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도련님…….”
아벨라가 내게 조심스럽게 반지를 내밀었다.
아까 마법사를 제압하기 위해 집어던졌던 반지.
나는 반지를 다시 끼며 목이 부러진 산적 두목 시체에 침을 뱉었다.
‘더러운 놈들.’
아련해 보이던 눈동자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이들이 죽을 때마다 보이던 회상씬.
만약, 그 회상씬만 본다면 측은함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씬이지만.
이들이 저지른 악행을 알게 된다면, 그건 그저 겉치장뿐인 가식에 불가하다.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빼앗던 놈들이 X같은 가식은 시발…….’
저런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이들이 진심이라는 것.
죽는 순간에 보이던 그 진심 어린 눈은, 내 기분을 더 거지같이 만들었다.
‘X같네.’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마다 느끼던 감정을 현실에서 느끼니 거지 같다.
‘이래서 라온. 넌 인간을 싫어했던 건가.’
산적 두목의 머리를 뽑아버리면서 뱉었던 대사.
-이젠 지긋지긋해.
그건, 내 대사가 아닌 라온의 대사였으니까.
‘이제 뒤처리만 하면 그만인데.’
나는 나를 바라보는 떠돌이와 눈을 마주 봤다.
* * *
‘……말도 안 돼.’
떠돌이는 정말 많은 곳을 봐왔고, 많은 사람을 봐왔다.
대륙에서 손꼽힐 만한 외모를 가진 이도, 손꼽힐만한 실력을 갖춘 이도, 지옥에 던져져도 살아남을 생존 고수까지.
하지만.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라온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쇠사슬을 무기로 다루는 건, 기술이 아닌 예술에 가까웠으며.
자신이 가진 무기를 모두 활용할 줄 아는 활용도까지.
몇 년 동안 싸움만을 해온 고수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정신도…… 완벽해 보이진 않지만, 훌륭하셨다.’
싸움에서 쓸데없는 말도 내뱉지 않고, 상대방의 숨통을 끊는 데에 익숙해 보였다.
그게 정상은 아니지만.
그가 ‘리그벨토’ 가문임을 감안했을 땐,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으니.
‘…저렇게까지 변한 이유는.’
떠돌이는 그의 예전 모습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순 없지만.
그가 산적의 숨통을 끊을 때 뱉었던 마지막 말로 대충 예상이 갔다.
‘예전에 납치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했지.’
그 이후로, 라온의 행동 패턴은 바뀌었다.
갑작스레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필립 오스큘라를 꺾고, 지금 산적들을 학살하기까지……
‘그 사건으로 바뀌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게 쇠사슬을 저리 자유롭게 다루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저건 부류만 ‘아티팩트’로 구분될 뿐이지, 범죄자를 구속하기 위한 구속구로 만들어진 건데?
‘…알아봐야겠어.’
악마의 힘을 빌린 건 아니지만.
어쩌면, 다른 초월적인 존재에게 힘을 빌렸을 수도 있다.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저 두 눈은…….
결코, 모두에게 무시 받고 쓰레기로 취급받던 이의 눈이라고 믿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도련니임…….”
시체 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어온 아벨라가 훌쩍이며 라온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온갖 일을 다 겪어온 떠돌이와 다르게, 아벨라는 구박받으며 자라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평범한 하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과 라온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벨라도 아직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
라온은 뜻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아벨라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떠돌이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긴장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설마 하녀까지 처리하시려는 건가?’
하지만 다행히도 라온의 쇠사슬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라온은 하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휙 돌려 마차로 향했다.
“난 이만 들어가지.”
“…네, 도련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벨라는 라온의 옷자락을 잡은 탓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훌쩍이며 그를 걱정했다.
“큽, 훌쩍. 사제님… 우리 도련님 상처는….”
“…놀랍게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상처는 이미 확인했으나, 몸에는 쇠사슬을 휘감은 탓에 생긴 작은 타박상 말고는 없었다.
‘가주님께 알릴 사안이 많아졌군.’
떠돌이는 피곤함을 느끼면서 눈가를 손바닥의 뭉툭한 부분으로 눌렀다.
아, 이래서 가문과 묶이고 싶지 않았던 건데.
“…….”
“…….”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 침묵이 맴돌았다.
라온은 대충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벨라는 훌쩍거림을 멈추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물에 적시고 라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닦아 드릴게요…….”
손수건이 그의 뺨과 이마 등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라온은 가만히 자신을 닦아주는 아벨라를 바라보다가, 마음이라도 연 듯, 입을 열었다.
“죽였어.”
“네?”
“날 노린 몇 놈들을 죽였다고.”
원래 그녀가 알던 라온은 속내를 잘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핍박받고, 말을 하고자 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극을 주는 걸 알았기에 입을 잘 열지 않았다.
그런 그와 오랜 시간을 지내 온 아벨라는 곧바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이해했다.
‘갑자기 자신이 변한 이유에 대해서…….’
“날 죽이러 오는 놈들은 이제 지긋지긋해.”
그는 자세한 내막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고.
그에 대한 심경 변화를 말해 주었다.
“내가 죽을 바엔, 남을 죽이겠어.”
“……!”
그 말에 아벨라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가, 이내 설그픔으로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러니까 너는 신경 꺼.”
“……네.”
아벨라는 더 이상 라온의 슬픔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피를 모두 닦아주고 자리에 앉은 그녀는 두 다리를 끌어당겨 쭈그려 앉았다.
‘이 정도로 바뀌실 줄은……’
대체,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어떻게 하면 3일 만에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뀔 수 있던 걸까……?
덜그럭, 덜그럭-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처리가 끝난 모양.
라온은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고 싶었지만, 우선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상처는 거의 없다. 마력도 안정적이고.’
역시 이런 난전에서도 가진 정보를 활용하면, 다수를 상대로도 이길 수 있었다.
‘물론, 내 정보 덕분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쇠사슬이 잘 움직여 주었어.’
오랜 시간 라온의 마력을 머금은 쇠사슬은 이제 라온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오랜 시간, 신성력을 머금은 검이 자아를 갖춘 성검이 되듯이.
쇠사슬도 이제는 라온의 일부이자, 자아를 갖춘 아티팩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물론, 완전히 자아를 갖춘 수준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쇠사슬에 대한 정보부터 바뀌었을 터.
하지만 이 게임의 아이템 설명창은 상당히 부실한지라, 세세한 능력과 한계치 그런 건 모두 직접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게 세세히 표현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이나 성능이 좋다는 얘기였고.
자아를 갖춘 순간부터, 성능이 좋다는 걸 넘어 웬만한 귀물(貴物)에 필적할 테니, 분명히 설명창이 바뀔 것이다.
‘그런데 왜 돌발 이벤트가 안 끝나지?’
“…….”
덜컹!
의문을 가진 순간.
마차가 크게 덜컹이며 천천히 멈춰 섰다.
‘……뭐지?’
갑자기 왜?
라온은 잠시 의아해하다가, 창문 밖의 천막들을 보고 납득했다.
‘아. 거기였군.’
똑똑.
“……저, 도련님.”
라온이 죽이고 온 산적들에 대한 역겨움을 더해 주는 이벤트.
“잠시, 저곳에 들러도 되겠습니까?”
떠돌이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낀 라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마음대로 해. 단. 나도 내린다.”
“예. 하지만…… 좋지 않은 광경이니, 눈을 가리시길 바랍니다.”
“저, 저도 갈래요.”
“하녀분께선…….”
떠돌이는 잠시간 망설였지만.
결국 라온의 뜻을 무시할 순 없었기 때문에,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라온과 아벨라가 마차에서 내리고.
아벨라는 보이는 풍경에 입을 틀어막았다.
“헉…….”
마차에 있을 땐, 보이지 않았지만.
내리자마자 보인 건…….
마치, 자랑하듯이.
천막 사이사이에 가득 쌓여 있는 피 묻은 옷가지들이었다.
“……잠시, 안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절그럭.
라온은 쇠사슬을 질질 끌며 떠돌이의 뒤를 따랐고.
아벨라는 설마, 하는 마음에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라온의 쇠사슬을 잡아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위이이잉, 위이잉.
천막들의 안에선 파리떼가 들끓고 있다.
파리떼가 들끓지 않는 천막 안에는 잠을 자기 위함인 듯, 이불과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고.
벌레의 침입을 막아 주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
떠돌이는 잠시간 천막 안을 살폈다.
안에서 여러 곡도와 칼을 가는 도구, 그리고 생필품을 확인한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천막 밖으로 나온 그는 망설임 없이 파리떼가 돌아다니는 천막에 다가갔다.
위이이이잉!!!
파리뗴가 거대한 드래곤처럼 느껴지는 우뚝 서 있는 라온의 마력을 느끼곤 후다닥 날아올랐다.
파리떼가 한순간에 없어지고, 떠돌이는 딱딱한 표정을 한 채 천막을 걷었다.
펄럭-!
“우욱…….”
“…….”
천막 안에는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었다.
남자와 여자들의 시체들.
그 중엔 어린아이의 것도 섞여 있었다.
“우, 우웩…….”
쌓여 있는 시체들에는 갖은 학대와 폭력의 흔적이 가득했다.
오로지 흔적도, 표정도 알 수 없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두개골밖에 남지 않은 시신들뿐이었다.
“……그 산적들의 짓이로군요.”
떠돌이의 눈에 잠시간 푸르게 빛났다가 꺼졌다.
“그런가 보지.”
“……잠시, 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
떠돌이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답답하고 자유가 억압된 것이 싫기 때문도 있지만.
이런 현상을, 신전 안에만 있으면 볼 수도, 그리고 이렇게 기도도 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떠돌이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부디, 평온한 곳으로 가시길.”
억울하게 죽어, 떠나지 못했을 영혼들을 향하여.
하지만 라온에겐.
영혼은 보이지 않았다.
띠링.
이 상황을 종료하는 걸 알리듯이.
라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이벤트 클리어!]
[실패 시 주어지는 패널티가 삭제됩니다.]
[보상 : 무기 회수]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 당신의 무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부를 수 있는 무기]
[1. 탐욕의 쇠사슬]
[2. 마력 흡수 반지(하)]
* * *
리그벨토 가문임을 증명하는 깃발은 산적에 의해 타버렸지만.
이미 정보를 전달받고 있던 것인지, 가는 동안 마차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타십시오. 워프게이트입니다.”
빨리 돌아오라는 듯, 한 번에 가문으로 돌아올 수 있는 워프 게이트까지 열어주기도 했다.
“가주님의 명입니다. 이걸 타고 돌아오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나는 망설임 없이 워프 게이트에 발을 올렸다.
결국 아벨라와 떠돌이는 나와 같이 워프 게이트에 발을 올렸고.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팟-!
짧은 빛무리와 함께 시야가 뒤바뀌었다.
방금까지 보이던 방의 모습이 사라지고,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샹들리에와 길게 깔린 레드 카펫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본가 안으로?”
리그벨토 가문의 본가.
직계 혈통과 장로만이 지낼 수 있는 장소.
레드카펫 저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라온과 다른 직계이자, 그의 형제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적들이 뿜어내는 적의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게임 속의 너는 여기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지.’
아무리 플레이어인 내가 조종하려고 해도.
라온은 공포라는 상태 이상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저벅.
나는.
라온이 아니다.
하지만, 라온의 몸으로서.
힘겹게 얻은 힌트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라온의 마력을 줄일 생각만 했다.
실제로 내가 했던 방법 중, 라온이 살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력 제어력을 올릴 수 있다면.’
마력을 줄여, 위험도를 줄이는 걸 넘어서.
마력을 직접 통제하고 다루어……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로.
그리고 역사를 써내려가는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
‘라온’이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미래처럼.
‘난 할 수 있다.’
이 앞의 길은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공략집으로, 게임사의 견제만 없었다면 라온의 마력을 완전히 줄여 정상 수준으로 되돌려 놓아 위협에서 벗어났을 때처럼.
그리고 누구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스토리를 밀어, 최종보스를 보았던 것처럼.
그러니, 나는 이번에도.
‘할 수 있다가 아니야.’
이 불안전한 삶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난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