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 외전 11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외전 11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천제국의 건국 선포가 3개월쯤 지나던 시점.
김장원과 독거미가 천제국의 시황제 천우진의 명에 따라 누구보다 먼저 카타르를 방문하였다.
카타르의 국왕이 알자지라 언론을 조종해 천우진의 목숨을 위협했기 때문.
그것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나랏일에는 항상 명분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또, 건국을 선포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국제적인 이슈를 생산해 봐야 좋을 게 없으니 천우진은 그런 점에서 믿을만한 독거미와 김장원을 보낸 것이다.
"워따 덥다잉."
눈썹을 씰룩 거리며 노골적으로 독거미를 바라보는 김장원.
독거미는 잔뜩 아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김장원의 눈길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곳은 카타르, 무슬림들이 사는 곳.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은 피부가 거의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게 대부분, 그에따라 현재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아래 독거미는 온 몸을 검은색 천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상태였다.
"쩝."
못내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김장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깊게 찌르는 독거미.
"김 사장님, 일만 합시다 일만."
"아따 또 그란다잉... 인자 우리 사이는 공인 된 거 아니여?"
"누구 마음대로?"
"아따 참말로, 나가 어느 장단에 놀아야 쓰겄는지 모르겄구만?"
그러거나 말거나 독거미는 차가운 눈으로 바삐 서류를 살핀다.
"우선 왕족들부터 케는 게 맞겠네요, 김 사장님은 남자들 케 보시고, 저는 여자들 케는 걸로 하죠."
"아따 드라이하다, 드라이 해. 사막 날씨처럼 겁나게 건조해부러."
픽 우슨 독거미가 재빠르게 손을 휘둘러 김장원의 튼실한 엉덩이를 짝! 소리나게 때리고는 두어번 주무른다.
"일 하는 거 봐서, 상을 줄 수도 있고?"
헤벌쭉 입꼬리를 쫙 벌린 김장원이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잉잉, 그라제, 일부터 해야제! 나가 김장원이여! 잉, 임자는 아무 걱정을 하덜 말어, 나가 알아서 할라니께."
김장원은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조금은 부드러운 눈이 된 독거미가 끝까지 바라보다가 그녀도 이내 자리를 옮겼다.
***
호텔방에 도착해 독거미가 답답했는지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히잡을 벗어 던졌다.
"후우."
땀이 흥건하게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를 타고 주르륵 른다. 이어서 검은색 타이즈도 벗어 던지자 살색 란제리가 아름답게 드러난다.
땀에 절었기에 조금은 찝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독거미의 단련된 신체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흐흐."
뒤쪽에서 들리는 음흉한 웃음소리에 독거미는 피식 웃어버렸다.
호텔방에 이미 김장원이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독거미, 그러나 부러, 보란듯이 옷을 벗어 재끼고는 란제리 바람으로 표독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슉.
단도 하나가 빛살처럼 쭈욱 뻗어가더니 김장원의 왼쪽 뺨을 스치며 벽에 박힌다.
"와따메, 사람 잡네잉."
"훔쳐보는게 취미신지는 몰랐네요."
"아따, 그란 것이 아니고잉 거시기 뭐 포상이 있다고 혀서."
잔뜩 얼굴이 붉어진 김장원.
그도 그럴게 하늘하늘해야 할 란제리가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으로 인해 흘린 땀 때문에 온 몸에 딱 달라 붙어 있으니 독거미의 여체가 눈이 부시기 때문이었다.
그런 독거미가 막상 가까이 다가오니 김장원은 눈둘 곳이 없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본다.
"보고서는요?"
"잉, 여 있어라."
얼른 품에서 보고서를 건네며 힐끗 독거미를 훔쳐보고는 흠칫 놀라서 다시 저 벽 너머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 모습에 독거미가 가까스로 입술에 힘을 주며 웃음을 참아내고는 천천히 김장원의 보고서를 읽어간다.
"확실히, 제대로 조사하셨네요."
"잉, 나가 또 공과 사는 학실히 구분해불제."
"고생하셨어요."
"흐흐, 그려?"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푹 쉬세요."
"잉? 뭐여?"
독거미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는다.
"뭐가요?"
"아니 거시기, 시방 그것이 그 포상 그것은 없는 거여?"
"아~ 포상~"
"잉잉, 그거."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김장원.
그의 노골적인 데쉬가 마냥 싫지많은 않은지 독거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있죠~ 포상."
"흐흐, 글제? 아따 나가 쪼까 서운 할 뻔 했구만?"
김장원이 삐쭉 입술을 내민다.
그가 바라는 포상이 뭔지 잘 아는 독거미.
그러나 언제나 여자는 어려워야 매력적이라는 걸 잘 아는 그녀는 감히 본인의 입술을 김장원에게 허락 할 생각이 없었다.
"방에 좋은 술 보냈으니까 한잔 하시고 주무시면 될거에요."
철컥.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출입문을 열어서는 손짓으로 호텔 복도를 가리키는 그녀.
"이, 잉? 수, 술?"
"네, 술."
"아니, 그런 포상 말고 있자네... 그, 잉? 막 달큰허고, 향긋허고."
"아아~ 열대 과일~"
"아니! 아니여! 고딴것이 아니고! 막, 잉? 막 귀에서 종소리가 뎅~ 뎅~ 하고 울리고 하는 고거 말이여!"
"아아~ 시계?"
"아따 고런것이 아니라니께, 참말로 몰라서 그러는 거여,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여?"
"글쎄요, 달콤하고, 향긋하고, 귀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거? 음... 초콜렛?"
김장원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들긴다.
"워메 환장 해분다잉..."
독거미가 약올리듯 김장원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 주며 말했다.
"어여 가서 쉬세요~ 폐하께서 내일 오시니까."
"아오, 그냥 확 그냥 막그냥 여기저기 막그냥 잉?"
픽 웃은 독거미가 빠르게 김장원을 출입문 밖으로 밀치고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얼굴 한 가득 미소를 머금고는 문 밖의 소리를 들으려는 듯 귀를 문틈에 가져갔다.
-아따... 이거이 아닌디... 연애는 니기럴거 줫나게 어렵구마잉... 에잉!
저벅저벅.
김장원이 힘 없이 복도를 걷는 소리에 숨죽여 웃은 독거미는 기분이 좋은지 현대무용과 같은 춤을 추며 마지막으로 걸치고 있던 란제리와 속옷을 모두 풀어헤치고는 욕실로 향했다.
"난, 땀냄새 날까봐 싫더라."
눈치 없는 김장원이 떼를 잘못 골랐을 뿐이다.
***
다음날.
카타르 국왕의 저택.
천우진에게 또 한번 명령을 받은 김장원과 독거미가 조용하게 국왕의 저택 국왕 침소에 잠입했다.
거의 감금되어 있다시피 한 국왕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독거미와 김장원을 보고는 마른침을 삼킨다.
"사, 살려주시오!"
제법 유창한 영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김장원은 피식 웃고, 독거미는 무감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국왕에게 다가가 작은 병 하나를 건넨다.
"100퍼센트 순수 알콜입니다."
"순수 알콜?"
"드세요."
"......"
말이 알콜이지 사실상 독약이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독거미를 올려다 보는 카타르의 국왕.
김장원이 독거미의 옆에 서서는 국왕을 내려다보며 말을 보탰다.
"쉽게 가는 방법과, 어렵게 가는 방법이 있는데, 무엇을 선택할래?"
카타르 국왕이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천우진이 자신을 암살하려 할 줄은 몰랐다. 대충 과음으로 인한 사망따위로 자신의 사망을 위장하려 하는구나 하고 단밖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잉, 눈깔을 보니까 어렵게 가자는 뜻이네?"
"어렵게란... 어떤 것이오?"
"먼저 네 아들내미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네 앞에 세우고, 그 다음에 한명씩 한명씩, 머리에 구멍을 내주지."
김장원의 살벌한 협박.
자연스럽게 카타르 국왕은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
"쉽게 가는 방법은 깔끔하게 너 하나로 끝내는 거고, 너만 가면 카타르는 영원히 안녕이니까."
"믿을 수 있습니까?"
김장원이 피식 웃으며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독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가 요 새끼 눈깔이를 딱 보니께, 이거 어렵게 가야 헐 놈이여."
독거미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녀도 김장원과 마찬가지로 카타르의 국왕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언젠가 뒤통수를 칠 인물이었다.
독거미가 손목을 들어올려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빠르게 끝내는 게 좋겠네요."
"그려? 왜? 폐하께서 또 뭣을 시키셨는가?"
독거미가 한쪽눈을 찡긋 거리며 말했다.
"밤은 짧으니까요."
"잉?"
독거미의 말을 곱씹고 곱씹던 김장원이 헤벌쭉 입꼬리를 찢어뜨린다.
그 모습에 국왕은 긴장이 풀렸는데 작게 한숨을 내뱉는다. 정말 밝게 웃는 김장원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일말의 희망 덕분이었다.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김장원이 카타르의 왕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또박또박 영어로 말했다.
"세번째 방법이 생겼어."
"세번째?"
"잉, 너으 목구멍으로 나가 직접 요것을 쏟아붓는 것이제."
"뭐요?"
"입 벌려."
병의 뚜껑을 열고 당장이라도 입에 부어버릴 듯 내미는 김장원.
"자, 잠깐! 잠까안!"
wait을 외치는 카타르 왕.
"잉, 그라믄 또 방법이 있제.
빗살처럼 빠르게 그의 왼 손이 국왕의 복부를 사정없이 찔러버린다.
"커억."
절로 입이 쩍 벌어지고 신음소리가 터져나온다.
그 순간 입 안으로 알콜 병을 던지듯 쑤셔 넣은 김장원.
어떻게든 입에 들어온 알콜 병을 바깥으로 뱉어내려는 카타르 왕의 필사적인 몸부림.
그러나 김장원은 왼손과 오른손을 이용해 그가 다시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막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쨍그랑.
카타르 왕의 입 안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끄으으읍!"
입술사이로 피가 주르륵 세어나오는 카타르 국왕.
"잉, 너는 과음으로 뒤져분 것이여, 저승가서도 고로코롬 말 혀, 그라믄 혹시 알까? 알라께서 용서 혀 주실지."
툭툭.
국왕의 어깨를 두들겨준 김장원이 얼른 뒤 돌아 독거미를 보챈다.
"어여 가자, 어여! 밤은 조온나게 짧아 부니께."
***
서툴고 우악스러운 김장원의 손길.
그 손길에 독거미는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남자가 처음이지만 김장원도 여자가 처음이라는 것을.
부서질듯 자신의 입술을 훔치는 김장원을 억지로 떼어 낸 독거미가 물었다.
"처음이에요?"
김장원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잉... 워째 살다보니 그리 되었다잉."
"저도요."
"그, 그려?"
"우리는 다 그렇게 살잖아요."
김장원이 쩝 하고는 입맛을 다신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다보니 많은 것들이 늦거나 이루지 못하는 편이다.
"거시기 말이여."
"네."
"나가 우리 연희한티 작업 거는 것이 아니여."
"네?"
"나으 인생을 거는 것이여."
픽 웃으며 김장원의 품에 푹 안기는 독거미.
"연희라고 불러주는 사람...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려? 앞으로 나가 수천 수만번 불러 주꾸마?"
"서로 서툴러도 잘 이해해주고 살아봐요 우리."
"흐흐, 벌써 결혼까정 생각한 겨?"
표독스럽게 김장원을 째려보는 독거미.
"바람피면 죽여버릴거니까 그렇게 알고."
"워따, 걱정을 하덜덜 말어, 나가 신의에 죽고 신의에 사는 놈 아니겄어?"
"결혼은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 할게요."
"괘안여, 나도 처음인디 뭐.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 아니겄어?"
독거미가 입술을 달싹인다.
작업이 아니라 인생을 건다는 김장원의 말.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해 온 몸에 행복이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고민끝에 독거미가 스윽, 김장원의 두 눈을 피하며 작게 읊조렸다.
"사랑해요."
"아따 달큰허다잉. 인자 느 내 여자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