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시녀들에게 있어서 라온이란 존재는 특이했다.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이나, 형제들에게 무시당하고 ‘마법사’로서도 가능성조차 없다.
고귀한 혈통이나, 능력을 조금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가문으로부터 버림받다시피했고, 하녀가 건드려도 전혀 후폭풍이 걱정되지 않는 존재.
‘이거…….’
‘완전히 샌드백이잖아……?’
그녀들은 하녀로 일하면서 깎여나가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그를 통해 채워나갔다.
건드리면 고양이처럼 사납게 대하나.
고양이가 아무리 사나워도 인간의 발길질 한 번에 쓰러지는 것처럼.
그는 시녀들이 조금만 압박을 주어도 알아서 고개를 수그렸으니.
라온의 문제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었기에, 이 관계가 영원히 역전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 뻣뻣한 목이 꺾이고 싶지 않으면.”
하지만, 그 역할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시녀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물론, 오늘 라온이 달라졌다는 걸 두 눈으로 보긴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의 힘을 실험한 형제 중 한 명인 ‘마벨 리그벨토’가 시녀들에게 직접 말했었다.
‘그건 당연히 가짜야. 오늘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이왕이면 다수로. 그럼 그 녀석은 본색을 드러낼 테니까.’
분명 그랬는데…….
“대답.”
“네, 네…….”
“네, 네엑!”
저 무서운 눈과 분위기는, 대체 뭐야……?
“시녀장.”
“……네.”
“다음 일정.”
“……마벨 도련님께서, 라온 도련님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
라온은 예상했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시녀장과 시녀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우리한테 시킨걸…….’
‘이미 알고 있어……?’
그렇다는 건.
‘정말로…… 우릴 죽일지도 모른다…….’
직계의 권한이 있든 없든.
그들을 없앨 권한이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고.
시녀장뿐만 아니라 시녀들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릴지도 몰랐다.
그러한 공포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뭐해?”
그녀들의 생각은 더 이어지기 전.
라온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청소 안 하고.”
“하, 하겠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어느 때보다 더욱더 빠르게 그들의 손과 발이 움직였다.
우르르르!
청소 도구나 아티팩트가 없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 손과 발들 덕분에 1년 넘게 방치된 방이 한순간에 깨끗해졌다.
마지막엔 급하게 챙겨온 청결을 유지하는 아티팩트가 발동되고, 창문까지 활짝 열려 공기를 환기시킨다.
만약 아벨라가 했다면 온종일 해도 힘들었던 양을, 몇 명이서 한 번에 하니 순식간에 끝이 났다.
방 안이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해지고.
라온은 덜덜 떨며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하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 했어?”
“네, 네.”
“그럼 내 방에서 꺼져.”
“네?”
라온은 멍청하게 반문하는 하녀를 향해 쇠사슬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시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후다닥 방 안을 빠져나갔고.
쾅!
문이 거친 소리와 함께 닫혔다.
* * *
‘이제야 좀 시원하네.’
그들이 나가자, 난 편하게 다리를 뻗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동안 게임하면서 ‘왜 욕해 시발XX들아’를 직접 못 박은 건 아쉬웠지만.
그 공포에 질린 얼굴들과 경악한 얼굴들을 보니, 와.
그냥 속이 뻥 뚫려버렸다.
‘이젠 나와 아벨라를 무시하고 핍박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럼 아벨라 타락 루트도 웬만하면 타는 일이 없을 거고.
언제 칼이 등에 찔리나, 하는 걱정도 없어졌다.
‘완벽한 건 아니지만.’
나는 직계로 인정받지 못해, 형제들로부터 시련을 받아야 하는 만큼.
직계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한이 아직 없었다.
이들을 죽이거나 쫓아낸다면, 자격도 없는 놈이 감히 권한을 탐낸다며 다른 형제들이 내게 손을 쓸 수 있을 수도 있었으니.
‘이걸 노리고 제정신을 차릴 수야 있겠지.’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 낫다.
역시 아카데미를 벗어나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이런 대처를 하는 것부터 어려웠을 테니까.
‘권한을 찾는 건, 2주 뒤면 해결될 문제야.’
그러니 신경 써야 할 건 다음 문제였다.
‘그 새끼를 만나야 하지.’
시녀들을 보낸 장본인인 넷째이자 마벨 리그벨토.
이 가문에서 제일 문제가 될 놈이다.
‘그다음에 가주를 만나고……’
모두를 만나고 나서야 따로 개인 활동이 가능할 듯하다.
‘끝나고 나면 바로 영지를 돌아다니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영지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었다.
‘할 일이 참 많구만.’
하지만,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이머로서의 두근거림.
이때까지 한 적 없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개 같은 새끼들을 직접 만나야 하는 건 안 좋네.’
곧바로 기분이 다시 안 좋아졌지만 말이다.
“허억, 허억, 허억….”
덜컹.
문이 열리자, 그사이에 땀으로 흠뻑 젖은 아벨라가 이불을 가득 쌓은 채 들어왔다.
아벨라는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길 막지 말고 빨리 들어와.”
“아, 넵. 죄송해요…….”
내 말에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온 그녀는 다시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 방을 채우고 있어야 할 시녀가 보이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들은…….”
“보면 몰라?”
난 대충 대답했다.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건 라온의 성격에 안 맞으니까.
그리고 그런 성격이라고 해도.
직접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건 말해야겠다.
“아벨라.”
“…네?”
“다른 놈 앞에서 기지 마.”
“……?”
아벨라가 순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당장의 이해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에.
굳이 더 별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내 하녀니까.”
“…….”
난 쑥스러움 반, 그리고 일정 반으로 문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어벙하게 서 있던 아벨라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디 가세요?”
“마벨 리그벨토를 만나러.”
덜컹.
내가 문을 열자, 아벨라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자, 잠시만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이불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후다닥 내게 달려왔다.
“안 오면 버리고 갈 거야.”
“같이 가요!”
내게 달려오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고 있었다.
* * *
마벨 리그벨토.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 중 넷째.
마치 늑대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회색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언제나 늑대와 같은 고고함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그는 흔치 않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뽀그르르-
텅 빈 주전자에서 끓는 소리와 함께 물이 차올랐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수분들을 끌어모아 만들어 낸 것.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이것은.
오로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특기였다.
‘이것이 마법.’
이런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마력이 필요하다.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불리는 마력은, 많이 타고나면 좋은 것이고, 그 어떤 역사에도 마력이 과해 독이 된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역사에 기록조차 남지 않은 고대의 생명체, 드래곤이라고 오해받아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타고난 라온은 대마법사가 될 운명이었다.
그래.
운명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마법사, 아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타고나는 신장과 같은 코어.
마력을 다루는 데에 필수적인 코어를 타고나지 못했다.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심장조차, 코어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이건 ‘저주’보다도 지독한 것이었고.
그에게 쏟아지던 기대는 한순간에 멸시로 바뀌어.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라온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그는 그리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었던 건가?
쇠사슬이 없다면 그대로 마력에 온몸이 터져 죽어 버렸을 텐데도.
자신조차 두려운, 그 맏형을 보고서도 어떻게…….
‘그리고 왜 나는.’
그 당당한 두 눈을 보고서.
왜…… 다른 형제들을 본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인가?
‘네놈도 결국 괴물이라는 건가?’
다른 형제들과 같이?
‘그럴 리 없다.’
그는 속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라온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의 근본적인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마력이 줄어들고 마력을 통제할 수있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잠시간의 허세겠지.’
어차피 그는 죽을 것이다.
맏형이 내리는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저 많은 마력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떤 희망을 가진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기적도 그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신의 기적이 있다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시간 회귀를 반복할 수 있는 회귀자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냐? 내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거늘-”
“라온 리그벨토입니다.”
“!”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직접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내가 하녀를 보낸 걸 알아차렸나?’
그걸 이겨낸 거야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설마 아예 하녀를 통해서 자기가 뒷배인 걸 알아차릴 줄이야.
‘몇 명은 치워야겠군.’
이 가문에서 그런 가벼운 입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
그뿐만이 아니다.
‘리그벨토 성까지 붙여서 말하다니…….’
같은 귀족에게 있어서 ‘성’을 말하는 건 서로의 신분과 직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라온의 저 말은.
자기 자신이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라는 걸 당당히 드러내는 것.
‘나와 한번 붙어 보자는 거냐?’
그는 어이가 없어졌다.
설마, 직접 찾아올 줄이야.
‘좋다. 네 기대에 응해주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맏형이 직접 나섰으니, 자기를 죽이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건 착각이라는 걸 말해주며 그대로 죽이고 싶었지만.
‘어차피 넌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만약에라도 살아남는다면.
아니,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네가 본 희망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그걸로 자신이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론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들어와도 좋다.”
덜컹-
“오랜만이구나, 라온.”
문이 열리자 온몸에 쇠사슬을 두른 라온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뿜어지는 마력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찌릿-
마법사로서의 본능이 그의 마력과 저 쇠사슬을 경계한다.
‘……쯧. 마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저딴 유물이나 들고 다니다니.’
라온이 다루는 쇠사슬은 혹여나 모를 일을 위해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던 고대 유물이었다.
과거, 악마나 드래곤 같은 존재를 봉인하는 데에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는 구속구 중 한 종류.
저 구속구는 그에게도 너무나 치명적이었으며.
라온이 품은 마력 자체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강렬했다.
“쯧.”
후우웅!
마벨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라온의 마력을 찍어 누른다.
벗어나기 위해 마구잡이로 발버둥 치지만.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마력 따위가, 고위 마법사인 그를 이겨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키이이이잉!
마벨의 마력에 반응한 라온의 쇠사슬이 더 탐욕스럽게 마력을 빨아들인다.
마벨은 보자마자 라온이 쇠사슬을 활용하는 법을 알 수 있었다.
‘저걸로 체내의 마력을 조절하고 있었군.’
라온의 제일 큰 문제점은 너무나도 많은 양의 마력이 체내에 있는데 그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니.
저걸로 마력의 양을 조절하면서 진정시키고 있던 모양이다.
‘저게 없다면 살 수도 없다는 뜻이고.’
그런 나약한 것이 대체 왜 그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도 나를 앞에 두고?
‘궁금하구나.’
대체 어떤 행운을 얻은 것인지 말이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라온. 몇 년 만이지?”
“모르겠군요. 워낙에 못 본 사람이 많아야지요.”
라온이 쫓겨나듯이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마벨이 수련을 위해 잠시 가문을 비웠을 때였다.
‘한…… 3년 정도 지났나.’
마벨은 그 당시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가 커져 몰라보게 성장했으나, 라온은 아이의 성장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마법사나 기사들이 마력의 영향으로 보통 사람보다 성장이 빠른 걸 감안하면 더 놀라운 일이었다.
마법사와 기사는 물론, 일반인의 평균치에도 다다르지 못한 성장치.
“하하. 그동안 워낙에 바빴어야지. 안으로 들어오거라.”
“예.”
하지만, 그런 왜소한 체구임에도
‘보고보다 더 커진 거 같은…….’
기분 탓인가?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을 금세 지워냈다.
라온이 안으로 들어올수록, 그의 존재감이 더 강력해졌으니까.
마벨이 뿜어내는 마력이 더욱더 강력해질 정도로.
그러나 라온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듯,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쯧.’
계속 이렇게 마력을 뿜어내는 건 그에게도 무리였기 때문에 마력을 회수했다.
라온은 그의 앞에서 평온히 찻잔을 들어올려 입에 가져다 댔다.
마치 안에 독이라던가 그런 게 들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많이 달라졌구나. 이젠 내가 무섭지 않느냐?”
“제가 왜 형님을 미워하겠습니까. 뭐가 무섭다고요.”
라온이 피식하며 짓는 웃음에.
마벨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건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자신감이었다.
일개 독 따위로는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
외형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그가 정신적으로는 아주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아주 많이 달라졌어.’
대체,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필립 오스큘라. 그놈을 꺾었다고 했지.’
라온과 동갑으로, 아직 육체적인 능력도, 마법적인 능력이 전체적인 기준에선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공작이 직접 대공자로 임명했다는 건, 그의 가능성이 자신들에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꺾었다는 건, 라온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고.
‘이건 기적이다.’
대체 어느 희망이 너를 되살린 것이냐.
아니.
대체 어느 기연이 너를 이리 만든 것이냐.
탁!
마벨의 상념이 라온의 찻잔에 의해 깨졌다.
찻잔을 내려놓은 라온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많이 달라진 모습이 이상하신가 보군요.”
“이상하다니.”
“형님의 눈에 생각이 많아보여서요.”
“…내 눈이 그리 보이느냐?”
“예.”
적어도.
이자 앞에선 ‘라온 리그벨토’인 척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저자는 ‘라온 리그벨토’의 최근 모습을 모른다.
최소 3년간 보지 못했고.
들은 이야기라곤 아카데미에서의 무능한 소식뿐이니.
‘그러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라온이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방대한 마력과 쇠사슬을 인지할 수 있는 이상.
인지할 수 있는 이상, 라온이란 정체를 의심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이 상황을 주도한다.’
“제가.”
라온은 그의 눈을 당당히 바라보았다.
“그냥 무능하게 아카데미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것 같습니까?”
“……!”
그의 말은 마벨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설마.
저 방대한 마력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차린 것인가?
저 쇠사슬은 눈속임 용이고?
하지만 분명히…….’
‘별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정신이 조금 더 나간 거 같긴 하군요.’
저주가 치료된 기미나 그런 건 보이지 않았는데?
‘주변 시선마저 통달한 건가?’
그런 생각까지 닿은 순간.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시련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마저 느낀 라온의 변화를.
과연 맏형이 모를까?
아니. 그럴 리가.
직계를 굳이 죽이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의 맏형은.
굳이 그를 죽이기보다는 테스트하는 방향으로 시련을 내릴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죽을 만큼 위험하겠으나.
만약 라온이 정말로 마력을 통달할 줄 알게 된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직계로 인정받아 자리를 되찾을 것이며.
후계자 경쟁에 참여할 것이다.
‘죽여야…….’
마벨의 손이 꿈틀거렸다.
그 순간.
촤르르륵.
들려온 소리에 마벨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발아래의 쇠사슬이.
마치 뱀이 적에게 경고를 하는 것처럼 스르륵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발을 휘감아 온몸의 마력을 빼앗아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쇠사슬이…… 저리 자유롭게?’
아니.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아니면 라온이 직접 다루는 건가?
“…….”
그의 마력이 가라앉았다.
본능은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라 외치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정확히는.
‘아직 죽일 수 없다.’
아무리 라온이 저 유물을 다룰 수 있다고는 해도 자신이 질 리가 없다.
라온과 자신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격차가 나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를 습격하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나거나……. 혹은 다치기라도 해서, 형제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안 돼.’
적어도 라온에 대한 정보를 모두 파악한 이후.
그의 숨통을, 아무런 상처 없이 끊을 수 있을 때, 일을 벌여야만 했다.
‘……만약 두 팔을 꺾어 굴복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불리한 세력 다툼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때, 제거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냥개는, 적보다도 더 위험했으니까.
그런 그를.
라온은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