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팔찌는 그에게 맡겨 두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바스라진 풀숲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근처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있던 아벨라의 귀가 쫑긋 움직이더니.
이내 나를 쳐다보곤,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내게 후다닥 달려들었다.
“도련님!!!!”
와락 안기는 그녀를 굳이 거절하지 않고, 대략 흐른 시간을 체크했다.
하루 정도 지났나.
‘근데 애가 너무 상했는데?’
아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듯, 다크서클이 눈가 밑에 내려와 있고, 마음고생 했다는 듯이 볼이 홀쭉 들어가 있었다.
애가 수분이 다 빠졌네.
“뭐야. 왜 이리 말랐어. 얼마나 지났지?”
“하루… 정도….”
“비상식량 왜 안 먹었어.”
“도련님이 안 보여서…….”
그리 말하며 잔뜩 시무룩해지는데, 그게 마치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아, 사람한테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누르고,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마른 거 보기 싫어.”
“……헤헤.”
내 말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뒤늦게 내 오른쪽 팔을 발견했다.
“……도련님. 오른쪽 팔이??”
“아.”
깜빡했다.
내 팔을 본 그녀의 얼굴이 다시 울상이 되었다.
“……어떡해…… 어, 어쩌다가 이렇게 되신 거예요…….”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느라 생채기가 수두룩했고.
묵직한 돌에 깔리기까지 한 상태에서 뼈까지 부러졌으니, 겉으로 보기에 멀쩡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가만히 두면 알아서 낫겠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녀는 내 품에서 떨어져선 앞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별로 볼록 튀어나오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물건들이 잔뜩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도대체 저 주머니엔 뭐가 저리 담겨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넣은 거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 도X에몽 주머니야?
내가 그리 생각하든 말든, 안에서 부목으로 댈 만한 나무판자와 붕대, 그리고 응급 처치용 아티팩트까지 꺼냈다.
셋 다 부피가 상당한 편에 속하는 물건들이었다.
‘진짜 어떻게 들어가 있는 거지?’
“도련님, 얼른 팔.”
“괜찮은데.”
“얼른 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의지를 내보이는 말에.
결국 팔을 내밀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팔을 들고, 옷을 완전히 걷어 냈다.
“뼈가 완전히 박살이 났잖아요…….”
그녀는 잔뜩 울상이 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기야, 처음엔 아예 으스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근육에 박힌 뼛조각들이 뱀파이어의 팔찌를 통해 사라진 것이 다행이었다.
뼛조각이 남아 있었다면 아예 갈라서 확인을 해 봐야 했을 테니까.
슥, 스슥.
아티팩트로 뼈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내 부목으로 팔을 댄다.
다행히 팔찌를 통해 금이 간 부분들은 이미 재생이 됐고, 아예 반으로 뚝! 부러진 부분만 남은 상태였으니.
부목을 붕대로 휘감아 단단히 고정해 준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아프죠……?”
“어.”
“나가면 꼭 사제한테 가야 해요. 꼭이요.”
“그래.”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수고했어.”
내 말에 그녀는 기분 좋다는 듯이 미소 지으면서도.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좀 달라진 거 같은데…….”
아, 맞다, 컨셉.
“시끄러워.”
“똑같구나.”
왠지 기분이 나쁜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닌가.
난 이만 시선을 돌렸다.
“너.”
“네, 네?”
숨통이 끊어진 듯,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남자 근처에 앉아 있는 여자.
특이하게도 겨울에나 쓸 법한 귀도리를 쓰고 있었다.
평범한 귀도리가 아니다. 마력을 지닌 자라면 무조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마력의 파장이 귀도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귀가 특이한 모양이네.’
신도들에 대해서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게임에 진실이라고 한들, 저런 잡졸 하나하나의 특징까지 외우진 않는다.
다만, 잡졸이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가능성 있는 놈들 정도는 외워 두는 편인데.
저 여자는 내가 기억하는 특이한 놈 중 하나였다.
‘마력을 듣는 자.’
마력은 들을 수 없다.
누군가가 운용하거나, 마력이 유독 휘몰아치는 곳에서야 휘이잉, 같은 소리를 들을 순 있지만.
잔잔한 호수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듯.
잔잔하게 흐르는 마력으로부터는 뭔갈 들을 순 없다.
허나, 그녀는 달랐다.
잔잔하든 거칠든, 마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숨겨진 뭔가를 찾아낼 수 있는 데에 특화된 이였다.
‘까다롭다면 까다로웠지.’
심성이 약하고 무력이 약해 전면에 나서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뒤에서 마력의 목소리를 들어 약점을 파악하거나 작전을 짜는 등, 책략가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둘 중 하나다.
여기서 죽이든.
완전히 무력화시켜놓든.
“너. 신도지?”
“……네, 네! 전 하늘을 믿는 신도…….”
“말고 새끼야.”
난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의 발목을 짓밟았다.
“꺄아아아악!”
“천마.”
그녀의 비명은.
내가 내뱉은 말에 한순간에 끊겼다.
“……!!!”
발목이 뚫리고, 옆의 동료가 죽었을 때보다도 더 크게 눈을 떴다.
“그 이름을…… 어떻게…….”
방금까지 무서워하던 모습이 연기라도 되듯이, 한순간에 변한 태도.
이놈들은 항상 그랬다.
그깟 천마가 뭐라고, 그와 연관이 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변했으니.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고.”
난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쳤다.
“왜 여기에 왔지?”
“그건…… 말할 수 없어요…….”
“그래? 아쉽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포기했다고 느낀 모양인데.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오늘 시체 하나 치우게 돼서.”
절그럭.
난 두 손으로 쇠사슬을 쭉 잡아당기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망설임 없이 죽일 거라는 걸 알아차린 그녀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나 내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다가가자,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내게 두 손을 내밀어 날 제지했다.
“자, 잠깐만!”
내가 무시하고 다가가려 하자,
“며,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자리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쇠사슬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명령.”
“제 능력으로 숨겨진 공간을 찾아 분석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영웅에 대한 정보는 정확히 알고?”
“아뇨. 영웅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럼 선두로 왔다는 얘기로군.
‘정보가 완전히 앞서가는 수준은 아닌가.’
불행 중 다행이다.
천마신교에 대해선 온전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강제되는 스토리의 흐름상, 만날 일이 없는 적이나 지부같이, 정보 수집에 많은 방해가 있었다.
‘중반부 스토리의 메인 빌런이니 정보를 수집하긴 했지만.’
이 역시 완벽하진 않았다.
아무리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한들.
이미 클리어 방법이 가능한 스토리를 파고드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정보를 열심히 수집해야겠지.’
아무래도.
가문으로 돌아가면 할 일이 더 늘어날 듯하다.
“그걸로 끝?”
“……네, 네.”
“구라까네. 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네?”
“겨우 그거 하나라고? 여기에 눈독 들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걸 말해야지.”
“그, 그건…….”
또 망설이네?
내가 쇠사슬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자, 공포가 학습된 그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교, 교주님의 명 때문입니다! 전 진짜로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
교주라.
보통 내가 본 무협지에선 천마가 교주이거늘, 여기선 달랐다.
교주란 신이라 칭송되는 천마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존재.
신전에 비유하자면 교황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이런 잡졸에게 정보를 주었을 린 없고.’
직접 만나야 하나.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필요한 아이템을 모두 챙겼다는 가정하에, 100번 싸우면 100번 다 이긴다.
이미 그에 대한 모든 정보와 패턴은 파악하였고.
업데이트로 더 강해지더라도, 다시 정보를 수집해 100번 공략하면 100번 성공하게끔 만들었다.
‘……그래도 만나는 건 나중에.’
100번 싸우면 100번 이긴다는 것도 내가 필요한 모든 걸 챙겼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처럼 불완전한 상태면 당연히 못 이긴다.
한 100번 중에 10번 이기는 정도?
‘다른 거나 알아봐야겠네.’
“그럼 난 아냐?”
“……네?”
“되묻는 거. 이번만 봐준다. 확실히 말해. 나에 대해서 알아, 몰라.”
“아, 압니다!”
난 그녀가 대답했음에도 쇠사슬을 쥔 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내뿜는 살의를 느낀 그녀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다, 당신은! 저희 신도들에게 있어서 요주의 인물입니다!”
“왜?”
“우리 쪽으로 회유하면 넘어올 가능성이 큰 ‘직계’니까……!”
이미 이런 쩌리에게도 정보가 내려와 있나?
‘……쯧. 그럼 얼굴 가릴 것도 구하고 다녀야겠네.’
사실 얼굴을 가리는 건 어렵지 않다.
스타일만 바뀌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고, 울프컷이라는 이름의 이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컸다.
영 아니면 여장을 해도 됐고.
그렇다 한들,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네, 네!”
“천마갑주나 천마신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이때까지 보인 반응 중 제일 격한 반응이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몰라. 그것만 말해.”
“그건……. 말할 수가…….”
“금제 같은 거 없는 거 아니까 말하라고.”
당연히 이런 조직은 금제를 거는 게 보통이건만.
천마신교는 특이하게도 금제를 걸지 않는 집단이었다.
뭐, 천마의 뜻은 만인이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
‘애초에 이런 잡병에겐 딱히 중요한 정보가 없다 이거지.’
그러니 내가 원하는 정보도 큰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진척되었느냐.
그것만 알아도 충분하니까.
“……아직 파악하고 있어요.”
“그래?”
이미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듯, 그녀는 해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원하는 정보는 이걸로 됐다.
그럼 다음은, 이제 뒤처리.
“너. 안 들려?”
“……네?”
“안 들리냐고.”
난 그녀에게 다가가 목을 손으로 붙잡았다.
꽤 신체 능력이 있는 듯, 강한 저항력이 느껴지지만.
어차피 몸으로 육탄전을 벌일 것도 아니었다.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고개를 강제로 고정하고 나와 두 눈이 마주치게 했다.
“마력의 소리. 안 들려?”
내 말에 그녀의 귀가 작게 쫑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눈동자에 공포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히이이이익…….”
“경고야.”
주인 없는 마력은 누구보다 난폭하다.
더군다나 강제로 몸에 갇히다시피 하여, 지금 당장은 조금 방출하거나 흡수되는 것만으로 진정하겠다는 듯 느껴지는 마력은 더욱이 난폭하다.
그저, 진정한 상태라 내 몸을 터트리지 않는다는 느낌.
그걸 알기에.
그리고 그녀를 봤을 때 했던 대사를 기억하기에.
-괴, 괴물……! 이, 이 마력들을 대체 어떻게 체내에……!
“다시는 네 능력을 쓸 생각을 하지 마. 그 잘난 집단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고. 에이드 가문에 조용히 처박혀 있어. 안 그러면 네 귀를 박살 내버릴 거야.”
난 그녀에게 경고를 줄 수 있었다.
“마력의 소리에 귀 터져 본 적 있어?”
난 본 적 있는데.
그리 말하며 씨익 웃자, 그녀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아마 PTSD로 남아 평생까진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나중에 정신을 차려서 내게 복수하고 싶다고 한들, 그땐 이미 천마신교 따위 없어졌을 테니까.
내가 그리 만들 테니까.
[……어이.]
때마침, 타이밍 좋게 재의 영웅이 말을 걸었다.
동시에 창문 크기의 틈이 살짝 벌어지며 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온다.]
쏴아아아아-
“금방 오네.”
다행히 이곳을 벗어나긴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아벨라.”
“네?”
“나가자.”
아벨라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눈을 팽팽 돌리다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여자의 목을 붙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도 가자.”
“네?”
* * *
쏴아아아아-
비는 지상 위의 모든 걸 지워 버리겠다는 듯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혹여나 모를 머리 빠짐을 대비해 모자를 단단히 착용한 에이드 가문의 제1기사단의 기사단장은 스톤서클을 바라봤다.
‘……저기서 실종되셨다라.’
다름 아닌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가, 저곳에서 사라졌다.
그것도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는 상당한 중대 사항이었다.
비록 단순한 여행처럼 보이는 방문이었으나, 어찌 되었던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인 가문의 직계가 실종되었고.
만일 찾아내지 못한다면, 리그벨토 가문은 물론 황실로부터 직접적인 압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진 거 아닌가?’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 괴물 같은 집안의 직계라면, 근처 마법사나 마력의 흐름쯤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상위에 오른 검사라고 한들.
본인의 의사로 몸을 숨겼다면,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괜히 잘못 걸렸다가 심기만 거슬리게 하는 거 아니야?’
만약 혼자 사라졌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침입자가 있었다.’
그것도 요새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천마신교’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놈들이었다.
만약, 그 직계에게 손을 뻗었다면?
혹은, 그 직계가 그 집단에 넘어갔다면?
‘어우. 소름 돋는군.’
그 유명한 무능한 직계는 아카데미에 있는 걸로 아니, 아마 다른 직계 중 한 명일 터인데.
대부분 ‘언령’을 사용할 줄 아는 수준급의 강자로서.
그들이, 만일 천마신교에 들어간다면…….
‘개판이 되겠지.’
아, 시가라도 가져올걸.
괜히 훌륭한 직장이 망가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단장님.”
“왜.”
“아직까지 발견된 건 없습니다. 마법 장치도 딱히 부서진 것도 없고요.”
부기사단장이 다가와 그에게 보고를 올렸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래 보인다. 애들 감기 안 걸리게 아티팩트 상태 잘 확인해. 아무래도 온종일 있어야 할 거 같으니까. 왜 갑자기 비가 오고 지랄이야.”
“겨우 이 날씨에 감기 걸리는 허약한 놈도 있습니까?”
“대부분 병사다, 인마. 말 조심해.”
“아,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로 생각해서.”
공감이 안 가는 건 아니다.
백작가의 기사단 정도 되면, 기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능력치도 상당하다.
후보생도 상당히 가려서 뽑으니, 저어기 유명한 아르바크 아카데미의 중~상위권 정도는 될 터.
‘나이가 있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아무튼 기본적인 눈이 높다 보니, 저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쿠르르르으으…….
“그보다 오늘 무슨 날이라도 되는가 보군요.”
“왜?”
“맞지 않습니까. 오늘 수도에서 테러 시도도 있었고, 직계도 실종되고, 그 무슨 신교 놈들도 오고…….”
이미 머리가 벗겨진 탓에 모자를 쓰지 않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그 괴물이 비바람을 몰고 온 거 아닙니까?”
“사람이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그리 대답하려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가주라면 모르겠군.”
“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용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비바람을 몰고 와요.”
“네가 물어봤잖아 미친놈아. 그리고 네가 못 봐서 그렇다.”
현시대는 평화의 시대라 불리고 있으나.
드문드문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고위 던전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언데드 군단이라든가, 갑작스레 성장한 괴수라든가…….
그는 기사단장에 오르기 전부터 그런 사건에 잘 휘말리는 타입이었고, 덕분에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었다.
한 인간에 의해 붉게 물든 하늘을.
그리고 비도 내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수십 개의 벼락을 말이다.
‘……음. 벼락이 올 거면 이런 날씨인데 말이야.’
불길하게 울렁이는 구름들을 보면 당장이라도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콰광!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벼락이 내리꽂혔다.
한 번의 벼락은 스톤서클을 보호하는 마법들을 파괴했고, 근처 대원들의 눈까지 멀게 했으니.
이는 상위 수준에서도 다음 경지를 바라보는 검사인 그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벼락이……!’
설마 공격인가?!
챙!
그는 검을 뽑아 들며 재빨리 마력으로 시야를 복구시켰다.
그리고 보인 것은.
“……어?”
“뭐야? 여기에 왜 사람이?”
쏟아지는 비 아래에, 주저앉아 있는 한 여인이었다.
특이한 디자인의 로브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반쯤 넋이 나간 모습.
예전에 한 번 보고 받은 적 있는 집단의 차림새와 동일했다.
‘천마신교.’
갑자기 왜 여기에?
‘……일단 잡고 볼까.’
여전히 리그벨토의 직계가 어디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만 잡아도 실마리는 잡을 수 있을 터.
기사단장은 꺼내 들고 있던 검으로 여자의 목을 가리켰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전 대원!!”
“예!”
“이 자를 불법 침입죄로 체포한다. 불응할 시 폭력을 동반해도 좋다. 묶어.”
“예!”
“자, 잠! 꺅!”
여인이 해명할 틈도 없었다.
양손이 포박당하고 머리가 처박힌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개 같은 새끼…….”
누구에게 향한지 모르는 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