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화 (7/124)

제7화

필립 오스큘라.

라온 리그벨토와 같은 ‘마법사’ 캐릭터.

하지만, 라온 리그벨토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라온이 순수하게 마력만을 다루는 정석적인 마법사(마력을 못 쓰지만)라면, 그는 전면에 나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 전투 마법사였으니까.

‘아마… 주먹과 발을 주로 이용해 전투를 벌였지.’

설정상 그가 리그벨토 가문과 동격인 공작가의 직계라는 신분만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지만.

저 덩치만 보면 더없이 어울리는 직업이다.

저 덩치를 가지고 육탄전을 안 한다고? 근손실이 난다면서 직접 나설 것 같은 모습이니.

그리고 그건 실제였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지 물었다, 라온 리그벨토.”

‘…제일 보기 싫었는데.’

난 속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필립 오스큘라를 보기 싫던 이유. 물론 라온에 비해 뛰어난 능력치나 효율도 있긴 했지만, 제일 거슬리는 이유는…….

-너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고개를 드느냐.

저 특유의 오만한 성격 때문이다.

저 성격으로 컨셉질 한다고 나한테 자꾸 나대던 놈 때문에 얼마나 머리가 아팠던가.

물론 다른 이유도 있긴 했다. 원래는 캐릭터 ‘라온 리그벨토’와 접점이 없는 캐릭터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으니까.

하지만, 난 그냥 ‘라온’답게 굴기로 했다.

“내가 네게 말해야 하나?”

아무리 필립이 무섭게 압박한다고 하지만.

라온의 성격상, 이런 구박에 굴할 리가 없다!

또한 아무리 무시당한다고 해도 라온도 리그벨토 가문의 직계다.

가문의 문제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립이 직접 손찌검을 할 리가 없었으니.

“……뭐라고?”

필립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왔지만.

난 굴하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오스큘라 가문 특유의 붉은 눈동자는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고, 나 또한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

“…….”

눈 아프다. 좀 눈 좀 감아라.

하지만 여기서 눈을 감는다면 지는 거와 다를 바 없다.

내가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자, 결국 먼저 물러난 건 필립이었다.

“쯧.”

필립은 혀를 차며 내 옆을 바라봤다.

“네 옆의 그 하녀 덕분에 산 줄 알아라.”

뭐?

난 그 말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 내 팔짱을 낀 아벨라가 잔뜩 무서운 표정을 하면서도 필립을 노려보고 있었다.

‘……넌 왜 노려보냐?’

너도 게임이 하고 싶었니?

“너 같은 머저리에게 왜 그런 충실한 하녀가 붙어 있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필립의 말에 아벨라가 잔뜩 날을 세웠다.

“도련님을… 모욕하지 마요!”

“시끄럽다. 감히 하녀 주제에 대귀족의 앞에서 입을 열어?”

“너야말로 시끄럽다. 대귀족은 가던 사람의 길이나 막는 머저리인가? 그럼 너한테 딱 어울리는군.”

나도 모르게 독설을 뱉어 버렸다.

필립과 아벨라의 표정에 작은 놀람이 깃든다.

아, 이거 아닌가?

“……변했다는 소문이 맞나 보군. 머저리가 그나마 쓸모 있게 변했어. 예전에는 눈도 못 마주치고 욕을 하더니. 이젠 당당히 내 눈을 보는군.”

맞나 보네.

역시 라온은 라온인가 보다.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하지만.”

필립이 얼굴을 단단히 굳힌 채 말했다.

“그런 모욕을 넘어가는 것도 오늘까지다. 내일을 기대해라, 라온 리그벨토.”

그 말과 함께 몸을 뒤로 휙 돌린다.

쿵,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멀어져간다.

난 그의 등을 향해 엿을 날리려다가 참았다.

내일부터 다르다고? 응. 며칠 있으면 아카데미를 아예 안 와.

‘뭐, 강의에서 시비라도 걸려는 모양인데. 응. 강의 안 갈 거야.’

난 마주 몸을 휙 돌렸다.

‘…사실 지금 문제는 저게 아니라, 설정인데.’

인물 간의 관계나 힘도 그렇고, 그 외의 설정이나 그런 것도 그렇고…….

‘헬레나보다 조금 더 약한가.’

현재 필립은 정상적인 루트를 탔을 경우, 딱 초반부 막바지의 수준.

그에 비해 헬레나는 중반부는 충분히 진행한 수준으로 보였으니…….

아니, 걔는 왜 그리 센 거야?

‘그리고 난 왜 이리 약하냐?’

이딴 게 게임이냐?

* * *

아르바크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제국에서 손꼽는 최고의 도서관 중 하나다.

지식의 보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서적들.

그뿐만 아니라 입구 근처엔 새로이 들어오는 책들로도 가득 쌓여 있었으니.

‘덕분에 내가 설정 확인하기도 수월했지.’

고대 설정부터 시작하여 새로이 설정된 설정까지.

한 캐릭터만 10년간 파온 고인물 중의 고인물인 내게 설정을 파악하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채, 책들… 글씨들이… 너무 많….”

아벨라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았다.

하긴. 글과는 먼 삶을 살아왔을 테니, 글로만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서관은 조금 힘든 장소인가 보다.

‘나중에 글씨가 가득한 방패를 들이밀면 알아서 쓰러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 몇 권을 집었다.

“도, 도련니임. 저희 언제 나가요…?”

“시끄럽다.”

“네, 네에.”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근처의 책상 앞에 앉았다.

아벨라는 현기증을 느끼는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어디 보자.’

촤락!

난 책들을 펼쳤다. 몇 번이고 읽었던 책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읽는 건 처음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내용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촤락, 촤락-

내용들을 확인하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 내용들을 확인한다.

타인이 보기엔 그냥 ‘에이, 보고 넘기는 거겠지’할 정도로 빠른 속도!

하지만 내 눈엔 모든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모든 내용을 눈에 넣었을 땐.

‘…말도 안 돼.’

난 머리를 움켜쥘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설정이 다른 게 없다고?’

그럼 그놈들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헬레나 글라스크, 필립 오스큘라. 둘 다 라온과 같은 ‘주인공’급 캐릭터이니, 분명히 설정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을 텐데…….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이게 말이 돼?’

물론 설정이 그대로여서 내게 나쁜 점은 없었다.

루트를 짜는 데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는 것만으로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확인해야겠어.’

변수를 내버려 둘 순 없다.

지금이야 사소한 변수일지 몰라도.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듯, 작은 날갯짓 하나에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게 꼬일지도 모른다.

‘…내일 강의에 가야겠네.’

어차피 자퇴할 예정이라 원래라면 그냥 강의에 불참할 예정이었지만.

아무래도 내일만큼은 불참해선 안 될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했으니까.

촤락-

하지만 그건 그거고, 혹시 모르니 다른 설정들도 싹 다 뒤져봐야겠다.

‘제발. 제발 뭐라도 좀 건져라.’

물론 빈다고 없는 게 새고 생기진 않았다.

그리고 하루 뒤.

날 본 필립 오스큘라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도망치지 않고 잘 왔군. 하긴, 귀족이라면 응당 나의 결투를 피하지 말아야지.”

저 새끼가 진짜.

&

“저… 도련님. 괜찮으세요?”

“신경 쓰지 마라.”

난 피곤한 눈구덩이를 손바닥의 뭉툭한 부분으로 문질렀다.

어젯밤, 설정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껴 서책을 온종일 뒤져 본 탓이었다.

‘하나도 건진 게 없었지…….’

책의 내가 기억하는 것과 모두 일치한다.

물론 내가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 공략집을 만들어 팔고, 끝없이 연구하던 사람으로서, 중요한 점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니.

‘원래 캐릭터마다 설정이 묘하게 다른데…….’

전체적인 ‘틀’ 자체는 같지만, 보상이라던가 아이템이라던가, 이런 묘한 부분은 캐릭터에 맞게 다른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라온 리그벨토의 게임을 기준으로 맞추어져 있다.

그럼 다른 캐릭터들은?

‘얘네가 강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아, 머리 아파. 복잡해 죽겠네.

탁!

내 옆에 책을 내려놓은 헬레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괜찮나?”

“신경 쓰지 마라.”

“안 괜찮은가 보군. 아벨라. 네 주인을 데리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지.”

헬레나는 내가 두 번이나 부정하자 더 이상 강제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난 눈구덩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들었다.

날 보며 도발하듯이 바라보고 있는 필립과 눈을 마주쳤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도 된다.”

도발하듯이 툭 던지는 말에, 슬그머니 열이 살살 올랐다.

저거 대공자 맞냐? 아니, 그보다 왜 자꾸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거야?

필립 오스큘라에 대한 캐릭터는 잘 아는 편은 아니었어도, 대략적인 성격은 알고 있었다.

‘귀족답지 못한 자를 혐오하는 오만하고 고지식한 성격.’

저 캐릭터를 플레이하면서 성격까지 코스프레 하는 미친놈 때문에 억지로 알게 된 정보다.

저런 성격상, 날 혐오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도발할 이유는 없을 텐데…….

“겁을 먹었나?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도 된다. 그땐 네 명예란 저기 돼지의 먹이로 던져졌을 테니.”

아.

‘설마 내가 도망칠까 봐?’

라온은 성격이 더럽고 자존심이 강하다.

또한 살면서 무언갈 이루어 본 적 없고 이겨 본 적조차 없기에, 그만큼 열등감도 심하다.

그런 성격에게 저런 식으로 도발을 하면…….

‘넘어가는 게 보통이겠지.’

옆에서 아벨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응. 안 넘어갈 거야.’

“네가 말하는 귀족은 이렇게 시비를 거는 추한 직위인가?”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입 닫고 있어라.”

“…….”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조용해지고 나서야 난 헬레나와 필립의 역할을 대략 짐작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필립은 내게 시비를 거는… 한 3류 악역 정도의 캐릭터로 보인다.

아니, 그래도 나름 주인공인데 너무한 거 아니야?

‘성격은 얼추 기억하는 거와 비슷한 거 같긴 한데…….’

다만, 여기에 필립은 0과 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아닌 자아를 가진 사람이니,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기도 하겠지.

‘헬레나는.’

난 슬쩍 실눈을 뜨고 헬레나를 바라봤다가 급히 눈을 다시 감았다.

헬레나가,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

왜 날 흥미 어린 눈으로 보는 거지?

‘……잘 모르겠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성격은 ‘정의롭다’였다. 정말 기사의 표본 같은 성격.

하지만 저 모습은 기사답기보다는…….

‘좀 변태 같은….’

고인물이 뉴비를 보는 시선인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이번 시간만으로 변수 그 자체인 이들을 파악하기란 무리수다.

‘적어도 아카데미 내에 있을 때, 최대한 파악해놓는다.’

그래야 나중에 아카데미를 벗어나고, 후에 밖에서 만났을 때 대처하기 수월하니까.

드르륵!

강의실 문이 열리면서 회색빛의 털을 가진 여우 수인이 들어왔다.

“모두 출석했나?”

“예.”

“좋아. 그럼 바로 강의를 시작하지.”

지금 이시간 ‘마나 통제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다.

게임에서 보던 캐릭터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니 왠지 신기했다.

‘저 교수, 진짜 죽빵 날리고 싶었는데.’

착한 교수는 이 세상이 없다며 매일 내게 하소연하던 대학원생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될 정도!

“교수님.”

필립이 손을 들었다.

“그래. 필립 오스큘라.”

“오늘, 생생한 경험을 위해 대련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알려 줘서 고맙군. 먼저 나와서 상대를 골라 보겠나?”

“예.”

저 망할 교수가 진짜.

난 속으로 교수를 욕하면서 원래 스토리를 떠올렸다.

‘여기서부터 틀어졌어.’

원래라면 그냥 조용히 강의를 진행한다.

스킵도 가능하고, 만일 직접 듣는다고 해도 별 내용 없는 강의였다.

하지만 이건…….

“나와라, 라온 리그벨토!”

‘저 망할 놈이 다 망쳐놨네.’

처지에도 없는 대련을 하게 생겼다.

‘이거 때문에 내게 자꾸 도발을 했다 이거지.’

하기야. 귀족과 귀족의 대련은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정식 결투다.

여기서 진 귀족은 정말 대등하게 싸우지 않는 한, 명예가 실추되고 조롱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약한 귀족은 아예 도태되기도 하고.

‘이걸 노리는 건가.’

“나오지 않는 건가?”

필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네가 겁쟁이인 건 알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지! 그래. 나오지 말아라, 라온 리그벨토! 네가 얼마나 무능한 지 모두에게 보여주어라!”

빠직!

‘저게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자꾸 시비를 거네?

그냥 가서 싸워?

순간 그런 충동이 들었지만, 참았다.

싸워봤자 별 이득이 없으니까. 만일 내가 아카데미를 다녔다면 명예에 영향이 올 테니 싸웠겠지만, 난 곧 나갈 사람이다.

‘원래 라온이었으면 이런 도발에 응했겠지만.’

이 정도 변화는 사람의 심경 변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반응을 안 해도 괜찮다.

그와 별개로 열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후우… 내가 진짜 보상만 있었어도 그냥 두들겨 팼…….’

띵!

[돌발 이벤트 발생!]

[당신을 무시하는 대공자 ‘필립 오스큘라’를 대련에서 꺾어라!]

보상: 마력 흡수 반지(하급). 쇠사슬 보호 장갑(하급).

“!”

난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시스템! 네가 웬일로 일을 다 하는구나!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딱 타이밍 좋게 판을 깔아주네?

“좋다.”

“겁쟁이처럼 도망가진 않는군.”

필립 오스큘라가 날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 또한 그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너 딱 걸렸어.’

지금의 필립은 나보다 능력치가 높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PVP에서 진 적이 없었다.

그건 PVP 랭킹 1위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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