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8화 (18/124)

제18화

‘영웅의 문’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돌발 이벤트는 던전 출몰이었다.

던전(Dungeon). 자연에 쌓인 마력이 모여 공간이 뒤틀리고 몬스터들이 이끌려 만들어지는 장소.

가끔은 방대한 마력이 노출되다 보면, 공간이 뒤틀리는 수준을 넘어서 시(時)와 공간(空間)마저 뒤틀어버린다.

‘리그벨토 영지에선 시공간이 뒤틀린 고위 던전이 자주 일어나지.’

그건 대마법사 수준의 마법사와 그 수준에 다다른 자들, 그리고 고위 마법사들이 많이 모여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리그벨토 영지는 유독 ‘그’의 등장이 유독 잦았다.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

고위 던전이 출몰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나타나는 존재이자.

현 대륙에는 조금의 기록조차 남지 않은 ‘잊혀진 신’을 추종하는 사제.

잊힌 신의 추종자, 퓨수엘.

그는 스스로를 그리 칭했다.

‘원래라면 중반부까진 나오지 않는 캐릭턴데.’

물론 이제 아카데미를 억지로 다니게 하는 억제력도 사라졌으니.

중반부에만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지금 나와도 이상할 건 없지많은.

‘고위 던전이, 이리 조용하게 열린다고?’

문제는 그가 등장하는 조건이었다.

고위 던전의 출몰.

웬만한 영지에 열린 순간, 지옥도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사태다.

문제는 피할 수조차 없는 자연재해와 같다는 것.

‘리그벨토 가문에서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아무런 소문 소식도 없이 하는 게 가능하다고?

“으흠! 흠!”

조용히 차를 마시던 퓨수엘은 작게 헛기침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는 그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키가 훌쩍 큰 그의 체격은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곧고 다부졌으며, 얼굴 또한 노인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분위기상, 나이가 많구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

워낙에 특이한 모습 때문일까.

퓨수엘에게는 자연스레 시선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저 양반. 저거 명품 아니야?’

“으흠!”

더군다나 몸에 두르고 있는 코트나 모자, 벨트 등은 하나같이 명품.

귀족이라면 사는 게 어렵지 않으나, 평민들 사이에선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물건까지 걸치고 있었으니.

‘참 튀는 거 좋아해.’

내가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 사이, 퓨수엘은 시선을 즐기며 자리를 옮겼다.

퓨수엘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퓨수엘을 바라보고 있던 아벨라가 짧게 감탄을 토해냈다.

“와… 되게 멋지시네요. 전 저런 신사분이 부러워요. 늙어서도 저리 자신을 당당히 꾸밀 수 있다니.”

“…….”

“안 그래요, 도련님? 나중에 도련님도 늙으시면 저렇게 되실까요?”

저렇게라…….

확실히. 저런 모습이 멋지긴 하지.

저렇게 꼿꼿한 허리와 몸도 물론이거니와.

명품을 두를 정도로 충분한 여유가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늙을 때까지 살아 있어야 꾸미든 하지.”

“네?”

과연, 그 정도의 낙천적인 미래를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지금의 내게는 당장의 상황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 해야 했으니까.

‘……따라 가봐야겠어.’

저자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됐다.

다가가서 친해지는 건 힘들더라도.

왜 여기에 온지 정도는 알아야 했다.

곧 고위 던전이 열려서 온 건지, 아니면 그냥 놀러 온 건지.

드르륵!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마시고 있던 커피를 후다닥 포장한 아벨라가 뒤를 통통 따라왔다.

“이제 어디로 가시려구요?”

“몰라.”

“배 안 고프세요?”

“안 고파.”

그나마 라온의 장점은 체내가 마력으로 가득 차 있어서 영양분을 제때제때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이 몸이 소식가이기도 했지만.

‘아, 당 땡긴다.’

나름 먹방으로도 영상을 잘 뽑아먹었던 나로선 슬픈 일이다.

이런 내 기분이라도 알아차린 것일까.

아벨라는 포장한 음료를 주머니 안에 주섬주섬 넣다가, 근처의 한 가게를 발견하더니 활기차게 물었다.

“……저희 도넛 하나만 사갈까요?!”

‘그 양반이 도넛을 좋아하던가?’

일단 사 가보지 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벨라는 후다닥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신난 건지 뭘 떨어트렸다가 금세 줍고 다시 들어갈 정도였다.

‘……그냥 자기가 먹고 싶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헤헤. 사왔어요.”

“…….”

무슨 세 박스를 사 오니?

다 먹을 순 있어?

그리 묻고 싶었지만, 컨셉이 깨지기 때문에 그냥 손만 내밀었다.

“여기요! 제일 큰 거!”

말 그대로 빅사이즈를 준 아벨라는 많이 먹고 싶었던 것인지 냠냠 먹기 시작하고.

나도 입에 쏙 집어넣으며 퓨수엘이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취향 참 독특해.’

퓨수엘이 향한 길은 언제나 사람이 많으면서도 많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지만, 또 머무르지는 않는.

마치 패션쇼라도 하듯이,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한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추적은 쉽지만.’

퓨수엘은 몇 번이나 공략해본 캐릭터다.

호감도를 쌓아 ‘친우여!’라는 소리까지 들어 본 적이 있고.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깨트려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었으니.

비록 그때 쌓은 호감도는 모두 사라져 버렸으나.

호감도를 쌓는 동안 생긴 내 노하우는 사라지지 않았다.

“…….”

퓨수엘의 뒤를 따라잡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저, 저기!”

“음? 무슨 일이신가, 숙녀분들.”

“저, 저랑 그림 한 장만 같이 그리시지 않을래요?!”

“허허, 좋네. 여기에 그리면 되는감?”

“…….”

예전에 초등학생 때. 여자애들이 ‘잘생긴 사람이 좋아!’라고 하길래, 늙은 사람이 잘생겨도 좋은지 궁금했었는데.

아무래도 잘생김엔 나이가 없는 모양이다.

여인들과 함께 그림 한 장을 그린 퓨수엘은 어느 골목길로 들어섰다.

‘저긴…….’

하필이면 골목길이야?

난 눈살을 찌푸렸다.

“헥, 헥, 헥…….”

날 따라오느라 잔뜩 지친 아벨라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벨라는 입가를 쓱 닦고, 내 시선을 따라 골목길로 시선을 돌리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도련님…… 저 노인분께 볼일이 있으신 거예요?”

“어.”

“혹시 아시는 분이에요…?”

“아니.”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다.

나는 그를 알지만. 저자는 나를 모르고.

또, 친분이라곤 전혀 없으니.

그래서 대충 대답한 건데, 그녀는 나름 납득 한 모양이다.

“…도련님은 사실 저런 모습이 되고 싶었던 걸까?”

“…….”

하필이면 그렇게 착각하냐?

‘뭐, 상관없나.’

아무튼.

‘골목길은 좀…… 싫은데.’

쇠사슬은 긴 리치를 장점으로 가지고 있고, 길게 휘두르는 식으로 다룰 수 있다.

공간이 협소한 골목길 특성상.

내게 상당히 위험 요소로 다가올 수 있었다.

“어?”

아벨라가 무언갈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련님!”

“?”

“안에! 저 안에!”

아벨라가 급히 안을 가리키고.

난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천막이 골목 사이로 보이고 있었다.

「무료 마법 공연!」

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왜 여기에 있어?’

저것도 퓨수엘과 마찬가지로, 돌발 이벤트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저게 왜, 방금까지 없던 게 갑자기 나타난 거냔 말이다.

‘우리한테 일부러 보여주는 건가.’

우리에게로 오라고?

“…….”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게임에선.’

정말 시답지 않은 내용의 이벤트다.

저 말 그대로 마법을 가르쳐주는 내용.

내용도 별 특이하지 않기 때문에, 유저들은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만, 나는 아니었지.’

이 이벤트의 의의는.

퓨수엘이 곧 등장한다는 걸 암시하는 것.

즉, 고위 던전이 곧 등장할 거라는 암시였다.

‘얼마나 높은 난이도의 던전이 등장하길래…….’

왜 벌써부터 이런 이벤트가 생기는 거지?

그리고.

고위 던전이 출몰할 예정이라면, 리그벨토 가문에서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설령 눈치채지 못해서 발생했더라도 하더라도.

그걸 숨겼다고? 고위 던전을? 어떻게? 그리고 왜?

“…….”

난 직접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저들은 날 해치지 않아.’

한 번 테스트 삼아 적대심 100%를 찍었을 때도.

‘……네가 인간인 걸 감사해라, 머저리.’

이와 같은 대사를 뱉을 뿐.

죽이지는 않았으니.

아마, 안전할 것이다.

저벅.

“아, 앗! 도련님! 같이 가요!”

우리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천막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콧물이 흐르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허리가 굽은 늙은이, 꿈에 부풀어 있는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었고.

“으흠.”

유독 퓨수엘의 존재감이 눈에 독보적으로 띄었다.

‘참 내. 저 양반은 여기에서도.’

덕분에 내겐 시선이 쏠리지 않았지만.

편안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현 강의를 연 장본인이 나타났다.

“자, 자! 모두 안에 앉으세요! 곧 강연, 시작합니다!”

푸른 모자에 흰 가면을 쓴 남성.

아마도 이름이.

‘……세기의 마술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법사가 아닌 마술사.

현 게임 내에선 쓰지 않는 단어로,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자, 그럼! 오늘도 활기차게 강의를 시작해볼까요?”

남자는 하하 웃음소리를 내면서 마법을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물 구슬이 떠올랐다.

“후후. 다들 어떠십니까?”

“와! 예뻐요!”

“훌륭하구먼, 젊은이…….”

“하하, 감사합니다.”

이들은 여러 번 본 광경이라 그런지 별 다른 감탄사를 토하지 않았지만.

마법을 쓰진 못해도 나름 마법사인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마법 영창 없이 발현했다.’

상당한 실력자다.

어쩌면…….

현 내 형제들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보면 볼수록 성격이 좋은 게 이해가 안 되네.’

마법사란 양반들은 대부분 괴팍하기 마련인데 말이지.

“자!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시간을 가져 볼까요?”

“저요!”

코에서 질질 흐르는 콧물을 쓱쓱 닦은 꼬마가 활기차게 물었다.

“혹시, 물 마법으로 양동이에 물을 채울 수 있나요?!”

“하하! 그건 정말 고위 마법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답니다!”

“네? 물 구슬이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물론, 물을 꺼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건 모두 ‘공격’을 위함인 거잖아요?”

마법사의 손가락 끝에 매달린 물구슬이 당장이라도 돌진할 것 같이 회전했다.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사는 물 응축을 풀고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펑!

물구슬이 마치 분무기처럼 뿌러져 머리 위를 축축이 적셨다.

“공격성을 없애고, 오로지 ‘물’만 추출하여 채우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거지요.”

“아항!”

아이는 이해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청년이 손을 들었다.

“그럼 언령은 뭔가요?”

“언령은…… 음, 저희 마법사 기준에선 신의 권능과 같죠.”

“신?”

“예예. 말 한마디만으로 저희의 이 가냘픈 목을 꺾어 버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분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감만으로 저희를 찍어 누르실 수 있으니까요.”

어째서일까.

아주 힐끔.

그들이 날 바라봤던 게 느껴졌다.

“신이라.”

퓨수엘이 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눈동잔, 날 향해 있었다.

“꼭 만났으면 좋겠군.”

……뭘 쳐다봐?

순간 그리 답할 뻔했다.

* * *

“자,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와아아!!”

짝짝짝!

리액션이 참 좋은 꼬마다.

조용한 성격인 듯 입을 잘 열지 않는 청년과.

골골대는 노인을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꼬마는 질문도 열성적으로 했다.

“자, 신사분! 제 개인적인 선물이에요!”

“와!”

“마법을 쓸 때 혹여 모를 위협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겁니다. 다음에 제가 강의를 열면 또 오는 거예요?”

“네! 꼭 올게요!”

아이는 푸른 빛이 감도는 목걸이를 두 손으로 꼭 쥐고, 고개를 푹 숙여 가며 자리를 떠났고.

아이가 떠난 자리를 흐뭇한 눈빛으로 보던 마술사가 말했다.

“저 아이의 재능은 참 훌륭하죠. 아마도 곧 있으면 코어를 다루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겁니다.”

코어.

마법사가 ‘마력’을 다루는 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관으로.

이걸 다루는 법을 깨닫는 의미는.

곧 마법사로 각성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저 아이의 운명이 제대로 흘러가게 되어서 다행이군요.”

‘이런 캐릭터였나?’

분명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그대로지만.

무언가가 다르다.

마치, 이게 본모습인 듯.

가면을 쓰고 있으나,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당신의 운명은 완전히 비틀려 있지만요.”

“…….”

저게 무슨 의미지?

“살 만은 하십니까, 라온 리그벨토씨?”

난 세기의 마술사가 내보이는 눈빛에.

주먹을 슬며시 쥐었다.

……설마. 내가 빙의자인 걸 알아차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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