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하늘이 완전히 어둑해지고.
안전을 위해서 돌아다니는 마법사를 피해 몸을 숨긴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도 못 봤다.’
노을이 지는 바다의 모습이 유독 이뻐서인지 몰라도.
사람이 없는 곳부터 시작해서 원래 인기가 많던 곳까지 사람이 넘쳐 났다.
하나하나 둘러보며, 또 사람 한 명 한 명 훑어보며 살펴봤지만.
은거 영웅이라 느껴질 만한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건가?’
그런 추측도 해서 슬쩍 손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열심히 움직여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력을 흡수하는 이 쇠사슬의 특성상.
뭔갈 숨겨 두었다고 한들.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메시지라도 하나 띄우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즉.
나도, 다른 유저들도 전혀 중요하다 생각한 적이 없는 곳에 있다는 것.
혹은.
‘아예 오늘 없다는 것.’
푸슈엘이 3일이란 시간을 쿡 찍어주었으니.
그 안에는 이 영지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운이 안 좋아서 못 보거나 스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둘러보고 갈까.’
조금 있으면 돌아다니던 마법사도 퇴근하니 움직이는 데에는 편했지만.
그 시간대가 되면 아예 사람이 없어지며.
온갖 곳에 경계 마법이 작동하기 때문에.
일정 장소로 가는 게 아니라, 여러 곳을 불규칙적으로 둘러보아야 하는 입장으로선. 움직이기 상당히 까다로운 시간대였다.
‘……아니지. 이 시간대면 오히려 찾기 쉬우려나?’
잘 모르겠네.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팔락!
난 접어 뒀던 지도를 다시 펼쳤다.
마법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 것이기에 빛 한 줌 없었지만.
다행히 어둠 속에서 열심히 빛을 내는 반딧불이 같은 곤충이 몇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라락-
타이밍 좋게 곤충 한 마리가 지도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
스치듯이 보인 무언가에.
난 급히 날아가려는 곤충을 붙잡아 지도 아래에 가져다 댔다.
장갑 너머로 꿈틀거리는 벌레의 감촉이 느껴졌지만, 그걸 무시하고 눈을 좁히며 지도에 집중하자.
‘……보인다…….’
지도 위로 희미하게 빛나는 선들이 보였다.
아까 밝을 때 봤음에도 이걸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오로지 지도 아래에서 빛을 비춰야만 보이게끔 특이한 장치를 해 놓았다는 것.
‘망할 영감이.’
좀 미리 알려 줄 것이지.
뭐, 그래도 없는 거보단 낫나.
난 썩은 미소를 지으며 지도 위에 그려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선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희미하거나 아예 없는 곳을 손가락으로 이어 보자.
‘……범고래?’
조금 다르긴 했지만, 분명히 내 기억 속에 있는 범고래와 비슷한 모습이 나왔다.
특히나 범고래의 ‘코’ 쪽에는 강조하듯이 동그라미로 빛까지 나고 있었으니.
아마도 여기가 영웅이 있는 장소인 것 같았다.
‘여기인가?’
잠만.
이 장소는…….
‘스톤 서클?’
여기가 왜 나와?
아니, 그보다.
여긴 지금 외부인은 출입이 아예 불가능할 텐데?
‘은거한 영웅이 아닌가?’
처음엔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는 영웅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거라면…….
아예 던전처럼 개별적인 공간을 만들어 몸을 숨긴 영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봉인된 걸 수도 있고.’
푸슈엘이 영웅을 ‘이름을 남기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라 칭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양반이 말하는 이름들이 모두 신용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내가 ‘세계 최고 얼짱 라온’이라고 했다면.
푸슈엘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나를 그리 소개하고 다닐 테니까.
‘봉인이 된 게 아니라 지금 몰래 숨어든 거라면…….’
선한 성향이 아닐 수도 있겠다.
만나자마자 바로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여러 추측이 머릿속을 돌아다녔지만.
어느 하나 확신이 드는 건 없었다.
‘뭐든 미리 대처법을 준비해 둬야겠어.’
그게 내 방식이었으니까.
‘아벨라는 알아서 돌아갔겠지.’
평범한 하녀인 그녀는 진작에 마법사한테 들켰을 테니.
‘나중에 보자.’
속으로 미안함을 전달한 채.
난 다가오는 마법사를 느끼며 후드를 눌러썼다.
마법사 주제에 암살자인 양 숨어드는 모습이 웃기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했으니까.
* * *
바다에 비친 달이 완전히 차오르고.
밤하늘의 어둠이 별들에 의해 조금씩 밝아질 시간 때 즈음.
혹여 모를 일을 대비해 돌아다니던 마법사들이 모두 퇴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스톤 서클이 있는 곳으로 쉽게 숨어들 수 있었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2명은 있어야 간신히 닿을 것 같은 높이의 돌벽에 등을 기댔다.
‘이제 문제는 여기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안에 들어가는 거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했다시피, 라온 리그벨토의 신체 능력치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이런 돌벽 하나쯤은 충분히 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자칫하다간 추락 방지 마법진이 망가진단 말이지.’
만약 싸우게 되든, 혹은 실수로든.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의 쇠사슬이 마법진에 닿게 된다면.
자주 손을 봐주어야 할 만큼 내구도가 약한 추락 방지 마법진은 망가질 게 분명했다.
‘안 닿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혹여 모를 일을 대비해서라도 쇠사슬을 조금 풀어놔야 하는데.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진에 닿을 수도 있고.
그러면 마법진이 망가져 버릴 수도 있었다.
‘리그벨토 영지였다면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괜히 사고를 쳤다간 가주의 과도한 관심을 살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아무런 문제없이, 원하는 것만 얻얻어가는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그때.
“……도련님.”
“!!!!”
뜨거운 숨결이 귀를 간지럽히는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몸을 휙 돌렸다.
대체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나처럼 로브를 눌러쓰고 몰래 몸을 숨기고 있던 아벨라가 날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 왜 그러세요?”
“너… 왜 여기에 있어?”
“도련님 몰래 따라왔는데…….”
아니, 대체 언제부터?
‘누가 암살자로 전직하는 애 아니랄까 봐…….’
암살자로 전직하자마자 날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아이이지만.
설마 말도 안 걸고 조용히 따라와서 귀에다 속삭일 줄은 몰랐다.
평범한 하녀라는 건 취소다.
어느 집 평범한 하녀가 이래?
“몰래 숨어들지 마. 속삭이지도 마.”
“하지만…… 크게 말하면 들키는데…….”
“눈빛으로 말해.”
내 말에 아벨라는 왠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잘했…….”
칭찬해주려던 순간.
타닥!
어디선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급히 아벨라의 어깨를 누르고 몸을 웅크리며 인기척을 죽인 뒤 위를 바라본다.
달빛을 제외하면 빛 한 줌 없는 어둠 속에서.
암살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두 인영을 발견했다.
둘은 내 은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옆의 벽을 밟고 올라가더니 단숨에 벽을 넘어갔다.
휙!
‘……뭐야. 도둑?’
평범한 도둑은 아닌 거 같은데.
근처에 마법사도 없고, 방비 마법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노렸다.
처음부터 계획해 둔 범죄이자, 상당한 실력자라는 뜻.
‘설마 선수 치려고?’
그건 안 되지.
사고고 뭐고, 얻으려는 보상이 이상한 놈들에게 넘어가면 그게 더 골치 아프다.
나도 바로 벽을 타고 넘어가려다가, 아벨라가 걸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말대로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할 수 있어요!’
……에라 모르겠다.
할 수 있겠지, 뭐!
난 그녀를 믿으며 벽을 타고 올라 단숨에 위로 착지했다.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몰래 숨어든 이들은 내게 뒤통수를 빤히 보이고 있었다.
난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저것들이 여기에 왜?’
대체 누가 디자인한 건지 알 수 없는 저 특유의 디자인.
모자 위에 세로로 그어진 정체불명의 흰 선 세 개.
그리고 중앙에 새겨진 눈동자 모양.
저 디자인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상대해 봤던 놈들이니까.
‘신자(信者)들.’
쉽게 말해 이교도들이다.
하늘을 추락시키고 자기 자신이 하늘이 되고자 하는.
스스로를 ‘하늘’의 ‘마’라 부르며, 신이 되고자 하는 이를.
신처럼 모시는 머저리들.
이들이 모인 집단을 천마신교라 칭했다.
‘대체 왜 판타지 세계관에 천마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샌 퓨전이 인기라 그런가, 아주 별 잡다한 게 나온다.
하기야.
‘한국’을 배경으로 한 던전에 한국의 요괴인 ‘허주’가 보스인 것보다 이상하지 않다만은.
‘그보다 저놈들이 왜 여기에?’
현재 천마라 불리는 존재는 모습을 감춘 상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애초에, 내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아이템 중 두 개가 바로 천마의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천마 신검과 천마 로브.’
만약 천마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었다면 난 절대 이 아이템들을 얻지 못했을 테지만.
현재 천마는 실종 상태.
물론 방해꾼들은 있었다.
‘천마신교의 신자들.’
저 두 물건은 신자들이 직접 찾고자 추적하던 물건들이었고.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나와 충돌했었다.
스토리 중반부부턴 머리가 아픈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었지.
‘그나마 빙의 당하기 전에는 최대한 충돌하지 않는 방향이 가능했지만…….’
모든 게 꼬인 지금에선 그게 먹힐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잘 움직이지 않던 저놈들이 나선다는 건.
‘천마가 나왔을 수도 있다.’
주인공들도 추가됐는데 천마라고 추가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중간 보스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픈데, 천마라니…….
아 머리 터지겠네.
난 머리를 양옆으로 휙휙 흔들었다가, 다시 저들을 응시했다.
‘……일단 지금부터.’
이 이후는 나중에 파악해도 늦지 않다.
난 눈을 좁히고 저 둘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실력과 별개로, 이런 짓은 처음인지.
근처에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채 서로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가 확실하지?”
“맞아. 내 귀에 확실히 들리고 있어.”
“그럼 바로 실행해.”
“오케이. 작전명은…… ‘재의 영웅’ 회수 작전이다.”
“으. 구려.”
영웅이란 단어에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저들은 이미.
‘이미 알고 있어?’
영웅에 대해서 말이다.
심지어 영웅이 이곳에 숨어 있다, 라는 가설이 아닌 ‘확신’을 품고 있었으니.
대체 어떻게?
‘심문이라도 해야 하나?’
그때.
[시끄럽다.]
뇌에 각인이 박히는 듯한 통증과 함께.
귀에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파앗!
동시에 빛이 터져 나와 세상이 허옇게 물들었다.
뒤늦게 눈을 감았으나.
이미 침투한 빛은 내 두 눈을 잠시 멀게 만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라? 여긴?”
이상한 장소에 떨어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던 깨끗한 검은 밤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 태양이 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아니,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이건…….’
난 곧바로 이 공간이 뭔지 알아차리고.
옆에 있는 아벨라의 눈을 가렸다.
“와…… 태양 이쁘다…….”
“……보지 마.”
“네?”
“눈 가려.”
저건 태양이 아니다.
푸른 하늘도, 하늘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진짜가 아니다.
모든 게 환상이며.
저 발아래에 나풀거리는 나뭇잎은.
‘미친…….’
당장이라도 목을 노릴 수 있는 비수였다.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말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드디어 진입에 성공했어!”
“다른 선배도 하지 못한 일이야! 이거라면 우리도 승급할 수 있어!”
“이 영웅은 의외로 선한 성향인 거 같은데? 우릴 들여보내 준 거 보면?”
저 병신들은 아주 신나서 떠들고 있다.
‘선하기는 개뿔. 성격 존나 더러운 거 같은데.’
아주 싹 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만?
그 순간.
[이번에 온 놈들은 머저리인가?]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시끄럽다니까. 말을 참 안 듣네.]
……키기익!
발아래의 식물이 꿈틀거렸다.
아주 순간적이지만.
나뭇잎 겉면이 빼곡히 날카로운 칼날로 가득 차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촤르르륵!
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손에 쥐고 있던 쇠사슬을 손에서 놓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나와 달리 현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벨라의 손목을 잡아 품으로 끌어안았다.
“아앗?!”
키릭!
방금까지 아벨라가 있던 자리의 식물이 허무한 듯 꿈틀거리고.
내 근처의 식물은, 바닥에 닿은 쇠사슬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다행히 빠르게 대처해서 나는 안전할 수 있었으나.
“끄아아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아악! 바, 발이! 내 발이!”
피하지 못한 듯한 남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로브를 쓴 두 놈이 발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 보였다.
대체 언제 나타난 건지 모를, 마치 ‘재’를 연상시키는 회색빛의 형체가 킥킥 웃었다.
[아, 이제야 좀 조용하네.]
“…….”
“…….”
한순간에 침묵이 이 공간을 지배했다.
띠링.
그런 침묵을 깨듯.
내 귓가에 메시지 알림음이 들려왔다.
[재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