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1화. >
털썩.
전용기 좌석에 앉으니 날 포근하게 안아주는 게 역시 유부남은 출장을 가는 게 행복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데 호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회장님, 꼭 가셔야겠습니까?"
"에이, 다 결정 해 놓고 왜 그러실까."
"후우... 너무 위험합니다. 전세기를 타켓팅한 적의 전투기가 뜰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본토타격 가는거죠."
입술을 질끈 깨무는 호석.
아무래도 찝찝한 모양이다.
푸틴이 내 목숨을 노리는 게 100퍼센트 확실한 상황, 나를 암살하기 까다로운 위치에서 놈들이 바라는대로 굳이 움직이는 날 만류하고 싶은 모양.
"그리고, 굳이 우크라이나에서 소리소문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전용기를 노리진 않을 겁니다. 호위하는 전투기도 따라 갈 거고요."
"알죠... 압니다."
모든 경호 경로는 정대표의 입과 머리, PMC정보부의 엘리트들이 함께 만들었다.
그러니 100퍼센트 안전한 경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약의 만약, 만에 하나, 십만에 하나, 혹은 천만의 하나라도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싶은 호석.
"걱정하지 마세요, 우크라이나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아프간 거치고 이란 거치고 거기서 또 다시 터키를 거쳐 날아갈 생각이잖아요?"
거의 살인적인 비행 스케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내 비행기가 움직이는 경로는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고, 아무리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모든 국경이 막히고 인공위성 공유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내 비행기를 쫓아오기 힘들 것이다.
거기에 전투기라는 놈은 '연료'라는 최대의 약점이 있으니 전투기를 띄어 날 추적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석은 여러차례 경유와 육로의 이동까지 복잡한 경로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경로를 만들었다.
나와 함께 이동하는 정예 대원들과 호석, 그리고 내가 힘은 들겠지만 완벽하게 안전한 경로라는 뜻.
"과한 걱정은 스트레스입니다. 쉬세요."
"후우... 그래야죠."
날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맞은편 시트에 털썩 앉는 호석.
"오살라케 편하네요."
"큽."
김장원 사장의 말투를 빌려온 호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회장님."
"예, 말씀하세요."
"정말 궁금한게 있는데, 굳이 우크라이나까지 가시면서 판을 깔아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실패 없는 성공가도, 대단하죠. 하지만 위기까지 없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라..."
"정치인들, 성공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는 겁니다. 왜 재벌 2세, 3세들이 욕을 먹겠어요?"
"날 때부터 지휘가 정해져 있어서?"
"그겁니다. 사람들은 자수성가형 재벌에게는 제법 좋은 잣대를 들이 밀어요, 그들의 자서전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음... 그들에게는 스토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 배울 점이 있다고 착각들 하죠,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호석이 씁쓸한 미소를 띄운다.
"그렇습니까..."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고 자신의 부모 역시 초라하게 만드는 불효를 저지르는 꼴이니까요, 낮은 자존감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음, 무슨 말씀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성공, 남들이 선망하는 성공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고생'이라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아! 저 사람 저렇게 고생하더니 저렇게 잘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이 되야 하거든요."
"으음."
"그걸 위해서 나는 내 모가지를 베팅 한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표님을 믿고, 또 내 사람들을 믿기에 할 수 있는 베팅이죠."
호석의 눈이 감동으로 물든다.
거짓 하나 없는 사실만 입 밖으로 내 뱉었으니 그가 감동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몰랐다.
내 목, 내 숨을 호석에게 베팅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그를 신뢰하는 마음이 인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모르죠, 내가 어떤 경호 속에서, 어떤 계산 속에서 전쟁터 한복판에 뛰어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위험한 전쟁터에서 모범을 보인다 착각하겠죠."
"푸틴이 폭격을 퍼붓던, 전투기로 쑥대밭을 만들던... 그런 자극적인 것만 보게 된다는 뜻이군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는 아니지만, 내가 대한민국 역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많은 정치인들과 기득권들은 과거의 얄팍한 '애국심'을 이용해 오랫동안 해 먹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일군 세대.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
그런 것들이 그들의 강점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애국심이 넘쳐 목숨 받쳐 애국한 순국 열사, 의사, 지사, 투사등은 잊혀진 교과서의 작은 글자로 남겨졌을 때,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열사, 의사인양 행세하며 실제로 대접받아야 할 열사, 의사들의 후손들은 방치되어 갔다.
그게 현실이다.
'주목해주세요!'하고 외치고 다니지 않으면 주목해주지 않는, 돈이 없어서 자주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면 결국 역사에서도 잊혀지는.
어쨌든.
그런 놈들이 판을 치고 있어야 할 대한민국은 나의 개입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런 얄팍한 업적으로도 떵떵 거리며 대통령을 해 먹고, 5선, 4선 국회의원을 해 먹으며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갖다바치는 혈세로 떵떵 거리며 즐거운 노후를 보낸다.
헌데, 전쟁 영웅이라면?
실제로 사람들의 두 눈으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는 환경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전쟁 영웅이라면 그 대우가 어떨까?
"포화속에서 살아난 전쟁영웅."
내 말에 호석이 입을 살짝 벌린다.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애국 열사, 의사들에게 동냥하든 몇 푼 건넨 사람들이 5선 의원을 해먹던 세상에서, 실제로 '악의 축'이라 불러도 될 인물과 전쟁을 펼쳐서 이겨낸 사람이라면, 얼마나 해 먹을 수 있을까요?"
호석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회장님."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곧, 그 호칭은 '폐하'따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떤 직책을 맡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폐하'를 보필하겠습니다."
호석의 진담 섞인 농담에 나와 호석은 마주보고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
터키를 지나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거쳐 몰도바로,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육로로 이어지는 길을 가야 우크라이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읏차."
침대에 몸을 눕혔다. 몰도바라는 작은 나라의 수도의 고급호텔.
그러나 내 마음에 든다고는 얘기 할 수 없었다. 몰도바란 나라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게 현실이라면 현실일테니까, 우크라이나와 인접해 있는 몰도바는 사실상 러시아의 영향권인 나라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지금 서유럽 쪽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몰도바란 나라 역시 우크라이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조금씩 탈 러시아에 물들어 가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군은 도착했습니까?"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사령관님, 흑해를 넘어 우크라이나에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고생들 했겠네요."
"주둔지가 완성 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며칠이나 걸릴까요?"
"임시 막사들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상태고, 지휘부 막사 등, 전진기지까지 건설은 제법 오랜시간이 필요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쟁 길지 않습니다."
"예, 사령관님."
"길어야 7일, 그거면 충분해요. 마무리 하는 단계가 오히려 오래걸리겠죠."
"예, 이해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목표 했던 것 처럼, 우리 동북아연맹군은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 전부에서 동시에 진격 할 겁니다."
호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정보부에서 정확한 언질은 없었습니다."
중요한 목적어가 생략된 호석의 보고.
그가 생략한 단어는 '암살'일 터.
"계획대로 진행 합니다."
"지금부터는 러시아 영향권이므로, 우리 정보가 러시아측에 전해졌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차량은 준비 됐죠?"
"예, 사령관님. 어제 항구에서 내렸습니다."
"완벽하네요."
스윽.
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이제 세상이 시끄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굳이 전화기를 꺼낸 것은 전삶과 다르게 이제 내 목숨을 걱정하는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은.
그런 애매한 감정으로 구름폰의 액정을 터치했다.
-허니~
루시의 콧소리가 언제 싫었던 감정이 있었냐는 듯, 행복이 물 밀듯 밀려오게 만든다.
"응, 밥 먹었어?"
-응, 잘 먹고, 잘 쉬고 있어요.
"하하, 그래. 그러면 됐어."
-우크라이나에 도착 한 거야?
"아니, 내일 출발 해."
-아아, 그렇구나. 그럼 내일부터는 연락하기 힘들겠다?
"노력은 해보는데, 아마도."
-으응, 아쉽네.
사소한 것들.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것들, 알지 못해도 상관없는 것들,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한참을 주고 받았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처음 연애를 시작한 새내기 커플들처럼.
-우리 남편, 노력하네?
"티 났어?"
-응, 오랜만이다~ 남편이랑 이렇게 전화 오래 하는 것도.
"그런가."
-이 맛에 중독되서 우리 남편 자주 전쟁터로 보내면 어떻게 하지?
"하하하하, 나 긴장 안 했어, 이상한 농담 안 해도 돼."
-그럼 다행이구.
"며칠은 연락도 힘들겠지만... 한국도 시끄러울거야."
-응, 저번에 설명 했잖아, 나는 우진을 믿어.
"그래, 언론사가 귀찮게 하겠지만 PMC대원들이 알아서 잘 처리 할거야."
-응, 안 보고, 안 듣고, 모르고 그렇게 있을게.
제법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사랑한다 소리, 별 일 없이 돌아간다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는 돌아 갈 거니까.
그 어떤 것 보다 큰것을 얻어서 금의환향을 할 테니까.
***
부르릉.
커다란 군용 험머 차량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한적한 도로를 내달렸다.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 인근이 피폐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때문에 도로에는 차 따위는 볼 수 없었다.
이미 몰도바의 반 이상이 전쟁 영향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 같은 곳을 유유히 가르는 험머 차량은 최대 속도로 무섭게 질주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이 가까워지자 군인들이 우르르 우리 차량 앞을 가로 막았다.
태극기를 닮은 동북아연맹군 깃발을 확인하고는 별 다른 검문 없이 길을 터 주는 우크라이나 군인들.
전방에는 영국, 프랑스, UN군, NATO연합군 등.
우크라이나 군이 아닌 군인들이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고, 우크라이나 군은 후방에서 이런일을 하고 있다는게 아이러니 하다면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전쟁이 끝나면 모가지가 남아나진 않겠네요."
호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양한 동맹군들에게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뜯길 겁니다."
"그렇겠죠, 러시아에 만족할 사람들이 아니니까."
추와아아아아아악.
한창 호석과 대화를 주고 받을 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적의 대전차로켓 공격 감지 되었습니다!"
험머 내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제 44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