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0, 외전 4화. 황제아래 만인은 평등하다. >
외전 4화, 황제아래 만인이 평등하다.
카타르 왕국의 전 국왕이 성대한 연회 뒤에 무호흡증으로 자연사 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던 사건이 3개월쯤 지났을 시점.
전 세계가 천국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여러 신료들과 상의해 드디어, 인재등용 시험을 발표하게 되었고, 오늘이 그 날이 되었다.
천국 인구 약 18억명.
그 안에 인재들이 어찌 한둘 뿐이겠는가? 중국 공산당에게 압제 받던 깨인 이들, 푸틴의 압제에 버티고 버티며 불곰국화 되었던 인재들.
고리타분한 사내 문화와 직급의 수직적 관계로 인한 폐해에 뜻을 펼쳐보지 못한 일본의 인재들.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익숙하고 피를 깎는 고통을 통해 개천 용이 되고자 노력했던 한국의 인재들.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황실 공무원 선발 시험에 응시하니 그 수가 물경 2억명이 넘었더랬다.
“경쟁률이 얼마라고요?”
이번 천국 인재 등용문에서 선발 될 인재들은 총 10만명.
헌데 무려 2억명의 지원자가 몰리니 그 시험과정부터 시작해서 들어가는 비용이나 준비 과정이 터무니 없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1차를 뚫고 올라온 40만명의 면접자가 대기중에 있습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는 숫자였다.
그래도 2억명을 거르고 걸러 40만명을 남겼다 하니, 그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지 싶었다.
현 천국의 국력을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인구는 국력이다.
과거, 그러니까 정확히 전삶의 대한민국은 갈수록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고,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 즘에는 저출산 문제로 더 이상 일 할 젊은이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심각한 인구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도 했었다.
헌데 천국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흡수하기도 했고, 러시아라는 거대안 지하자원 덩어리를 흡수하기도 했으니 부는 부대로 쌓고있고, 인구는 인구대로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러 자치구를 통한 1차 산업 식량 산업등은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본래 1차 산업기반이 많았던 중국과 러시아 덕분에 땅은 기름지고 양식은 풍부한 형태가 되고 있었다.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있을 정도.
그러니 황실 공무원.
천국의 행정을 담당할 인원이 많아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40만명이라. 다행이군요, 면접 과정은 결정되었습니까?”
“철저한 블라인드 면접을 외무대신께서 요청하셨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외무대신이 된 찰리 박은 선진 문화를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세상이 블라인드 면접에 대하여 잘 모를텐데, 벌써부터 그런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찰리 박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대신들의 얼굴이 너무 알려졌기에, 그런 우리의 얼굴을 보고자 많은 인파가 한 곳에 몰릴 수 있다 우려하였습니다.”
40만명이라는 인원을 면접해야 하는 만큼, 정말 많은 공무원들이 달려들어야 할테다.
그런데 게 중에 유명한 공무원들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천국의 수뇌부들이 그렇다는 얘기.
어쩔 수 없이 자주 언론에 노출되던 나의 심복들의 얼굴은 너무나 유명하니 자유롭게 면접실을 고르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던 대신들이 면접자에 대한 것도 블라인드로 진행하고, 면접관들에 대해서도 블라인드로 진행 할 모양이다.
나의 심복들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면접실에 많은 인파가 몰릴거라는 예상.
그것은 단순한 억측이 아니었다.
당연히 나의 심복들의 부하가 된다면 그 인물은 성장가도를 달릴 수 밖에 없을테다. 기회가 남들보다 많이 돌아가는 이치.
“좋은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 진행하고··· 면접은 내일부터죠?”
“예, 폐하.”
“나도 면접관으로 참석 할 예정이니 그리 아세요.”
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굳이 그런 일은 저희로 충분하다 사료됩니다. 폐하.”
호석의 말에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 대신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심심해서 그렇습니다. 무료해요··· 요즘 너무 무료합니다.”
호석이 씁쓸하게 웃는다.
천국이 건국되고 겨우 6개월만에, 세상은 태평성대라 해도 좋을 만큼 평화로웠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SKY라는 압도적이다 못해 초월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든든하게 등을 받쳐주는 천국은 그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일이 없습니다. 일이.”
일이 없었다.
할 일이.
매일 같이 놀고 먹는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쯤 지나니 좀이 쑤셨다. 지지고 볶고 여기서 지지고, 저기서 볶고, 가끔은 시뻘건 피도 좀 보고 그래야 되는데, 이놈에 태평성대가 백성들은 열광을 하는데 나는 좀 그랬다. 심심하거든.
“4차대전이라도 일으킬까 싶다가도··· 미친 정복군주도 아니고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면접관이라도 해볼 요량입니다.”
대신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간다.
4차대전이라는 나의 발언이 행여나 참이 될까 우려가 되는 모양.
참고로 나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왔으니 그들의 우려가 단순한 우려가 아닐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4차대전, 정복전쟁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전 세계는, 그리고 지구는 천국의 영향 아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영향 아래에 있다와 천국의 것이다는 명백하게 다른 말이기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님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대신들 역시 알고 있었다.
나의 장인어른이 미국의 대통령이지만 내가 세계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는 순간 장인어른 역시 어쩔 수 없이 내게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정세란 것이 그랬다.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면 타국가들은 깨겡 거리겠으나, 현재는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까지는 아니었다.
천국 역시 적의 핵 공격에 대하여 완전한 방어태세는 불가능하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퍽이나 사극같은 대사가 대전에 울려퍼지고, 모두의 이목이 김장원 수석 경비대장에게 쏠렸다.
실실 웃는 김장원이, 평소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워따··· 한 번 해보고 잡아서 혔는디··· 지가 쪼까, 눈치가 없었지요?”
곳곳에서 피식 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중한 자리이긴 하나 큰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니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가벼워도 좋았다. 나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4차대전을 얘기하지 않았는가.
김장원스러웠다 생각하며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맞죠, 4차대전은 통촉해야죠, 일어나면 공멸이니까.”
“워츠케 지가 샤샥, 들어가가지고 서걱, 모가지를 따불까요잉?”
“하하, 아닙니다. 김 수석은 일단 자리를 지키고 계세요.”
“흐흐, 알겄습니다. 언제라도 황명만 내려 주십쇼, 나가 그냥 피바다를 만들어 불라니까.”
아마 그는 진짜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입 밖으로 꺼낸 말 처럼, 피바다를 만들어 놓을테다.
어쨌든, 이런 위험한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의 내가 무료하다는 뜻이고, 면접이라는 신선한 자리에 면접관으로 참석하고 싶은 이유였다.
“폐하께서 천국의 공무원 선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겠다 하니,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철웅이 눈치를 챘는지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말을 애둘러 표현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시는걸로?”
“예, 폐하!”
“예! 폐하!”
***
면접 2일차.
첫날은 제법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총 4일에 거쳐서 진행되는 40만명의 면접. 신선하고 천국의 동냥이 될 인재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으나, 죄다 스펙 좋고, 능력 좋고, 심지어 인성도 좋다고 평가가 나오니 슬슬 재미가 없던 찰나였다.
“음?”
면접자들은 단순한 거울로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유리로 보이는 그곳에, 한 면접자가 잔뜩 거만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호오.”
나는 막 무료해지던 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제법 사는 집인지 좋은 정장을 차려입은 여인 그녀는 뭔데 저렇게 거만한 얼굴일까 싶었다.
나잇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젊은 청년, 그러나 어째서 나도 바깥에 내보이지 않는 거만함을 가지고 있을까?
“면접자들 자기소개 시작하겠습니다.”
면접 진행을 돕는 공무원의 말에 면접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왼쪽부터 천천히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앞에 둘의 자기소개는 여타 다른 인재들의 자기소개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어서 세번째.
드디어 눈빛이 거만했던 그 여자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천자께서 초기에 설립한 SKY그룹의 자동차사에 재직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어렸을적부터 SKY그룹의 일처리 방식, 정확히는 천자께서 바라는 일처리 방식에 대하여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또한, 천국이 건국되고, 내무부 대소사를 처리하는 내무부 산하의 황실 공무원 중에 친인척이 많으며···”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잔뜩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가진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대가 어느때인데 혈연을 앞에 내세우는가?
나는 과연 저 여자가 2억명의 지원자중 40만명에 뽑힐 정도로 대단한 성적을 거뒀는지가 궁금해졌다.
휙 고개를 돌려 호석에게 말했다.
“저여자 지원서, 1차 시험지 가져오세요, 2차 화상면접관들 명단 뽑아 오시고, 가족관계, 친인척관계 다 가져오세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폐하.”
호석이 바르게 면접장을 벗어나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후진다오를 바라보았다.
후진다오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그도 대충은 알고 있는 모양,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오랜 폐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혈연의 득세.
전 세계에 개천용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저 여자는 알아야 할 게 있었다.
“후진다오.”
“예, 천자시어.”
“천국 헌법 제 1조, 1항. 읊어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후진다오가 외쳤다.
“황제의 아래, 만인이 평등하다.”
“정확하게 알고 있군.”
“면목없습니다 천자시어.”
“이제 막 출범하기 시작한 천국의 행정공무원들이 저런 적폐가 가능하다면 나는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헌법을 어긴 놈들에게 자비는 없을 테니까.”
“예! 제대로 조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진다오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데 그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스스로는 떳떳한 모양.
하긴, 나에게 깊게 감화된 후진다오가 제 욕심을 뒤에서 펼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소개를 끝내고 면접관들이 아무런 질문도 없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한족 여인을 보았다.
톡.
마이크의 버튼을 켜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은 황실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친인척들과 SKY그룹에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등으로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다?”
“그렇습니다.”
“대학은 나왔나?”
“북경대를 나왔습니다.”
“오, 공부를 잘 했나보지?”
“못하진 않았습니다.”
말끝마나 본인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선민사상이 느껴지는 것 같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무래도 천국은 전문가들이 외치던 것 처럼, 정말 내실을 제대로 다져놔야 할 시기인 모양이다.
“그대는, 천국 헌법 제1조, 1항을 아는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인.
“천국 헌법 제 1조 1항이, 이번 1차 시험의 첫번째 문제였는데 모른다고?”
“아마, 그 문제를 틀렸던 것 같습니다.”
“내가 직접 얘기해주지.”
고개를 돌려 철웅을 바라보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버튼을 하나 누른다.
원래는 면접자들이 보고 있는 유리는 거울이어야 하지만 저 버튼을 누르면 말 그대로 유리창으로 변해 우리쪽이 보이게 만드는 장치였다.
탁.
“헙.”
면접자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면접관들을 바라본다.
게 중, 모두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폐하께 예를 갖추라!”
모든 제국민은 내게 예의를 갖춰야 했다.
그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예의를 갖췄다. 모두가 절을 올리지만 천국 이전의 국적에 따라 그들의 절은 조금씩 다른 모습이었다.
감히 날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들에게 입을 열었따.
“천국헌법 제 1조 1항! 황제의 아래로 만인은 평등하다!”
철컥.
호석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내밀고 있는 호석의 표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당당히 자신의 혈연을 과시하던 여자의 시험결과에는 분명 부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지원자 전수조사 실시하세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호석이 푹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폐하!”
“관련자들 색출하고··· 빠짐없이 보고 올리도록.”
나는 싸늘하게 정적이 내려 앉은 면접실을 박차고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기득권이 싫어서, 다 부숴버리고 싶어서 만든 천국에, 새로운 기득권이 자리 잡는 꼬라지는 눈 뜨고 볼 순 없다.
헌법에 명시 된 것 처럼.
나의 제국, 내 나라에는 나의 발 아래 모두가 평등해야 옳았다.
< 450, 외전 4화. 황제아래 만인은 평등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