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화 (2/124)

제2화

마음먹은 뒤 내 다음 목표는 곧바로 정해졌다.

‘여길 탈출한다.’

하지만 그냥 탈출해선 안 됐다.

‘이 이벤트는 꼭 클리어해야 해.’

라온 리그벨토로 살아남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나 기침했다고 마력 폭주를 해 뒈지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마력 제어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싹 쓸어 모아야 했다.

그중 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이벤트다.

‘첫 번째이자, 튜토리얼 이벤트.’

특이하게도 ‘이벤트’에 참여했다고 알림을 켜주지 않아, 많은 유저들이 ‘어? 지금 뭐야? 시작한 거야?’하고 의문을 주는 이벤트다.

당연히 이 이벤트의 보상도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다.

‘배고픈 허리띠.’

마력을 흡수하는 아이템. 나머지 효과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중요 포인트는 ‘마력 흡수’이니 별 상관이 없었다.

무슨 저딴 이상한 아이템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라온 리그벨토에게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폭주 가능성을 낮춰 주지.’

현재 내 마력 제어 능력치는 낮다.

갖고 있는 마력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양!

즉, 나한테 지금 0.95란 도움도 안 되는 설사 같은 존재이지만…….

‘마력을 낮추면 돼.’

마력 제어 능력치가 낮다면 마력 능력치도 낮추면 그만!

억지로라도 마력과 제어 능력의 차이를 좁히면, 그래도 세 번 중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열 번 시도하면 열 번 다 실패하겠지만.

아니, 애초에 도전할 수도 없다. 세 번 중에 한 번이라는 수치도 죽었다가 다시 도전했을 때 기준이니까.

‘제일 좋은 루트는…….’

난 머릿속으로 빠르게 루트를 짰다.

‘좋아. 이대로 간다.’

어느 정도 도박이지만.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이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봐.”

“?”

“?”

지나가던 양아치들을 부른다.

검은 머리와 노란 머리의 양아치들은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의아하다가 날 바라봤다.

“날 말하는 거냐?”

“그래. 거기 멋진 형님들.”

난 묶인 손을 겨우 들어 올려 쇠사슬을 툭툭 두들겼다.

“적어도 이 목 정도는 풀어주지. 이러다 목이 꺾여서 죽겠어.”

“겨우 그 정도에?”

“함 보여 줘? 미안한데 난 형님들처럼 근육이 없어서. 이렇게 목이 꺾인 채 더 지내면 죽을 거 같거든.”

현재 나는 ‘상품’이다. 당연히 상품이 훼손된다면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

아무리 범죄자라도 죽어선 팔릴 수 없으니, 적어도 살려는 놔야 했다.

죽은 놈한테 값을 칠 순 없으니, 상품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내버려 둘 수 없는 것!

“에이씨… 새끼가 지랄을….”

투덜거린 양아치 둘이 다가와 내 목 상태를 살폈다.

그들이 보기에도 좀 많이 꺾여 있다는 걸 느낀 건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에이씨… 죽으면 안 되는데….”

“겨우 이 정도에 죽는다고?”

“몸 허약한 거 안 보이냐? 아주 삐쩍 말라 가지고… 죽진 않아도 상품으로 팔릴 때 좋게 보이진 않을걸.”

“그럼 어떡해.”

“얘 발 제대로 묶여 있지?”

“그렇지.”

내 양발을 묶은 건 아니지만, 한쪽 발이 쇠사슬로 묶여 벽과 연결되어있었다.

열쇠가 없다면 풀 수 없는 아티팩트.

잠시 고민하던 양아치 중 검은 머리가 말했다.

“에이씨. 그래. 이것만 풀어줘.”

“뭐?”

“어차피 마력은 다 빨리고 있잖아. 아까 능구렁이가 와서 이 쇠사슬 분석하려다가 잘못 건드려서 마력 탈진으로 골골거리는 거 못 봤어? 이놈도 똑같을 거라고.”

“으음… 그런가…….”

“너도 조심해라. 웬만하면 천으로 감싸고 하고.”

“알았어.”

금색 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으로 손을 감싸고, 내 목을 고정한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철그럭.

아이고, 살겠다. 난 이제야 자유가 된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뚜둑, 뚜둑!

“어우 시원하네.”

검은 머리 양아치가 말했다.

“그래. 이제 좀 얌전히 있….”

“둘 다 나와 나갈 생각 없나?”

“뭐?”

“나한테 돈과 연줄이 있거든. 너희들이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 삶을 꾸릴 정도로 충분히 말이야.”

“그걸 왜 우리에게?”

“날 구해 준 보답이라 생각하지.”

내 말에 양아치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원래 게임에선….

‘이 새끼 생각보다 거물이었나?’

‘뭐 어때. 어차피 묶여 있는데. 그냥 듣고 죽여 버리자. 돈만 챙기면 그만이야.’

‘그래. 챙기고 다른 도시로 튀자.’

…라고 대사와 말풍선이 떴었지.

대화를 끝낸 둘이 날 바라봤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봐.”

“이리 와 봐.”

금색 머리가 다가왔다. 두 눈에서 아주 욕망이 넘쳐흐르는 게, 날 어떻게 할지 훤히 보이는 듯했다.

‘뭐 상관없지만.’

“조금만 더.”

난 거리를 가늠하고, 딱 된다고 판단했을 때.

“그래. 내가 돈을 숨겨 둔 위치는…….”

한국인이 가장 짜증 나는 첫 번째 이유로 시선을 끈 다음, 그나마 자유로운 발로 그의 무릎을 걷어찼다.

“끄악!”

한순간 균형을 잃은 그가 휘청거리자, 그대로 손목을 묶은 쇠사슬로 그의 목을 졸랐다.

쇠사슬에 목이 졸린 양아치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커, 커헉… 마, 마력이…. 아, 아니 숨이…….”

털썩!

기도 압박과 마력 흡수를 버티지 못한 양아치가 자리에서 기절해 버리고, 잠시 어벙하게 서 있던 검은 머리 양아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분노했다.

“이 자식이!!!”

“네 자식 아니다. 네가 싸지른 애한테나 가서 그런 소리를 하지 그래. 아, 고자 새끼라서 그딴 것도 없으려나?”

“죽여 버리겠어!!!”

가볍게 도발에 넘어온 검은 머리가 달려들었다.

‘칼은 없나.’

다행히 예상했던 대로다.

난 날아온 주먹을 피했다. 양아치의 주먹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허약한 내게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양아치는 내가 주먹을 피하자 당황한 건지, 연신 주먹을 다시 날렸다. 하지만 난 기억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 주먹을 피했다.

‘다행히 전투 방식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본래 있던 게임 시스템의 보조가 없긴 했어도, 내가 몇 번이고 플레이했던 캐릭터라서 그런지, 뜻대로 몸이 잘 움직인다.

찰그락!

“칫.”

하지만 피하는 것도 아주 잠시였다. 짐승 지능은 아닌 건지 내 멱살을 붙잡았고 주먹을 날렸다.

퍽!

주먹이 면상을 후려갈겼다.

안면이 찌그러지는 고통에 이가 악물렸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 범위다.’

애초에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검은 머리가 내 멱살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감히… 우리를 배신해……!”

“너희도 배신할 생각으로 가득했으면서 뭘.”

난 피식 웃으면서 미리 떠올려놓은 여러 방법을 떠올렸다.

‘제일 좋은 건 이 쇠사슬을 푸는 것.’

손목을 묶은 쇠사슬을 어떻게 풀지 가늠했다.

‘이걸 어떻게 풀지?’

정확히 말하자면 푸는 방법 자체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몇 번이고 쇠사슬에 묶여 봤던 라온의 능숙함이 필요했다.

‘어떻게 푸는지 보긴 봤지만…….’

게임에선 그냥 ‘풀기’ 버튼 하나 누르면 끝이었다. 내가 직접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해야 하는 지금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혹시 모르니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세히 분석하긴 했지만…….

‘해 본다.’

안 돼도 상관없다. 그냥 다른 방법을 쓰면 그만이니까.

난 마치 도적처럼 손을 은밀하게 움직였다. 기억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자, 단단히 엉켜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

덜컹!

“!!!”

내 손이 자유로워진 걸 본 양아치의 두 눈이 커졌다. 그가 내 멱살을 잡아당기기 전에,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힘껏 복부를 후려갈겼다.

뻑!

“큭!”

자세도 엉망이고 내 힘도 약했지만, 다행히 쇠사슬은 충분한 위력을 발휘해줬다.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양아치의 두 눈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풀었……!”

“아주 잘.”

뻐어억!

“크아아악!”

이제 질 이유가 없다. 그대로 쇠사슬을 주먹에 두르고 면상을 후려갈겼다.

“끄, 끄윽…….”

뒤로 넘어지기 전에 똑같이 멱살을 붙잡아 주었다.

“아프냐?”

날 보는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나도 아파, 임마.”

뻐어억!

그냥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거니까!

면상을 제대로 얻어맞은 그가 눈을 까무룩 뒤집고 기절했다.

“후우…….”

털썩!

멱살을 놓자, 그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대충 엎어졌다.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다행히 크게 다친 덴 없나.’

그저 캐릭터가 데미지를 입을 뿐이던 게임과는 달리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크게 상처가 생기진 않았다. 그래도 튼튼하긴 하다 이거지.

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가벼운 행위이지만, 크게 별 위화감이 없다.

마치 처음부터 내 몸이었다는 듯, 뜻대로 잘 움직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몸도 삐그덕거렸으면 얼마나 곤란했겠어.

‘진짜 내가 살다 살다 현실 하드코어 게임을 할 줄을 몰랐네…….’

나 같은 선량한 일반인을 부려 먹다니. 진짜 돌아가면 제작진 집을 포크레인으로 밀어 버릴 거다.

그리 다짐하며, 내 발을 묶은 쇠사슬을 풀었다.

열쇠가 없으면 풀리지 않는 쇠사슬이지만, 상관없었다.

치이익…… 뽀각!

아티팩트란 마력으로 작동되는 것. 쇠사슬에 닿은 쇠사슬의 마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며 작동을 멈췄다.

완전히 자유가 된 나는 혹시 모르니 양아치들의 양 손목을 쇠사슬로 묶고, 검은 머리의 뺨을 툭툭 쳤다.

“이봐. 정신 차려.”

“…….”

분명히 숨이 고르고 눈도 찔끔거리는 걸 보면 깨어 있는데 말이지.

뭐, 안 일어난다 이거지?

난 그의 손목을 묶은 쇠사슬을 풀고, 대신에 하반신으로 쇠사슬을 올렸다.

“안 움직이면 여길 잘라 버릴 거야.”

“이, 일어났어요! 일어났습니다!”

역시 폭력을 좀 받아야 사람이 정신을 차리나 보다.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안 일어나도 돼. 그냥 자르면 되니까.”

“아, 아니에요! 일어날게요! 일어날게요!”

“그래. 그럼 이제 네가 아는 정보를 모두 말해 줘야겠어.”

“네, 네!”

나는 탈출 방법이나 보스의 위치가 아닌, 다른 걸 물었다.

“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네?”

“마법사. 어디 있냐고.”

이 이벤트의 보스는, 이놈들의 보스가 아니다. 몰래 뒷골목으로 스며들어온 마법사. 불법을 저질러 마탑에서 제명된 추방자.

비록 제명되었다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다. 힘이 곧 왕을 정하는 뒷골목에선 이미 새로이 실세를 잡고 있었다.

‘망설이는 걸 보니 내가 기억하는 게 맞나보네.’

혹시 설정과 다르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했는데 다행이다.

난 그의 대답이 느려지자 말없이 쇠사슬로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검은 머리가 눈물을 질질 흘렸다.

“마, 말할게요! 말할게요! 부디 제 아들만은……!”

“그래, 그래. 평생 고자로 살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하라고.”

“계, 계십니다! 계셔요!”

“그럼 안내해.”

“…네?”

고자가 될 위험 속에서도 검은 머리가 얼빵한 소리를 냈다.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아, 아닙니다요.”

“안내해. 아, 그리고 마스크도 하나 내놔.”

“여, 여기 있습니다….”

그는 왜 있는지 모를 마스크를 주머니에서 꺼내 내게 건넸다.

마스크를 쓴 나는 얼굴을 더듬었다.

음, 이 정도면 얼굴이랑 상처는 충분히 가려졌나.

“나쁘지 않네.”

얘를 그냥 꼬봉이라 부르긴 좀 그런데. 음,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니까.

“이제부터 넌 검정이다.”

“뭐?”

“뭐는 반말이고.”

뻐억!

내가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검정이가 억울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난 가볍게 턱짓했다.

“길 안내해.”

“하, 하겠습니다요….”

“이상한 데로 가면, 그놈들이 싸그리 다 죽여 버릴 거야. 아니다. 그냥 팔다리를 잘라서 짐승들한테 던져 줄게. 혹시 곰 좋아하냐?”

“히이익! 가, 갈게요!”

그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안내를 시작했다.

&

똑똑.

“무슨 일이지?”

한참 연구에 집중하고 있던 마법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검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 저… 마법사님…”

“무슨 볼일인지 말해라. 시답지 않은 일이면 널 불로 태워버리겠다!”

“노, 높으신 분이 뵙자고 합니다!”

“…뭐?”

높으신 분? 뭔 개소리야? 이런 뒷골목에 높으신 분은 개뿔이.

안 그래도 이딴 뒷골목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짜증이 났는데, 뭣도 없는 놈이 저리 구니 더 화가 났다.

마법사는 지팡이를 쥐었다.

“오냐. 네놈이 정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좋다! 내가 널 이대로 날려 보내 주마!”

“사, 살려만 주십시오! 저, 전 할 일 다 했습니다!”

히이이익! 소리를 낸 남자가 문밖으로 도망쳐 버리고, 짜증이 제대로 난 마법사가 혀를 찼다.

“그놈에게 시켜 부하들부터 훈련을 시키라 해야겠…….”

마법사는 말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마력에 예민한 마법사의 심장이,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감에 옥죄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이런 존재감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존재가 어째서 이딴 허름한 곳에……!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마치 죄수처럼 몸에 쇠사슬을 감은 남자를 본 마법사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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