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화 (19/124)

제19화

내 눈빛을 알아차린 것일까.

마술사는 자신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깨닫고 손을 내저었다.

“아아, 물론 당신을 욕하려 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한 세기’ 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운명보다도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드린 말입니다.”

“…….”

“운명이란, 실타래와 같죠. 실타래가 꼬이면 풀기 어려워지고 종래엔 그냥 잘라버리는 게 나은 것처럼. 너무나 꼬인 운명은 그만큼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 그리 말한 겁니다. 혹여나 불쾌했다면 미안해요.”

‘내가 빙의자라는 걸 알아차린 건 아닌가?’

다행히도.

그에게 내 정체를 들킨 것 같진 않았다.

날 보는 두 눈동자는 뚜렷한 ‘미안함’이란 감정을 품고 있으며.

목소리 어디에도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기의 마술사…….’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에 대한 캐릭터를 내가 제대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지금. 네가, 내 운명을 멋대로 봤다는 거냐?”

대화부터 우선.

절그럭!

내 손에 들린 쇠사슬이 사나운 소리를 냈다.

‘라온’의 대화 방식으로 말하자, 잠시간 당황한 표정을 지은 그가 급히 두 손을 내밀었다.

“멋대로 본 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여기에 오신 것부터, 이미 허락하신 거라……”

“뭔 개소리야.”

“천막 구석을 보시면 됩니다…….”

그리 말하며 그는 진짜 억울한 듯, 천막 구석을 가리켰고.

난 천막 구석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올 시 운명을 보는 데에 동의하신 것으로 취급합니다.’

“…….”

미친놈인가?

절그럭!

“잠만잠만!”

내 쇠사슬이 다시 살벌한 소리를 내자, 기겁한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는! 말해 드리지 않지만, 특별히 제가 본 당신의 운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운명을?”

“네네. 이 정도면 화가 좀 풀리시겠죠?”

“겨우?”

내가 살벌하게 고개를 꺾자, 옆에서 아벨라가 날 제지했다.

“도련님… 사고 치시면 안 돼요…….”

‘뜯어낼 수 있는 건 이 정도인가?’

마력 흡수 아티팩트 같은 것도 좀 뜯어내려 했는데.

속으로 혀를 차면서, 울분을 가라앉히듯 쇠사슬을 늘어트렸고.

살 수 있는(?) 희망을 본 마술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운명은…… 음, 뭐라 해야 할까요. 평범한 풍선에 물을 가득 채워 넣은 느낌?”

“……?”

“그 물의 특별한 성분 덕분에 풍선도 원래보다 단단해졌지만 음… 뭐랄까….”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적당한 말을 찾은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치며 말했다.

“원래라면 평범했어야 할 풍선을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들고, 그 안에 억지로 불어 넣어졌다… 정도가 맞겠네요.”

“…….”

난 곧바로 그의 말을 이해했다.

‘누군가가 내게 일부러 마력을 넣었다는 건가?’

대체 평균의 기준이 뭔진 모르겠지만.

원래는 내 몸이 이러지 말아야 했다는 건 알겠다.

‘……게임에선 이런 정보를 몰랐는데.’

많은 게 바뀌게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벌써부터 이런 정보를 얻을 줄은 몰랐다.

‘어떠한 존재가 라온의 몸을 이리 만들었고.’

그 정체는 대체 뭘까.

‘제작진?’

그럼 이 세계에서 제작진의 존재는?

‘……신?’

난 잠시 생각에 푹 빠졌다.

내가 생각에 빠질 거라고 이미 예상한 것인지, 마술사는 잠시 나를 기다려주었고.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단 다음 질문부터.’

“있어야 할 게 없는 건?”

“음, 그건 강제적으로 불어 넣어진 부작용… 이라고 해야겠죠. 안이 과하게 빵빵 차올랐고, 그 덕분에?”

펑, 마술사가 입으로 작게 소리를 냈다.

“안에 있던 게 전부 으스러진 거죠.”

“…….”

아벨라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막았다.

내 상태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마술사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원래는 아무리 양이 많아도 이러지 않아요. 당신의 육체가 그런 것처럼. 방대한 마력을 버티기 위해 성장을 택하고, 점차 단단해지며 버틸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강자의 심장이 그렇듯. 하지만.”

마술사가 심장을 툭툭 건드렸다.

“당신은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억지로 마력을 불어넣은 것이기 때문에 몸이 따라가질 못한 것입니다. 덕분에 코어도 뭣도 다 망가져버린 상태가 되어버린 거죠.”

마법사들 사이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맞긴 했다.

그래서 형제들도 아직 내 코어가 완전히 반병신이 된 걸 모른다.

아마, 알아봤자 아버지나 지금은 탑에 칩거하고 있는 어머니 정도겠지.

‘……그럼, 통제력이 오른다는 건.’

마법사의 생명이자 심장과도 같은 코어가 점차 복구된다는 것이다.

낮은 수치에서 마력을 운용하면, 아직 내구력이 약한 코어가 박살 나 버리는 것이고.

가끔 운이 좋게 성공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운’이 좋아서겠지. 마력이 날뛰지 않고 잔잔하게 운용되어 코어를 망가트리지 않는다는 기적이 일어난 것일 테니.

“이건 그냥 저주라 봐도 무방하죠. 뭐든 과하면 독이라고 하죠? 당신이 가진 그 마력은 독으로 다가온 겁니다.”

“…….”

“솔직히 이때까지 버틴 게 용한 거예요. 보니, 당신의 쇠사슬과 그 신기한 반지와 벨트, 그게 목숨을 유지 시키고 있군요.”

“…….”

아벨라가 날 힐끔힐끔 바라봤다.

내 눈치를 잔뜩 살피는 모습.

난 그녀에게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고칠 방도는?”

“그건…….”

마술사가 입을 떼려는 순간.

드르륵!

퓨수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우리들의 대화를 끊었다.

단호한 표정을 지은 퓨수엘이 말했다.

“인제 그만 이야기하지.”

“하하. 너무 많은 걸 떠들었군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한테 많은 걸 말해 주는 것도 옳지 않아.”

퓨수엘과 내 눈이 마주쳤다.

과연.

게임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눈빛이다.

게임에선 사납다고는 해도, 그냥 일러스트 정도로만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영 좋지 않은데.’

지금은, 대놓고 적대감이 느껴진다.

“리그벨토의 핏줄이구나.”

“…….”

‘이전 리그벨토 가문의 가주랑 도박을 하다가 돈을 뜯겼다고 했지.’

물론, 돈이야 썩어넘치고 그런 일 따위 마음에 두지 않을 정도로 쿨한 성격이지만.

이후에, 그의 신을 모욕하는 발언을 내뱉었기에.

그는 기본적으로 리그벨토 가문의 혈통을 좋게 보지 않았다.

“리그벨토 가문. 아주 더럽고 추잡한 가문이지. 치사하게 늙은이의 돈이나 빼먹고 말이야.”

……신을 모욕해서가 맞겠지?

“그래서. 이 늙은이의 뒤를 따라온 이유는 뭔가?”

“…….”

“이번 대의 가주는 사기가 아니라 스토킹이 취미인가 보구나.”

“……?”

“분명히 강하다고 들었거늘. 마력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코어가 망가졌다니. 아무래도 내가 들은 명성이 허상이었나 보구나.”

“……??”

난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지금 날 가주로 착각하는 건가?’

말을 하는 꼬라지가 딱 그건데?

‘대체 어디서??’

옆에 있던 아벨라도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세기의 마술사도 마찬가지.

우리들의 표정을 본 퓨수엘도 무언갈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건지.

쿵, 쿵!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내 볼을 잡아당겼다.

“…폴리모프가 아니잖아?”

“아니, 어르신. 그걸 착각하시면…….”

세기의 마술사가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내 볼을 이리저리 쭉 늘리며 얼굴을 자세히 살핀 퓨수엘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생긴 게 똑같은데?”

“대신 키가 작잖아요.”

“그냥 줄인 줄 알았네. 그럼 마력은…….”

“방금 말씀한 거 못 들으셨나요? 이 아이의 마력입니다. 좀 비틀어져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착각할 정도의 마력이라니…….”

탁!

내 볼에서 손을 뗀 퓨수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눈매가 사나운 것도 똑같고. 그 요상한 머리 스타일도 비슷하고. 키가… 좀 작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게 없는데?”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지 않나요?”

“폴리모프로 숨긴 줄 알았다니까.”

‘가주를 본 적이 있나?’

퓨수엘은 마치 이번 대의 가주를 본 것처럼 말했다.

게임에선 그런 정보를 들은 적이 없는데.

그런데 가주가 나 같이 생겼다니?

‘오히려 첫째랑 닮았을 텐데.’

라온이랑은 조금도 닮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주는 남성스럽고 굵직한 선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라온은 비교적 선이 얇고 여리여리한 편에 속했으니.

“아무튼. 어르신. 이 아이는 그저 리그벨토의 혈통일 뿐입니다. 가주가 아니에요.”

세기의 마술사가 그리 단언했다.

“……”

“…….”

“…….”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알아차린 퓨수엘이 입을 꾹 다물고.

아벨라는 내 눈치를 보며 혹여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나는.

‘……이 양반은 그대로네.’

그저, 세기의 마술사만이 다르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으흠!”

퓨수엘은 분위기를 환전시키기 위해 크게 헛기침을 뱉었다.

“내 농이 어떻느냐. 재밌지?”

‘존나 재미없는데.’

하지만 아직 친하지 않으니, 이걸 면상에다가 말하긴 좀 그랬다.

“…그래.”

착각을 해도 나랑 가주랑 착각을 하냐?

완전 딴판인데.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지금은 이것보다 다른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난 입을 열었다.

“둘 다, 왜 여기에 있지?”

“어린놈이 싹바가지가 없게 어디서 반말을…….”

“워, 워. 어르신 진정하시고요. 저희가 좀만 너그럽게 봐주자고요.”

퓨수엘이 발끈했지만, 마술사가 그를 진정시키고.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의 정체를 아시나 보네요?”

“조금.”

“하긴. 웬만한 이에겐 저의 천막이 보이지 않으니…… 이것부터 운명이었을까요.”

내가 어떻게 이 정보에 대해서 알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런 점에선 대화가 참 편하단 말이지.’

사실 이들에 대한 정보는 고전과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 어느 정도 입수할 수 있다.

나처럼 확신을 가질 수야 없지만.

재앙을 예견하는 존재…… 이런 식으로 아는 이들이 적진 않았다.

“일주일 뒤.”

마술사가 양 손 손가락 7개를 폈다.

“이 영지에, 던전이 나타날 겁니다. 시공간이 뒤틀린 수준의 고위 던전이요.”

‘역시.’

“그리고 아마도….”

마술사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죽은 자들이 올 겁니다.”

“!”

난 눈을 크게 떴다.

* * *

죽은 자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보통 우리가 아는 ‘귀신’들과.

판타지에서 빼면 섭섭할 정도의 단골 손님인 좀비나 구울, 스켈레톤 같은 존재들.

‘의외로 귀신이 많이 나온단 말이지.’

한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덕분일까.

고위 던전이란 시공간이 뒤틀렸다는 설정으로.

지구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귀신들도 상당히 주로 출몰했다.

사실 그러던 말던 공략 방법은 같았지만.

개체수 하나하나가 강력한 건 아니지만.

많은 물량으로 몰아붙이는 스타일.

물량이 많다 보니 한 번에 쓸어버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까다롭다.

때문에 웬만한 유저들은 상대하기 귀찮아하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언데드를 선호했다.

‘상대하기 너무 쉬운데.’

언데드란, 인간처럼 마력 이외의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오로지 ‘마력’으로만 세상에 붙어있는 부정한 존재.

즉. 마력을 제거한다면, 언데드들을 없앨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면에서 내가 딱 제격이지.’

이거.

어쩌면 개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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