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따로 상의 없이 바로 정해진 일정이지만.
이미 가주를 통하여, 바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들은 만큼.
일정은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전 그럼 교장에게 말을 전달하고 올게요!’
아벨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일 바로 떠난다고 들었네.”
대체 어떻게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내 이야기를 들은 헬레나가 직접 찾아왔다.
“차 한잔 어떤가?”
내가 차를 주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직접 차까지 들고서 말이다.
“…….”
아무리 개차반이라는 컨셉을 유지 중이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온 이를 밀어낼 순 없었다.
내가 뒤로 몸을 돌리자, 헬레나는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 내가 자주 마시는 차일세.”
쪼르륵-
익숙한 듯 차까지 따라 내게 내밀기까지.
누가 보면 여기 방 주인이 내가 아니라 헬레나인 줄 알겠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에 이런 의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몇 번 왔었나?’
다른 캐릭터들은 대하기 쉽지만.
라온 이외의 다른 주인공들은 직접 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기껏해야 PVP 컨텐츠를 즐기면서 만난 적이 대부분이고.
진짜 ‘캐릭터의 성격’으로 만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
‘왜 헬레나는 그 새끼 같은 광신도는 없어 가지고…….’
사실 필립의 성격을 고스란히 따라한 그놈이 미친놈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게임을 플레이한 인원수가 몇 명인데, 컨셉질을 하는 애가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운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진짜로 없는 건지 헬레나의 성격을 그대로 따라한 놈은 만난 적이 없었다.
탁.
부드럽게 찻잔을 내려놓은 헬레나가 말했다.
“그래서. 정말로 내일 떠나는 건가? 아, 강요하는 건 아닐세. 다만, 원래 일정보다 더 빨리 떠나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걸세.”
나를 친절하다 못해 부드럽게 대하는 모습에.
더욱더 거부감이 느껴졌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 뭐 안 했는데?’
이미 그녀가 내게 호의를 품은 건 알지만.
이건 그 이상이지 않는가.
“……그래.”
내가 짧게 대답하자, 헬레나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 친구와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말이야.”
왜 자꾸 ‘친구’임을 강조하는 것 같지?
대체 뭘 했길래 친구라는 거야?
‘…한번 물어볼까?’
저런 반응이면 대답해 줄 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분 나쁜 티를 좀 내 줬다.
“꼬치꼬치 캐묻지 마라.”
“미안하군.”
“그리고. 왜 내가 너와 친구라는 거냐?”
그리 말하는 내 목소리엔 잔뜩 날이 서 있었지만.
“……!”
그녀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져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네가 생각하는 친구는 뭐지?”
“……몰라.”
“좋아. 그럼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를 말해 주겠네.”
헬레나가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내게 얼굴을 들이 내밀었다.
“같이 밥을 먹었나?”
“…먹었지.”
“같이 수업을 듣나?”
“…듣지.”
“서로의 이름을 아나?”
“…알지.”
“그리고.”
하아.
그녀가 잠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서로가 얼마나 강한지, 아나?”
“…….”
기사는 힘을 추종하며, 심한 작자들은 숭배까지 한다.
마치 사제처럼 매일 기도를 올리고 검을 잡는 이들이 있으며, 머릿속으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강함’이 자기를 인도한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는 마법사도 마찬가지였고. ‘마력’을 추종하는 걸 넘어서, 기사들이나 사제들처럼 마력 자체를 추종하는 작자들도 있었으니.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지금 내게 보이는 헬레나의 모습은, 힘을. 아니, 강자를 추종하는 이들의 특징이었다.
‘힘’을 추종하는 건지, 강자를 추종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중증인 것 같다.
‘망했네.’
이런 미치광이들이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
다만 문제가.
전체인 ‘숲’을 봤을 때나, 다른 ‘숲’도 만만치 않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
개인인 ‘나무’를 봤을 땐.
그리고 나 같은 개복치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위험한 게 없었다.
“……알지.”
“그래.”
헬레나가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친구다.”
“…….”
내가 기억하는 헬레나는 정의로운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범죄자 같은 놈들을 단번에 베어 버리고.
그렇다고 또 호구처럼 당하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모습은….
‘내가 모르던 설정인가?’
이럴 줄 알았다면 제대로 분석할걸!
괜히 다른 캐릭터들을 분석하면 라온 말고 다른 캐릭터가 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 안 했었는데.
‘…아니야. 괜찮아.’
아카데미만 벗어나고, 마력이 폭주할 위험만 줄인다면.
더 이상, 이렇게 쫄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고.
그냥 내가 혼자 메인 이벤트를 진행해버린다면, 별 충돌 없이 살 수 있다.
‘얘 성격이 더 이상해진다고 해도’
일면식이라곤 아카데미에 와서 본 것밖에 없는 타인의 성격을 챙겨 줄 정도로, 나는 여유롭지가 않았다.
또 문제가 생겨도.
내가 짠 공략집대로 성장하여, 아니 그 이상으로 성장하여, 결국 마지막에 잡지 못한 보스를 잡을 수준이 된다면.
헬레나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언제 그녀는 흥분했냐는 듯이 다시 차분하게 돌아와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호로록-
단번에 찻잔을 비운 그녀는 빙긋 웃어 보였다.
“뭐, 그래도 나중에 내가 놀러 가면 되니까. 많이 아쉬워하진 않겠네.”
‘오지 마.’
“더 미래에. 나중에 다시 봤을 때.”
헬레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대가 성장해있기를 바라지.”
악수를 바라는 듯한 손을, 잠시간 바라봤다.
이걸 잡는 게 맞는가.
아니.
라온은 이걸 잡는가?
“내 일이다.”
그는 이런 낯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신경 꺼라.”
“……그런가.”
내가 거부했으나.
그녀는 원하던 답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드르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갔다.
“자네는…….”
비록, 내게 보이는 건.
등과 등을 반쯤 덮은 붉은 머리카락뿐이었지만.
“누구보다 강해질 거야.”
그녀가 웃고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보지.”
아카데미에서 헬레나를 본 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 *
아침이 밝아 오기도 전의 새벽.
눈이 번뜩 떠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안 움직이네.’
누군가가 양팔을 잡아서 짓누르는 느낌.
뿐만 아니라, 귓가에 이상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넌 쓰레기야.
-넌 죽어야 돼.
-넌 쓸모 따위 없어.
‘참내…….’
가위를 눌려도 이렇게 눌리냐?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이나 잠을 자는 동안 긴장이 풀려 있던 근육이 이완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랬지.’
그럼 근육을 이완시키면 그만 아닌가?
난 아주 작게. 정말 아주 작게, 쇠사슬을 통제했다.
‘조금만 더 세게 흡수를.’
정확히는.
자는 동안의 모드를 해제시키고, 평소에 마력을 흡수하는 양으로 변화시켰다.
꿀렁!
체내의 마력이 크게 울렁거리며, 마치 순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머리가 빙빙 돌았다.
크게 눈을 감았다가 뜨자, 속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가위가 풀렸다.
“하. 살았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난 크게 한숨을 푹 내쉬며 뻐근한 몸을 주물럭거렸다.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린다.
왜 가위에 눌렸는가.
대충 예상은 갔다.
‘어제 헬레나 때문인가.’
현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상대는.
내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캐릭터인 헬레나와 필립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원한다면 곧바로 공략집과 특성을 적어 줄 정도로 해박하게 꿰뚫고 있지만.
유일하게, 두 캐릭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로 인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그로 인해 내 목숨이 위협을 받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후우…….’
어차피 아카데미를 벗어나면 볼 일이 없다.
하지만.
게임에 완전히 미쳐서, 조금의 변수도 허락하지 않도록 미친 듯이 공략집을 만들었던 시절이 있던 만큼.
이런 불안 요소가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런 성격도 고쳐야 하는데 말이지.’
난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윗옷을 벗고, 쇠사슬을 발목에 건 채 질질 끌고 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물을 틀자, 금세 따뜻한 물이 나와 온몸을 적셨다.
“하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물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예전에는 이런 여유조차 가지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조금 더 완벽하게 라온을 살릴 수 있는 루트를 구상했다.
누가 재촉하던 것도, 누가 요구하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너무나도, 이 라온이란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다.
“…….”
……찰그락.
발아래에서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발목에는. 편의를 위해 묶어둔 쇠사슬이,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며.
나 스스로가 묶은 것이지만.
발목이 묶인 이 모습은, 죄수가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벗을 수도 없다.
벗는 순간, 그대로 몸이 폭발해 죽어 버릴 테니까.
‘왜 네가 망가졌는지 알겠어.’
죄를 지은 죄수조차 씻는 동안에는 이런 쇠사슬을 차지 않을 것이다.
노예조차, 이런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아니.
설령, 이리 산다고 해도.
라온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단지, 마력을 많이 타고났다는 이유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죄수 같은 삶을 살았으며.
이제는 내가 그 삶을 이었다.
‘너는 어디로 갔을까.’
만약.
라온의 이 저주를 치료하고, 이 게임을 클리어해 버린다면 네가 돌아올까.
내가 들어오고 사라진 라온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이왕이면 내 몸이었으면 좋겠네.’
좀 멍청하긴 하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과 열심히 벌어 둔 돈들이 있다.
그거라면, 자유가 된 라온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라온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나 우정이나, 그딴 감정이 아니었다.
동정.
그리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직접 고른 캐릭터.’
그에 대한 애정.
자유와 내 의지라곤 없던 삶에서, 직접 고른.
유일한 내 캐릭터였으니까.
‘반드시 살린다.’
너도.
그리고 나도.
내가 살아야만, 라온이 살 수 있다.
“…….”
문밖으로 나오자, 문 바로 옆에 설치된 아티팩트가 발동되며 흠뻑 젖은 머리카락과 몸을 말려 주었다.
쇠사슬도 깔끔하게 말려 주고, 대충 팔에 휘감아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덜컥.
늦게 일어난 것인지, 크게 하품한 아벨라가 나오다가 날 보며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헉.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그래.”
“제, 제가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필요 없어.”
“그, 금방 준비할게요!”
출발하기까진 1시간.
여자인 아벨라가 씻기엔 조금 부족한 시간이지만.
기초 화장도 잘 하지 않고 다니는 성격 덕분인지, 금세 준비를 끝내고 나왔다.
치이익!
‘아. 아티팩트로 떼우는 거였구나.’
얼굴에 무언갈 뿌린 아벨라는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곤, 버릇처럼 문 앞에 놓인 우편물을 확인했다.
그러곤 내게 슬쩍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필립 오스큘라 님이……”
“버려.”
“네엡…….”
결투장이던가 초대장이던가 하겠지.
둘 다 관심 없다.
“그럼 바로 갈까요?!”
내가 기분 나빠한다는 티를 낸 걸 알아차린 것인지, 아벨라는 과하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대답하지 않고 먼저 출발했고.
“같이 가요~~!”
그녀는 뒤늦게 내 뒤를 통통 따라오며 내 쇠사슬을 살짝 들어주었다.
미리 약속해두었던 장소인 정문으로 나가자.
“…오셨습니까.”
미리 와있던 떠돌이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에 먼저 올라탔다.
보통이라면 무례이지만.
따지면 내가 상급자였기 때문에, 그는 내게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럼.”
마부석에 앉은 떠돌이가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난 창문으로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이 아카데미를 떠난다.
“자, 잠시만요-!”
저 멀리서, 교장이 급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날 무시하던 것과는 달리 아주 바빠 보이는 모습이다.
“잠시 멈-!”
“교장께는 따로 사람을 보내놓았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떠돌이가 내게 말하고.
난 교장을 향해 피식 웃어 주었다.
그에 구겨지는 교장의 얼굴은 덤이었다.
히히히힝-
동시에, 마차가 말 울음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 * *
정문을 벗어나고, 아카데미가 자리 잡은 대도시를 지난다.
“지나가십시오-!”
이히히힝!
리그벨토 가문의 깃발을 달아놨기 때문에, 검문 같은 귀찮은 짓도 피하며 마차는 열심히 달렸다.
이윽고 아카데미의 영역권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내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은 주인공 최초로 아카데미를 자퇴하였습니다.]
[최초의 업적!]
[마력 제어력이 0.05 오릅니다.]
“!”
마력 제어력이?
‘이걸 올릴 수 있다고?’
난 눈을 크게 뜬 채로 급히 상태창을 확인했다.
[라온 리그벨토]
힘: 47(일부 봉인)
민첩: 42(일부 봉인)
체력: 48(일부 봉인)
마력: 115(-30)(-1)(-0.2)(사용 불가능)
마력 제어 : 1(통제 가능 수치: 0.1~1 - 마력 사용 혹은 폭주할 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신성력: 0
[특이사항 : 마력 수치에 비해 마력 제어 능력치가 굉장히 낮습니다. 마력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마력 흡수 쇠사슬’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일부 극히 제한된 상태입니다.
※마력이 일부분 흡수되는 중입니다.
※폭주까지 60%(근처의 마력 영향에 받는다.)
“!!”
마력 제어력이 1로 올라있다!
이건, 패치되기 전의 수치와 동일했다.
즉. 지금보다 아주 조금이지만 안전성을 얻었다는 것!
아니, 그보다 더한 성과가 있었다.
‘제어력을 올릴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살아남는 걸 넘어서.
라온 리그벨토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얘기였다.
타고난 마력처럼, 찬란히 빛나는 삶으로.
그때.
[돌발 이벤트 발생!]
[당신은 최초로 아카데미를 벗어났습니다. 이후에 일어나는 이벤트는 당신의 목숨을 위협할 것입니다.]
[곧 닥쳐올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보상: ???]
[실패 시: 죽음, 혹은 마력 제어력 2 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