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쿠우웅-
현 스토리의 최종 보스, 고밀라의 한쪽 무릎이 꺾였다.
누구도 보여 준 적 없는 장면이 펼쳐지자 채팅창이 흥분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걸 잡나? 이걸 잡아?
-잡나? 잡나? 잡나? 잡나?
-와, 진짜 여기 주인장 미쳤네ㅋㅋㅋㅋ 이걸 저 망캐로 잡는다고?
-ㄹㅇ 지금 이거 최초 아닌가?
난 채팅창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캐릭터 HP가 간당간당 빨간 피를 보이고, 피로도도 잔뜩 쌓여 있지만.
한 명의 게이머로서, 최초로 보스 클리어를 하는데 이딴 게 신경 쓰일 리가 없었다.
“당연히 최초죠. 나보다 잘난 놈이 없는데.”
-ㅋㅋㅋㅋㅋㅋ와 자신감 봐.
-저저 어깨 또 에베레스트 산까지 올라간 거 봐라ㅋㅋㅋㅋ
-진짜 주접 미치겠네ㅋㅋㅋㅋㅋ
-난 방금 저 어깨 위에 올라가서 신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옴ㅋㅋㅋㅋ
반응이 좋다.
이대로 끝낸다면, 딱 분위기도 좋고 나도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간당간당했지만.’
[폭주도: 98%]
현재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인 ‘라온 리그벨토’.
마법사 주제에 마력을 다룰 수 없다는 걸 넘어서 폭주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디버프를 가진 이 망캐.
이번 공략에서는 혼자 터져 죽지 않았으니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엄청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좋아. 그럼 끝내 봅시다.”
-가즈아! 클리어 가즈아!
-드가자! 드가자! 드가자! 드가자!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
어차피 잡으면 그만이니까!
‘다음엔 더 효율적인 루트로…….’
난 끝을 내기 위해 보스에게 다가갔다.
피를 1% 남긴 고밀라가 날 보며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마지막 대사’를 남기려는 듯했다.
고릴라를 닮은 입이 달싹였다.
[훌륭한…… 마법사로다… 날… 이긴 자는…… 네가 처음이야…….]
-ㅋㅋㅋㅋㅋㅋ훌륭한 마법사래.
-아ㅋㅋㅋㅋ 쇠사슬로 잡는 거 훌륭한 마법사 맞지. 마법도 안 쓰고 잡는 게 진짜 절약이지.
-ㄹㅇㅋㅋ
-근데ㅋㅋㅋㅋ 진짜 어떻게 쇠사슬로 이걸 혼자 잡냐?
-구르는 거 보는 게 재밌긴 해ㅋㅋㅋㅋ
난 얼굴을 와락 구겼다.
누군 마법을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나?
못 쓰는 건데.
“닥치고 대사 좀 그만 쳐라. 좀 죽어.”
[하지만…… 언제나… 방심은 화를 불러오는 법…….]
“……뭐?”
-어?
-어?
-저런 대사가 왜 나옴?
난 불길함을 느끼고 서둘러 쇠사슬을 휘둘렀다.
팅!
불투명한 유리 벽에 쇠사슬이 튕겨 나온다.
마력도 신성력도 뭣도 아닌 걸로 이루어진 이건.
‘시스템!’
[3페이즈에 돌입합니다.]
이 시발……!
[난…… 이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방금까지 죽어 가던 고밀라의 몸에 어둠이 깃들었다.
뻥 뚫린 천장에 기둥이 쿵! 내려앉는다.
기둥을 중심으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온 세상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오오오오! 와, 씨 연출 미쳤다!
아주 잠시간.
‘우주’의 모습이 비치고.
시스템상, 강제로 시야가 꺼졌다가 켜졌을 때.
[으우어어어어어어!]
온몸에 우주가 담긴 듯한 모습의 고릴라가 울부짖었다.
3페이즈.
누구도 온 적 없는 단계.
하지만.
[근처의 대기가 뒤바뀝니다!]
[체내의 마력이 근처 대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마력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현 ‘라온 리그벨토’의 마력 통제력이 지나치게 낮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마력이 폭주합니다!]
[통제 가능 수치: 110]
[현 통제 수치: 1]
게이머로서 두근거리기보다는 열만 받을 뿐이었다.
“……아, 진짜 망캐.”
-어?
-응?
쿠구우우우우우!
우드드득!
온몸이 뒤틀리고 체내의 마력이 방출되는 걸 느끼면서.
내 미래를 직감한 난 한숨 어린 욕을 내뱉었다.
“……시발.”
[마력이 폭주합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내 체내의 마력이 폭주하며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YOU DIED!]
[폭주로 인해 일어난 폭발에 보스가 사망하였습니다.]
[클리어 조건:
보스의 사냥(1/1)
플레이어의 생존(0/1)]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 세이브 포인트로 귀환합니다.]
&
“시바아아아아알!”
쾅!
난 거칠게 문을 박차고 튀어 나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얼굴이 시뻘게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친구이자 방송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는 이찬혁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 괜찮냐?”
“아니!”
“다 봤어. 응. 화날 만하더라.”
“시발, 진짜 제작자들 집 포크레인으로 밀어 버릴 거야!!”
내가 입에서 아예 불을 뿜을 것처럼 굴자, 이찬혁은 능숙하게 날 달래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자, 자. 진정하고. 이거나 봐 봐.”
“왜! 뭔데!”
“네가 더 화낼 거. 낼 거면 한 번에 내.”
“미친놈.”
하지만 저 말 덕분에 아주 조금 진정이 됐다.
대체 뭐길래?
그래. 보고 화내자.
[“넘치는 강물에 바닷물을 들이부어! 콸콸콸!”]
[최근 스토리가 한 캐릭터에 의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 이를 위해 ‘라온 리그벨토’의 안정성을 조금 더 낮추기 위해 스텟을 조정하였습니다!]
[라온 리그벨토 능력치 조정
보유 마력량 110 -> 115]
마력 제어 1 -> 0.95]
……
[댓글]
-와, 우리 미친개 어떡해ㅋㅋㅋㅋ
-야 이 새끼들아!! 이걸 또 쳐 너프하냐!!
-이 정도면 미친개가 회장 팼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니까?
“…….”
내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매니저가 살짝 뒤로 물러나자, 난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 개새끼들아!!!!!!!!”
내가 밸런스 패치를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시발, 어떻게 망캐인 캐릭터를 더 망캐로 만든단 말인가!
“안 그래도 마력 통제 안 되는 똥캐 마력 능력치를 올려 주고 제어 능력치를 낮추면 어떡해!!!”
마법을 써도 죽고, 마법을 안 써도 죽는 애한테!!
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득 쌓아 둔 공략집을 집어 던져 버렸다.
“으아아아아!!”
쿠당탕! 쾅!
공략집이 바닥에 처박히고 의자가 넘어지고 난리가 난다.
이찬혁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야, 뭐야?”
뒤에서 문틈 사이로 다른 친구이자 편집자인 하현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하현우는 상황을 보곤 그려려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지랄하는 거 한두 번이야? 이번에 패치 보니까 진짜 애를 개판으로 만들어 놨더만.”
“그러게 다른 캐릭터 하라니까.”
빠직!
난 자꾸만 심기를 긁는 두 놈에게 폐기 처리된 공략집을 들어 올렸다.
“다 안 꺼져?!”
“야, 야. 미친개 또 날뛴다. 빨리 튀어.”
“커피는 우리가 마실게!”
두 사람이 후다닥 방을 빠져나가고, 그제야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또 내가 다 치워야 하잖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여전히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다.
“후우…….”
‘영웅의 문’. 현재 VR RPG게임 인기 1위이자, 10년이 넘게 운영 중인 장수 게임.
일러스트도, 게임성도, 대회 성적 등도 나쁘지 않지만, 유독 밸런스 패치에 약한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한테!
라온 리그벨토. 마법사 직업을 가진 캐릭터로, 개발 초기부터 구상된 캐릭터다.
하지만 개발자가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만들기라도 했는지 아주 개똥 같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구리냐고?
아마 방금 봤으면 알 거라고 생각한다.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 이것 하나로 이 캐릭터는 정의가 된다.
또 그뿐이랴.
[마력이 폭주합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마력을 쓰지 않아도 죽는다!
덕분에 근처의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항상 마력 흡수 아이템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자꾸 이 게임사들은 이 캐릭터한테 제어력을 주기는커녕 마력만 더 퍼준다는 것이다!
“자꾸 이따구로 군다 이거지? 좋아. 내가 광기가 어떤 건지 보여주마.”
난 뿌득뿌득 이를 갈며 고객센터의 창을 띄웠다.
패치를 이따위로 한 [GM]들 기다려라.
내가 아주 조져 줄 테니까!
[문의합니다]
[문의합니다]
[문의합니다]
[문의합니다]…….
아주 문의 폭탄을 쏟아 주마!
물론 이걸로 고쳐질 리가 없는 걸 안다.
이건 그저 ‘기초 공사’일 뿐이다.
“편집자!”
“아, 또 뭐.”
“영상 녹화 준비!”
“아, 쫌! 그만 올려! 시청자분들이 싫어하잖아!”
“내가 지랄하면 재밌어하니까 괜찮아!”
“……어. 자기 파악은 잘하고 있네. 그래, 그래, 우리 고용주님. 이 도비는 금방 준비하겠습니다요.”
난 광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열기로 영상 녹화 준비를 끝마쳤다.
광기라 해도 상관없다.
이 캐릭터만 살리면 돼!
‘커뮤니티도 지금 난리가 났을 테니까 효과는 두 배야.’
방금, 누구도 레이드하지 못한 최종 보스의 2페이즈를 맞이하려고 할 때 딱!
터져 죽지 않았는가. 아마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으니, 이때 영상을 올리면 아주 난리가 날 거다.
딱 녹화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띵!
메일 창에 ‘1’ 표시가 떠올랐다.
뭐야? 지난번 광고 문읜가?
난 물주의 메일을 기대하며 메일창을 열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물주보다도 더 대단한 것이었다.
“!!!”
[문의 답변 : GM TS입니다.]
이게 벌써 왔어?!
그래! 너희들도 이번 패치는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구나! 그래, 그래! 괜찮아. 핫패치로 롤백이라도 해 주면 돼!
난 기대감에 찬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GM TS입니다. 플레이어님이 주신 소중한 의견,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우선적으로 문의 주신 내용에 답변하자면.]
[이번 패치는 한 명의 개발자가 정한 게 아닌, 개발자와 저희 GM들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 결정한 내용으로, 특히 라온 리그벨토에 대한 패치는 저희 모두가 동의하여 조정된 능력치입니다. 그러니 플레이어께선 너무 불만을 품지 마시고 우선 플레이를…….]
쾅!!
난 분노로 다시 책상을 내려칠 수밖에 없었다. 분노로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이게 뭔 개소리야! 너희들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내가 이 캐릭터만 플레이한 지가 10년이다. 이 게임이 나왔을 때부터 했으니까!
아무리 이들이 캐릭터의 창조주라 하여도, 10년 동안 공략집을 만들고 분석을 하고 플레이를 한 나보다 이해도가 높을 리가 없단 말이다.
그런데, 뭐? 이게 나아?
“시발, 안 그래도 마법을 쓰면 열 번 중 열 번을 다 실패하는데……!”
이젠 열한 번이 되겠네!
난 GM을 저주했다.
아무튼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난 눈을 희번덕 뜨고, 이 메일 내용을 캡쳐 했다.
“다 퍼트려 버려야지.”
감히 말대꾸를 깐 대가를 치르리라!
그대로 창을 꺼 버리려던 그때, 스크롤이 한 장 내려가는 걸 확인했다.
“뭐야. 더 있네?”
또 얼마나 개소리를 씨부리려고 이렇게 길게 적어 놓았대?
아니면 그냥 으레 마지막 칸에 있는 게임사 정보인가?
난 만약 헛소리라면, 진심으로 본사를 포크레인으로 밀어 버릴 상상을 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하지만 플레이어님이 오랫동안 라온 리그벨토 캐릭터를 플레이하시고, 공략집을 제작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한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 기획으로, 플레이어님이 직접 캐릭터를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밸런스 패치에 직접 참여하게 해준다는 건가?
엄청난 제의에 논이 크게 떠졌다. 이때까지 쌓인 앙금이 모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GM들! 그래도 너희들이 양심이 있구나!
“……그래! 이래야지!”
난 망설임 없이 밑에 예, 아니오 중 ‘예’를 눌렀다.
그러자 메일이 하나 더 날아왔다.
‘회사 위치를 알려 주려는 건가?’
좋아. 내가 아주 싹 뜯어 고쳐 주…….
[그럼 파이팅하십시오.]
“응?”
메일에 그냥 떡하니 박혀 있는 한 문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 파이팅? 뭐가 오지도 않았…….
울컹!
한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울렁거렸다.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의자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어어…….”
이게 뭐야…….
눈꺼풀이 감겨 온다. 3일을 새면서 게임했을 때보다 훨씬 무거운 눈꺼풀.
“캐릭터 조정해야 하는데…….”
이제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데……!
나는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 메일을 노려보았다.
자고 일어나면 뭐라도 와 있을 테니, GM 이름을 완전히 기억해 두어야…….
[GM TLS]
아니… 시발 왜 답변이랑 이름이 다른…….
[캐릭터 조정을 시작합니다.]
이젠 메일이 아닌 모니터 전체에 차오른 글자를 보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운이 좋았어. 설마 이런 허름한 곳에 도련님 혼자 있을 줄이야.”
“심지어 스스로 쇠사슬까지 차고 있고! 흐흐. 아주 떼돈을 벌 수 있겠어.”
내 발을 두 남자가 툭! 하고 치고 지나간다.
퀴퀴한 냄새와 칙칙한 색의 신발. 현대와는 다른 디자인.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묵직한 쇠사슬이 내 목을 휘감고, 내 손과 연결해 놓은 탓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시발.’
며칠 동안 현실을 부정했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게임 속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심지어 라온 리그벨토의 몸으로!
내가 이걸 알아차린 이유는 간단했다.
[당신은 ‘라온 리그벨토’에 빙의하였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한 줄.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일어나자마자 이상한 데에 묶여 있는 것도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이다.
‘빙의시킬 거면 좀 정상일 때로, 아니면 이 이후라던가 이 이전의 시점으로 빙의시켜 주든가……!’
빙의당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빙의 당한 이유가 대충 예상이 갔다는 점일까.
‘마지막 메시지. 그거 때문이겠지.’
[……플레이어님이 직접 캐릭터를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기에 YES를 누른 게 화근이다.
아니, 근데 이걸 어떻게 참아!
애초에 캐릭터 조정하라고 빙의시키는 놈들이 미친 거지!
“후우….”
난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지금 중요한 건, 왜 빙의시켰냐고 지랄하는 게 아니라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여길 벗어나는 거였으니까.
‘지금은 ‘라온 리그벨토’를 플레이할 시 겪는 첫 번째 이벤트다.’
탈옥 이벤트.
처음엔 ‘뭐지? 마력으로 범죄를 저질러서 묶여 있는 건가?’ 하는 착각을 주는 이벤트!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어이가 없어서 휴대폰을 집어던질 수준이었다.
저벅, 저벅.
어느샌가 다가온 이들이 날 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이야, 잘 묶여 있네. 반항 안 하던?”
“안 하던데. 뭐,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걸 잘 알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게, 범죄자 주제에 누가 쇠사슬을 차고 뒷골목을 돌아다니래?”
“야, 야. 대장이 범죄자 아닐 수도 있다잖아.”
“에이, 그럼 스스로 마력을 흡수하는 아티팩트를 차고 다닌다고? 심지어 마법사가? 그런 바보 마법사가 어디 있냐?”
‘여기 있다, 개새끼야.’
저 말 그대로다.
이 이벤트는 매일 쇠사슬을 차고 다녀야 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타고난 ‘라온 리그벨토’가 답답함에 몰래 밖을 돌아다가 범죄자로 오인되어, 양아치 새끼들한테 끌려오는 것으로 시작된 이벤트인 것이다!
난 한숨을 내쉬며 쇠사슬 정보를 떠올렸다.
[탐욕의 쇠사슬]
접촉한 모든 것의 마력을 빨아들입니다.
단, 흡수하는 마력의 ‘질’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마력 양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현 마력 흡수량 : 70%(현재 ‘라온 리그벨토’으로부터 흡수하여 저장 중인 양입니다. 조정이 가능한 수치입니다(최대 90%).
[마력이 30 감소합니다.]
거머리처럼 마력을 쪽쪽 빨아먹고 무겁기는 더럽게 무거운 아이템을 들고 있으니, 답답함은 이해가 된다.
그래. 이해는 되지, 이해는!
‘좀만 참지!’
그럼 내가 여기에 안 있을 텐데!
“밥은 또 다 처먹었네.”
“범죄자 주제에 밥은 먹고 싶다 이거지.”
“이 새끼 이거, 팔아도 밥값은 나오나 모르겠네.”
“아마 차고 있는 아티팩트만 팔아도 훨씬 더 많이 나올걸? 뭐, 이 정도 아티팩트를 달고 있는 거 보면 상당한 흉악범일 텐데, 실력도 좋을 테니 돈도 많이 나오겠지.”
……심지어 팔려나가는 처지로 말이다.
범죄자는 같은 범죄자에게 은근히 돈이 잘 됐다. 약육강식, 약자는 강자에게 거역할 수 없는 게 이 인간만도 못한 놈들의 규율이었다.
‘이딴 놈들이 강자라니…….’
하필이면 내 위의 강자가 양아치라는 게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다.
‘상태창.’
[라온 리그벨토]
힘: 47(일부 봉인)
민첩: 42(일부 봉인)
체력: 48(일부 봉인)
마력: 115(-30)(사용 불가능)
마력 제어: 0.95 (통제 가능 수치: 0.1~0.95 - 마력 사용 혹은 폭주할 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신성력: 0
[특이사항: 마력 수치에 비해 마력 제어 능력치가 굉장히 낮습니다. 마력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마력 흡수 쇠사슬’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일부 극히 제한된 상태입니다.
※마력이 일부 감소하였습니다(-30)
※폭주까지 60%(근처의 마력에 영향을 받는다.)
비록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상태창이지만.
‘…억울해서라도 해낸다.’
몇 년 동안 플레이해 온 캐릭터다. 애지중지 살리기 위해 노력한 캐릭터란 말이다.
어차피 이리 빙의하게 된 거.
‘어떻게든 살린다.’
이 망캐도, 내 목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