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산적들이 달려듬과 동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쪽 팔에 쇠사슬을 감아서 다른 팔로 채찍처럼 휘두를 수 있도록 잡는다.
상당히 무거운 무게이지만, 여리여리한 몸에 비해 신체 능력치가 상당히 높기에 충분히 다룰 만했다.
“흐아아압!”
“흐아!”
산적 둘이서 내게 달려들며 상당히 휘어진 곡도를 휘둘렀다.
난 곡도를 피하기보단, 정면으로 팔을 휘둘렀다.
캉!
팔을 두른 쇠사슬에 곡도가 막힌다.
이건 단순히 마력을 흡수하는 용도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흉악범, 그 이상으로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 강자를 묶기 위해 만들어진 아티팩트.
촤르르르르륵!
둘이 손이 저린 듯, 살짝 주춤거리는 걸 노리고 곧바로 오른팔로 쇠사슬을 휘둘렀다.
“쇠, 쇠사슬?!”
묵직한 쇠사슬이 그대로 옆 목을 후려갈겼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옆으로 쓰러지고, 그나마 멀쩡한 놈이 내게 무기를 휘두르려 하지만.
“히, 힘이-”
쇠사슬은 그의 마력조차 빨아들였다. 순간. 힘이 빠진 그가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마차에서 내리면서 그대로 무릎을 내리찍었다.
무릎에서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뒤로 쓰러진다.
쓰러지는 놈의 목을 붙잡고, 내 가슴을 노리고 칼을 휘두르는 놈에게 휘둘렀다.
“컥!”
가슴에 칼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얼굴에 피가 튀었다.
처음으로 느낀 피는 너무나도 뜨거웠다.
“어, 어떻게 네가…….”
“미, 미안! 뽀, 뽑-”
“뽑히는 건.”
푸욱!
난 그대로 산적을 밀어넣었다.
급히 검을 빼내려 했으나, 검이 더 깊숙이 박히면서 검이 완전히 삐죽 튀어나왔고.
무방비가 된 산적의 머리를 쇠사슬로 후려갈겼다.
컥!
“네 머리통이지.”
으드드득!
쓰러진 머리통을 그대로 짓밟았다.
쇠사슬에 찢기지 않게 구상된 신발은 너무나도 쉽게 인간의 살을 찢어발겼고.
아래에서 숨통이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난 피가 묻은 이마를 손등으로 쓱 닦았다.
“괴, 괴물……!”
‘니들 수준이 낮은 거야.’
원래 내 성격이라면 이렇게 싸구려 도발을 했겠지만.
컨셉이 어긋나기 때문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보였다.
“내가 겨우 너희들 따위에게 질 정도로 병신으로 보이나?”
“이,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원래 산적의 인원수는 대략 8명.
하지만 지금 내게 4명이 제거되어,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안 되겠다. 전부, 여기서 죽을 각오로 싸운다.”
“대, 대장!”
“내 말 들어! 여기서 우리가 전부 당하면 말짱 도루묵이야. 몇 명이라도 살아남아야지!”
그의 말에 산적들도 마음을 다잡고 나를 노려봤다.
나는 숨을 고르면서 몸을 긴장시켰다.
그러면서도 현 상황을 파악했다.
‘싸움은 내가 유리하다.’
이들의 수준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기껏해야 모두가 몸을 집어던져 자폭하지 않는 한, 나를 죽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아마도.
가문 내에서 파악하고 있는 내 수준으로도, 이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죽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약해 보였다 이거지.’
하기야, 내가 돌아온다는 소식은 접하되, ‘떠돌이’가 함께 있다거나 그런 소식은 못 들었을 테니까.
또한, 필립을 대련에서 꺾었다고는 해도.
그게 실전에서, 이런 상황에서조차 힘을 쓸 수 있다는 건 아니었으니.
‘아니면 눈치를 보는 걸 수도 있고.’
아무리 나를 견제한다고 해도, 확실히 나를 죽일 만한 인물을 보내기엔 상황이 여의찮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나는 성인이 되지 않았고.
그전에 대놓고 죽이는 건, 좋지 않은 눈초리를 받을 수 있으니.
‘개입할 생각은 없나?’
떠돌이는 놀랍다는 눈치를 보이면서도, 내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그런지 끼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려는 모양.
‘좋아.’
후우우.
난 숨을 길게 몰아쉬며, 눈을 크게 떴다.
산적들은 곧바로 목숨을 바친다고 말한 주제에,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간다.’
휘리리릭!
한쪽 팔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을 풀고 길게 잡아 휘둘렀다.
힘이 잔뜩 실린 쇠사슬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한 산적을 후려갈겼다.
“큭!”
“달려들어!”
내 공격만을 기다리고 있던 산적들이 단숨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패턴.
나는 날아간 쇠사슬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렸다.
짜아아아악!
“크헉!”
“큭!”
빙글 돌며 미처 피하지 못한 산적들을 후려갈기고, 힘있게 돌아온 쇠사슬이 몸에 휘리릭 휘감겼다.
쇠사슬을 피하고 달려든 산적의 곡도가 내 몸을 휘감은 쇠사슬에 막혔다.
“설마 이것까지 노리고……!”
난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산적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큭!”
상체가 무너진 순간, 한쪽 팔을 빼어 그대로 놈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무릎으로 이마를 찍었다.
퍽!
“커헉!”
이마에 무릎이 찍힌 자국이 그대로 남은 산적의 눈깔이 뒤집히며 쓰러지고.
혹시 모르니 그대로 목을 짓밟았다.
우득!
목뼈가 부러진 게 느껴지자 발을 뗐다.
나는 시선을 돌려, 아까 달려든 이들을 바라봤다.
뼈가 부러진 것인지, 움직이려고는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둘.
그리고, 뒤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마법을 캐스팅하는 한 명.
“조금만 버텨!”
‘오합지졸이야.’
예상 이상으로.
너무나 상대하기 쉽다.
이들이 어떤 대사를 치고, 어떤 행동을 보일지.
이들을 몇 번 잡아 온 내 눈에는,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준비 끝났어……! 다들, 시간만 조금 벌어 줘……!”
마법사의 말과 함께.
쇠사슬에 얻어맞아 부러진 팔을 붙잡은 두 산적이 일어나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마력 제어력이 오른 덕에 잠시 없어도 문제가 없는 마력 흡수 반지가 손에 잡혔다.
그걸 그대로 마법을 영창하려는 마법사에게 집어던졌다.
“어, 얼어붙-”
띠리링!
“꺅!”
반지에 닿은 그녀의 마력이 한순간에 흐트러지고.
덕분에 마력은 마법이 되지 못한 채 흐트러진다.
웬만한 수준의 마법사라면, 이 정도의 반지에는 영향을 받지 못할 것이나, 산적 질이나 하는 수준답게 손쉽게 마법이 흐트러졌으니.
“하아… 하아….”
피를 한 움큼 토해낸 그녀는 입가를 쓱 닦았다.
설마 마법이 중지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인지, 내게 달려들 생각은커녕 급히 마법사에게 버럭 외쳤다.
“어서, 어서 빨리 마법을 쓰라고!”
“자, 잠시면 돼-”
“아니.”
난 정확히 마법사의 머리를 노리고 쇠사슬을 쏘아냈다.
쇠사슬의 끝이, 마치 창처럼 쏘아졌다.
촤르르르르르륵-!
“아.”
“누가 시간을 준대?”
퍼걱!
박살 난 머리통에서 피와 뇌수가 뒤섞인 채, 튀었다.
“뭐 해.”
나를 바라보는 산적들의 눈동자엔.
수없이 닳고 닳아 빛을 잃어버린 눈동자가 비치고 있었다.
“안 들어오고.”
절그럭.
피로 얼룩진 쇠사슬이 내 손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 * *
쇠사슬은 무기로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무기다.
아무리 사용자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끝으로 갈수록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채찍처럼 유연한 것도 아니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괴, 괴물…….”
그런 무기를 다루는 괴물이, 동료들을 모두 죽였다.
살아남은 산적 중 한 명이 공포에 떨며 홀로 중얼거렸고.
그의 중얼거림은 다른 산적들에게까지 퍼져나갔으니.
“괴, 괴물…….”
“그 새끼는… 괴물이야…….”
“그 명령 따위… 받지 말아야 했어…….”
그 모습에.
‘완전히 망했군…….’
이마가 찌그러졌으나, 어찌 되었던 살아남아 밧줄에 묶인 산적 두목은 속을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약한 라온을 손쉽게 처리해야 했다.
미리 들은 정보에 따르면, 한 동급생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눌려버렸다고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상처를 입었고, 또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약해져 있을 테니 상대하기 편할 것이다…… 라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정보였다.
‘쇠사슬을…… 무기로 다룬다니……’
분명 라온은 마법사다.
하지만, 그 주제에 육탄전을 주로 하는 이들조차 다루지 못하는 쇠사슬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그들을 학살했고.
쇠사슬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얼마 없는 산적의 마력을 빨아들여 단숨에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저 마부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실력은 뛰어나지 않으나, 오랜 시간 살아남았던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마부가 움직인 순간.
지금보다 더 처참하게 당했을 것이라고.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저런 놈이…… 머저리로 취급받다니…….’
대체, 리그벨토 가문은 얼마나 괴물들이 많은 거지?
“어이.”
저벅.
라온이 다가오는 소리에, 산적 두목은 재빠르게 외쳤다.
“누, 누가 저흴 매수하고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안 궁금해.”
……뭐?
산적 두목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동시에.
우득!
그의 옆에 있던 산적의 목이, 쇠사슬에 감겨 꺾였다.
산적은 혀를 쭉 내민 채 그대로 절명했다.
라온은 무표정한 얼굴로 볼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다음.”
발걸음을 옮겨, 아직 살아 있는 산적의 고개에 쇠사슬을 걸었다.
보이는 미래에, 산적 두목의 표정이 애절해졌다.
“제, 제발……!”
으드드득!
“그만!”
목이 꺾였다.
“그마아아아안!”
으드드득!
비록 멍청하긴 했어도.
같이 더러운 삶에서 함께 발버둥 쳐 살아남은 동료들이다.
그래서. 리그벨토 가문이 토벌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박아, 충성을 맹세했다.
-너흰 이제부터 우리들의 개다.
“제발…… 제발 그만…….”
마지막 살아남은 산적 두목은 머리를 박으며 몸을 덜덜 떨었다.
저벅, 저벅, 저벅-
라온의 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안 돼.’
내가 죽으면 이들을 누가 묻는단 말인가.
이들을 기억할 이는 누가 남는단 말인가.
적어도, 적어도-
‘대장!’
‘만약 저희가 죽으면 금으로 된 관에 넣어주십시오!’
‘크하하하! 그래, 이것들아! 살아서 못 만질 거, 죽어서라도 만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을 지키지 못했으니, 마지막 약속이라도 지켜야 했다.
“제발! 제발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예, 예!”
산적 두목은 그가 공격하지 않자, 서둘러 내막을 털어놓았다.
사실 자신은 리그벨토 가문에 머리를 숙인 사냥개라는 것.
그리고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 중 한 명이 라온을 죽이라 명령을 내렸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떠돌이의 표정이 굳고, 아벨라의 주먹이 꽉 움켜쥐어졌다.
“그래.”
하지만 이상하게도.
“근데 그거 알아?”
라온의 표정은, 별 변화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던 건지.
아니면, 이젠 그럴 줄 알았다며 체념하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난 네가 뭔 짓을 한 지 알고 있고.”
“!”
라온의 쇠사슬이 그의 목에 걸렸다.
“너희 같은 놈들을, 나는 매우 싫어하거든.”
으드득!
산적 두목의 목이 뜯겨 나갔다.
“이젠 지긋지긋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