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당연하지만.
내가 굳이 ‘끌어들이는 자’에게 잡히려는 이유가 있었다.
‘디버프를 받아야 한단 말이지.’
끌어들이는 자에게 붙잡혀 들어갈 경우.
플레이어는 본인의 마력 절반을 사용할 수 없는 디버프에 걸린다.
고위 던전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혹여 실수로 고위 던전을 눈치채지 못하고, 손에 빨려 들어간다면.
그날 게임 데이터는 다 날아간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나한텐 오히려 이득이란 말이지.’
라온 리그벨토라는 캐릭터는 마력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캐릭터다.
그러니, 오히려 이 디버프는 내게 버프로 다가온다는 얘기였다.
‘충분히 할만하다.’
잠시간 몸에서 증발했다가, 던전을 벗어나면 몸이 터지지 않게 천천히 돌아오는 시스템이기에.
혹여나 돌아오자마자 마력이 폭주해 죽을 위험이 없었고.
던전 안에서,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있던 마력 폭주 위험이란 경우의 수를 지우고 편하게 싸울 수 있었다.
‘클리어할 만해.’
그래서 나는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를 밀라고.
-정말…… 밉니까?
-밀라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기사와 병사가 내 몸을 놓았다.
동시에.
-같이가자같이가자같이가자가티가자가티자가같이…….
“도련님!!!!!!!!!!!”
가면 갈수록 뭉개지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끌어들이는 자의 손이.
날 잡고 던전 안으로 끌어들였다.
[고위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주의! 시공간이 뒤틀린 장소입니다. 외부에서의 시간과 내부에서의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화악!
한순간에 공기가 뒤바뀌고 눈앞에 보이던 풍경의 색이 다른 것으로 침식된다.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뒤바뀌고.
어느새, 나는 던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똑, 또옥, 또옥-
천장에 달린 종유석에서 매달린 물방울이 아래에 고인 물에 떨어지고.
분명히 빛이 없음에도, 어째서인지 안이 훤히 보이며.
피부에 닿는 공기는, 마치 타르처럼 검고 찐득했다.
‘손은…… 사라졌나?’
난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에도 날 끌고 온 끌어들이는 자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제 보스로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끌어들이는 자.
던전에서 가장 오래 갇혀있던 자이며.
웬만해선 고위 던전의 보스로 자리 잡고 있는 놈이다.
‘마력은…….’
난 체내의 마력을 확인했다. 언제나 흘러넘치고 터질 것 같이 굴던 마력들은.
‘역시.’
절반가량 사라져, 평온하게 내 체내를 떠돌고 있었다.
씨익.
이 상태다.
드디어 몸이 제기능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마저도 마력을 다룰 순 없으니 완전하다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마력 폭주라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이런 기분이었나.”
찰그락.
난 쇠사슬을 팔에 휘감고 언제든 던질 수 있게 준비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땅을 헤집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언데드의 종류 중 하나인 좀비(Zombie)와 스켈레톤(Skeleton).
그리고, 그 뒤에 떠다니는 불투명하고 검은 형체들.
“수살귀, 역살귀, 음…… 또 뭐였지? 터귀였나? 뭐, 제대로 기억이 안 나네.”
대충 하나하나 짚으면서 떠오르는 귀신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귀신들이 인간이 감히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는 것에 분노한 것인지, 대놓고 사나운 기색을 띤다.
“어쩔건데.”
난 ‘라온’을 연기하던 걸 그만두고,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네까짓 것들이 내게 이를 드러내면?”
-키아아아아아!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그워어어어어어!
내 말에 언데드들이 푸르스름한 안광을 뿜으며 날 노려본다.
난 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좋아, 들어와.”
피가 끓는다.
내가 이 게임을 하게 된 처음이자 본질적인 이유.
남자가 RPG 게임을 왜 하겠는가.
스토리도 보고, 캐릭터도 보기 위함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들, 한 번씩만 더 죽어 보자.”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난 쇠사슬을 잡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라온 리그벨토에 빙의한 이후.
첫 던전 공략의 시작이었다.
* * *
언데드의 장점은 물량이 많고 마력을 통해 연맹하는 생명력이 아주 질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없다면?
쭈와아아아악!
-키아아아아아악!
그저 쓸어 버리기 쉬운 경험치에 불가하다.
길게 잡고 휘두른 쇠사슬에 귀신의 몸이 반으로 찢어지고.
찢어져 죽기 전의 귀신이 한탄과 함께 터트린 저주가 좀비와 스켈레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덜그럭, 덜그럭!
-그워어어어어!
귀신의 마력은 같은 언데드인 좀비와 스켈레톤마저도 침범해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고.
안 그래도 좁은 동굴에서 돌진하던 이들이 마구잡이로 엉켜 넘어지게 만들었다.
쿠당탕!
“좀 좁지?”
난 날 잡기 위해 다가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쇠사슬로 천장을 후려갈겼다.
우르르르르르!
천장이 무너지며 여러 종유석이 떨어져 좀비들과 스켈레톤을 덥친다.
종유석뿐만 아니라 큼지막한 덩어리까지 떨어져 아예 짓뭉개 버렸다.
쿠르르르…….
한동안 무너져내리던 천장에선 점차 돌조각도 떨어지지 않고.
돌덩이가 가득 쌓인 곳에선 연기만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좀비들은 마치 전멸한 듯, 조용하다.
‘그럴 리가 없지.’
난 곧바로 공격을 대비해 쇠사슬을 팔에 둘렀다.
덜그럭덜그럭!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연기에서 네 마리의 스켈레톤이 튀어나왔다.
모두 살아생전 검술이라도 배운 듯, 검로가 깔끔하고 날카롭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충 검의 경로가 보였다.
캉!
마치 너클처럼 쇠사슬을 주먹에 두른 채로 공격했다.
뼈와 쇠사슬이 부딪히고, 스켈레톤이 뒤로 넘어졌다.
‘몸이 가벼워.’
이제야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
마력이 없는 게 이 정도일 줄이야!
퍽!
넘어지는 스켈레톤의 골반을 으스러트리고.
휙!
내 등을 노리고 날아오는 스켈레톤의 검을 느끼고 몸을 빙글 돌렸다.
“흡.”
마치 칼을 휘두르듯이 쇠사슬을 잡고 휘둘렀다.
짧고 날카롭게 휘둘러진 쇠사슬이 그대로 스켈레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마력을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스켈레톤이 큰 타격을 입고 쓰러진다.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난 숨을 몰아쉬며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쇠사슬을 휘둘렀다.
은신이라고 하고 있었던 듯, 돌 뒤에 숨어있던 스켈레톤이 튀어나와 내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두른다.
서늘한 감각. 당장이라도 목이 날아가도 이상치 않을 감각.
그래. 이 느낌이다.
이게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 진짜 이유다.
나중에야 라온을 살리겠노라는 새로운 목적이 생겼었으나.
결국 판타지 게임을 즐기기 위한 첫 번째 목적이 바로 이런 스릴감이었다.
그르르륵!
쇠사슬에 검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검이 날 베지 못하게 쇠사슬로 한 번 휘감아 버리고.
지능이 낮아 검을 휘두르고 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는 스켈레톤의 목 뼈를 붙잡고,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스켈레톤을 집어 던졌다.
쿠당탕!
스켈레톤과 스켈레톤이 부딪혀 뼈가 으스러지고.
무기력화된 그들에게 쇠사슬을 휘둘러 두개골을 으깨버렸다.
두개골이 박살난 스켈레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하아…….”
난 숨을 몰아쉬면서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한 스켈레톤들에게 다가갔다.
으직!
발로 두개골을 완전히 으깨트려 끝낸다.
이어서 혹시 모르니 무너진 천장 파편 사이로 다가갔다.
그어어어어……….
덜그러억… 덜그러억…….
몸이 반갈죽 난 구울과 스켈레톤이 어떻게든 기어 올라오고 있다.
언데드들은 이게 좋다.
딱히 숨으려 하거나 그런 지능이 없으니까.
으직!
모든 언데드를 끝낸 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1차 통로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드디어 나는 속이 트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확 풀린 기분이었다.
‘아직 다음 통로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조차 지금은 게임의 묘미라 느낄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이런 거만 친절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스템은 친절해 보이면서도 불친절한 면이 있었다.
예시로, 내 쇠사슬에 숨겨진 능력이 있다던가. 층마다 나오는 몬스터가 다르다던가. 내게 어떤 상태 이상이 걸려 있다던가…….
뭐 그런 것도.
‘그래도 할만해.’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는 정보는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며.
‘다칠 수도 있지만.’
이걸 클리어하고 얻을 보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리스크였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이 해방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쇠사슬을 뗀다면…….’
“…….”
아직 그 정돈 아니겠지만.
어쩌면, 여기서 받은 이 디버프를 계속 받으며 갈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미래를 꿈꿀 수도 있을지 모른다.
쇠사슬이 필요 없는 라온 리그벨토 말이다.
뭐, 한참 나중의 일이겠지만.
“찾았다.”
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공간을 찾았다.
꽤 넓은 공동에 상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첫 번째 보상.’
난 상자에 다가가 손을 뻗어, 상자를 열었다.
달칵.
그 순간.
-키야아아아아아아아!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귀곡성을 내지른 벤시가 튀어나왔다.
벤시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흰자가 없어 덩그러니 남은 검은 동공이 오로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번뜩인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입을 쩌억 벌려 내 팔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흠칫.
팔에 휘감긴 쇠사슬을 보고 멈칫하고.
또, 뒤늦게 내게서 뿜어지는 기운을 알아차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두 눈이 마주친 순간.
벤시는 완전히 자리에 멈춰섰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입에서 고통과 원한으로 가득찬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번의 귀곡성이 향하는 곳은 내가 아니었다.
도망치기 전, 마지막으로 지르는 귀곡성.
허나 내겐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촤르륵.
“어딜 가.”
쇠사슬이 벤시의 몸을 휘감았다.
마력을 흡수하는 특성 탓에, 쇠사슬에 묶여버린 벤시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내놓고 가야지.”
-……죄송,
“죄송한 걸로 해결하면 법이 왜 있냐?”
-사, 살려.
“넌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줬냐? 안 살려줬지? 그럼 너도 할 말 없는 거야.”
촤악!
내 쇠사슬은 사정없이 벤시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난 시선을 돌렸다.
벤시들이 보상을 미끼로 두어 한 번에 습격할 목적이었던 건지, 수많은 벤시가 날 보고 있었다.
물리력을 무력화시키는 마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 공격에 당한 모습을 봐서일까.
모두가 날 두려워하며 주춤거리는 게 보인다.
“뭘 봐, 새끼들아.”
난 그들을 향해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다 뒤지고 싶어?”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벤시가 귀곡성을 내지르며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그들의 등을 향해 쇠사슬을 휘둘렀다.
촥! 촤악! 촤아아악-!
10분 후.
남아있는 건, 나 혼자였다.
* * *
상자 안에 담긴 보상은 팔찌였다.
[마력 흡수 팔찌(중급)]
마력을 일부분 흡수합니다. 혹여 모를 일을 대비하여 흡수한 마력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 마법 : ???
상당히 좋은 성능의 아이템이다.
‘나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팔찌 주제에 빨아들이는 마력량은 상당하고.
저장된 마력은 쥐꼬리만하지만.
‘나한텐 상관없지.’
이런 방식으로라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좋았으니까.
물론, 이건 그냥 최소한으로 넣어둔 효과일 뿐.
실제론 그냥 쓸모없는 저주 아이템이었다.
‘아주 엿 먹으라고 짜 놓은 거겠지만.’
보상이 저주 아이템인 거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나한텐.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가 엿 맛집이네.’
최고의 보상을 손목에 차자,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마력이 0.5 하락하였습니다.]
‘아직은 한참 멀었나…….’
제어력이 1로 올랐지만.
실제론 마력 양만큼 높아야 정상이다.
만일 마력을 50만큼 포함하고 있다면, 제어력이 최소 40은 되어야 했다.
‘뭐, 언젠간 오르겠지.’
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팔찌를 찬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
팔찌에 깃든 벤시가 내 마력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벤시다. 팔찌의 효과를 담당하기라도 하는 듯, 팔찌에 묶여 있었고.
마치 모기가 피를 빨아먹으려고 했지만.
피에 흐르는 무서운 무언가라도 보기라도 한 듯, 망설이고 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
-…….
벤시는 슬그머니 팔찌를 떠나려고 했다.
[경고. 팔찌에 깃든 벤시가 팔찌를 이탈할 시, 마력 흡수 효과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뭐라고?
“야.”
난 벤시를 노려보았다.
“얌전히 빨아들여라.”
-…….
팔찌에서 도망치려던 벤시가 얌전히 팔찌 안으로 돌아갔다.
‘아, 큰일나는 줄 알았네.’
효과 사라지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