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라온의 약점은 신체 능력.
오랜 시간 마력에 노출되어 신체가 강해졌다고는 하나.
언데드들에게 깔려 구타당하거나 뭐에 찔리는 순간, 요단강을 건너는 건 순식간이었으니까.
‘그걸 감안해도 좋은 상대야.’
고위 던전은 자체만으로 훌륭한 보상 수급처였다.
시공간이 뒤틀려, 여러 곳에서 흘러들어온 물건이 가득 쌓여 있고.
그중엔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는 지팡이나, 혹은 디버프를 주는 저주 아이템들.
다양한 물건이 보상으로 쌓여 있었다.
‘드물게 벤시가 붙어 있긴 하지만.’
벤시도 거르는 게 라온의 몸이니 별문제 될 건 없었다.
‘안에서 마력 흡수 아티팩트를 얻는다면…….’
그것만큼 큰 수확은 없을 터.
‘이런 꿀을 이때까지 몰랐단 말이야?’
난 속으로 씨익 웃었다.
“…….”
옆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냥 무시할까 싶다가도, 날 빤히 바라보는 게 퓨수엘이어서 무시하기도 그랬다.
결국 시선을 돌려 눈을 마주치자, 그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리그벨토의 혈통이라고 했지?”
“그래.”
“보아하니 직계 같고.”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퓨수엘은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묻겠네.”
‘이 목소리는…….’
비록 내가 기억하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나.
적어도 분위기만은 같았다.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한 목소리.
호감도를 쌓기 위해 건너는 첫 번째 관문.
“자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이 다가올 재앙을 막을 건가? 리그벨토의 피를 이은 직계로서?”
잊혀진 신의 추종자, 퓨수엘.
비록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이 사라지고, 그가 이끌던 신의 세력은 흐지부지 흩어졌으나.
리더였던 그가 가졌던 책임감은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며.
나와 같은 직계에게 이런 시험을 내리곤 했다.
과연 ‘귀족’으로서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만약 통과하지 못한다면…….
“난 직계라서 막는 게 아니야.”
그는, 언제 어디서든 고위 던전이 나타나는 장소에 나타나지만.
그의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한 이가 후에 귀족의 작위를 물려받은 이후엔.
아무리 거대한 고위 던전이 일어나더라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퓨수엘과는 친분을 쌓을 수 없다.
영원토록.
“사람이라서 막는 거지.”
그러니 난 대답을 잘 골라야 했고.
실제로, 라온 이외의 다른 캐릭터들을 택한 이들은 이에 대한 답을 고르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이고 해 봤다.’
퓨수엘이 원하는 대답은,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
내 말에 퓨수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겉으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내게서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게 이상하긴 했다.
대부분의 귀족은 자기 우선주의다.
물론 귀족을 욕하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 대부분이 그러니까.
그러니,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게 이상하다.
‘뭐, 내가 싸가지가 없는 게 맞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본심은 착하다는 걸 보여준다면.
그에게서 호감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심이냐?”
“그래.”
“넌 피를 이었을 뿐이다. 아직 귀족이 아니지. 영지를 지킬 의무 따위 없을 텐데?”
“말했을 텐데. 사람으로서 지키는 거라고. 내가 여러 번 말해야 하나?”
“…….”
좀 많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속뜻에 담긴 말은 알아차린 것일까.
퓨수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훌륭한 대답이군.”
‘1단계는 통과했다.’
“그래. 그럼 내가 온 이유를 알려주겠네. 나 또한 이 자와 같은 목적이지.”
‘아직 자신이 잊혀진 신의 추종자라는 건 밝히지 않는 건가.’
하기야. 아직 첫인상이 좋게 박혔을 뿐이지, 제대로 신뢰가 쌓이지 않았고.
그의 정체를 신실한 사제가 들었다면 ‘이교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신전이 토벌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수준의 강자이지만.
그런다면 신전뿐만 아니라 대륙에도 혼란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걸 택했다.
‘차근히 하면 돼.’
그러니, 퓨수엘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말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게 그 정도의 시간은 있다.
“그럼. 나도 이곳에 온 이유를 알려주겠네. 이 마술사와 같은 이유네. 곧 던전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곳에 찾아왔지.”
그럴 줄 알았다.
다만, 여기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됐다.
‘여기서 이상함을 느낀 척해야 해.’
난 원작의 흐름대로 눈살을 찌푸렸다.
“마술사?”
세기의 마술사는 당황한 듯 나와 퓨수엘 사이를 갈랐다.
“아니, 어르신. 그걸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오늘만 패스한 거지 항상 자네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나.”
“…….”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은 마술사이지만.
결국 퓨수엘의 말에 크게 반박하지 못한 채,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예. 제 이름은 세기의 마술사. 비록 이름의 이유나 기원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래도 당신의 편이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내 이름은 퓨수엘이라 하네. 그냥 지나가던 오지랖 넓은 노인이라 생각해주면 고맙겠군.”
“그래.”
“…….”
“…….”
내가 별다른 질문 없이 긍정하자.
이런 사람을 처음 본 듯, 다들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거짓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의심하지 않는 거지?”
다만, 우리 의심이 많은 퓨수엘 씨 빼고.
난 그의 질문에 덤덤히 대답했다.
“당신들이 이런 거짓말을 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옳지 않네. 우리가 흑심을 품고 거짓말을 할 수도….”
“그럼 당신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거짓말하면 그날 처벌하면 그만. 그럼 된 거 아닌가?”
“…….”
“그리고 내 눈에는 당신들이 그리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퓨수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디서 놀란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충분히 놀람과 동시에 만족한 듯해 보였다.
“……자네 같은 힘든 운명은, 언제나 슬픔과 고통을 동반하지. 그래도 좋은 눈을 타고났어.”
“?”
“언제나 건투를 빌겠네.”
퓨수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난 왠지 모르게 찜찜해졌다.
‘…호감도가 왜 이리 많이 쌓인 기분이지?’
호감도 창이 안 보여서 알 수가 없네.
“일주일 뒤. 장소는 마도(魔道)의 석상 바로 앞. 사람이 많이 모여있을 시간대. 그때, 던전이 나타날 걸세.”
그 말과 함께.
퓨수엘과 마술사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 *
“……홀린 기분이에요…….”
아벨라가 멍한 듯, 커피를 휘저으며 중얼거렸고.
난 턱을 괸 채 팬으로 종이를 툭툭 두드렸다.
‘퓨수엘의 호감도가 상상 이상으로 쌓였다.’
대체 왜?
게임에서 했던 대사와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그들에게도 무능하다는 인식이 박혀서인가?’
지금의 난 그들에게 ‘싸가지 없는 애’ 정도의 수준이지만.
대략 1년에서 2년 후 만났을 때는 ‘무능’이란 이미지가 찍혀 있었을 터.
‘성인이 되던 날, 형제들이 내린 시련에서 겨우 살아남은 수준.’
아무리 내가 완벽하게 시련을 통과한다고 해도, 세간의 이미지는 언제나 ‘아슬아슬했다.’였으니.
그건 가문에서 직접 내린 시련이 아니었을뿐더러.
내가 아티팩트를 모으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그 외의 이벤트들을 통해 쌓아야 할 명예와 평판은 올라갈 수가 없는 구조였기에 피할 수 없는 고구마였다.
‘이제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아카데미를 일찍이 자퇴하면서 조금 이야기가 돌아다닐 수야 있지만.
‘성인이 되기 전이니, 그냥 압도적인 평판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야.’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내 평판이 바뀌고, 내 미래가 바뀐다.
가주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적어도 직계로서 입지를 다지고, 내 목숨을 함부로 위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야 했다.
‘그렇다면.’
난 퓨수엘의 이름을 동그라미 치고 선을 쭉 그어 마인드맵을 만들었다.
퓨수엘과 차근히 친분을 쌓아, 열 수 있는 여러 루트 중 가장 중요한 루트를 적고 동그라미를 여러 번 쳤다.
‘일정보다 더 빠르게 퓨수엘과 인연을 쌓고, [그걸] 얻는다.’
내가 라온 리그벨토를 플레이하면서 얻었던 아이템 중.
전투에도 생존에도 모두 유용한.
메인 아이템 중 하나.
‘천마의 갑주.’
오로지 ‘퓨수엘’과 친분을 쌓아야만 갈 수 있는 장소에 묻힌 아티팩트이자.
쇠사슬과 마찬가지로, 라온 리그벨토로서 전투를 해야 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이대로면 적어도 올해 안에는 얻을 수 있겠어.’
시간이 쑥쑥 지나갔던 게임과 달리 현실처럼 시간이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올해라.
이 게임에서 새로운 새해를 보내게 되는 건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퓨수엘의 마인드맵 중 하나에 변수를 적고, 아래로 헬레나와 필립의 이름을 적었다.
이들이 제일 큰 변수다.
‘그놈들이 아카데미에서 벗어날 일은…….’
솔직히 지금은 거의 없다.
아카데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해서 돌아간다.
후에, 마의 수하인 악마가 나타났을 때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니 모두 등교하도록 합니다.
이리 말했던 곳이니, 겨우 이런 일로 아카데미 운영이 멈출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빠져나올 수 있지.’
만약 그런다면…….
‘…빨리 튀어야지.’
이제 다른 변수는.
‘…다른 주인공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놈들이 문제였다.
대체 이놈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마 이들은 귀족이 아니니 다르게 구르고 있긴 할 텐데…….
“도련님?”
‘뭐, 아직 나타날 일은 제로다.’
아카데미에 없던 걸 보면.
강함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루트’만은 정상적으로 타고 있을 테니.
아무리 빨라도 2년 내에 볼 일은 없다.
꾸깃꾸깃-
난 종이를 완전히 꾸겨버리고, 커피를 다 마신 아벨라에게 던졌다.
“태워.”
“아, 네.”
“그리고 매일 여기로 올 거야.”
내 말에 아벨라는 힐끔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 보다가 자신의 배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살찌는데…….”
“넌 이미 말랐어.”
넌 좀 찌는 게 나아.
* * *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은,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책을 읽는 일이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능력치가 오르거나 그런 건 없었지만.
내가 완전히 알지 못했던 것들과 새로운 정보, 그리고 이 세상에 적응해나가는 데에 책은 유용한 수단이었다.
물론 책만 읽은 건 아니다.
밤이 되면, 이제 발목에 쇠사슬을 연결시켜 놓고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했다.
맨몸 운동이라고는 하나, 몸을 적당히 덥히고 움직이는 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충분한 힘을 주었으니.
‘팔 힘이 중요하단 말이지.’
내 쇠사슬은 이미 평범이란 틀을 벗어났기에 지금만으로 고위 마법사 수준까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기에.
나라는 근간을 더 튼튼하게 세워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기사들의 훈련이나 그런 데에 끼고 싶지만.’
쇠사슬은 기사의 마력도 가리지 않고 모두 빨아들이니, 그런 단체 생활에선 맞지 않고, 또 아직은 눈치가 보였다.
‘도련님은 그분들에 대해서 뭔갈 아시는 건가요?’
‘몰라.’
‘그런데 너무 철석같이 믿으시는…….’
‘내 감.’
아직 아벨라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웅성웅성.
“…….”
뒤가 아주 시끄럽다. 아주 뒤통수가 뚫릴 것 같다.
난 힐끔 뒤를 바라봤다.
아예 통째로 한 달을 대여해버린 테라스와 카페를 갈라놓은 유리창 사이로.
수많은 사람이 마치 동물원 안의 동물을 보듯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저분이…… 그 도련님이라고?”
“책을 읽는데???”
“야, 임마. 도련님이라며? 그럼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아직 저분에 대한 소문을 못 들어서 그래. 얼마나 무능하기로 유명한데?”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술도 안 드시잖아?”
“그러게? 우리가 소문을 잘못 들은 건가?”
“그럴지도? 근데 옆에 하녀 귀엽다.”
“시녀 아니야?”
“어? 그런가? 암튼 귀엽네.”
“응. 케이크 가져다주고 싶다.”
‘겁도 없군.’
아무리 내가 평소에 모습을 잘 비치는 편도 아니고,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위압감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듯이 볼 줄이야.
“와, 근데 잘생겼다.”
짜식들. 라온이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그와 별개로, 시선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평가받는 더러운 기분.
게임으로 플레이할 땐 느끼지 못한 기분이다.
‘지랄 한번 해?’
그보다 왜 아벨라는 가만히 있는 거야?
“아벨라.”
“녜에?”
케이크를 먹느라 양 볼이 빵빵해진 아벨라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날 바라보려다가 자기 모습이 부끄러운 건지 고개를 숙였고.
난 딱히 뭐라 지적하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밖이 시끄러운데.”
꿀꺽.
한입에 케이크를 모두 삼키고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손등으로 쓱 닦은 아벨라가 말했다.
“도련님 가실 때마다 항상 이런 시선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도련님들도 비교적 이곳에서는 부드럽게 대해주셔서 유독 저러는 거 같아요.”
“……비교적?”
“네에. 결국 여기는 도련님들 중 한 분이 물려받으실 테니까요. 어느 정도 평판을 관리하는 것 같아요.”
그런가. 하긴. 다들 나름 머리를 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또 다른 게 있나 보다.
아벨라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또… 도련님도 조금은 즐기셨는데….”
그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이고 라온아…….’
아무리 관심이 고파도 이런 걸 가만히 있어?
안 되겠다.
그냥 다 뒤집어 엎어 버려…….
“!”
드르륵!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력’을 가진 자라면 모두 느낄 수 있는 파장에 온몸의 솜털이 삐죽 섰다.
“도련님?”
“따라와.”
난 쇠사슬을 몸에 휘감고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아직 파장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갑자기 다가오는 날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웠나, 왜 일어나시는-”
드르르륵!
난 내 마력이 이들에게 가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하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비켜.”
“……예?”
“비키라고 했다.”
나와 두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마치 강이 가라지는 기적처럼,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고.
“저, 도련님 어디로 가시는……”
“비켜.”
간식을 양손에 담은 채 올라오던 지배인을 제치고 테라스 밖으로 나왔다.
“따, 땅이 흔들려!”
“이, 일단 건물 아래로 피해!”
밖은 이미 혼비백산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난 파장이 느껴진 곳을 바라봤다.
영지의 중심이자, 분수대가 놓여진 장소.
마도(魔道)의 석상.
마법사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마도’라는 영역을 창조한 태초의 대마법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이.
‘온다.’
……우드드드드득.
마치 어린아이가 만지는 찰흙처럼. 마구잡이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꾸드으그으으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땅이 뒤집혀지고 분수대가 뿌리뽑힌다.
그리고.
꾸우어어어어어어-엉!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지고 공포감이 몸을 지배할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진다.
‘열렸다.’
우르르르르르!
석상이 처참히 무너지며, 뼈로 이루어진 웜(Warm)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난 저 웜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문지기.’
그리고, 웜 뒤로 희미한 입구가 보인다.
“저, 저거 뭐야?!”
“도, 도망가!”
등장만으로 영지 하나를 초토화 시켜버리는 재앙.
고위 던전의 출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