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많은 보상은 예상했지만, 설마 마력 제어력이 1이나 오를 줄이야!
난 급히 상태창을 열었다.
[라온 리그벨토]
힘: 47(일부 봉인)
민첩: 42(일부 봉인)
체력: 48(일부 봉인)
마력: 115(-30)(-1)(-0.2)(-0.5)(사용 불가능)
마력 제어: 2 (통제 가능 수치: 0.1~2 - 마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마력이 폭주할 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신성력: 0
[특이사항: 마력 수치에 비해 마력 제어 능력치가 굉장히 낮습니다. 마력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마력 흡수 쇠사슬’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극히 제한된 상태입니다.
※마력이 일부 감소하였습니다(-30)(-1)
※폭주까지 60%(근처의 마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뇌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날씨가 ‘비’이어야만 합니다.)
※현 신체 능력치: 30
감격스러운 변화였다.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통제 능력치가 오르고, 그동안 부족하다고 느꼈던 신체 능력치가 더 올랐다.
물론 억제되었던 본 능력치가 조금 풀린 것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치가 올랐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니.
꾸욱!
‘힘이 세진 게 느껴져.’
겨우 10이라 할 수 있다.
하나 나 같은 개복치에겐 너무나 중요한 수치였다.
비록 이 세계의 무력 수치가 높다 보니, 이 정도로는 ‘기사 지망생’ 수준에 불가하지만.
‘그 수준만 되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훨씬 늘어나.’
기사 연습생이라고 한들, 일반인이 보기엔 충분히 초인(超人)이라 생각이 들 만큼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라면 내 전투 범위는 물론, 활동 범위까지 확연히 늘어난다.
애초에 내 전투 방식은 능력치 따위에 국한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수치만 놓고 보면 재능 넘치는 놈들만 보이는 아카데미에서도 중위권은 차지할 것이다.
‘비록 그놈들의 힘은 수치로 계산하긴 어렵지만.’
귀족의 진짜 힘은 ‘혈통’뿐만 아니라, 혈통이 그동안 쌓아 온 기록까지 포함했다.
기록을 통해 이어받은 역사로 더 강해지며, 이를 바탕으로 부족한 점을 더 채워 나간다.
이래서 귀족과 평민 차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 대전쟁 같은 게 일어나서 싸그리 엎어지지 않는 한, 이 벽은 쉽사리 뚫리지 않을 터.
‘뇌기라는 걸 다룰 수 있는 것도 좋아.’
비록 날씨라는 제한이 걸리긴 했지만.
적어도 비가 오기만 한다면, 확연히 강한 상대도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왕.’
세계는 분명히 ‘마왕’이란 단어를 보여주었다.
즉.
마왕은 세계에 기록되어 있는 존재이며,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이것들이면 충분했다.
내가 그리 고생한 결과로 말이다.
‘뭐, 마력 흡수 아티팩트가 없는 건 아쉽지만.’
마력이 없어서 골골거리던 놈에게서 그걸 찾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만.
[……그래서.]
재의 영웅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재의 영웅이 물었다.
[너와 나의 조약. 어떻게 맺을 거지? 마력 서약서라도 있는 모양이지?]
마력 서약서.
육체와 혼이라는 경계선을 뛰어넘어, 그 자체가 품고 있는 ‘마력’을 걸고서 맺는 계약이다.
세계라는 절대적인 법칙이 직접 개입하여 맺는 계약인 만큼, 어기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절대적인 계약.
만약, 우리 둘이 계약을 맺는다면 필수적으로 마력 계약이 필요했다.
“없는데?”
[뭐?]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 같은 거지는 마력 서약서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하다.
마력 서약서는 계약을 맺는 조건 자체가 까다로울뿐더러, 서약서 자체도 만들기가 어려웠다.
‘뭐, 반드시 서로가 동의를 해야 하고, 수준도 맞아야 하고, 한 명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안 되고…….’
아무튼 복잡한 만큼 신용도 높은 서약서라 보면 되겠다.
[그럼.]
재의 영웅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날 가지고 논 건가?]
“아니? 더 쉬운 방법이 있잖아.”
[더 쉬운 방법?]
“네 칭호에 걸고 맹세해.”
[!!!]
내 말에 재의 영웅이 눈을 부릅떴다.
“네가 죽고 이름마저 잊혀진 지금, 네게 남은 건 오로지 네 칭호뿐. 거기에 걸면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없지.”
[…….]
“난 어차피 인간이야. 기껏해야 100년 정도 살고 죽지. 그 안에, 마왕과 고대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길 거 같아?”
[……]
“못 믿겠어? 뭐, 그럼 내 비밀이라도 말해 주지.”
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시한부야.”
[……뭐?]
“전투하면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내 말에 재의 영웅이 뒤늦게 이상함을 알아차린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너…….]
“난 마법을 못 써. 정확히는 쓰면 몸의 마력이 폭주해서 터져 죽지. 이게 언제 터질지도 몰라.”
이건 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드러낸다고 한들, 그가 내게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엄연한 갑.
또한, 그가 내 약점을 알아낸다고 한들 공격할 수 없는 상태이며.
이걸 거절한다면, 나는 그를 죽일 것이다.
“네가 나와 계약을 맺는다고 한들, 내가 자격을 채우기 전에 뒤질 확률이 높다 이거지.”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성공할 거니까.
[……너의 이름이 뭐지?]
“라온 리그벨토.”
[……세계에 맹세한다.]
재의 영웅의 목소리에 힘이 깃들었다.
평범한 힘이 아니었다.
세계에 깃들 정도로 강렬한 힘과 그동안 쌓아 온 업을 목소리에 담은 채 말했다.
[나, 영웅 ###는. ‘재의 영웅’의 칭호를 걸고서, 라온 리그벨토가 자격을 갖추었을 때. 내가 기억하는 마왕과 고대에 대한 정보를 건넬 것을 맹세한다.]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또한. 나는 이 계약이 끝날 때까지, 그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이를 어길 시.]
재의 영웅은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내뱉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잊혀진다.]
현재 그에 대한 존재를 제대로 기억하는 건 세계와 푸슈엘뿐이다.
푸슈엘은 강하다.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신을 찾겠다는 의념 하나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
하나, 그런 존재조차 세계의 시점에선 작은 존재 중 하나다.
다른 인간이 티끌에 불가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상당히 큰 수준이라 할 수 있으나.
결국에 ‘작다’라는 기준치를 벗어나진 못하니.
누군가 그의 존재를 기억한다는 것만으론, 이미 죽어 사라졌어야 할 망자를 남아 있을 순 없었다.
즉.
현재 재의 영웅이 존재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오로지 세계 덕분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세계에게 잊혀진다는 건.
영원한 소멸을 의미했다.
[이제 너도 ‘이름’에 걸고 맹세해라.]
“그래.”
나는 그리 답하면서도 잠시 고민했다.
‘과연 될까.’
나는 라온 리그벨토가 아니다.
비록 10년 동안 라온 리그벨토만을 플레이해 오며 연구해 왔으나.
결국에 본질적으로 나는 다른 인간이었다.
‘뭐, 해 보고 안 되면 상관없지.’
이미 재의 영웅은 칭호를 걸고 맹세했다.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는 얘기다.
그러니, 만일 되지 않더라도.
……조금 양심은 없어 보이지만, 맹세를 안 뱉으면 그만이다.
“세계에 맹세한다.”
울렁.
몸 안에 담긴 마력이 작게 일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어? 폭발한다? 폭발한다???’하며 협박하듯이 일렁거리는 게 아니었다.
마치 평범한 마법을 쓰듯이 잔잔히 일렁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나, 라온 리그벨토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재의 영웅의 등을 찌른 영웅들의 후손을 찾을 경우, 복수해 줄 것을 맹세한다.”
[……뭐?]
“만약 이를 어길 시. 나는 모든 마력을 잃는다.”
……화아아아아아악!
우리 둘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이름, 혹은 칭호를 걸고 하는 맹세는 마나 서약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공증으로 세운다.
이는 일방적인 노예 계약을 막기 위함이며.
세계가 계약을 승인했다는 건.
영웅이란 칭호와 내 마력, 이 둘이 동등하다고 본 것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내 칭호와 저놈의 마력이 동급이란 말이냐……!]
“이 정도는 돼야 망캐를 할 맛이 나지.”
희비가 교차하는 와중에도, 계약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완전히 맺어졌다.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나와 그 사이가 이어진 게 느껴졌다.
만일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다면, 그 즉시 심장을 파괴할 수도 있는 파괴적인 연결이었다.
“끝.”
난 만족하며 손을 탁탁 털었다.
이제 볼 일은 다 끝났다.
남은 건.
‘이 일을 완전히 마무리하는 것.’
방금까지야 재의 영웅을 죽이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제 그걸 이루었으니, 이 일을 정리하는 것만 남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알았고.’
반전 세계에서는 내가 완전히 압도했으나.
영웅의 무덤에 왔을 때부턴, 솔직히 시간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벌써부터 이런 위험에서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껴선 안 됐다.
‘정보가 필요해.’
그래서 그를 살려 둔 것이다.
다른 정보들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다.
하나, ‘마왕’과 ‘고대’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그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아이템도 필요해.’
쇠사슬과 팔찌, 이 두 가지만으론 전투가 힘들었다.
뱀파이어의 팔찌는 내 회복을 도와주는 역할로 끝이었고.
다른 아이템들은 급한 불을 끌 때나 쓸 법하지, 방금 같은 전투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천마갑주나 천마신검. 둘 다 얼른 얻어야겠어.’
다른 아이템보다 이게 메인이니까.
그러니, 내가 기억하는 흐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아, 맞다.”
[?]
“그 영웅들에 대한 정보 좀 줘 봐. 후손이라도 특징은 남아 있을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는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영웅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내 동료는 총 3명이었다. 한 명은 궁수, 한 명은 방패술사, 한 명은 검사였지.]
“종족은?”
[궁수는 엘프, 방패술사는 드워프, 검사는 인간이었지.]
엘프, 드워프, 인간…….
딱 마왕을 공략하러 가는 용사 동료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모두 기록했다.
‘내가 아는 놈들은 없네.’
뭐, 애초에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은 게임 진행 중에 몇 봤을뿐더러.
검을 쓰는 인간이 한두 명이어야지, 겨우 이걸로 추측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가 기억하는 정보를 모두 기록한 종이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이제 나 좀 밖으로 내보내 줘라.”
[……알아서 나가라.]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나 아기 마법사. 그딴 거 모름.
[……미친놈.]
재의 영웅은 헛웃음을 짓더니,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저곳이 부패되어 엉성한 시체였다.
앙상하게 마른 팔로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재가 모여들어 문의 형태를 이루고, 다른 곳으로 문을 잇는…….
파직!
하지만 재가 모이던 와중 흩어졌다.
재의 영웅은 어금니를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마력이 부족하냐? 좀 줘?”
그는 수치스러운 듯, 눈동자를 부릅떴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아이템 사용이 가능합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 팔찌도 돌아왔다.
난 팔찌를 찬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전달>
…쿠우우우우!
파도가 몰아치는 것처럼 마력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몸 곳곳이 비어 엉성해 보였건만.
순식간에 살이 차오르고, 뼈가 자라나며, 그나마 생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화했다.
‘언데드라 그런가. 이게 되네.’
원래 내 마력은 아무에게나 전달해 줄 수가 없다.
체내엔 두 가지의 기운이 공존할 수 없다.
같은 속성의 기운이라면 어느 정도 괜찮지만.
속성이 다른 경우엔 몸에서 충돌을 일으켜, 내 마력이 폭주하여 폭발하듯이 모여 폭발한다.
원래라면 재의 영웅 또한 불가능해야 했으나.
그는 흑마법사 같은 존재에 의해 되살아난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오로지 현실을 향한 증오와 분노라는 사념으로 이 세계에 묶여 있었으니.
즉, 속은 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따지자면 나와 비슷한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충분하다! 그만! 그만!]
난 팔찌를 벗었다.
벗자마자 강제로 풀린 마법에 의해 마력의 흐름이 멈춘다.
재의 영웅은 터져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목을 쓰다듬었다.
[무슨 농도가…….]
“약하게 준 거야. 그나마 내가 팔찌에 의존해야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미친놈이군.]
“원래 내가 좀 미쳤어. 그보다 빨리 문이나 열어.”
[…….]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정면으로 손을 뻗었다.
아까와 달리 조금의 불안전함도 없이 안정적으로 ‘문’을 만든다.
문 너머로 아벨라가 보였다.
“저 공간은 네가 만든 공간이냐?”
[……그렇다. 결국 나는 이 세계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존재. 나를 분리해 놓기 위한 1차 공간이지.]
“그럼 나가는 문도 네가 만들 수 있고?”
[그래.]
“그럼 비 언제 오는지 아냐?”
[?]
재의 영웅은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난 당당했다.
“네가 사는 곳인데 그것도 몰라? 아는 게 뭐야?”
[…….]
“됐고, 한 3일 안에 비가 최대한 오게 해 줬으면 좋겠어.”
[미친놈이냐?]
“새삼스럽게.”
비가 와야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다.
아니라면 움직이는 데에 꽤 골치 아플 테니까.
내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그는 빨리 나보고 떠나 버리라는 듯, 재로 내 등을 떠밀었다.
대충 질질 밀려 주는데, 재의 영웅이 내게 말했다.
[……그 팔찌. 수리하는 게 좋을 거다.]
“?”
[그 안에 깃든 벤시가 상당히 지쳐 보이더군. 적어도 며칠은 쉬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잘못하다간 그대로 작살 날 테니.]
“!”
작살난다니!
절대 안 돼!
‘천마신검을 얻을 때까진 절대 부러지면 안 돼.’
비록 보조 마법뿐이지만, 나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부러진다면 앞으로의 싸움에 차질이 생길뿐더러, 한 일주일 동안은 제사를 치러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넌 특별히 휴가다.’
나중에 아벨라한테 맡겨 놔야지.
“아니지. 야.”
[?]
“너도 언데드잖아. 얘 좀 회복시켜 줘라.”
[……개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