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외전 10화 김장원(3)
꿀꺽.
마을사람들을 비롯해 김장원까지, 천혁수에게서 몰려드는 이상한 서슬퍼런 기세에 침을 꼴깍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도통 으르신이 뭣을 말 허는지 모르겄소잉."
천혁수가 똑바로 김장원과 눈을 마주본다.
"참이군."
천혁수의 눈이 풀리고,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 같자 곳곳에서 긴장이 풀리는 한숨이 튀어나온다.
"용아."
"예! 형님."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정용이 천혁수의 부름에 뜻을 눈치 채고는 피떡이 된 사내 하나를 데려와 김장원의 앞에 무릎 꿀린다.
"읊어봐라, 어제 내게 했던말을 그대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피떡 사내를 보고는 김장원이 눈을 부릅 뜬다. 그 사내는 분명, 자신이 조직생활에 몸 담고 있을 때, 막내라 부르던 인물이었다.
이제는 경력이 쌓였을테니 행동대장쯤 되었을텐데, 그가 이런 몰골이라니 충격적인 듯 보였다.
"그, 그것이."
김장원이 한쪽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맞춘다.
"느 이름이, 상태였던가?"
"예... 형님."
"그래,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요즘도 파출소에 가셔서 너 찾아달라고 허시냐?"
"돌아가셨습니다. 형님."
"워메... 나가 쪼까 격조해부렀다잉."
"크윽..."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태라는 사내.
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겨 준 김장원.
"형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따, 느가 뭔 죄를 지었는지는 나가 들어봐야 알제, 어르신한테 했던 야그를 나한티 쪼까 해 보니라."
"그게... 작은 형... 아니, 큰 형님께서 형님네 고구마 밭에 물건이 있다고 전달하라고만 해서... 그렇게만 말씀 올렸습니다."
"뭐여?"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천혁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김장원을 내려다 보았다.
"쯧쯧, 아무래도 자네의 지기가 자네에게 던지기를 할 셈이었나보군."
씁쓸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김장원이 천혁수에게 말했다.
"여그 동상은 살려주십쇼, 어르신."
냉정하기 짝이 없는 정용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김 사장, 과한 요구를 하는군. 감히 우리에게 거짓을 고한 자를 살려두라?"
"아따, 정 실장님? 야가 거짓부렁을 하진 않은 것 같은디요? 마침 아적에 보니께, 고구마 밭이 젖어 있다 했더라니... 이현이 고 놈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그럼 물건은 김 사장이 가지고 있던 게 맞는 모양이군요?"
혀로 이빨을 핥은 정용이 천천히 품에서 사시미를 꺼낸다. 그 손을 천혁수가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모르니 말을 할 수 없지, 지기를 잘못둔 게 잘못일 뿐이야."
김장원이 천혁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어르신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저은 천혁수.
"고구마 밭이나 안내 해 주게."
"예, 어르신 가시죠잉."
잠시 후, 고구마 밭에서 삽질을 하고 있는 천혁수의 부하들 뒤로, 천혁수와 김장원이 멀뚱히 서서는 대화를 나눈다.
"은퇴 생활은 할 만 했는가?"
"아따, 인자 막 적응 하던 참입니다."
"그래? 칼밥 먹고 사는 사람들은 가끔 정신병에 시달리는데, 그래도 김 사장은 술에 찌든 모습은 아니니 다행이군."
"마을 사람들도 순박 허니, 살기 좋았습니다."
삽질이 계속되자 천천히, 천천히.
마약이 든 가방이나 돈이 든 가방, 장부가 든 가방이 흙 바깥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그러던 어느 순간, 열심히 삽질을 하던 사내의 침음성에 사람들의 주목이 그쪽으로 쏠린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쪽으로 움직였던 정용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천혁수에게 다가와 말한다.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
"뭔데?"
"시체가 나왔습니다."
시체라는 말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김장원.
"아따, 썩을 넘들이 거름까지 묻어 주고 갔구마잉..."
다같이 시체를 확인하는 데.
털썩.
김장원이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건들지마!"
천혁수의 손을 뿌리치게 만든 김장원.
그는 조심스럽게 흉측하게 뭉개저 얼굴을 알 수 없는 시체의 얼굴의 흙을 천천히 걷어낸다.
"시벌롬이..."
얼굴을 알아 볼 순 없지만, 김장원은 그가 누구인지 단밖에 알 수 없었다.
가족들끼리 마스크를 썼다해도 쉽게 알아보는 것 처럼, 뒷 모습만 봐도 알아 볼 수 있는 부부들 처럼.
"상철아... 이놈아..."
까드득.
어금니를 짓 씹은 김장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천혁수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시간 좀 주시겄습니까?"
"시간이라..."
"이현이 그놈... 나가 손 좀 보겄습니다."
정용과 백호는 고개를 젓는다.
"김 사장은 세력이 없습니다 형님."
"지금 그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천혁수는 다시 허리를 세운 김장원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물었다.
"내 시간은 비싸지."
"예,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하루면 되겠지?"
"예! 감사헙니다!"
"대신, 내 밑에서 일 좀 해."
김장원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가 살아 있으먼, 그렇게 하겄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천혁수.
정용과 백호의 만류에도 천혁수는 되었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며 망설임없이 뒤돌아 서서는 천천히 걸어 자신의 차량에 오른다.
***
여수의 호박나이트.
오랜만에 검은색 수트를 빼 입은 김장원이 호박나이트 정문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나이트의 기도 역할을 하는 건달 사내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에헤이, 아자씨는 양심도 없소?"
김장원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놀러 온 거 아니니께 길 터라, 아그들 상헌다잉."
김장원의 말에 저들끼리 키득거리며 웃어대는 기도들.
"아따 이 아자씨가 뭘 잘못 잡수셨나, 아니면 뭐, 코메디언 지망생 그런 것인가?"
"이현이 그 놈, 여그 있다고 들었는디 맞는가?"
"이런 쉬벌럼이 워디 큰 형님 존함을 함부로 부르고 지럴이여."
김장원의 입에서 조이현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기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김장원에게 달려들었다.
몇년을 주먹을 쓰지 않고 살았지만,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
가장 먼저 달려드는 사내의 주먹을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피하고는 그대로 이마로 턱을 들이 박는다.
빡!
"끄읍!"
쓰러지는 기도의 몸을 어깨로 밀고는 반동을 이용해 돌려차기.
빡!
"크윽."
이어서 바로 무릎으로 발차기에 몸을 맞아 헤롱거리는 놈의 명치를 찍어버린 김장원.
기도 둘을 눕히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처음 턱을 맞은 놈이 어눌한 발음으로 무전을 날린다.
"여그 상황 터져슙니다, 상황!"
몇 초후, 우르르 입구로 몰려나오는 덩치들.
"뭐야? 혼자야?"
그 덩치들 사이로 질문이 튀어나오자, 김장원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이제는 나주 바닥에서 봄바람이 부나 했던 김장원의 삶, 그 삶을 어쩌면 오늘은 끝을 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어째서인지 아랫마을 최진사댁 여식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 순박하고 고운 얼굴을 보고 있자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생각했던 그였다.
물론, 자신의 어미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어, 아직 싱글이야."
"시벌롬이 장난치나!"
욕을 하며 튀어나가려는 사내의 어깨를 꽉 붙드는 사내. 그는 그 사내보다 더욱 빨리 앞으로 튀어나가 꾸벅 허리를 접는다.
"혀,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잉, 우철이냐?"
"예, 형님!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됐고, 이현이 안에 있냐?"
"안 계십니다.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형님."
픽 웃음을 흘리는 김장원.
우철이란 사내의 동공이 크게 떨리는 걸 봤기 때문.
"아야, 우철아."
"예, 형님."
"나가 말이여."
"말씀하십쇼 형님, 듣고 있습니다."
"오늘 느그 큰 형님 이현이, 담궈 불 것잉게. 길 열어라, 아그들 상헌다잉."
말을 끝낸 김장원이 품에서 커다란 사시미를 꺼내 들었다. 맨손이 아닌 사시미를 꺼내들자 그의 기도가 순식간에 뒤바꼈다.
동네 양아치, 혹은 바보 아저씨 같던 김장원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굶주린 짐승, 정확히는 굶주린 이리와 같은 기세를 흘려낸다.
"나가 워째서 전라도 이리인지 궁금하면 들러 붙어도 좋고잉."
아랫입술을 짓 씹은 우철.
"형님... 그냥 돌아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우철아."
"예."
"상철이 그놈, 뒤져 부렀다잉."
"예? 상철이 형님이요?"
"그려, 큰 형이 되어서 동상들 모가지 가지고 장난치고 글먼 되겄냐? 길 터라, 볼일은 이현이 그 놈한테만 있으니께."
우철은 어째서 김장원이 저렇게 눈깔이 돌았는지 알 수 있었다. 김장원이 이리파의 꼭대기 시절, 그의 오른팔이 조이현이었다면, 왼팔은 김상철이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막아!"
결국 우철은 선택을 내렸다.
한 때 잘나가던 조폭이었어도, 다 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
잠시 후.
"허억, 허억."
김장원이 거친 숨을 토해낸다.
"워따, 나도 다 죽었네잉. 쿨럭."
허벅지에 한 방, 종아리에 한 방, 팔뚝에 한 방씩 사이좋게 칼침을 맞은 김장원.
그리고 나이트 앞 공터에 널브러진 조폭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장면에 여수는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경찰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감히 전라도 바닥에서 이리파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기 때문.
"누워 있으라, 뒤지지는 않으니께."
김장원은 이 젊은 조폭들에게 살수를 쓰진 않았다. 그냥 몇달, 혹은 몇 주 요양이 필요할 깊이로 찔렀을 뿐이었다.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데 수십대의 봉고차가 나이트의 입구를 막아서듯 멈추어 선다.
우르르.
각자의 연장을 내리고 내리는 이리파의 옛 식구들.
그 수가 가히, 수백을 헤아릴 정도였다.
"워따 씨벌롬... 끝까정 뭣 같이 구는 구마잉."
김장원은 비겁한 조이현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동생들이 상하고 있는데 아직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그 놈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자신은 평생을 바친 조직도 잃었고, 평생의 동반자라 생각했던 친구도 잃었으며, 앞으로의 숨 쉴 기회도 잃겠구나 싶었다.
"여그는 뭐헌다고 왔냐잉! 농사나 짓고 살지."
저 멀리서, 덩치들의 틈바구니에서 조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 시벌롬아, 인자 왔냐?"
"조빤다고 여글 왔냐? 너 뒤질 자리 굳이 찾아오는 새로운 취미가 다 생겨부렀다잉?"
"왜 그랬냐?"
"뭣을?"
"상철이 왜 그랬냐고 이 시벌롬아!"
금시초문이라는 듯 능청을 부리는 조이현.
"뭔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여? 나가 상철이를 뭐 워쨌간디?"
"이 씨벌롬이 참말로 끝까정..."
"느가 상철이 담궈분 것은 아니고? 뒤에 누워있는 우리 아그들처럼?"
조이현의 말에 수백이나 모인 이리파 식구들의 기세가 흉흉하게 변한다.
"나가 네 놈인줄 아냐잉? 아그들 쪼까 상혔어도, 숨에는 지장이 읎다."
"잉, 그라냐잉. 그럴 실력이 안 된 것은 아니고?"
"정 뭐시기 하믄, 오랜만에 맞다이나 한 번 쪼개볼끄나?"
"크큭, 크크크큭."
조이현이 비웃듯 크게 웃었다.
"아야, 장원아. 영화 찍냐잉? 무슨 우리가 김두환이냐? 맞다이는 염병, 아야 뭣들허냐? 저 늙은이 치워부러야?"
"움직이지 마!"
김장원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 씨벌롬들아! 으른들 싸움에 애새끼들 끼어드는 거 아니다잉!"
수백을 앞에 두고도 전혀 꿀리지 않는 김장원의 기세.
"끼어 드는 놈 있으믄, 나가 책임지고 상철이 저승길 동무로 보내벌라니께, 자신있으믄 드루와라잉."
중간보스급, 혹은 행동대장급 인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튀어나가려는 젊은 조폭들을 만류했다.
그 모습에 잔뜩 당황한 조이현.
"뭐여? 느그들 뭐 하는 거여! 저 놈 저거 담궈 불라니께?"
저벅, 저벅.
악을 박박 쓰고 있는 조이현에게 바짝 나가간 김장원.
"아그들도 아는 것이제, 느 한테 큰 형님 할 깜냥은 없다고."
"자, 장원아 내가 잘못 혔다. 잉? 내가 잘못 혔어!"
조이현은 애초에 김장원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김장원이 항상 그보다 더 윗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리파의 오래된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살려주라잉, 우리가 몇년 지기냐?"
"씨벌놈아."
"왜, 왜."
"내 지기는 필리핀에서 뒤져 부렀다잉, 느. 너는 사람 새끼가 아니여."
털썩 무릎을 꿇은 조이현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는 시늉을 하더니 돌연 빠르게 허리춤에서 뽑은 사시미를 찔러온다.
푸욱.
알고 있었다는 듯, 김장원은 그 사시미를 손으로 막고, 관통한 상태로 조이현의 손을 꽉 쥔다.
"저승가서 상철이 만나면,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라잉... 거그서도 배창시에 구멍 뚫릴라니까."
"아, 안 돼! 안 돼!"
푸욱.
김장원의 커다란 사시미가, 조이현의 뱃속 깊이 파고들었다. 얼굴이 파리해진 조이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김장원.
"시벌로마... 꼭 그랬어야혔냐?"
죽어가는 조이현의 눈에는 회한 따위가 아닌, 원망이 가득 서려있었다.
"큰형님! 돌아오신것을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이리파가 김장원 앞에 고개를 숙인다.
김장원은 고개를 저었다.
"느그 끼리 해 묵어라잉, 나는 인자 이리파 식구 아니니께."
한 사내가 다급하게 달려와 김장원의 팔을 잡는다.
"혀, 형님!"
"난 이제 이리파 대가리 아니여, 천가 어르신을 주인으로 모시기로 했으니께, 따라오덜 말어라잉... 경고하는 디, 고리는 놓지 말으야? 나가 칼침을 놓을 수도 있으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