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2화. >
험머 내부가 분주하게 변했다.
호석 역시 긴장되는지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지도 모르고 큰 목소리로 여기저기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추와아아아악.
그 사이에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은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설명으로는 길지만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몇번 차야!"
"3번차 2번차입니다!"
"제기랄! 플레어 준비해!"
"로켓 도착 3초전!"
"플레어!"
특수 제작된 험머차량.
이 차량에 들어간 돈 만 해도 '헉'소리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SKY그룹의 오너인 내게는 그렇게까지 과한 금액인지는 모르겠다.
돈 따위보다는 당연이 목숨이 중한 법.
이런 일에 투자를 아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액수가 지금 저 대전차로켓이라는 놈을 방어 해 내느냐 아니냐란 생사의 갈림길을 갈라 놓을테다.
퓨슈슈슉.
무게가 늘어나는 걸 감안해 본래 8인승이어야 할 험머 차량에 4인만 타 있었다.
나머지 4인의 무게 만큼 각종 장비들을 장착했다는 뜻.
콰과광!
바깥에 폭발음이 요란하고 차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언뜻 보기에 양손으로 운전대를 꽉 쥐고 있는 대원의 손목 힘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
"2차 공격 들어옵니다!"
"연막뿌려!"
차량의 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좌우 차창 밖으로 뿌연 안개같은 것이 흩날린다. 색깔까지 요란해서 보라색에 가까운 연기가 넘실넘실 주변으로 흩뿌려진다.
특수한 가스로 열화상 레이더 장비를 피하기 위한 가스였다.
"2차 로켓 우리를 빗겨갑니다!"
"운전에 집중하고! 계획대로 움직인다!"
"예!"
덜컹, 덜컹.
차량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대전차 로켓에 피해가 전혀 없다고 얘기 할 수 없는 상황인 듯 보였다.
"피해상황 보고해!"
"현재까지 아군의 피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에게 지원요청은?"
"아까부터 무전을 받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기나긴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있던 우크라이나.
그 속에 러시아의 인물들이 없었을까? 스파이는 없었을까? 이미 뼛속까지 러시아인 사람들은 없었을까?
지금 무전을 받지 않는 우크라이나 군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굳이 프랑스, 영국, UN, NATO연합군이 우크라이나 군을 후방 배치 시킨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력도 형편없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들을 후방배치 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까지는 우리의 계산상에 있는 일.
"제기랄, SKY 항공우주국 위성사진 실시간으로 요청해!"
"이미 요청 한 상황입니다. 사진 데이터 전송은 오래 걸려서 우선 무전으로 교신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적의 규모는?"
"전방의 일개 중대급 규모 전력 발견! 분대화기 이상 소지했을 확률 높습니다!"
분대화기.
개인 소총과 기관총, 유탄발사기등을 넘어서 RPG-7과 같은 대전차 무기부터 조금더 무거운 81mm무반동 총과 같은 무기들을 일컫는다.
고속 유탄 발사기나 철갑탄으로 무장한 대구경 기관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저 새끼들이 왜 이렇게 깊이 들어와 있는 거야!"
현재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곳은 러시아 기준 우크라이나 한복판을 지나 후방에 인접한 곳이었다.
헌데 이곳에 러시아 군이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건 변명의 소지가 없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첩자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팅티티티티팅.
험머의 외갑에 불꽃이 일어나며 총탄이 박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철갑탄으로 무장한 기관총이 있는 모양.
탱크의 장갑만큼, 혹은 그 이상.
SKY의 모든기술이 집약된 방탄 험머가 다행이 아직까지는 버텨주고 있지만, 언제 철판이 뚫릴지 모르는 일.
벌써부터 험머의 옆구리가 올록볼록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처럼 부풀어 올랐다.
"흑해에 있는 전함에 화력지원 요청해!"
"예!"
지휘를 하고 있는 호석의 목소리는 어느새 갈라질 정도로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레이더 감지! 레이더 감지! 적의 미확인 무기의 레이더에 우리 차량이 노출되었습니다!"
"플레어 얼마나 있어?"
"1회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기랄, 조명탄 따로 준비하고 플레어 대기해, 적의 예상 무기는?"
"대전차 로켓포 이상입니다!"
"인공위성으로 파악한 보고는?"
"건물 내부라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보고입니다!"
"중화기는 아니겠지?"
뭐라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대원.
호석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날 한 번 바라본다.
씨익.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날 바라보는 호석.
"적 공격 감지! 다연발 대전차 로켓으로 추측됩니다!"
"플레어 준비하고, 1호차가 먼저 플레어 터트린다. 순차적으로 플레어 터트리라고 그래!"
"예!"
틱, 뒤퐁~
라이터의 불을 켜고 시가에 불을 붙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이 보였다.
차창을 둘러싼 철갑이 아니라면 더 또렷하겠지만, 아쉽게도 철갑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들로는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마도 저 반짝이는 것들이 대전차 로켓인 듯 싶었다.
"회피기동! 회피기동! 1호차 플레어 뿌리고 회피기동 시작해!"
"우리는 1호차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3호차 알아서 선두에 설 수 있도록!"
다급한 상황.
호석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스읍, 후우."
마셔셔는 안될 독한 연기를 폐부 깊숙히 집어 넣었다. 띵한 머리가 잠시나마 긴장감을 낮춰주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여유롭게 대원들과 호석에게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리는 별 일 없이 도착할 것이다. 반드시."
입술을 앙 다문 호석이 바쁘게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
같은시각.
모스크바 대통령 관저.
허락 없이는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될 대통령 집무실의 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한창 정보총국장과 보좌관에게 보고를 받고 있던 푸틴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집무실로 들어온 노쇄한 장성을 바라본다.
"뭐야!"
"대통령! 정말 미친 겁니까!"
푸틴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철컥'하고는 장전했다.
"이 미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군인의 나이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푸틴.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 암살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푸틴은 모르는 척 오히려 성을 냈다.
장성은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푸틴의 권총에 움찔하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TV에 전원을 켠다.
원래도 뉴스 채널을 보다가 껐는지 TV안에는 상공에서 찍은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하늘 아래, 바쁘게 움직이는 군용차량 3대가 어마어마한 포격과 총격에 노출되는 장면이 어떤 영화의 하이라이트처럼 펼쳐진다.
헬기 위에서 촬영중인지 매우 심하게 떨리는 화면.
"저기서 쓰고 있는 무기들 모두가 러시아제라고!"
장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푸틴도 조금 놀랐다.
설마 자신들의 계획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통해 송출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
"저게 뭐?"
"직접 보시오!"
장성의 말에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 푸틴.
뉴스의 하단, 영어로 된 자막을 결코 읽지 못할 푸틴이 아니었다.
-동북아연맹군 사령관 천우진. 러시아 특수부대에게 암살 공격 받는 중! 놀랍게도 공격 장소는 우크라이나 후방 인근! 벌써 7분째 무방비 상태로 공격에 노출된 천우진사령관. 동북아연맹군 천우진 사령관과 연락두절!
푸틴이 인상을 찌푸리며 권총으로 장성을 겨눈다.
"그래서? 저것 때문에 지휘체계를 무시하나?"
"몽골은 물론 동북아연맹군과 국경을 맞닿은 모든 지역에서 군인들의 진격이 시작 됐소! 당신이 여기서 저 머저리들과 축배를 드는 동안, 러시아 본토에 군인들이 상륙했다고!"
이건 조금 놀라운 소식인지 푸틴이 반응을 보였다.
"뭐?"
푸틴의 표정따위는 신경쓰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다시 TV를 가리키는 장성.
푸틴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다시 TV로 옮겨진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SKY항공우주국의 화면이 떠오른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발빠른 움직임이었다.
-SKY항공우주국 전술핵 장착한 로켓 발사 준비 돌입. SKY항공우주국장 ‘사전에 명령대로 준비 할 뿐, 타격위치는 러시아의 주요 군사 시설과 모스크바 대통령 관저.’
-동북아연맹군 부 사령관 천혁수, 후진다오, 고키부리. 모든 전선 끌어 올릴 것 명령, 비겁한 방법의 암살 시도. 전면전 불사 하겠다는 의지 표명.
-미국 록펠러 대통령, 핵 미사일 발사 준비 돌입. 모든 함대 러시아를 향해 출격.
“이 미친 새끼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되길 바랐다는 듯 움직이는 미국과 한국, 중국, 일본.
“당장 성명문 발표 준비 해!”
노쇄한 장성이 묻는다.
“무슨 성명이오?”
“우리는 천우진 암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혀!”
팍 인상을 찌푸리는 장성.
“그걸 누가 믿습니까! 도대체 제정신이오?”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아니라고 밝히라고!”
푸틴의 고함에 보좌관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전 세계 언론사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시간을 늦춰, 시간을 늦추면 돼!”
장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미 러시아 본토에 동북아연맹군이 상륙했소! 그것에 대한 대비가 먼저되야 할 것이오!”
“제기랄, 국경수비대들은 뭘 하고 있는거지? 어째서 밀려?”
“벌써 항복 하거나 전멸했다고!”
푸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솔직히 동북아연맹군이 이렇게 나올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행보는 마치 핵전쟁이 일어나도 상관 없다는 방식의 움직임이 아닌가.
“저 미친놈들이 정말 핵전쟁이 일어나도 상관 없다는 것인가?”
노쇄한 장성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툭툭 두들겼다.
“이미 우리 영해에 미군의 해군이 잔뜩 들어왔소, 러시아 전체가 빙 둘러싸여 있다고! 핵전쟁? 우리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끝날 것이오! 우리의 핵 미사일은 발사 자체도 해볼 수 없을 거라고!”
치밀한 작전.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 천우진의 목숨은, 일종의 미끼였다. 그리고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은 자리 욕심에 이성을 잃은 푸틴이었다.
“우리의 군사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 세계를 상대하는 건 미친짓이라는 걸 왜 모릅니까? 이미 판도는 뒤집혔소, 그러니 순순히 투항하고 항복 합시다.”
노골적으로 항복을 종용하는 장성.
“닥쳐!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이 죽었다면 이 전쟁은 해볼만 해!”
“미친···”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장성.
“우리 러시아 군은 전쟁을 포기하겠소.”
권총을 다시 들어올린 푸틴.
그리고 그 권총의 총구는 늙은 장군을 향해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푸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저 장군은 러시아 연방군의 총 사령관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열렬한 푸틴의 지지자이기도 했던 그가 이렇게 돌아 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늙은 장군의 힘은 대단한 편이었다.
휙 고개를 돌린 푸틴이 정보총국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저 언론사 헬기 카메라로 봤을때는 성공한 것 같은데.”
“아직 보고 받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성공시켜···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반드시, 천우진은 데려가야 해.”
정보총국장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우진을 죽이지 못하면, 반드시 푸틴은 죽는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 제 44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