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4. 외전 8화 김장원. >
외전 8화, 김장원.
1970년대.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에 이름하야 ‘히로뽕’이라는 마약이 부흥을 일으킨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흥은 신종 주먹 세력들을 키웠으며 본래 본토에 머물던 주먹들은 그들을 ‘뽕쟁이’, ‘약쟁이’라며 얕잡아 불렀다.
희대의 ‘마약왕’이라 불리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자가 격변하는 정세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격언을 무시한 대가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다.
한때는 무시무시 하다는 검사의 뺨을 올려칠 정도로 잘 나가던 마약왕의 몰락은 순식간이었고, 그의 권세 역시 짧았다.
그리고, 왕을 잃은 연간 500억짜리 마약시장은 무주공산이 되었고, 뽕쟁이라 불리던 주먹패들은 물론, 본래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먹이라 폼을 잡던 전국의 주먹패들까지 무주공산이 된 그 마약시장을 잡기 위해 일반인들이 모르는 어둠속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1980년대 중순.
“아야, 불 있냐?”
목포, 신안, 여수, 해남을 정복한 김장원이 자신의 친구이자 전라도 2대 주먹 조이현에게 손을 내민다.
“아따 징그랍다. 징그라워, 쯧.”
항상 라이터를 챙기지 않는 김장원에게 핀잔을 늘어 놓고는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건네는 조이현.
“끝나고 뭐, 바쁜 일 있냐잉?”
불을 붙이며 묻는 김장원의 질문에 조이현은 고개를 젓는다.
“일은 씨벌, 여그 끝나면 몸이 성하기는 하겄냐?”
“콜록, 콜록. 아따 시벌놈 웃기지 말어야? 담배 태울 때 웃겨불믄 반칙이제.”
김장원과 조이현이 사이좋게 담배를 물고는 맞은편에 보이는 작은 횟집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야, 근디 말이여.”
“잉, 뭐.”
“벌교는 꼬막 아니냐?”
“글제? 암만해도 꼬막이 유명허제?”
“근디 쟈들은 왜 횟집에서 모이고 지랄일까잉?”
“나가 그것을 알믄, 무당을 혔제 좃박았다고 건달을 하고 있을까잉.”
“잉, 그건 느 말이 맞다잉.”
김장원이 킬킬 웃으며 다태운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카아악’ 영혼까지 끌어모아 가래침을 퉤 뱉는다.
조이현은 더럽다는듯 곁눈질로 인상을 찡그려 보이고는 몸이라도 풀려는 듯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고, 김장원도 질세라 허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몸을 예열한다.
“끝나고 사우나나 허자?”
“아따 여그 끝나고 사우나? 따가워 뒤져불라 그러냐? 난 싫다.”
“아따, 느 요즘 겁나게 빼분다잉? 그랴도 나가 우리 이리파 대가린디.”
조이현이 찌릿 김장원을 째려보며 품에서 커다란 사시미를 꺼냈다.
“워메 눈깔 봐라잉, 꼭~ 고것을 내 배때기를 쑤실라고 꺼내는 것 같다잉.”
“흰 소리 말고, 시작 허자고잉.”
쩝 하고 입맛을 다신 김장원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조이현이 앞장서서 걷더니 작은 횟집의 문을 벌컥 열었다.
짤랑.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조이현이 다시 문을 바람소리가 나도록 닫고는 김장원을 바라본다.
“오늘은 그냥 가자잉.”
“잉? 시방 뭔 잡소리여?”
“아따 존나게 많에.”
“뭐시가?”
“덩치들이 존나게 많다니께!”
“크크크큭, 하하하하하.”
김장원이 횟집 앞 포구가 떠나가도록 크게 웃더니 조이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아따 느, 요새 유머가 많이 늘었다잉.”
“워메 복장 터진거··· 나가 농담 하는 것 같냐잉?”
김장원의 눈이 사이하게 빛난다.
“아야, 친구야.”
“징그랍게 부르고 지럴이냐잉.”
“느하고 나. 우리 둘이 전라도 먹어부는 거여, 그란디 쪼까 숫자가 많다고 쪼라불믄 되겄냐?”
“전라도를 넘어서 전국, 그것도 모자라서 세계를 먹자고 지껄이는 것은 너 아니냐?”
“맞제?”
“그라믄 사릴줄도 알아야제.”
“아따, 깡패 가오가 있지 여기서 사리고 저기서 사리믄 그게 짜바리랑 다를게 뭐시겠냐?”
“니미, 그랴서 허겠다고?”
“잔말 말고, 이 형아만 믿어야?”
“염병하고 있네.”
킬킬 웃음을 흘리던 김장원이 벌컥 횟집의 문을 열었다.
딸랑!
격한 방울 소리와 함께 몸을 밀어 넣은 김장원.
“워따 시벌, 참말이었네잉.”
사전에 알아본 정보와는 다르게 벌교의 모든 주먹패가 이 작은 횟집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것 같은 광경.
이미 김장원이 품에서 꺼낸 사시미를 본 건달들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자의 연장을 꺼낸다.
이제는 뒤로 물러서기도 늦은 상황이라는 뜻.
딸랑!
다시 문이 열리며 조이현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온다.
“나가 너땀시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크큭, 시벌··· 사우나는 틀렸네.”
“아따 몇 번을 말 허냐? 존나게 따가불거라고.”
김장원이 턱, 조이현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쪽팔리게 칼침 맞고 그라지 말어라잉.”
“너나 잘혀, 이리파 대가리 자리 뺐기기 싫으믄.”
“오야, 드가자!”
***
7년뒤 1990년대 초반.
김장원과 조이현의 이리파는 전국구 조직이 되었고, 적어도 ‘마약’이라는 틀 안에서는 감히 그들의 명령을 어길 존재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탁.
“아따 시벌놈,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간댕이가 밴댕이가 되부렀냐잉!”
조이현이 답답하다는 듯 대리석이 곱게 빛나는 커다란 테이블을 내려쳤다.
테이블을 비롯해 김장원과 조이현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는 장소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멋들어지게 핏이 딱 떨어지는 수트 역시, 그들이 크게 성공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아따, 암만해도 필리핀은 아니라니께? 고것을 넘어서 뭐야? 베트남? 태국? 이것은 문제가 심각허다 안 허냐, 느 말대로 일본 들어가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깨저부렀냐? 우리 지갑만 생각 할 게 아니라, 우리 아래 식구덜도 생각 혀 줘야제.”
김장원의 일장 연설에 조이현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 쾅 두들겼다.
“이 시벌놈이, 열심히 펜대 잡겠다고 설치는 놈 가슴에 불을 질러놓고, 인제 와서 세계 무대는 뒤로 빼야?”
“아니 고것이 아니고, 아따 느 요새 왜 이렇게 욕심이 많에졌냐잉··· 필리핀이고 태국이고 그런 곳은 아그들이 총을 들고 있다 안 허냐.”
“둘이서 벌교 때려잡던 것 생각 안 나냐잉? 우리 피 땀으로 일군 조직이여, 그란디 아그들 몇 상할 것 걱정해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걷어 차야?”
“천, 뭐? 아따 요즘 다시 공부 시작혔냐?”
“헛소리 말고!”
버럭 소리를 조이현의 목청에 김장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후빈다.
“필리핀 그것은 확실 한 거여?”
김장원이 흔들리는 것 같자 조이현이 눈을 빛낸다.
“아따 확실 허당께, 나가 언제 없는 소리 하는 것 봤냐?”
“그랑게 느 말은, 한국에서 내가 해먹고, 느가 필리핀에서 해묵자?”
“일단은 그러자는 것이제, 그라다가 태국은 우리가 같이 걸치고, 캄보디아도 나쁘지 않아야?”
“아따··· 아무리 세상이 글로발인지 지랄인지 혀도, 한국 뽕이 그런데서도 먹힌다고?”
“월래? 이 시벌놈이 아직도 못 믿고 지럴이네잉.”
“아따 고것이 아니라, 느도 제대로 보고 온 것은 아닐 것 아녀.”
“아니라니께! 아따, 느 당장 뱅기 표 끈어 부러야, 나가 보여줄라니까.”
입맛을 다시며 한참을 고민하던 김장원.
이내 고민을 끝냈는지 조이현을 힐끗 바라본다.
“아따··· 내가 느 말이라 움직이는 거여, 알제? 요즘 영감쟁이들 나 쑤실려고 아주 눈에 불을 켜야?”
세상에 새로운 마약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김장원이었다.
조이현은 김장원의 그늘에 가려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하고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
그렇기에 여기저기 원재료 수입을 위해 해외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해외에서 많은 정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김장원과 조이현이 하는 마약 사업은, 해외에서 원재료를 가져오고, 그 원재료를 한국의 기술자들이 가공시켜서 순도 높고 새로운 배합법으로 만든 마약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의 효능등이 달랐고 그 결과로 제법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물론, 약을 공급하는 공급망 자체를 김장원이 꽉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고 있으니 김장원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위해 흘린 피 역시 적지 않고, 그것에 대한 대가라고 부르기는 애매하면서도 애매하지 않은 그런 정도였다.
“알제! 나가 그것도 모를까? 혀서, 사실은 느가 필리핀을 담당허고, 나가 한국을 담당하는게 워쩔까 싶기도 헌디.”
김장원이 술잔에서 눈을 떼 슬쩍 이맛살을 찌푸리며 조이현을 바라본다.
“고것은 과 허다잉.”
“그라니께 나가 필리핀 담당허겠다 안 허냐, 암만혀도 장원이 네가 내 진심을 곡에 할까봐 안 그라냐.”
“아따, 또 그라고 말하면 나가 솔찮이 그라고잉.”
“되았어, 나가 너를 이해허고, 네가 나를 이해허는 것을 아니께.”
김장원이 픽 웃으면서 부드럽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오야, 그리 허자잉.”
전화기를 들어올린 김장원이 조이현을 바라보며 수화기에 말했다.
“잉, 필리핀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빠스트 클라스로 두 장, 예약 혀. 잉······”
그리고 그런 김장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조이현이었다.
***
필리핀.
모기떼가 득시글 거리는 정글을 뚫고, 뚫고.
튼튼한 지프 차량이 걱정 될 정도를 정글 길을 달리고 또 달리자 김장원은 슬슬 조이현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따, 유통비가 더 나오겄다잉?”
“흐흐, 그라믄 원재료 밭이 뭐 가까이 있을 줄 알았냐잉? 여그 경찰들도 다 썩어부렀다고 허지만 그랴도 경찰인데, 주변에 주민들이 보이는데다가 마약밭을 지어 놓으면 눈가리고 아웅 허기는 힘들제?”
제법 설득력 있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김장원.
곧, 계속해서 정글이 이어질 것만 같던 그곳에서 커다란 나무 사이를 지나자 넓다란 평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경운기와 같은 농기계들과 함께 바쁘게 농사를 짓고 있는 필리핀인들이 보였다.
“보이냐?”
“워메, 워메···”
김장원은 진심으로 놀랐다.
조이현이 헛소리를 한 건 아닌지, 정말 시야 끝부터 끝까지 잔뜩 마약의 원료가 될 재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자, 저짝으로 가자, 저그 나가 여그 주인헌티 말해 놨으니께.”
“잉, 어여 가보자잉.”
바쁘게 걸음을 옮겨 도착한 허름한 농막.
“여그여?”
픽 웃은 조이현이 바닥의 어느곳에 특이한 노크를 하자, 전기음이 들리며 바닥이 열렸다.
“워따워따, 글로발 글로발 하더니 스케일이 달라분다잉.”
“크큭, 드가자잉.”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깥의 농촌과 같은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의 분위기가 펼쳐졌다.
휘왕찬란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소리, 그리고 거의 헐 벗은 여인들.
“여그 놀러 오는 놈들이 전부다 필리핀 고위관료들 자식들이라 그라데?”
“맞냐잉.”
이어서 여러 필리핀인들을 소개시켜주는 조이현.
그는 마치 이곳이 익숙하다는 듯, 거의 제집 안방처럼 돌아다니며 한명, 한명에게 짧은 영어로 김장원을 소개시켜주고 있었다.
김장원 역시, 해외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기에 영어는 물론 일어, 러시아어에도 일가견이 있는 편.
한 잔, 두 잔.
“오빠 마셔! 마시써!”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연신 김장원에게 술을 권하는 여인.
미모가 어찌나 대단한지 김장원은 홀라당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이현은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며 김장원에게 서빙될 술잔에 하얀색 가루를 지속적으로 섞고 있었다.
“아따 외국 술이라 그랑가, 무진장 취해분다잉?”
“그려? 아따, 코끼리가 처묵어도 뒤질만큼 넣었는데, 너도 징허다잉.”
“잉? 그것이 뭔 소리여?”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장원이 휘청 거리며 흐려지는 시야를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아야··· 나가 언제까지 네 밑구녕이나 닦아야겄냐? 인자 나한테 맡기드라고잉.”
< 454. 외전 8화 김장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