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화 (30/124)

제30화

탁.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온 노인의 모습에 브루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할머니!”

현 에이드 가문의 가주.

지금은 후계자인 브루아이에게 권한 대부분을 인계하고 뒷방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으나.

웬일로 뒷방에서 벗어나 브루아이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반갑게 달려든 브루아이의 이마를 쿡 찔렀다.

“예끼 이놈아. 귀청 떨어지겄다. 그리고 할머니가 아니라 가주님이라 부르라했제?”

“에이이- 그래도 사적인 자린데 어때요? 얼른 여기에 앉아요!”

브루아이는 후계자로서의 표정이 아닌, 손녀로서의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부축받아 소파에 앉은 가주의 백탁 낀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보다. 아주 재밌는 소문이 돌더구나.”

“앗. 할머니한테도 갔어요?”

“아무리 네가 전반적인 부분을 관리한다고 해도 아직 가주는 이 할미다. 내가 그거 하나 못 듣겠느냐?”

“헤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던 브루아이를 바라보던 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그 아이를 잘 주시하거라.”

“잘 주시하라뇨?”

“이 할미와 같은 느낌이 나.”

“할머니와 같은……?”

그 말에 방금까지만 해도 헤헤거리던 브루아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엔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가하나.

그녀는 젊은 시절, 방계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가주의 자리를 꿰찬 업적을 이루었으니.

‘아예 귀족으로서 교육을 받으신 적도 없다고 하셨지.’

사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전혀 귀족처럼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말투가 그녀가 직계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젊은 시절에는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말투를 철저히 통제했지만.

지금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굳이 말투를 통제하지 않으며 자연스레 옛 말투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도 눈 하난 확실하셔.’

에이드 가문이 다른 백작가를 제치고,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모르는 ‘노예 시장’을 관리할 적임자로 선택받을 수 있던 이유도.

에이드 영지가 손꼽히는 관광 명소로 뽑힐 수 있던 이유도.

미래엔 공작으로 작위가 상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모두 현 가주, 에이드 가주 덕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보시기엔…….’

라온 리그벨토에게서 ‘직계’와 ‘방계’라는 아득한 차이를 뛰어넘고.

가주라는 자리를 차지했을 만큼, 역사에 전례없는 일을 이룰 수 있을 만한.

그런 가능성이 보인다는 건가?

하지만.

‘그가 벨 리그벨토, 그 괴물을 뛰어넘는다고……?’

브루아이의 상상력으론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라온 리그벨토의 재능이 뛰어나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들.

현 최강의 후계자인 벨 리그벨토는 ‘언령’을 사용할 수 있으며.

대마법사의 경지를 바라보는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러니 대마법사 직전에 다다랐을 그를 뛰어넘는다는 건.

현 리그벨토 가주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전에 제거될 게 뻔했다.

후계자 경쟁은 길어봤자 5년을 넘지 않으리라고 추정되며.

그 안에 어떻게든 ‘후계자’가 정해질 테니까.

“내 말을 전혀 못 믿는 표정이로구나.”

“……사실 믿음이 전혀 안 가서요. 할머니도 보셨잖아요. 그 괴물을.”

“고럼. 나도 봤제. 아마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봤을게다.”

그녀는 젊은 시절, 직접 현 리그벨토 가주를 본 적이 있었고.

늙고 난 이후에도.

친분 있는 귀족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온 벨 리그벨토과 대면한 적이 있었다.

-벨 리그벨토라고 합니다. 에이드 가문의 가주를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후로도 여러 ‘계약’이나 ‘관계’ 발전을 위해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었으니.

공식 후계자가 되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만난 적이 없는 브루아이와 비교한다면.

훨씬 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 아마도 현 세대에서 제일 강한 아이일 게야.”

유성의 세대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재능이 차고 넘치는 아이들로 가득한 세대.

이런 치열한 세대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보이는 벨 리그벨토.

아마, 큰 이변이 없다면 그는 공식 후계자가 되고 현 가문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맞아요……. 할머니도 인정하시잖아요. 그런데 라온 리그벨토가 할머니랑 비슷한 느낌이 난다니.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면, 그냥 느낌만 난다는 건가요?”

“그거야 이 할미도 모르지. 난 예언가가 아니니까.”

가주의 흐릿한 눈이 라온의 사진을 바라본다.

“하지만 말이다.”

“네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드는구나. 이 아이가 아비와 똑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네?”

브루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라온 리그벨토와, 현 가주가.

닮았다고?

‘……하나도 안 닮았는데?’

브루아이는 정식 후계자인 만큼, 직접 리그벨토 가주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비록 대마법사란 경지에 오른 위대한 이가 뿜어내는 압박감에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라온이 가주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 정돈 알 수 있었다.

“표정 관리가 아직도 미숙하구나, 으잉 쯧쯧. 아주 얼굴에 다 적어놨어.”

“앗.”

“내가 닮았다고 한 건 생김새 따위가 아니야. 마인드지. 그거 아니? 가주는 지금처럼 냉혈한이 아니었단다.”

“네?”

“오히려 저 아이처럼 타오르는 불꽃 같았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 가주는, 초창기엔 주목받는 후계자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태어났을 때부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채 후계자의 자리를 꿰찼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라온처럼 불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존재감도, 힘도 없다고 알려진 후계순위 최하위.

-허약하리라 생각했던 놈이, 설마 내 목을 물어뜯을 줄이야. 결국 놈은 범이었던 게지.

-범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납지 않나요?

-괴물이라고 하면 찾아올까 봐 무섭거든. 가주. 내 말을 명심해. 그놈은 괴물이야. 이름을 기억하지 마. 괴물은 자기를 아는 놈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보거든.

오로지, 위의 형제들을 물어뜯기 좋은 위치에 있기 위해서.

자신의 힘과 지식을 숨긴 채,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모두가 방심한 순간, 발톱을 드러내어 사정없이 형제들을 불태워버렸으니.

이후 잿더미 위에 올라선 그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최강’이란 호칭을 손에 쥐었다.

‘그런 점이 닮았어.’

라온 리그벨토에 대한 정보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쓰레기’라 폄하하기도 아까울 정도였으나.

지금은 마치, 현 가주처럼 천천히 웅크렸던 몸을 부풀리고.

자신의 적을 모두 불사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힘도 충분할 테지.’

-분명히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은신술 하나만큼은 소드마스터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자신의 수하를.

분명히 느끼고 바라보고 있었으니.

‘재미있겠어.’

어쩌면.

‘가주’이자, ‘후계자’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 이들과 달리.

라온 리그벨토는 아직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 마지막 여흥이로구나.’

가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아무래도.

신께선 고생한 자신에게 보상을 내려주려는 모양이었다.

* * *

쏴아아아-

“와아아아! 바다에요, 바다! 도련님! 저기 봐요!”

“나도 보여.”

“꺄악! 귀여워!”

나와 아벨라는 해변가가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아있었다.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다.

모래 시장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노는 아이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부부와.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우리처럼 노을이 진 하늘을 구경하는 연인들까지.

‘평화롭네.’

여기까지 본다면 지구와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괜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잡혔을 테지만.

여긴 지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이.

내게 익숙한 모습의 해양 생물들이 해변가를 뒹굴며 인간들과 어울리고 있던 덕분에.

쓸데없는 상념이 기분을 해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동물들이 진짜 있으니까 신기하네.’

더군다나 대부분 지구의 생물을 닮아있었다.

바다표범, 물범, 펭귄…….

물론 이름은 다르지만, 그거까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냥 대충 보이는 대로 부르면 되지 뭐.

‘나도 가서 만져보고 싶긴 하네.’

게임에서 만져보긴 했지만, 그거와 실제는 또 다를 테니까.

“으으, 나도 만지고 싶다……!”

아벨라는 옆에서 손이 간질간질한 듯 통통 튀었다.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려다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별 의미 없는 질문일 것 같아서 참았다.

‘뭐, 애초에 순한 아이들뿐이니까.’

실제로 저 바다에는 사나운 몬스터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르는 그물망이 크게 처져 있었다.

이는 고위 마법사가 직접 관리할 만큼 중요한 자원이었고.

덕분에 보장된 안전성은.

이 해변가가 유명한 관광 명소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였다.

‘저쪽에 있는 스톤서클도 한몫했지.’

훌라우프마냥 속이 빈 원 형태를 한 돌벽.

상당한 높이로 인해 나는 아슬아슬한 느낌, 바다가 훤히 보이는 위치, 아래에 깔린 안전장치까지.

전생의 놀이기구처럼.

안전이 보장된 스릴과 재미, 그리고 보기 힘든 풍경은.

이 영지를 관광 명소로 만들어 주었으니.

‘영웅의 성향도 비슷하려나?’

보통 은거한 영웅들은 자기 성향과 비슷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안전’이 보장되고 나름의 ‘평화’를 유지하는 곳인만큼.

아마도, 선한 성향의 영웅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내게 큰 도움이 될 텐데.’

선한 성향의 영웅에게선 협조를 구해내기도 쉽고.

영웅이 쌓은 업으로부터 비롯된 마나는.

진정 효과를 가지고 있어, 나 같은 개복치에게 큰 도움을 주었으니까.

“이만 슬슬 가자.”

“앗! 으으… 네에…….”

해가 지고 있다.

만약 은거한 사람이라면, 밤까지 남아있을 경우는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좀 놀지 뭐.’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볼일이 끝날 테니까.

“대신에! 저거 하나만 사올게요!”

난 아벨라가 가리킨 곳을 쳐다 보았다.

바다 생물을 본뜻 장식품을 파는 곳이었다.

꽤나 가격대가 높았지만.

“사.”

어차피 내 돈이 아니기에.

쿨하게 승낙했다.

“앗싸!”

아벨라는 히히 웃으며 장식품을 사왔다.

두 개를.

그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도련님은 이거!”

“…….”

난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반짝이는 두 눈을 보고 그냥 받기도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벨라가 가진 동물은 하프 물범을 닮아 서글서글한 인상이었고.

내가 가진 건, 뭐든 물어뜯을 것처럼 사납게 생겼다는 것을.

……지금 뭐냐, 이거?

“……지금 이거 일부러 준 거지?”

“……아, 아닌데요?”

“난 거짓말 싫어하는데.”

“사실 맞아요…….”

우리 애 얼굴이 어때서!

잘생기기만 하구만!

“…….”

음, 좀 사납게 생긴 거 같기도 하고?

“…됐고 가자.”

“삐진 거 아니죠?”

“시끄러워.”

내가 애냐?

“넌 저기로 가.”

난 말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가리켰다.

“으음… 조금 삐지신 거 같은데….”

혹여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잠시 내 기분을 살피던 그녀는.

이내 고구마 꼬치 하나를 사오더니, 내 손에 쥐여주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나중에 봬요~!”

‘아니 뭔…….’

애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난 헛웃음을 지은 채로 컨셉대로 버릴까 하다가.

이내 참고 입에 물었다.

버리긴 아까우니까.

출발하기 전, 지도를 펼쳐 위치를 한 번 더 살폈다.

‘어디로 가야 나오려나…….’

스톤 서클 쪽은 갈 필요가 없겠지.

거긴 특이한 모양과 뭔가를 숨기기 좋은 형태로 몇 번이고 조사를 해봤지만.

특이한 물건은커녕, 특이한 사람조차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곳부터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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