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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4화 (34/124)

제34화

내 마력은 내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마력 통제력이 지나치게 낮은 데다가.

몸 내부에 마법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기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이건 마법이 아니었다.

‘반전 세계를 발동시키는 주문.’

이에 가장 필요한 건 마력이다.

누군가가 소유한 마력이 세계에 녹아들고.

조금 더 진하고 강력한 마력에 세계가 매료된다면, 세계는 자신을 매료시킨 마력에 손을 들어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력의 소유권이다.

설령 내가 마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해도, 엄연히 소유권은 내게 있으며.

‘굳이 나를 죽이지 않고 납치해 온 이유도.’

내 몸에 담긴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화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유권을 가져와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세계의 통제 권한이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나, 역시나 여기엔 큰 난관이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뭐 하긴.”

그걸 알기에.

그는 내 시도를 보고도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통제권 뺏어 오는 중이지.”

[감히 네가? 이 세상을?]

양으로 따지자면 상위 마법사 10명이 필요하다.

단순히 상위 수준에 다다른 걸로는 부족하다.

완숙되어, 다음 경지를 노려보아도 충분한 수준의 실력자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양.

통제권을 뺏을 때는 마력에 담긴 농도와 양을 따지기 때문에, 사실상 뺏는 건 불가능했다.

설령 혼자서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강자가 온다고 한들.

그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버리면 그만이니까.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보구나. 이 세계가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를.]

재의 영웅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연이 겹쳤던, 상황이 좋게 적응했던, 본인의 실력을 통해 구상한 마법이었으니.

[자신과 정반대인 걸 삼키려면, 감히 삼킨 것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더욱더 거대해고 단단해야하지. 네 까짓게 이 세계를 삼킬 수 있을 것 같으냐?“

“뭐, 기껏해야 해변이지.”

[아니. 영지 그 자체다. 알겠느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에이드 영지는 한국 기준으로 서울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걸 삼키기 위해 준비한 거라면, 그보다 더 큰 수준일 터.

‘뭐, 사실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랬다면 진작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더 기다릴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여태껏 조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

해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드문드문 문을 열거나 자신의 정체를 알고 오는 이들을 끌어들여 에너지를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문을 닫아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피했을 터.

그렇기에 푸슈엘은 3일이란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3일 이내에 여기 문은 완전히 닫힐 예정이었으니.

‘내가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뭐, 일단 제압부터 하고 보자고.

부그르르르으으……!

큰 진동과 함께, 귓가에 반전 세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마력을 더 내놔.

주지 않는다면 강제로 신체에서 빨아 가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인다.

아주 맛있던 모양이지?

“그래.”

난 기꺼이 손을 정면으로 뻗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건만.

마치 뭔가가 있듯이, 이질감이 느껴졌고.

무언가가 내 손을 덥석 붙잡는 게 느껴졌다.

“얼마든지 처먹어.”

동시에.

손에서 쇠사슬을 놓아 버렸다.

쿠르으으으으으……!!!

콰르르르으으으르!

마력이 차오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마치 댐이 뚫려 쏟아지는 물처럼.

쇠사슬로 빨려 들어가던 마력이, 내 몸 안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귀에 환청이 들리고, 심장이 당장 멈추라는 듯이 마구잡이로 외친다.

두 눈에 피가 쏠리고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버텨.’

버텨야 한다.

반드시 버텨야 한다.

몸은 터지지 않을 것이다. 몸이 터지는 이유는 마력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몸에 머무르며,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이지만.

터지기 직전, 다른 통로가 열리며 마력이 빠져나갈 것이니까.

지금 여기서 중요한 건, 나를 향한 믿음과 정신력.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다.

“크흐으으으으…….”

……쑤우우욱!

어디론가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세계가.

내 마력을 처먹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 이제 네 목숨도 곧 끝이구나.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죽겠지! 뭐, 좋다! 네 목숨은 나의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

내 머리 위에서 재의 영웅이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시야가 빙빙 돈다.

목구멍을 타고 쇠 맛이 울컥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커허어억.”

검게 죽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토해낸 피엔 내장 찌꺼기가 섞여 있었고.

입뿐만 아니라 코와 입에서도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진짜…… 개망캐…….’

다른 캐릭터였으면 더 쉽게 잡았을 텐데.

이게 대체 무슨 꼬라지야?

[신체를 재생합니다!]

“하아…….”

만약 뱀파이어의 팔찌가 없었다면.

입과 코, 눈에서만 쏟아 내는 게 아니라, 온몸에서 피를 쏟아 냈을 것이다.

‘그나마 마력이 폭주 안 하는 게 다행이지.’

[마력 폭주 : 90%]

다행히 이 정도면 상정 범위 이내다.

이 부분은 조금 운이 필요한 요소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 예상대로 모든 게 흘러갔다.

“쿨럭.”

이 피는 좀 아닌 것 같지만.

나를 본 재의 영웅은 낄낄 웃었다.

[하하! 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탐낸 자의 최후다.]

그는 인심 쓰듯 말했다.

[지금 당장 내게 소유권을 넘겨라. 넘긴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단순히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다.

마력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미친 듯이 흔들며, 코와 입에서 피를 쏟아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숨만 쉬어도 차오르는 마력으로 인해 억지로 온몸이 부풀어.

내부의 장기를 뒤흔들고.

억지로 채워진 물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2차로 장기를 흔드는 기분이었으니까.

쇠사슬은 내 목숨을 지키는 데에 일조했지만.

내 마력은 내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본능대로 다른 마력으로 가득찬 방을 까져나가고 싶어할 뿐.

“하아…… 하아…… 좆까.”

하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이게 옳은 길이다.

몇 번이고 리타이어. 이미 사라진 수많은 목숨으로 알아낸 정보다.

겨우 저런 놈에게 바치기엔.

내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뭐, 좋다!]

재의 영웅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나중에 오는 절망감이 크겠지. 얼마든지 해 보아라. 죽기 전에 내게 매달리면 살려는 줄 테니!]

30분이 지나고.

[……하하! 그래, 그 정도 양은 되어야 뻔뻔하게 버틸 수 있겠지!]

1시간이 지나고.

[……어째서. 계속 빨려 들어가는 거지?]

진작에 미라가 되어야 할 내가 멀쩡하자.

재의 영웅이 드디어 이상함을 깨달았다.

……꾸르르륵.

“이제 슬슬 너도 배부르지?”

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떠 있던 붉은 달, 레드문이.

어느새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슬슬 인정해라. 얼마든지 더 처먹여 줄 테니까.”

내 말에.

반전 세계가 한 번 뒤흔들림과 동시에.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

재의 영웅이 기함하며 내게 달려들었지만.

쏟아지는 별 무리는 이미 내 몸을 휘감은 상태였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기분이다.

신기한 건, 온갖 곳에서 눈이 부시지 않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

‘아름답다.’

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마치, 처음으로 떠다니는 은하수를 봤을 때 같다.

그뿐이랴?

바로 옆에서도 은하수가 떠다니며.

당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너는…….

반전 세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언제나 그렇듯.

반전 세계의 목소리는 완전한 언어가 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반전 세계의 소유권을 강탈하였습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 근처를 휘감은 별 무리가 내 몸에 흡수된다.

온몸에 힘이 깃든다.

뒤집히던 장기는 본래 자리를 되찾았고, 내 몸 또한 찌그러질 것 같은 고통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회수.’

쇠사슬을 회수하여 70%로 조정한 후.

난 달려드는 재의 영웅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천벌.”

쿠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사정없이 재의 영웅을 후려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그는 나와 달리 벼락을 막아낼 수단이 없었다.

떨어진 벼락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탄 채 추락해 버렸다.

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씨익 웃었다.

“이제야 좀 마법사 같네.”

벼락 한 방에 갈 정도는 아닌 듯.

다시 날아오른 그가 이를 뿌득뿌득 갈며 눈에 띄게 살기를 뿜어냈다.

[날…… 조롱한 거냐……?!]

“뭔 조롱? 아, 설마 이렇게 싸울 수 있는데, 너 하나 골려 먹으려고 다르게 싸웠냐고?”

난 헛웃음을 지었다.

뭐?

일부러 이렇게 싸워?

“넌 모를걸.”

나도 이런 고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전혀 쓸 수가 없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마법을 쓸 수 있는 기분을.”

[개소리를……!]

“뭐, 넌 평생 이해 못 할 거다.”

라온 리그벨토를 직접 플레이하는 유저가 되든가.

혹은 라온 리그벨토, 그 자체가 되든가.

그러지 않고선 절대로 이 고통과 고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뭐, 애초에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난 다시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니까 좀 죽어라.”

쿠르르르르릉!

[크으으으으으!]

벼락이 그에게 정확히 내리꽂혔다.

하지만 나름대로 대처 방법을 고안한 듯.

마력으로 우산을 만들어 내어 벼락을 막아냈다.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도록 우산의 손잡이 부분이 길어지더니 아예 피뢰침처럼 박힌다.

[하…… 하하……! 내가 이거 하나 대처 못 할 것 같으냐!]

팟!

동시에 그는 자신의 머리 위로 수많은 우산을 만들어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나까지 피해가 올 수 있으니 벼락을 못 쓸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하지만 이미 예상한 패턴이다.

난 자리에 쭈그려 앉으며 두 손으로 땅을 붙잡았다.

“진심 밥상 뒤집기.”

동시에.

땅거죽이 뒤집혔다.

[!!!!!!]

쪼개진 땅덩어리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날아오던 재의 영웅이 돌덩이에 얻어맞아 뒤로 튕겨 나가는 게 보인다.

난 중력을 거스르고 떠오르는 덩어리들을 밟고 그에게 달려갔다.

[이익!]

중심을 잃고 거꾸로 뒤집힌 그가 이를 악물고 내게 양손을 뻗었다.

손바닥 중심에 기운이 모여 들더니 곧 구(球)의 형태를 이룬다.

그건 마치 재가 뭉쳐져 만들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바스라져라!]

그의 외침과 함께, 구가 날 향해 쏘아졌다.

난 허공으로 손을 휘저었다.

조각난 땅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재의 구와 충돌하여 함께 사라졌다.

[어떻게!]

꽤 회심의 일격이었던 듯, 그가 경악한 듯 외쳤다.

난 무시하고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뻗었다.

재의 영웅 또한 이를 악문 채 주먹을 뻗는다.

난 그의 주먹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30분 지났다.”

[마력 팔찌를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빛줄기]

번-쩍!

[크아아아악!]

눈앞에서 터진 빛에 그가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에 시야가 멀어 버린 것이다.

재의 영웅은 급히 나와 거리를 벌렸으나.

이미 내 공간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나와 쉽게 멀어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으으…….]

겨우 시력을 회복한 재의 영웅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눈을 떴다.

난 마치 원숭이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

[크아아아! 날 모욕하지 마라!!!]

그가 분노하며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정도에 내가 맞아 줄 리가.

난 가볍게 피하고, 목을 쇠사슬로 휘감았다.

[크으으으으!]

한순간에 그의 형체가 흐려지며 내 등 뒤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또한 예상하고 있던 바.

난 손뼉을 쳤다.

“박수.”

동시에 흙이 손의 형체를 이루어 그의 몸을 양쪽에서 후려갈겼다.

짜아아아악!

[커헉!]

애초에 반전 세계는 나처럼 상대를 압도적으로 가지고 놀아야 정상이었다.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그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고.

나처럼 모든 루트를 외우지 않는 한.

웬만한 고인물조차 깨기 어려워하는 것.

괜히 유저 절단기라는 별명으로 중반부 스토리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반드시’ 죽을 뻔한 위기를 건너야만 하니 더더욱이 그랬다.

그런 게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미 그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려질 운명이었다.

‘여기서 바로 죽일 수 있지만.’

사실 죽으라고 말하긴 했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그의 숨겨진 페이즈.

당연히 게임들이 그렇듯, 숨겨진 패턴이 드러난 보스를 잡으면 더 좋은 보상을 준다.

‘퓨수엘도 그걸 생각하고 말했겠지.’

푸슈엘은 좀 고약할 뿐이지, 거짓말을 하는 사내는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내게 도움이 되는 보상이 될 터.

난 그를 도발했다.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니? 뭐, 이대로 죽게? 죽을 거면 그러든가.”

이 루트부터는 모른다.

이건 반전 세계에 등장하는 보스마다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 또한 ‘틀’이라는 게 있어, 반응을 끌어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으득……!]

이를 간 재의 영웅이 나를 노려보았지만.

[두고…… 보자……!]

그는 죽고자 달려들기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나기를 택했다.

촤악!

반전 세계가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강제로 열린 통로.

반전 세계에서 나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장소.

[다음에 반드시 만나면 너를 찢어 버릴……!]

“찾았다.”

난 그의 말을 끊고.

새로 열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반전 세계 해제.”

[!!!!!]

반전 세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현재 열린 입구는 본래 있던 곳이 아닌.

재의 영웅이 힘을 다시 키우고자 한 비밀 장소였으니.

[이…… 미친……!]

[‘영웅의 무덤’에 입장하였습니다.]

덕분에 나는 그가 숨어들려던 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강제로 해제된 반전 세계가 아예 흩어져 버린 게 느껴졌지만.

뭐, 어차피 내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와 달리 쿨하지 못한 그가 바락 외쳤다.

[너…… 반전 세계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알지.”

[그런 주제에, 그 귀한 걸 그리 쉽게 풀어 버려?! 넌 제정신이 아니야!]

“글쎄. 귀한 건 모르겠는데.”

난 히죽 웃었다.

“어차피 수단일 뿐인데. 버릴 땐 버려야지. 안 그래, 영웅 씨?”

[이…… 미친…….]

“뭐, 이렇게 쿨하지 못하니 잊힌 거겠지만.”

[아니다!]

그의 예민한 구석을 건드린 듯.

재의 영웅은 분노하며 내게 외쳤다.

[내가 잊혀진 건, 내 동료였던 다른 영웅들이 날 배신했기 때문이다!]

‘오. 배신 스토리인가?’

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다른 영웅들이라.

혹여 내가 아는 영웅들이라면 내가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몰랐던 영웅이라면, 혹시 모를 위기로부터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다.

이건 상당한 중요한 정보.

하지만.

그의 이어진 말에.

[그놈들은 내 업을 탐냈어! 마왕을 토벌한 내 최초의 업을! 영웅을 넘어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내 업적을!!!]

“뭔 개소리야?”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마왕 따위 없었는데?”

[……뭐?]

재의 영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스토리에도.

그 어떤 역사책에도.

‘마왕’이란 단어는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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