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라온 리그벨토는 플레이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 중, 가장 인기가 떨어지는 캐릭터였다.
그럼 반대로 인기가 가장 많은 캐릭터가 존재하는 법.
“…헬레나 글라스크.”
“한참 찾아다녔다, 라온 리그벨토.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부서진 벽 사이로 들어온 여인의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더럽게 이쁘네.’
헬레나 글라스크는 성별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은 캐릭터였다.
정의로운 성향과 캐릭터 이미지에 찰떡인 성우, 그리고 잘 뽑힌 캐릭터 디자인까지.
제작진의 사심이 가득 들어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잘 뽑힌 캐릭터였다.
하지만 인제 보니 제작자의 사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픽으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이 훨씬 이쁜데.’
큰 키에 길게 기른 웨이브진 붉은 머리카락, 루비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 대비되는 하얀 피부까지.
강렬한 여기사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 아름다운 외모는, 일편단심 라온만을 플레이했던 내 마음마저 뒤흔들었다.
‘성능도 더 좋은 거 같고.’
하긴, 헬레나는 초보자에게도 추천되고 고수도 많이 사용하는 인기 많은 캐릭터였으니까.
물론 나는 저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유저와 PVP를 하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지만…….
‘차라리 저 캐릭터를 했다면 탈모가 안 왔을 거라고 계속 생각했지.’
“라온?”
헬레나가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서둘러 표정을 관리했다.
음, 일단 무슨 사이인진 모르겠지만, ‘라온’답게 싸가지 없게 굴면 되는 거겠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당연히 라온 네가 실종돼서가 아니겠나. 난 동기의 실종을 두고 볼 정도로 무관심한 자가 아니거든.”
일단 저 대사를 통해 라온과의 사이는 그리 친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정말 친하다면 ‘동기’가 아니라 ‘친구’ 같은 단어를 썼겠지.
‘그럼 정말로 아카데미 동기가 없어져서 왔다는 건데…….’
음, 정의로운 성격이랬으니 이상한 건 아닌가.
아니, 잠깐만.
이상한 건 다른 거잖아?
‘…얘는 대체 왜 여기에 있냐??’
영웅의 문에서 캐릭터를 하나 선택한다면, 그 이외의 캐릭터들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전 세계로 따져도 플레이 시간 1위인 나조차 본 적 없을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내가 빙의하면서 바뀐 건가?’
그럼 설마 게임 설정이나 보상도 바뀌었나?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약 이게 진짜라면….
‘시발 X된다.’
내 인생은 그대로 망하는 거다.
만약 이게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었다면, 이런 변화를 나름 재미있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뭐? 새로운 주인공? 어차피 라온은 주인공이라지만 망캐인 걸. 라온의 아이덴티티는 전혀 침범당하지 않으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보상이나 설정을 모두 알고 있어도 살아남기 힘든데, 그나마 알고 있던 정보와 지식도 싹 다 사라져버린다면?
난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내 포커페이스는 여전한 듯했다. 헬레나는 조금도 내 태도를 의심하지 않으며 내게 되물었다.
“이제 내가 묻지. 넌 왜 여기에 있지?”
“……마실을 나왔을 뿐이다.”
“어느 누가 이런 곳으로 마실을 오나? 취향이 특이하군.”
“시끄럽다.”
헬레나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이 방 안을 샅샅이 훑고, 바닥에 기절한 마법사를 내려다본다.
“…믿을 수가 없군.”
그녀는 순식간에 여기에 있던 일을 파악했다.
“이 자를 혼자 제압한 건가?”
“그래. 왜. 내가 하면 안 되는 일이라도 했나?”
난 일부러 날카롭게 물었다. 이게 라온의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착하게 굴지 않는 삐뚤어진 오만한 성격!
헬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저 놀라워서 그럴 뿐이다. 그보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보통이라면 여기서 ‘네가 그랬다고?’하고 무시하는 언급이 나올 만도 하지만.
헬레나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피했다.
‘착하구만.’
역시 인기 많은 캐릭터다워.
성격이 더러워서(맞음) 인기가 없던(맞음) 내 캐릭과는 차원이 다르네. 성격만 좋았다면 인기가 더 많았을(아님) 텐데!
“…아니. 이까짓 일에 다치지 않는다.”
“원래 전투가 끝난 직후는 전투의 흥분 때문에 상처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 말한 헬레나는 다가와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흠. 몸이 좀 차가운데.”
“…손 떼라.”
“그러지. 마음대로 접촉해서 미안하군. 그래도 다친 덴 없어. 안심해도 좋아.”
헬레나는 뒤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고 나를 보던 것과는 다른 서늘한 눈으로 여전히 기절해있는 마법사를 내려다봤다.
“이 자로군. 요새 유명한 뒷골목의 마법사가. 설마 이 자가 널 납치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할지 몰랐는데.”
마지막 문장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물론 난 들었지만.
‘이미 알아차렸네.’
눈치 더럽게 빠르네. 아니, 정보가 빠른 건가?
아무튼 헬레나가 온 덕분에 좀 편안해졌다.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덕분에 떠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니면, 라온 네가 노리고 잡은 건가?”
“시끄럽다.”
“아닌가 보군. 뭐, 좋네. 이제 어떡할 거지.”
난 일부러 인상을 찌푸렸다.
“마실이 끝났으니 돌아간다.”
“그럼 사람을 부르지. 여길 치워야 하니까.”
‘여기’라는 건, 단순히 이 마법사와 이 공간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감히 공작가의 직계를 납치한 이 뒷골목 자체를 쓸어버리는 것이다.
‘음, 직접 겪으니 기분이 묘한데.’
내 침묵을 오해한 헬레나가 말을 덧붙였다.
“이 자는 평생 가장 어두운 감옥에 처박혀 썩어갈 것이다. 평생 햇빛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공기조차 마시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그까짓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헬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다음 주제로 넘겼다.
“자네가 잡았다고 공표하고 싶나? 아니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나?”
“내가 처리한 일이다.”
“그럼 그렇게 공표하지.”
깔끔하게 일을 끝내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로 연락했다.
난 마법사를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고, 시크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 뒤에서 무언갈 걷어차는 소리가 났다.
퍽!
“커헉!”
“아, 신경 쓰지 말게. 지나가던 쥐를 밟는 소리니까.”
‘음, 날 구하러 오기만 한 건 아닌가?’
아무래도 개인 원한이 있던 거 같은데.
원래 저런 캐릭터였던가?
한 번도 플레이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드디어 골치 아프던 일이 해결됐어. 아주 속이 후련하네.”
상쾌한 얼굴을 한 헬레나는 뒤이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뒤처리를 명령하고, 먼저 걷고 있는 나를 금방 따라잡았다.
내 옆에서 걷던 헬레나가 내게 말했다.
“축하하네.”
“?”
“드디어 그 답답한 곳을 벗어난 것 같아서 말이야. 왠지 기뻐 보이거든.”
그리 말하는 헬레나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난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가 기뻐 보였나?
‘난 지금 쫄려 죽겠는데.’
설마 내가 라온이 아니라는 걸 들켰거나, 아니면 기침하다가 마력이 폭주해서 뒤지거나…….
암튼 이 불안감은 아마 내가 찾는 모든 걸 찾을 때까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아, 설마 불면증이라도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럼 머리 빠지는데.
&
‘신기하군.’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마차 안. 헬레나는 티내지 않고 라온을 바라보았다.
처음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릴 인상.
얼굴은 잘생긴 편이었지만, 눈 바로 위까지 덮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과 죽은 듯이 색이 어두워진 눈동자, 그리고 몸에 두른 쇠사슬은 그를 험악하게 꾸몄다.
물론 헬레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스승님보다야 낫지.’
지금은 감옥의 총관리자로 들어간 그녀의 스승은 저보다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괴물이니 뭐니 해도, 그녀의 눈에 보기엔…….
‘음, 고양이에 가깝겠어.’
사실 이전엔 고양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훨씬 더 예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뭔가 편안해 보인다.
언제나 축 처져 있던 어깨는 당당히 펴져 있고, 죽은 것처럼 빛이 사라지고 변색된 것 같았던 두 눈은 멀쩡하게 떠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설마,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라온이 제압한 마법사, 마이난도는 나름 뒷세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추방자.
마탑에서 금지한 술법을 연구하여 추방당한 마법사.
마탑에 소속되어있다는 것부터 상당한 실력자라는 의미인데, 거기서 금지된 술법까지 사용했다는 건…….
‘동급의 마법사보다 강하다는 것.’
금지된 술법은 비상식적으로 힘을 늘려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는 최소 고위 마법사… 공작 가문의 정예들 수준은 되었을 터.
‘그걸 별 상처 없이 제압했다는 건…….’
라온의 실력이 마이난도를 훨씬 능가한다는 얘기다.
물론 마법사인 만큼 상대법이 뚜렷하긴 했다.
마법이 영창되기 전에 공격하거나, 마력을 흡수하는 아티팩트를 다루거나…….
‘하지만 후자는 불가능에 가깝지.’
마력을 흡수하는 아티팩트는 일반인이 아니고서야 다룰 수 없다. 기사도 마법사도 성직자도 결국 본질적으로 ‘마력’을 다루기 때문이며.
라온이 가진 마력 흡수 아티팩트는, 쇠사슬이었기 때문이었다.
쇠사슬은 보통 무기로 다뤄지진 않았다.
채찍처럼 쓰기엔 무게가 너무 무겁고, 이음새 부분이 부딪히고 힘의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세밀한 조정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탓에 어떤 마법사도, 기사도, 실력자도, 쇠사슬을 무기로 다룬 적이 없었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그렇다면 라온은 순수 마법으로 그를 제압했다는 것인데.
사실 그는 저 방대한 마력을 다룰 수 있던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마저도 ‘저건 저주다’라고 판단을 내린 저 마력을?
‘재밌겠어.’
저게 진짜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가능성을 느낀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자신과 그가 완전히 친한 건 아니다.
그저 같은 반의 동기.
그녀가 그를 구하러 온 것도 그저 반의 동기이기 때문에 구하러 왔을 뿐이고.
그녀가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것도 그냥 같은 반이니까 가끔 밥도 같이 먹고, 대화 (일방적)을 나누었을 뿐이다.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턴 그와 친구가 될 생각이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건 천천히 확인하면 될 일이다.
어쩌면, 미래에 이름을 떨칠 강자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헬레나의 입가에 미소가 맺히고, 눈동자가 라온에게로 고정되었다.
‘…날 왜 노려보지? 무섭게.’
정작 라온은 그녀의 시선에 잔뜩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도련님!”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가 내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난 누군지 알아차렸다.
‘하녀 아벨라.’
가문에서도 배척받는 라온 리그벨토를 보필하는 유일한 하녀.
하지만 난 하녀가 꺼림칙했다. 아니, 마음 같아선 그냥 저리 내팽겨치고 싶었다.
“도련니임!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덴 없으세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혼자 도련님을 모시는 만능에다가 걱정이 많은 충실한 하녀일 뿐이지만.
-그럼, 안녕히. 나의 사랑스러운 도련님.
저 충실한 하녀의 모습 안엔, 드문드문 돌발 이벤트로 나와 라온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개 같은 암살자가 들어있으니까.
물론 라온에만 집중하느라 호감도와 스트레스 지수가 0까지 떨어트려 놓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호감도가 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껏 키운 캐릭터를 등 뒤에서 찌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후우… 진짜….’
한숨이 다 나온다. 어떻게 캐릭터 성능도 구리면서 동료 설정까지 이렇게 해놓는단 말인가.
이왕 바뀔 거면 이런 캐릭이나 좀 치워주지.
물론 내가 다루기에 따라 루트가 달라지긴 하지만…….
‘사실 하녀는 큰 문제가 아니긴 하지.’
내가 몇 번을 당했는데. 이런 위험 요소를 치우는 데에는 도가 텄다.
하지만.
‘또카데미…….’
게임에서나 보던 아카데미 건물을 현실에서 보니, 한숨이 또 나왔다.
진짜 게임에서 몇 번을 봤던가. 몇 번을 반복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짜증이 났던가!
얻을 건 없는데 굴리긴 엄청나게 굴리는 장소!
벗어나고 싶어도, 게임 속의 배경이다보니 벗어날 수조차 없는 장소!
‘…잠깐만.’
난 졸업해놓고 다시 입학하는 기분에 괴로워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 굳이 안 다녀도 되잖아?’
게임에선 ‘선택지’라는 항목으로 제한되어있었지만.
여긴 현실이다.
즉. 나 안 다녀도 된다!
난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자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