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좋다.”
드르륵!
라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쇠사슬이 바닥에 질질 끌린다.
살벌하게도 들리는 소리와 그가 뿜어내는 마력에 근처의 학생들이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슬그머니 라온에게서 시선을 뗀다.
저 광경이.
필립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답지도 않은 주제에.’
필립 오스큘라.
그는 위대한 오스큘라 공작 가문에서 태어난 직계로서, 자신의 핏줄과 귀족이란 직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동급이라 평가받는 리그벨토 가문과 글라스크 가문도 훌륭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헬레나 글라스크는 훌륭했다.’
아니, 자신이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는 그런 그녀를 존중했다.
하지만.
‘라온 리그벨토는 수준 미달이란 말이 아까울 정도.’
그가 타고난 재능 자체는 뛰어났다.
필립의 아버지인 오스큘라 가주마저도 저 방대한 마력을 보고 감탄할 수준이었으니까.
‘대단하구나! 만일 저 마력을 통제한다면, 전대미문의 마법사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방대한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는 너무나도 허약했다.
허약한 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허약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떽떽거리는 것뿐.
‘귀족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놈.’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도 않는 놈.
필립은 귀족이란 이름에 어울리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그 증거로 몇 번이고 죽을 뻔했으며. 온몸엔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았다.
하지만 라온은 그런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여 무너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필립은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너 같은 건 귀족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그걸 증명해 보이겠다.
필립은 전투를 준비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읍!”
<오스큘라가(家) – 철옹성>
마력이 절대 뚫리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은 단단함을 가진 갑주로 화해 온몸을 둘러싼다.
이어 두 주먹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자세를 잡은 필립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새어 나왔다.
“덤벼라. 널 꺾어 주겠……!”
촤르르르륵!
말이 끝나기도 전.
살벌한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날아왔다.
“!”
필립은 본능적으로 급히 땅을 굴렀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를 쇠사슬이 채찍처럼 내려쳤다.
짜아아악!
살벌한 소리.
딱 그뿐이다. 땅이 움푹 파인다거나, 강렬한 마력이 남아 있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위협을 느꼈다고……?!’
필립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저 쇠사슬이 위험하다는 것을.
촤르륵- 촤륵-
마치 뱀처럼 쇠사슬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양손에 쇠사슬을 휘감은 라온이 무덤덤한 눈으로 필립을 바라봤다.
자신을 보는, 저 색이 바랜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된다.’
필립은 이를 악물며 마력을 더 부풀렸다.
콰아아앙!
한순간에 그의 몸이 사라지며, 방금까지 그가 있던 곳이 움푹 파였다.
필립은 커다란 덩치가 보이는 움직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거셌다.
한순간에 라온과 거리가 좁혀진다.
하지만 필립은 라온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고 급히 몸을 틀어야 했다.
촤르르륵!
정확히 그의 동선을 노린 쇠사슬이 날아온다.
급히 몸을 틀어 쇠사슬이 옆을 스쳐 지나가고, 다시 돌진하려 했으나 마법이라도 부린 듯 다시 자신을 노리는 쇠사슬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촤악!
“큭!”
묵직한 쇠사슬이 필립의 몸을 후려갈겼다.
필립의 몸이 뒤로 쭈우욱 밀려난다.
필립은 욱씬거리는 팔을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내 마력이….’
본래라면 쇠사슬을 제대로 맞았다고 해도 아무런 데미지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쇠사슬에 닿는 순간, 철옹성을 이루는 마력이 모두 빨려 들어갔다.
그리 오래 닿은 것도 아니다.
겨우 1초. 아주 그 짧은 사이에, 저 쇠사슬이 탐욕스럽게 마력을 모두 빨아들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쇠사슬을 차고 다니는 거지……?’
이 정도의 성능이라면.
고위 마법사를 넘어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수준의 마법사를 구속할 때나 쓸 법한 성능이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어떻게 구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리그벨토 가문이다. 제국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 중 하나라 불리는 위대한 가문이니, 저런 유물 하나를 구할 수 없을 리가.
그보다 중요한 건.
‘이걸 온종일 끼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니…….’
몸의 무리는 물론, 매일 체내의 모든 게 빨려 나가는 느낌에 고통스러울 텐데.
이걸 버틴다고?
하지만 필립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촥!
‘큭!’
그의 다리를 쇠사슬이 후려갈긴다.
한순간에 힘이 빠지고 중심이 무너지자며 시야가 고꾸라졌다.
급히 바닥을 짚고 자세를 잡고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촥! 촤르륵! 촤악!
마치 그의 행동을 모두 예측한 듯, 움직이려는 곳마다 쇠사슬이 휘몰아쳤다.
필립이 이를 악물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저런 끔찍한 감각을 버티는 것도.
자신의 동선을 모두 알아채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절대 저 무능한 라온 리그벨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힘을 숨겼던 건가…?!’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이 전투 방식은, 단순히 동선을 아는 것만으론 할 수 없다.
이건 시험이 아니다. 단지 ‘답’을 안다는 것만으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동선을 안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신체 능력과 기본적인 전투 센스, 무기 숙련도가 필요하다.
‘마법을 단련한 게 아닌, 이걸 단련하고 있던 건가?’
대체 왜?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매일 무력하게 있던 놈이 아닌가. 절대 귀족답지 않던 놈이 아닌가. 대체 어떻게…….
‘이때까지 보인 모습은 분명히…….’
촤아악!
“!!!”
방심한 필립의 면상을 쇠사슬이 후려갈겼다.
묵직한 쇠에 얼굴이 찌그러지는 고통과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고통에 필립이 뒤로 튕겨 나갔다.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필립을 보며 라온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곤 하지.”
“…….”
“단지 내 체구가 작다고, 허약해 보인다고.”
라온의 눈동자가 필립을 넘어서 이곳을 구경하는 학생들에게로까지 향한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마법사라고.”
라온이 왜 부족한지, 왜 다루지 못하는지, 그런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라온에게 깎아내릴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라온 리그벨토는 무시당했다. 작은 체구와 힘답게 그의 존재감과 자존감도 작게 깎여나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무시당하는 캐릭터를 10년 동안 플레이해 왔다.
-야. 저거 라온 리그벨토 아니야?
-으. 저런 하차 있는 놈을 대체 왜 여기에다가 두는 거야? 진짜 수준 떨어져.
-냅둬. 저래도 결국 직계잖아. 뭣도 없는 놈이 혈통빨 받는 거지, 뭐.
만약 라온에게 가문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그는 가문의 피를 이은 직계.
하지만, 가문조차 약자인 라온에게 관심이 없었고.
약자가 누군지 아는 이들의 악의는 무엇보다 무섭게 다가왔다.
“잘 대응해 봐라.”
그리고 이제 라온은.
이들의 악의에 상처받고 휘둘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너희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약자한테 처발렸다는 말 듣기 싫으면 말이야.”
그러지 않도록 바꿀 거니까.
짜아아악!
빈틈을 노리고 다시 달려들려던 필립의 발 바로 앞에 쇠사슬이 후려쳤다.
본능적으로 움찔거린 필립의 중심이 무너지고 우당탕 넘어진다.
두 팔로 땅을 짚은 필립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원래라면 이리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한 공격이 몸에 큰 부상을 입힌 것도 아닌데다, 평소에 단련한 게 있으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마력이…….’
마력이란 기사와 마법사에게 있어 필수적이다.
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런 것이 자꾸만 저것에 닿을 때마다 힘이 빠지고, 근육이 이완되고 본능적으로 몸이 거부하니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걸 저렇게 무기로 사용하다니…….’
필립은 라온을 올려다봤다.
분명히 작은 체구에 얇은 몸이지만.
지금만큼은,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인(巨人) 같았다.
‘내가…… 틀렸던 건가…….’
방금의 말에.
아주 작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건 틀린 게 아닐까.
자신도, 다른 머저리들처럼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본 건 아닐까.
어른들의 시선이.
우리들의 시선이.
틀린 건 아닐까.
“……흐아아아아아!”
만약 정말이라면.
그는 증명해 내야만 했다.
정말로 라온이 무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들의 일방적인 착각이었는지!
뚜두두둑!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키며 달려들었다.
라온이 반응할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여 라온과 부딪혔고, 그대로 그가 움직일 수 없도록 뒷목을 부여잡았다.
‘잡았다!’
전혀 반응도 하지 못한 모습이다.
역시 그가 틀렸……!
휘리리릭!
“!!!”
그 순간. 몸의 중심이 무너지며 둘 다 뒤로 엎어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쇠사슬이 엉켜와 목을 조였다.
“크흡……!”
필립은 급히 쇠사슬을 풀기 위해 두 손으로 쇠사슬을 붙잡았다.
온몸의 마력이 쭉 빨려 들어가며 근육이 이완되는 게 느껴지지만, 그만큼이나 마력을 더 근육에 집중시켜 힘을 불어넣었다.
분명히 이 정도라면 풀릴…….
콰아악……!
“크으읍……!”
타이밍 좋게 조여 오는 쇠사슬에 팔에 힘이 빠졌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반동도 이용해보고 온갖 방법을 사용해 보지만.
‘대체, 어떻게 그 작은 몸에서 이런 힘이……!’
마치 필립과 비슷한 체구의 남자가 짓누르기라도 한 듯, 몸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뿐이랴. 쇠사슬은 끝없이 탐욕스럽게 마력을 빨아들인다.
힘이 빠지고 몸을 짓누르는 힘에 움직이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한 필립은 그제야 그가 쓴 방법을 알아차렸다.
‘무게로……!’
부족한 힘을, 아예 몸을 이용하여 늘려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의실 천장의 유리에 상처투성이가 된 라온의 얼굴이 비쳤다.
하지만, 라온은 조금도 미동하지 않고 그를 싸늘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두 눈은…….’
싸늘한 두 눈을 본 필립은 직감했다.
그건, 분명히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냥꾼의 눈이라는 걸.
‘저게…… 실패자라고……?’
만약 저게 실패자라면.
자신을 포함한 모두는 실패자보다도 못한 인간일 것이다.
실패자의 가장 큰 특징은 두 눈이다.
꺾이고 밟혀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게 된 거무칙칙한 눈.
하지만, 저 눈은 분명히…….
‘타오르고 있다…….’
쿵!
쇠사슬의 힘이 빠지자, 필립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온몸에 힘이 남지 않아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그에 비해, 라온은 자리에서 우뚝 섰다.
라온을 올려다보며, 필립은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틀렸군….’
그는 자신의 색안경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자신감을 내려놓았다.
“내가…… 졌다.”
“!!”
“!!!”
“!!”
근처가 삽시간에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라온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돌발 이벤트 성공!]
[당신을 무시하는 대공자 ‘필립 오스큘라’를 대련에서 꺾어라!]
보상: 마력 흡수 반지(하급). 쇠사슬 보호 장갑(하급).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에게 배정된 방을 확인해보세요!
삽시간에 머리가 차분해졌다.
라온은 급히 상황을 살폈다.
‘……너무 과했나?’
그동안 무능, 아니 그걸 넘어서 실패자라 불렸던 라온의 앞에 대공자가 무릎을 꿇었다.
절대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주 제대로 사고를 쳐버렸다.
‘……그래도 뒤처리가 어렵진 않을 거야.’
자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시선이 쏠리기야 하겠지만.
자신은 자퇴할 예정이니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혹여나 자퇴가 막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라온’을 경계하는 형제들 입장에선 죽었다고 생각한 바퀴벌레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반드시 확인해야겠다고 조금 더 자퇴 처리를 빨리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죽이더라도 처리하기 편할 테니까.
어찌되던 내겐 이득.
‘어차피 증명하는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경계다. 여기서 미리 받는다고 무언가 달라지진 않아.’
또 굳이 긍정적인 점을 찾으라면.
‘캐릭터는 충분히 파악했다는 점인가.’
필립의 성격 부분에선 상당히 잘 알고 있다.
물론 내가 따로 찾아보거나 한 건 아니다.
내가 필립이란 캐릭터의 성격을 알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친구의 덕이 컸다.
‘응? 한 번만. 따아악 한 번만 들어 봐! 어?!’
‘좀 꺼져!! 진짜 죽여 버린다?!’
‘에헤이! 이미 몇 번이고 죽여 놓고! 지인짜 딱 한 번만 들어 달라니까?!’
나만큼이나 캐릭터에 진심이었던 놈은 스스로 필립을 연기하며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 주기도 했으니까.
타락 루트라던가 삐뚫어지는 루트라던가 타지 않은, 정석 그 자체인 루트의 성격.
강함은 초기 수준치고 상당히 강하지만, 저런 전투 방식을 보면 정석 루트를 제대로 탄 것으로 보인다.
즉. 아카데미를 벗어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아카데미에 묶여있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 정체를 의심받는 것인데.’
다행히도, 모두의 시선은 ‘아니, 저 쓰레기가 저런 모습을?!’을 담은 시선이지, ‘라온이 아닌 거 아니야?’하는 의심은 없었다.
‘그래도 아카데미를 벗어나면 만날 일이 아예 없겠어.’
빨리 이 더러운 아카데미부터 탈출해야겠다.
그러면 굳이 내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될 뿐더러.
여기 남아있는다면.
이 이후에 아주 귀찮아질 게 뻔하니까.
‘일단 여기에서 튀자.’
라온은 자신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하녀 아벨라에게 손짓했다.
아벨라가 후다닥 달려와 라온을 부축했다.
라온은 몸을 휙 돌렸다.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헬레나가 손을 들었다.
짝.
그녀가 손뼉을 친다.
“모두 박수.”
감탄한 표정을 짓지 못한 그녀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점점 박수는 근처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수많은 박수갈채 속에서.
라온은 강의실을 벗어났다.
당연하지만.
라온을 막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