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친하게 지내는 게 최선이려나.’

벨 리그벨토, 그 괴물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모나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그녀는 그리 판단하며 입가에 미소지었다.

……그런데 생긴 것도 무섭네.

‘잘생기긴 했는데 좀 분위기가 사나워서 눈 마주치기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라온은 크게 모난 구석이 없었다.

어깨까지 덮을 정도로 긴 뒷머리, 그에 비해 앞머리는 눈을 살짝 가릴 정도로만 기르는 상당히 유니크한 머리 스타일.

하지만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날렵한 콧대나 모난 구석 없는 입술, 날카로운 턱선은 상당히 소화하기 어려운 스타일을 손쉽게 소화해 주었다.

……다만 입이 꾹 닫힌 것과 살벌한 눈, 가만히 있어도 뿜어지는 서슬 퍼런 분위기, 그리고 몸에 두른 쇠사슬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사람이 바뀌었다곤 해도, 성격은 아직 좀 더럽다고 들었는데.’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입수한 소문에 따르면 대련에 패배한 필립 오스큘라의 머리를 짓밟고 막말로 내뱉었다느니, 상술이라고 말하며 찾아온 시종을 두들겨 패 보냈다더라…… 등등 온갖 나쁜 소문이 가득했다.

그게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그럼. 거기에 들어가신 건 일부러 가신 거네요?”

“예. 밤에 잠시 산책을 돌다가, 이상한 인영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요새 유명한 놈들이길래, 우선 붙잡자는 마인드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마법사분들이 돌아다니셨을 텐데…….”

“잠시 머리가 복잡해서 식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자자한 만큼 바다가 아름답다 보니, 조금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법을 어기고 몰래 돌아다닌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도 그렇고, 기분 나쁘지 않게 에이드 영지의 유명 관광지를 적당히 치켜세워 주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도 안전을 위해서지, 법으로 ‘돌아다니지 마라’라고 규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일단 규칙이긴 하니,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게 가볍게 사과하고 넘어가는 모습.

‘사교성도 적당히 있어 보이고.’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저게 얼마나 진짜인진 모르지만.’

적어도 남의 앞에서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건, 기본적인 눈치와 사교성을 갖추었다는 이야기다.

짧은 대화지만, 많은 사람과 만나 봤기에 그녀는 금세 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몇 번 더 만나 봐도 되겠어.’

그가 뭘 가졌고, 가문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친분을 쌓을 상대로는 충분해보였다.

남을 평가하는 것 같아 예전에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녀는 책임질 게 많았고, 후계자로서 지내온 세월 동안 느낀 바로는 상대방도 똑같은 판단을 하고 있기에, 더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흘흘. 그럼 이 늙은이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는가?”

“예.”

“자네는 왜 우리 영지에 찾아왔는가?”

“관광지가 유명하더군요. 특히나 바다가. 잠시 시간을 돌리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습니다.”

“흘흘…… 그거 말고는?”

‘할머니?’

그녀는 살짝 놀란 눈으로 가주를 돌아봤다.

다른 이유야 있을 수 있지만, 저리 직설적으로 묻는 건 상대방에 따라 실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말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물어봐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가 알아차리고 있으리라 생각한 건지, 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노예 시장을 찾으러 왔습니다.”

“……노예 시장을요?”

“예. 거기에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되게 의외네?’

보통 노예를 사는 경우는, 대신 전투해 주거나 시종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그게 공작가의 자제에게 필요할 리는 없었다. 전투야 본인이 더 잘할 가능성이 컸고, 혹여나 필요하다면 가문의 기사 한 명을 쓰면 될 터이니, 굳이 사람을 살 이유가 없었다.

보통 저 정도 직위의 인물이 노예를 사는 경우는 단 하나다.

성욕 풀이용.

‘취향이 특이한가? 보통은 평범한 귀족 영애를 만날 텐데.’

만일 육체적인 관계만을 원한다고 한들.

그와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관계만을 원하는 귀족 영애가 얼마나 많은가.

말 못 할 취향이 아니고서야 보통은 그런 영애와 만난다.

몸매라든가, 얼굴이라든가, 관리라든가, 어느 면에서든 노예보다 훨씬 우월했으니 말이다.

‘뭐, 그거까진 내가 신경 쓸 요소가 아니지.’

막 쓸 수 있는 성욕해소용 인형이라도 필요한가 보지.

이 정도는 도와줄까?

그녀는 슬쩍 가주에게 시선을 보냈다.

브루아이의 시선에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찾는 사람의 인상착의라든가 아는 게 있나요?”

“예. 13살의 꼬마 둘. 쌍둥이처럼 항상 붙어 다닐 거고, 저주 때문에 벗겨지지 않는 피풍의 때문에 얼굴 확인이 불가능할 겁니다.”

‘성욕 풀이용은 아니네.’

속으로 이해한 그녀는 곧바로 사람을 불러서 그가 말한 인상착의 그대로 말한 후,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부른 사람이 나가자, 그는 그녀가 왜 이 사람들을 찾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친절히 말해 주었다.

“제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받아서 말입니다. 그 둘을 꼭 찾아와 달라고 하더군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차. 이거까지 물어보는 건 실롄데.

하지만 라온은 괜찮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까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캐물었네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궁금해하실 만한 사안이니까요.”

“흘흘.”

웃음소리와 함께 끼어든 가주가 말했다.

“그럼. 혹시 하나 물어봐도 되겠는가?”

“예. 제 편의를 봐주셨으니, 말씀드릴 수 있는 거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네는 ‘마력 포식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마력 포식자?

브루아이는 속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거, 우리 가문 지하에 있는 건데?’

오랜 시간, 이 가문에서 대대로 봉인해 오고 있던 한 영웅의 발자취.

분명히 이번 대에선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왜 갑자기 말씀하시는 거지?

“예. 압니다.”

“자네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쎄요.”

입가에 커피 잔을 가져다 댄 그의 눈이 자신감을 품은 채 휘어졌다.

“감히 그까짓 게 제게 무슨 위해를 가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흘흘.”

가주는 마음에 드는 듯, 웃음을 흘렸다.

똑똑.

아까 그녀가 불렀던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보고를 올렸다.

“찾았습니다. 방금 막 노예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요?”

특이한 인상착의 때문인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녀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가시겠어요?”

“예.”

“그럼 하녀분을…….”

“내버려 두셔도 됩니다. 아마 많이 피곤할 겁니다.”

‘하녀를 신경 써?’

보통 아무리 성격이 좋다고 소문난 귀족이라고 한들.

감히 자신보다 늦게 일어난 하녀를 가만히 두거나 하진 않는다.

‘호구는 아닐 거고…….’

아무리 봐도 착한 사람인 거 같은데.

그 소문들은 대체 뭐지?

사실 저거 다 이미지 메이킹인가?

그녀는 아직 어린 만큼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어리기 이전에 한 가문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제 사람 중 한 분을 붙여 드릴 테니까, 함께 다니시면 됩니다. 볼일이 끝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돌아오시면 돼요.”

“예.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가주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나중에 돌아왔을 땐.”

가주는 부드러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테파니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단다.”

“……예.”

본래 가주들은 가주의 직위에 오른 순간, 본인의 이름을 잃는다.

오로지 가문을 대표하는 가주로 불리기에, 본인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이름을 드러낸다는 건.

더 이상 ‘가주’와 ‘직계’ 사이가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로 관계를 쌓자는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원하는 게 있으니 친분을 이어 가자는 걸 수도.

……라온은 대체 왜 가주가 저리 친근감을 드러내는진 모르겠지만.

대충 예측 가는 바는 있었다.

‘마력 포식자랑 관련 있겠지.’

아무래도.

근래에 이와 관련된 일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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