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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5화 (25/124)

제25화

절그럭! 캉! 카그르!

아무리 쇠사슬을 풀려해도, 혹여나 모를 일을 대비해 팔에 단단히 묶어 둔 탓에 팔만 빼는 게 불가능했다.

쇠사슬이 내 몸을 묶어 버린 꼴이 된 것이다.

“아주 잠깐이면 된단다. 몸에 힘을 풀거라.”

하지만.

이런 패턴이 하나도 없었겠는가?

물론 기억과는 조금 다르지만.

방법이 다르다 해도 대처법은 비슷하다.

딸깍!

허리춤에 찬 벨트를 풀어 왼손으로 휘둘렀다.

라온은 양손잡이다. 더불어 두 팔 다 골고루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쇠사슬을 크게 잡고 휘두르는 수준이야 불가능하지만.

이런 벨트 하나 제대로 휘두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짜아아악!

-큭!

다가오는 허주의 손을 쳐낸다. 쇠사슬만큼은 아니나, 미약하게나마 마력을 빨아들이는 감각에 허주가 움찔하고.

“이거나 처먹어라.”

난 벨트를 놓고, 손가락에 끼워둔 반지를 튕겨 허주의 입에 집어넣었다.

쏘옥-

-!!!!!!!!

자기도 모르게 반지를 삼킨 허주가 고통스러워했다.

양이 많지는 않으나 엄연한 마력을 흡수하는 저주 아이템.

허주 또한 마력을 다루는 존재로, 저 저주 아이템은 충분한 무기가 되었다.

-케헥! 켁!

겨우 마력 반지를 토해낸 허주가 날 노려보았다.

-대체, 왜 이딴 요물을 차고다니는거냐……!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이마저도 몇 개 없는 건데.

“그리고 나 뭐 달라진 거 없냐?”

-!!!!!

쫘아아아아악!

쇠사슬이 허주의 뺨을 후려갈겼다.

허주가 옆으로 퉁 튕겨 나간다.

벽에 처박힌 허주로부터 회수한 쇠사슬을 다시 휘둘렀다.

뻐억!

-커헉!

쇠사슬이 그대로 허주의 심장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을 후려쳤다.

허주가 무언갈 한 움큼 토해낸다.

“……어?”

그건 허주가 삼킨 영혼이었다.

내가 뿌리쳐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 한 명이 정신을 차린 듯 멍한 소리를 낸다.

그 모습에 허주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내 영혼을!!!!!!

“꺼헉!”

푸욱!

허주의 손이 남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손톱이 삐죽 튀어나오고.

박동하는 심장이, 허주의 손톱에 스르륵 흡수되었다.

그리고.

쑤우우욱!

“!”

손톱이 기형적으로 길어져 내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그러나.

캉!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에 손톱을 막아낸다.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는 손톱도 마찬가지.

쇠사슬로 손톱을 엮고 엮어, 마구 꼬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내게 닿지 않도록 동선을 구상해 버린다.

‘괜히 내가 몇 번이고 분석한 게 아니야.’

라온으로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만 했다.

게임에 나오는 모든 보스를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라온에게 유리하도록 동선을 구상하고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하며.

불가능하다면 몇 번이고 재도전을 해 패턴을 파악한다.

-왜, 왜! 네겐 이런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네가 망캐로 살아남은 기분을 알아? 모르면 닥쳐. 내가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냐?”

-닥쳐라!!!!

허주가 비명을 내지른다. 두 손을 정면으로 뻗는다. 손바닥에서 수십 개의 영혼이 튀어나와 날 저주하기 위해 뿜어져 나왔다.

‘진짜 피곤하긴 더럽게 피곤하네.’

다른 캐릭터나 웬만한 보스라면 진작에 공략했어야 하는데, 나름 고위 던전의 보스라고 잘 잡히지도 않는다.

-키아아아아!

덤벼드는 유령들이 몸을 물어뜯기 전.

몸에서 세어나오는 마력에 겁을 먹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이익! 뭐하는 것이냐! 빨리 죽이란 말이다! 빨리 죽……!

휘리리릭! 퍽!

휘두른 쇠사슬이 허주의 머리를 강타했다.

허주가 쓰고 있는 갓이 벗겨지며 모습이 드러난다.

머리털이라곤 하나 남아있지 않고, 두 눈이 있어야 할 부위는 피덩어리로 가득 차 있으며.

피부는 시체처럼 검게 변색된 채 썩어가고 있었으니.

-내 갓을……!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 허주가 분노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젠 쇠사슬도 뭣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보였다.

-키아아아아아!

자세도 망가지고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상태.

좋아.

지금이다.

‘지금.’

푹.

손톱이 왼쪽 옆구리를 꿰뚫었다.

“큽.”

-하하! 드디어 지쳤구나!

드디어 내게 유효타를 먹었다는 사실에 허주가 기뻐한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뒤로 날아간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끄그으으윽!

무거운 게 끌려온다.

그건.

허주가 거꾸로 세워둔 동상이자, 신을 모욕하고자 만들어낸 것.

그건 언제든 무기로 쓸 수 있도록 짧은 단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허주가 불길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꽈악!

“어딜 가려고.”

이미 이 정도로 나와 접촉한 이상, 뒤로 물러날 순 없었다.

-아……!

푹!

허주의 뒤를.

동상이 든 칼이 꿰뚫었다.

* * *

-허억!

허주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근처를 둘러보니,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천장은 박쥐로 가득 차 있다.

혹여나 모를 일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보험’.

이 세계에 구현된 유일한 동굴 안이었다.

-내가…… 내가 이리 졌다고……?

허주가 본인의 손을 내려다본다.

오랜 시간을 보내어 강하게 빚어낸 방울과 손톱은 온데간데없고, 오랫동안 시체 상태로 있었던 앙상한 팔만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상을 이용하여 자기를 죽였을 때.

내려다보던 그 오만한 눈동자까지.

-분명히 무력하게 끌려왔을 때 약해젔어야 하는데……!

오랜 시간을 묶은 잡귀는 아무리 잡귀라 하여도 신을 꿈꿀 정도로 강해진다.

더불어 시공간이 뒤틀린 이곳에서는 더 강한 힘을 쌓을 수 있었고.

그걸 통하여, 끌려 들어온 생명의 영혼을 수확해 더 많은 힘과 ‘신’의 자리를 탐할 수 있었다.

-이제,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제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됐는데…….

그럼 이딴 잡기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는데……!

저벅.

-!!!

발소리에 허주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자기가 살아있음을 알아차린 것인가?

대체 어떻게?

-도망, 도망가야 해.

허주는 시체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자기는 겨우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힘을 쌓은 게 아니었다.

그 오랜 영겁의 시간동안 갇혀있던 게 아니란 말이다!

-난, 난 반드시 살아날 것이다. 살아남아서, 밖으로 나갈 거라고!

“누구 마음대로?”

-!!!!!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허주의 몸이 멈추고.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야, 꼴 좋네.”

라온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허주에게 보였어야 할 눈동자를.

허주가 인간에게 보고 있었다.

“진짜 귀신은 지능이 딸려. 네 말이 나한테 들릴 거라는 생각은 못 한 거야?”

콰즉.

라온은 그리 말하며 허주의 머리를 짓밟았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다리로 단단히 고정한 라온이 그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그러니까 여길 못 나가지.”

죽는다.

여기서 죽는다.

허주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죽어서도 살고 싶어 남아있는 영혼인 허주에게 있어서.

그 감정은 공포로 다가왔고.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네가, 네가 나중에 죽었을 때 나랑 다를 거 같아?!

마치 인간처럼, 허주가 바락바락 외쳤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쓸쓸히 죽어 남의 걸 빼앗기나 하는 내 삶이랑 다를 거 같냐고! 하, 하하! 넌 괴물이야. 괴물! 누구도 네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

라온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짧게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짓다가.

“그러게.”

촤르르르-

그의 쇠사슬이, 마치 심판을 내리는 심판자의 사슬처럼.

살벌한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서 꿈틀거렸다.

“그런데 네가 걱정해 줄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으직!

허주의 머리가 으깨졌다.

으깨진 허주의 시체가.

널브러진 시체들처럼, 영원토록 수습되지 않을 공간에 버려진다.

동시에.

라온의 세계가 뒤바뀌었다.

[3차 통로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허주를 살해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한 시간 후, 현 던전은 붕괴됩니다. 탈출하지 않을 시, 우주를 떠돌아다닐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 * *

허주의 머리가 으깨진 순간.

방금까지 보이던 시체들과 동굴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넓은 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 있는 거라곤 상자밖에 없는 공동이 눈에 들어오자, 난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내 다리야…….’

다리뿐만 아니라 팔까지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특히나 옆구리.

상처가 재생되는 팔찌가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다.

‘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디뎌.’

없는 것보단 훨씬 낫지만.

그래도 초 재생처럼 상처를 입으면서 무식하게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아쉽네.’

그거 하나만 있으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싸울 수 있는데.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상처를 치료해주니 범용성이 올라간 건 사실이었으니 그거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보다.’

마지막.

허주가 죽기 전 남긴 말이 떠올랐다.

‘죽어서 나와 다를 것 같냐라.’

허주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이 죽어 만들어진 존재다.

즉. 허주 또한, 나처럼 살아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허주처럼 영혼이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저 시체들처럼 수습해 줄 이 하나 없는, 꽃 하나 올려 줄 이 하나 없는.

그런 죽음과 최후가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

아니,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라온이 돌아온다면.’

그때의 라온을 보살펴 줄 이는 누가 있을까?

‘…나가면.’

아무래도.

또 해야 할 게 생긴 것 같다.

탁탁!

양 뺨을 소리 나게 후려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이제 보상이나 확인해 볼까.’

좀 좋은 게 있겠지?

이왕이면 허주의 영혼이 담긴 저주 아티팩트나 있으면 좋겠는데.

“자, 드가자!”

난 잔뜩 기대감에 설렌 표정으로 상자 안을 열었다.

덜컥!

파아아앗!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난 상자 안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시발?”

그동안 구린 보상에 사과라도 한 듯.

[마법 강화 발찌(상급)]

착용한 이의 마력의 위력이 50% 상승합니다.

단, 버프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안에는 제대로 된 보상이 들어가 있었다.

……야!

제대로 주면 어떡해!

* * *

분명히 좋은 아이템이 맞았다.

마법의 위력을 50%나 올려 준다니.

소소한 숫자 하나하나에 목숨을 거는 마법사들에겐 몸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은 아이템일 게 분명했다.

문제는.

‘난 못 쓴다고!’

마법을 못 쓰는 놈한테 그런 걸 주면 어떡해!

‘시발…….’

세상이 날 억까해…….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아이템만 주던가, 왜 기대감을 주다가 마지막에 이러는 거야?

개 같은 게임!

‘하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껏 좋은 걸 주겠다는데.

나한텐 전혀 안 좋다는 게 문제지만.

‘팔아 버릴까?’

이걸 팔면 아마 평생 먹고 놀아도 남을 돈이 들어올 것이다.

50%라는 수치는 수준을 가리지 않는다.

만약, 강자 중의 강자인 ‘가주’가 이 아이템을 얻는다면.

곧바로 다른 가주를 찍어 누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냐. 괜히 이상한 놈한테 흘러 들어가면 골치 아파.’

이런 아티팩트는 전력 자체를 뒤바꾸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겨난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낫겠지.

쿠르르르!

던전이 붕괴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쉬움이 어린 눈으로 던전을 바라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싸우느라 벗어 던졌던 허리띠와 반지를 모두 착용하고 상태를 점검한다.

‘좋아. 나쁘지 않아.’

“던전을 나간다.”

허공을 향해 말한 순간.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던전을 벗어납니다.]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웅성웅성웅성.

던전에 들어가기 전의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근처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돌아오고.

동시에 마력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가벼웠던 몸이 무거워지고.

잠시간 숨을 쉬고 있던 쇠사슬이 바쁘게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키이이이잉!

내가 착용하고 있는 다른 아이템들도 마찬가지.

쇠사슬은 살짝 힘겨운 수준으로만 보이지만, 반지나 팔찌, 허리띠는 아예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케헥! 켁!

아직 흐린 시야 사이로.

팔찌에 깃든 벤시가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이 기침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예 체한 게 느껴졌다.

방대한 마력에 짓눌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

난 급히 마력 팔찌로 마법을 뿜어내며 숨구멍을 트이게 만들고, 흐릿하게 형상을 보인 벤시의 등을 두드렸다.

“야야! 뱉어!”

-켈록…… 켁…….

“뱉어, 이 새끼야!”

누구 마음대로 사라지려고!

-그냥…… 죽여 줘…….

“넌 이미 죽었어, 임마.”

벤시 주제에 뭘 죽여 줘야?

죽었으면 평생 이리 있어야지.

힘내라, 노예야!

-켈록…….

다행히 내 응원이 통한 걸까.

마력을 한움큼 토해 낸 벤시의 형태는 안정화되었고.

이내 완전히 흐려져 반지 안으로 사라졌다.

‘휴. 아이템 하나 잃을 뻔했네.’

그리 안심하며 고개를 든 순간.

“…….”

라온 리그벨토의 형제이자, 첫째.

‘벨 리그벨토’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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