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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8화 (38/124)

제38화

‘결국 아무것도 못 캐냈군…….’

기사단장은 피곤한 듯 눈가를 문지르며 가문으로 복귀했다.

붙잡은 천마신교의 신도에게 뭔가를 캐내려 했으나.

-마, 말하면…… 나, 날 죽일 거야……. 그냥, 그냥 여기에 갇혀 있게 해 줘! 무슨 죄목이든 좋으니까!

대체 무슨 고문이라도 당한 건지, 겁에 잔뜩 질린 채, 차라리 감옥에 가두라고 하다니.

그런 여자는 살면서 처음 봤다.

‘하아…… 돌아가면 잔뜩 질책받겠지…….’

그는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현 후계자에게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팔콘. 더 이상 이 안건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예?”

“다행히도 이미 돌아와 계시거든요.”

그의 말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소파에는 그가 찾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이제 막 씻고 나온 듯한 뽀송뽀송한 머리카락, 마음이 약한 이가 본다면 무서움을 느낄 법한 흉악한 눈매, 몸에 두른 특이한 쇠사슬.

죄수 같아 보이는 외형이나, 그는 분명히 그가 찾던 인물이 맞았다.

“…….”

“?”

라온은 기사단장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눈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난 뭐 하러 그 고생을 한 거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 기사단장이군.’

왠지 빙의 이전에 경찰이었던 친구가 떠올라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가진 의문도.

라온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게. 왜 여기에 있을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1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 *

쿠르르릉! 쾅!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닥이 질퍽해졌다.

안 그래도 밤이 되어 어두운 도로는, 비로 인해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고.

나는 아벨라를 왼쪽 어깨에 걸친 채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왜 이리 걷고 있는가 하면.

‘설마 뇌기의 영향으로 기절할 줄은…….’

생각도 못 한 이유였다.

뇌기가 강력한 건 알고 있었으나.

단순히 ‘이동’하는 데에만 힘을 썼음에도, 그 여파만으로 아벨라를 기절시킬 줄이야.

‘내 실책이다.’

다행히 상처가 없는 걸 확인했으나.

전투에서 이런 변수가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문제였다.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재의 영웅과 싸우던 것처럼,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크게 틀어지는 싸움이었다면?

‘더 연구해야겠어.’

비록 ‘비’라는 특수 상황에서만 쓸 수 있지만.

나름 필살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니.

내가 이걸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했다.

‘지금이 제일 좋겠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내가 편히 연습하게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쏴아아아아아- 탁.

우리가 예약 잡아놓은 숙소 앞에 멈춰 섰다.

숙소 앞은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무슨 소란이거나, 사건 이런 이유가 아닌.

한 명이 끌고 온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전부 상위 직전.’

드문드문 상위에 오른 이들까지 보인다.

아무래도 기사단 전체를 끌고 온 모양이다.

만약 나와 싸운다면.

‘……도망치는 정도인가.’

홑몸이라면 어떻게든 싸워서 반절 정도는 죽이고 튈 수 있겠지만.

내 어깨에 올려 있는 아벨라 때문에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기껏해야 도망치는 정도.

이러한 우세를 아는 것일까.

이 기사단을 끌고 온 노인이 여유로이 웃었다.

“흘흘. 어서 오게.”

“……에이드 가주.”

“비루한 늙은이를 보고 바로 알아보는구만.”

현 에이드 가주.

실세에서 물러나 후계자가 대신 가문을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녀가 곧 죽을 걸 대비하여 미리 작업을 쳐 놓은 것뿐.

실제로는 아직 그녀가 주권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만한 능력을 가진 노인이지.’

젊은 시절, 방계라는 한계를 넘어 백작가의 가주 자리를 차지한 인물.

본신의 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을 이루어 냈기에.

초창기에 라온 리그벨토에 대해 연구할 때 참고 대상이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성향이 달라서 참고에 그치기만 했지만.

‘그래도 능력이 좋다는 건 달라지지 않지.’

좋아도 너무 좋아서, 지금 굉장히 불쾌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여긴 무슨 일이지?”

내 질문에 에이드 가주가 늙은 입가를 부드러이 휘어 웃어 보인다.

“무슨 일이긴. 잠시 사라졌던 귀하신 분을 직접 이리 모시러 온 게지.”

“알아서 사라질 거야.”

“흘흘. 자네는 그러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입장은 조금 달라서 말이지.”

“그 입장을 왜 내가 신경 써야 하지?”

“쓸 이유야 없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이게 자네에게 득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난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날 직접 찾아온 이유는, 하루 동안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이고, 직계로서 권한을 되찾은 만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가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장로들이라면, 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에이드 가문에 추궁할 것이다.

그만한 이익을 갈취할 수 있으니까.

나를 찾아내거나, 혹은 내가 먼저 스스로 어디를 다녀왔다고 말해야 이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대처가 이상하진 않지만…….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친분을 쌓자는 느낌인데.’

보통은 우린 아무 연관도 없으니 조용히 잘 지나가라, 하고 보내 주는 느낌이겠지만.

지금 이건.

마치 ‘내가 이렇게 신경 쓰고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자’라는 느낌이다.

또한 그녀의 말은, 자신들과 엮일 수 있는 기회이니 그걸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겠냐고.

직접적이면서도 직접적이지 않게 말한 것이니.

‘대체 왜?’

당연하지만, 귀족은 필요 없는 관계에 굳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친구도 없이 삭막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아니지만.

하나 내가 친구로 맺을 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충분히 인연을 맺을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접근한 것이다.

그것도 후계자 싸움에 참여할지도 모르는 직계에게!

‘……첫째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첫째인 벨 리그벨토는 현재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이며, 에이드 가주는 그와 몇 번 만남을 가졌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아마 그의 성향에 대해서 알고 있을 터.

벨 리그벨토는 다른 후계자에게 협력했다고 한들 배척하고 적으로 규정할 사람은 아니다.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이 아니고서야, 언제든 같은 팀이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넘어오는 자들을 능력에 맞춰 대우해 주는 자다.

그러나.

‘지금 후계자가 그로 확정 난 건 아니지.’

그러니 다른 형제들을 신경 써야 할 텐데…….

이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처사이지 않은가.

아니면, 다른 형제들은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는 건가?

“흘흘…….”

‘……음침한 늙은이 같으니.’

난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왜 그녀가 내게 이리 다가왔는지, 무슨 가능성을 보고 왔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분명히 ‘더 많은 걸 얻고 싶지 않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군.’

재의 영웅이 묻힌 무덤으로 가는 입구가.

저 스톤서클에 있음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뭔가를 얻었다는 것까지도.

‘……그러고 보니, 이 가문에 뭔가가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기억하기로 예전 ‘영웅’이 남겨 둔 ‘업보’인 걸로 기억한다.

에이드 가문과는 큰 연이 없어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대충 그런 게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없애고자?’

내가 영웅의 무덤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 머리 아파.

설마 진행 하나 꼬았다고 이리 꼬일 줄은 몰랐다.

이게 나비 효과인가 뭔가인 건가?

‘……확실하지 않으니 확신을 내리기도 무섭고.’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금 그녀는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으며.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

“내게 뭘 원하지?”

“이 늙은이와 잠시 차 한잔하지 않겠나?”

그녀는 지팡이를 만지며 말했다.

“자네에게 불이익이 될 건 없을 걸세. 나뿐만 아니라 우리 귀여운 손녀랑도 함께 대화를 나눌 거니까.”

‘……후계자랑?’

아니, 대체 왜?

마음 같아선 그냥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러지.”

결국 완전히 꼬여 버린 루트를 위해, 나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 뒤로도 상황은 조금도 예측이 가지 않는 흐름대로 흘러갔다.

‘아구구…… 이 늙은 몸이…….’

‘할머니!’

‘예끼 이놈아! 가주라고 불러야지!’

‘앗! 죄송해요……. 그보다 이분은?’

‘끌끌, 우리가 찾던 사람이지.’

‘네?!’

아니, 대체 어느 가주가 실질적으로 가문을 운영하는 후계자에게 말도 안 하고 불쑥 손님을 데려와?

‘……이분은 우선 손님방에 데려 놓을게요.’

‘예.’

‘자네도 오늘은 쉬게.’

‘……?’

‘흘흘. 늙은 몸으로 밤에 커피를 마셨다간 크게 탈 나거든. 이 노인을 조금 이해해 줬으면 좋겠네. 대신에 자네가 원하는 걸 하나 주지. 어떤가?’

‘……그러지.’

혹시 모를 암살 위협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

샤워를 끝마치고, 티타임을 가지기 위해 나온 순간, 기사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브루아이가 말했다.

“수고했어요, 팔콘. 더 이상 이 안건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예?”

“다행히도 이미 돌아와 계시거든요.”

……이렇게 해서, 지금 상황까지 온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읽지 못했을 시선을 거둔 기사단장은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혹여나 내 심기를 거슬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는 게 보인다.

“신경 쓰지 마.”

“예?”

“네 상사가 날 데리고 온 거니까.”

난 그리 말하며 그를 지나쳤다.

그는 내 일방적인 말에 알아서 납득 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더 깊숙이 숙인 후 문밖으로 나갔다.

……아니, 가주가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해 댔으면 납득을 해?

덜컹.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가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함인지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아티팩트를 팔에 두른 채였다.

“아구구…… 허리야……. 오. 다들 아주 일찍 일어났구나.”

“예.”

“할머니 더 주무시지.”

“손님을 둔 채로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럼 이제 커피나 들자꾸나.”

……그렇게 해서 커피 타임이 시작됐다.

아주 불편한 분위기다.

나뿐만 아니라 브루아이도 이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한 듯 눈동자를 굴렸지만.

가주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흘흘.”

근데 볼 때마다 저런 말투 쓰는 게 신기하네.

원래 다 저런 말투를 쓰는 건가?

뭔가 어색하단 말이지.

말투가 원래 쓰던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에이, 아니겠지.

뭐 하러 이제 반쯤 은퇴한 가주가 말투까지 신경 쓰겠어.

‘이제…… 문제는 여기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아무리 가주가 뛰어나다고 한들, 그녀는 곧 세대를 후계자에게 넘겨줄 것이다.

즉. 내가 앞으로 신경 써야 할 상대는 가주가 아닌 후계자.

가주가 내게 접근한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무슨 목적인지, 이로 인해 진행이 어떻게 틀어질지 등, 머리 아픈 요소들을 굳이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영웅을 없앤 게 아니라, 협약을 맺으면서 적대적 관계를 끝낸 것뿐이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내가 한 건 살아 돌아온 것뿐이니까.’

그러니 그녀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때 내게 말을 할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알아차리면 좋겠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들, 내게 불이익이 올 건 없으니까.

‘그러니 가주가 내게 접근한 목적은 뒤로 제쳐 두고. 이 후계자…… 브루아이와의 관계를 신경 써야겠지.’

여기 이 후계자는 벨 리그벨토의 성격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는 걸 꺼릴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를 제거함으로써 후계자들에게 잘 보이려 들지도 몰랐다.

감히 직계에게 손을 뻗었다고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다른 후계자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면 모두 해결 가능한 문제니까.

‘적어도 적대는 하지 않는 관계로.’

제일 좋은 건 호의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얻을 수 있는 건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것들이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쓸 수 없는 아티팩트들이나, 내가 찾는 사람에 대한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나 노예 시장에 대한 정보는 에이드 가문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테니까.

‘……좋은 관계를 쌓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뭐,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은 해 봐야지.

어차피 이렇게까지 온 이상.

난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적어도 이 여자 앞에선 라온 리그벨토처럼 싸가지없게 굴진 않았으니, 첫인상이 완전히 조져지진 않았을 터.

……근데 왜 눈을 못 마주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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