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9화. >
전 세계를 강타한 동북아연맹의 전쟁 참전 소식, 그 밖에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개 기업의 수장이 연합군의 통수권자가 된 상황.
모스크바의 푸틴은 정보총국장과 보좌관과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천우진 이 새끼는, 매사가 어떻게 이렇게 딱딱 맞지? 첩자라도 심어 놓은 것인가?"
푸틴의 말에 정보총국장이 화들짝 놀라하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각하!"
"그럼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암살 계획을 세우는 걸 알고 저 자리을 꿰찬거야?"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것입니다."
"하, 우연의 일치다? 모든 일에 타이밍이 딱딱 맞는데?"
정보총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천우진에 대한 암살 계획은 여기 있는 각하와 저, 그리고 보좌관. 이렇게 셋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푸틴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보좌관을 향하자 보좌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성질을 냈다.
"세르게이! 말이 지나쳐!"
정보총국장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푸틴을 바라보았다.
"이 셋중에 첩자가 있을리 없으니 각하, 그저 우연이라고 밖에는..."
푸틴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후우... 도대체가... 그는 신이 돕는가?"
정보총국장도 보좌관도 어처구니 없다는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우진과 뭔가 일이 얽히면 어째서인지 온 세상이 꼭 그를 돕는것만 같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 조차, SKY에게 득이되면 득이 되었지 독이 되지는 않았으니까.
"우리 덕분에 아주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로 진출을 하고, 이어서 터키와 유럽시장까지... 이래서야 우리가 꼭 그 자식을 도운 꼴이 아닌가?"
푸틴의 말에 정보총국장과 보좌관이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정말 공교롭게도 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SKY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우는데 러시아가 일조 한 꼴.
"정말 짜증나는 놈이군."
크게 한숨을 몰아쉰 푸틴이 정보총국장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암살 계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야?"
"상황이 애매하게 변했습니다. 각하."
"애매하다?"
"천우진이 동북아연합군의 사령관이 된 상황... 자칫 암살의 문제는 겉잡을 수 없는 문제로 커질수도 있습니다."
보좌관이 침을 꼴깍 삼킨다.
아마도 암살 실패의 여파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딱, 딱, 딱.
푸틴이 지포라이터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 역시 고심하는 눈치.
"어차피 우리는 뒤가 없지?"
"동북아연합군의 참전소식은... 사실상 우리 연방의 패배나 마찬가지입니다. 각하."
고개를 주억거리는 푸틴.
단순히 SKY의 압도적인 기술력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게 아니었다.
동북아시아 그 어떤 도시도 러시아의 핵무기에는 무방비하게 노출 될 수 밖에 없었다. 공격기술은 있지만 방어기술은 없다는 뜻.
하지만, 동북아연합군의 참전은 곧,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모든 국가가 참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였다. 미국이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과 동북아연합군의 사령관 천우진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동북아시아 전역에 러시아의 핵 무기를 방어할 수 있는 시설들이 설치 될 것이었다.
"제기랄... 점점 궁지로 몰리는 군."
그렇다고 이제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뗄 수도 없는 노릇, 파탄난 경제 상황에 프랑스와 영국, UN군이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의 인민들은 푸틴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강제징집까지 했던 상황이니 정말 뒤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천우진을 죽여버리는 수 밖에 없겠군."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각하."
"현실성은 있을까?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이 되었다면 경호수준이... 말도 못할 정도일 것 같은데?"
"경호수준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SKY PMC의 정예들이 천우진 회장을 경호하고 있습니다."
"그래?"
"예, 각하."
"중국시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예정이었지만... 천우진때문에 불가 할 것으로 보이니, 우리는 원래대로 진행한다."
정보총국장과 보좌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했다.
"예! 각하!"
그들에게는 어떤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이 엿보였다.
"놈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어, 그러니까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인원, 장비, 돈.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 써, 모든 권한은 너희에게 일임하지."
"예! 각하."
푸틴은 자신의 모든것을 건 도박수를 던졌다.
***
이제는 SKY의 땅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 흑룡강성 일대.
이곳이 동북아연합군의 주둔지로 결정되면서, 군 관계자들은 물론 동북아 삼국의 정상들과 대한민국 북한 자치구의 김은정이 모였다.
위성사진에 찍히지 않는 막사 안에 모인 우리.
나는 당당히 사령관의 자리에서 가장 상석에 앉았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시며 옆 자리에 앉으셨다.
"후진다오."
"예, 천자시어."
후진다오의 공손한 모습에 놀란 중국의 군 관계자들, 그러나 그들은 후진다오의 심복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별다른 잡음은 없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은 모든 곳에 병력을 충원하고 경계를 강화시킨다."
"예, 뜻대로 하겠습니다."
"고키부리."
"하잇! 말씀하십시오! 사령관님."
"쿠릴열도 반환을 요구하면서 자위대를 모두 그쪽으로 보내, 전시에 대비한다."
"하잇,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김은정."
"예, 각하."
"블라디보스톡 인근에 핵무기를 배치한다."
"예, 그렇게 하겠습네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할아버지.
"대한민국은?"
"러시아 영해 인근에 수군을 배치합니다. 곧 부산에서 SKY가 만든 항공모함이 출항 할 겁니다."
"오, 벌써 완성이 되었어?"
"최종 시험단계에 있습니다."
"좋군."
모두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참전한다 했지만, 우리는 러시아 본토 타격을 염두 하고 진행합니다."
사전에 내 계획을 알고 있던 후진다오, 고키부리, 김은정과 할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그 외의 군 관계자들은 전혀 처음듣는 얘기인 듯 잔뜩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내 명령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수장인 각국의 정상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러겠다.'대답을 한 상황이기 때문.
"SKY PMC 정보부의 브리핑 듣겠습니다."
내 말에 독거미가 위아래로 검은색 군복을 입고는 얼굴을 가리고 등장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자, 빔프로젝트가 '지이잉'하는 모터음을 내며 전원이 켜진다.
러시아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위성사진과 함께 병력의 규모,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함께 앞으로 그들이 움직일 예상 보급로나 경로들을 세세하게 분석한 브리핑이었다.
각국의 정상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지만, 나머지 군 관계자들은 또 다시 잔뜩 놀란 표정들이었다.
"S, SKY PMC의 정보력이 정말 대단하군요..."
"으음, 기업의 정보원들이라고 해서 연합 정보부를 담당하는게 불만이었는데... 오판이었던 듯 싶습니다."
저들끼리 중얼중얼 떠드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대부분 SKY에게 우호적인 반응이었다.
"독거미."
코드네임으로 그녀를 부르자 그녀가 날 빤히 바라보며 답한다.
"예, 사령관님."
"그래서, 러시아의 움직임 중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로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두가지?"
"예, 그렇습니다."
모두가 흥미롭다는 듯 독거미에게 집중했다.
"첫번째, 순순히 패전을 선언하고 영국, 프랑스, UN군에게 배상한다."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푸틴은 절대 그럴리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패전이 확실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권력을 제 손으로 놓을리 없다는 걸 잘 아는 듯 보였다.
"두번째, 요인 암살."
"요인 암살?"
"현재 러시아 군은 '군사력'으로도 매우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며, 우리 PMC 정보부의 분석 결과, 현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이신 천우진 사령관님을 암살 할 계획을 세울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쾅!
후진다오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무지몽매한 것들이! 감히 천자께!"
그에 질세라 고키부리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날 바라본다.
"당장 최정예 자위대를 보내 푸틴의 목을 벨 것입니다!"
김은정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모스크바를 불바다로 만들갔습네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말이었지만, 모두가 나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자자, 흥분 가라앉히고 앉으세요."
다시 셋이 자리에 앉고, 나는 독거미를 바라보았다.
"정황이 있나?"
"없습니다. 심증 뿐입니다."
후진다오가 날 바라보며 외쳤다.
"당장, 천자의 경호수준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고키부리가 맞장구를 친다.
"맞습니다! 푸틴은 저희가 확실하게 처리 할 테니,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둘을 자중 시키고는 말했다.
"각국의 정상들 빼고는,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아까 얘기한 부분들 신경써서 진행시키세요."
막사를 가득 채우던 인사들이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거나 각자 부대의 예의에 맞게 인사를 하고 막사를 벗어났다.
"어쩔 셈이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푸틴이 제 목을 원한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래?"
"푸틴이 미쳤다고 패전을 순순히 인정 할 리 없으니까요, 그 순간 제 놈의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걸 모를리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권력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법이지."
"놈이 제 숨을 원한다면,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진다오와 고키부리, 그리고 김은정이 화들짝 놀라며 날 만류한다.
"안됩니다! 천자시어!"
"그 방법은 아닙니다!"
"내레 목숨을 받쳐 각하를 지키갔소."
그들의 충성경쟁에 뒤질세라 어둠에 가려져 있던 호석이 성큼 한 걸음 앞으로 와 말했다.
"회장님, 가족을 생각해주십시오."
피식 웃은 나는 호석에게 물었다.
"나 지킬 자신 없습니까?"
호석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독거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놈들의 암살계획에 동원될 병력은 얼마라고 생각하지?"
"사령관께서 직접 러시아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면, 우크라이나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면, 일개 중대 급 병력이 한계일 것입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호석이 말했다.
"동북아연맹의 영토 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실 수 있을 겁니다 회장님."
"우크라이나 안이라면?"
와락 인상을 구기는 호석.
독거미 역시 복면을 벗고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회장님, 굳이 어려운 길을 가십니까?"
"난세에 영웅이 태어나는 법 아닙니까?"
"우크라이나 안이라면... 전투기를 동원할수도 있습니다. 미사일이나 자주포 사격역시, 위험합니다."
"좋네요."
할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이놈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할아버지만 나의 의중을 눈치 챈 모양이다.
"기어코, 러시아 본토를 타격 할 셈이더냐?"
"가능하면 푸틴의 모가지를 직접 따오고 싶네요."
< 제 43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