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1. 외전 5화, 개천에서 용이 꿈틀거린다. >
외전 5화. 개천에서 용이 꿈틀 거린다.
황제의 집무실.
정확히 나의 집무실에 나의 최측근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내민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가 면목 없다는 얼굴이 되어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천국이 건국 된지 이제 1년이라도 지났습니까?”
“······”
“겨우 1년도 안 되서 벌써 새로운 기득권이 생겨요? 감히 황제인 짐의 아래로 다른 권력은 없습니다. 이해했습니까?”
“예! 폐하!”
“명단에 올라있는 사람들 전부 잡아들이세요.”
측근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호석이 곁에 서서는 묻는다.
“폐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것이 말입니까?”
“공명정대함도 좋으나··· 많은 사람을 잃을수도 있는 결과가 아닐지요.”
“그러니까 지금 혈연, 지연, 학연을 끊어내면 나에게 반발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뜻입니까?”
“더 정확하게는 곁에서 충성을 다 할 인재들이 줄어든다는 얘기였습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 썩어빠진 관례따위가 나라를 좀먹게 만들고, 젊은 사람들의 꿈을 앗아가는 법이다.
“그런 놈들은 인재가 아닙니다. 나라를 좀 먹는 좀벌레지요.”
“그리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호석 역시, 혈연을 통해 우리 할아버지와 이어졌을테다. 할아버지의 오랜 왼팔, 혹은 오른팔이었던 그의 부친 덕분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에게 일을 배우고 곁에 서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의 호석이고.
“삼촌.”
“황공합니다.”
“아뇨, 저는 삼촌이 할아버지 곁에 설 수 있었던것은 결코 혈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예, 할아버지의 눈에 자주 띄신것은 타고난 혈육관계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할아버지 곁에 서 있을 수 있고, 이제는 이 황실의, 천국의 주요 대신이 되신 데에는 삼촌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부끄러운지 눈을 살살 피하는 호석.
그러나 진심이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충직한 사람이 아니던가, 단 한번도 내가 그런 명령을 내려본 적 없지만 만약 호석에게 ‘가족’을 죽이라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아마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고민할테다.
그러고는 끝내 자신의 가족들을 선택할테다. 당연히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를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의 가족들의 안전만 내가 확실하게 챙겨줄 수 있다면? 호석은 그 어떠한 불구덩이라도 나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내다 바칠 것이다.
“언젠가 짐이 말한 적이 있던가?”
“어떤 말씀을 말씀하십니까?”
“짐은, 이 세상에 기득권이 사라졌으면 한다고 했던 말.”
“예, 기억납니다. 이건과 같은 쓰레기들을 치우고자 하셨습니다.”
“헌제 이 나라 내 땅에 새로운 기득권이 꿈틀대는 군, 나는 그것을 용서 할 생각이 없어.”
“이해했습니다 폐하.”
“과한 걱정음 삼가하라. 훗날 오늘의 선택은 분명 역사에 남을테니까.”
“예, 폐하.”
***
-연일 붉어지는 황실 공무원 채용비리! 주체는 중국계?
-중국계뿐이 아니다. 일본계, 한국계, 러시아계까지. 혈연, 지연, 학연. 전 세계적인 문제에 천국마저 속수무책?
-시황제 천우진 폐하께서 직접 명 하셨다! 채용비리 관련자들 모조리 색출! 색출 작업에 나서는 대신들!
-1차 합격자 40만명 중, 약 8천여명이 채용비리에 얽혔다. 1차 시험지 유출에 대한 신빙성 증가.
따로 언론은 제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연일 언론은 시끄럽게 떠드렀다. 천국의 폐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언론들은 신나게 이번 채용비리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놀랍게도, 그 특유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중국계 여인만 그런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숫자의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의 신하들의 인사청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SKY그룹의 직원들 역시, 이제는 반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다름 아닌 SKY의 주인이 천국의 황제이기 때문이었다.
“난리들이더구나.”
편안한 식사자리.
오손도손 증손들과 모여서 수저를 뜨시던 할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국을 퍼 올리던 손을 멈추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예, 그렇네요.”
“너무 공개적으로 일을 벌인 게 아니더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해도 될 일이었어, 그런데 2억명 지원자의 신상정보를 전부다 샅샅이 조사하겠다니, 세상이 시끄럽지 않고 버티겠더냐.”
“필요한 일입니다.”
“필요한 일이다?”
“예.”
할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나는 열심히 고사리 손으로 국을 퍼 반은 흘리고, 반은 입에 넣고 있는 태양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태양아.”
“웅, 아빠 왜?”
“이번에 태양이 유치원 학예회에서 1등 했지?”
“응! 1등했어! 아빠가 선물도 사줬잖아.”
“그래, 그런데 태양이가 1등한 게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거야, 아니면 아빠 때문이야?”
“당연히 내가 열심히 해서 그렇지!”
“그래?”
“응! 앞으로 태양이는 1등 못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음··· 그건 싫은데···”
“그럼 태양이 대신 1등한 노력한 친구 1등을 뺏어올거야?”
“그건 더 싫은데···”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다음에는 내가 더 노력해서 다시 1등 할거야!”
“정말?”
“응!”
나는 슬쩍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다시 태양이를 바라보았다.
“태양아 그럼 만약에, 아빠가 태양이 몰래 태양이 1등 시켜달라고 유치원 선생님한테 부탁하면 어떨것 같아?”
“그건 너무 비겁해!”
“하지만 태양이는 모르잖아?”
“움··· 움··· 그치만 나는 아빠가 안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
“응, 아빠가 항상 얘기했잖아?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태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도 아는 것을, 천국의 백성들이 모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할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고개를 숙여 태양이와 눈높이를 맞추신다.
“우리 똥생이 누구한테 배워서 이렇게 똑똑할까? 이 할애비한테 배운 거 맞지?”
“아닌데, 아빠한테 배웠는데.”
“네 아빠를 할애비가 가르쳤으니, 우리 똥생이도 할애비한테 배운거나 마찬가지지?”
“으음, 그런가?”
이윽고 옆에 앉은 태양이와 마구 볼을 비비는 할아버지.
“아악 따가워, 할부지 하지마, 하지마.”
눈 가리고 아웅.
그런 것은 시대 착오적인 정치질에 불과했다.
잘못된 것은 묶히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이라는 놈은 정말 이상한 놈이라서 묶은지가 김치찌개가 되어 더욱 감칠맛을 내듯, 잘못된 것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무서워 지는 법이다. 그렇게 곪아가다 어느순간 터졌을 때.
그때는 항상 늦는 법이다.
건국초기.
아직은 많은 것들이 자리잡지 않은 시점.
나는 지금 확실할게 천국 헌법 제 1조 1항을 제대로 시행 할 생각이다.
***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
8천여명의 채용비리 관계자들과 얽히고 섥힌 관계자들까지 총 3만여명이 포승줄에 묶여 무릎을 꿇고 앉은 파란색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가죠.”
“예, 폐하.”
호석이 신호를 보내자 내 경호를 담당하는 황실 근위대가 동시에 소리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천국의 예법에 맞게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대로 이마를 땅에대고 절을 올린다.
저벅저벅 내게 정수리를 보이는 사람들을 지나 단상에 올랐다.
“고개를 들라.”
허락이 떨어지자 하나 둘 허리를 세우는 사람들.
3만 여명이 무릎을 꿇고 앉은 장관, 그리고 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파들. 그들 모두와 하나하나 눈을 맞출순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나와 눈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는 등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 천국의 민심이. 백성들의 마음이, 여론이 어떤지 대충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고 황실을 물어 뜯고, 행정부를 물어 뜯고 있습니다.”
곳곳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던 언론인들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시선을 피한다.
“우리 천국은 언론에게 자유를 부여 한 바, 그들은 백성들의 알 권리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 굳이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얼굴을 붉혔던 언론인들이 다시금 뿌듯한 표정이 되어 어깨를 펴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언론을 탄압하고 억제하면 좋지 못하다.
물론 언론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면 얼마든, 황제의 칼이 언론사의 모가지를 벨 것이다. 그러나 현 천국의 언론은 이미 가지치기를 당한 상태, 썩어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제법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뜻.
그래서 난 굳이 언론들에게 칼을 빼들고 있지 않았다. 팩트만 전달해도 지지율이 백성들의 민심이 내게 닿게 만들 자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짐의 앞에 많은 죄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주변을 가득 채운 인파의 눈빛이 날카롭게 3만의 죄인에게 향한다.
“이들은 감히, 천국 헌법 1조 1항을 어기고 천국에 기득권을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옳소!”
“옳습니다!”
“천국 헌법 제 1조 1항! 황제의 아래, 만백성이 평등하다!”
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시끄럽기에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감히 천국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을 만들려 했던 이들을 짐은 용서 할 수 없다! 대신들은 들어라!”
““예! 폐하!””
“이들의 가산을 몰수하고, 3대에 이르러 국가에 공헌할 자격을 박탈한다.”
“아아아!”
곳곳의 죄수들이 눈물을 흘렸다.
내 말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국가에 공헌할 수 없다는 얘기는 그들은 3대에 거쳐 다시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사기업에서만 일을해야 하는데, 과연 죄인딱지를 붙이고 있는 이들을 써줄 기업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한, 직접적으로 채용비리에 가담한 자들의 경우 노역 30년 형을 내린다.”
““예! 폐하!””
“백성들은 들으라!”
이 자리에 모인 백성들이 어찌 천국의 만 백성이겠는가. 그러나 TV를 통해 이 장면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을테니, 나는 정면의 언론사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전 세계에 학연, 지연, 혈연의 패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바, 짐은 감히 천국에서도 이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 생각이 없다. 이미 천국에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깊게 자리매김 했으니 알게 모르게 눈에 보이는 계급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알고 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것들을 내가 구태여 꼽고 있었다.
“그러나 천국은, 그리고 짐은. 백성들에게 더 나은 삶, 더 나은 기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주고싶었다. 자본주의 틀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나 그 경쟁이 날 때부터 불공평 하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백성들의 노력이 하늘에 닿아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옳습니다!”
“짐이 선언 하노라! 우리 천국은 황제의 아래 만백성이 평등하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세상이리라! 노력하라, 쟁취하라! 지금의 대신들의 자리에 ‘명가의 후손’이라는 말이 없도록, 개천용들은 노력하고 세상에 나오라, 짐이 공평하게 그대들의 성과를 평가하겠노라.”
광화문 광장에 함성이 울려퍼졌다.
공개적으로 공언 한 바.
나는 내 말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감히 천국에! 기득권은 없노라 단언한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 451. 외전 5화, 개천에서 용이 꿈틀거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