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26화. >
SKY항공우주국.
푸른눈의 금발을 하고 있는 보리스가 히끗히끗한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흐음.”
그런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많이 바쁘신가봐요 국장님?”
휙하니 고개를 돌려 날 확인한 SKY항공우주국 로켓연구 소장 보리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식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에이, 그렇게 인사 할 것 없다니까요.”
“아닙니다. 지휘체계가 흔들리면 근간이 흔들리는 법이지요.”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영어로도 저런 말이 표현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어쨌든, 뭐가 잘 안 되세요?”
“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연료를 획기적으로?”
“예,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이미 ‘이, 착륙’이 자유로운것은 분명합니다.”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전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던 것을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해 연구하기 시작한지 고작 1년이 조금 넘은 시점, 보리스는 누구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
정확히는 미래의 친환경 에너지시대가 열리면서 전기차시장을 선점, 독점하다 시피했던 그룹의 오너가 만든 스페이스 x라는 프로젝트에서 성공시켰던 로켓기술.
그 기술을 무려 약 9년이나 앞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보리스의 업무성과는 그 누구라도 뛰어나다 할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해주시고 계십니다. 거리에 따라 달라지지만, 부산 발사대를 기점으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1번 왕복을 하고, 다시 1번의 편도운항이 가능한 로켓이니까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보리스.
“궤도에 올려놓은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와서 연료만 주입하면 곧바로 이륙할 수 있으니··· 분명 그점은 좋습니다만, 문제는 역시 연료가 아니겠습니까?”
로켓의 구조 한계상 설치될 수 있는 연로통은 한계가 분명했다. 애초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로켓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헛소리를 하고 싶거든 잠시 집어넣기를 바란다.
크기가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연료사용량이 증가한다. 지구의 중력은 물론이고 여러 기후와 압력들 역시 증가하기때문에, 더 크기가 늘어난다면 오히려 지구력이 떨어진다 할 수 있겠다.
“지금보다 더 높은 효율을 바라는 거군요?”
“예, 회장님··· 마음 같아서는 어디 외계인이라도 납치해서 지식을 빼앗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의 농담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겁니까?”
“1회의 연료 주입으로 궤도 진입 후, 귀환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재진입 및, 귀환.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우주산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내가 아는 미래에도 그런 로켓따위는 없었다.
“흐음.”
보리스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그가 말한 것 처럼 로켓이 완성된다면 전 세계 무기시장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줄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우주산업을 연구중인 SKY항공우주국의 로켓기술.
이것은 단순히 ‘우주’를 향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그것도 결국은 초장거리 미사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현재 우리 SKY항공우주국이 개발한 로켓기술은 모스크바를 왕복할 수 있는 로켓이라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리틀보이와 팻맨 2개의 원자폭탄을 일본의 영토에 투하했고, 그 폭발력은 가히 전율이 일어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리틀보이는 농축우라늄 64kg이 들어가고 TNT 1만5천톤의 파괴력을 냈었다.
그리고 팻맨은 플루토늄 6.4kg이 들어갔고 TNT 2만1천톤의 파괴력을 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우리 로켓에 핵탄두를 탑재 하고, 그 핵탄두를 모스크바 상공 위에서 떨어뜨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인으로 말이다.
물론, 다른 탄도 미사일들 역시 무인이다.
발사장치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목적지까지 날아간다는 뜻.
그러나 범용성, 그러니까 우리는 ‘핵탄두’만 개발을 해 내면 로켓에 계속 탑재하고 귀환한 로켓에 다시 탑재하고 연류를 주입하고 하는 방식으로 무제한으로 핵폭탄을 날릴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리틀보이와 팻맨과 같은 무식한 파괴력 뿐 아니라 자유롭게 핵탄두를 개발해 극소부위 타격 역시 가능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지 보리스에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보리스 역시 언급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알고 있으리라.
연구원으로서, 한명의 박사로서 열망 가득한 그의 눈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아.”
문득 떠오른 생각.
내 목소리에 반응한 보리스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뭔가 아이디어라도 떠오르셨습니까?”
“왜요? 그래 보이세요?”
“회장님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오늘 놀랄 수 있나 싶습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부같지 않은 아부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펜 써도 됩니까?”
“예, 얼마든지요.”
나는 그가 코를 박고 보고 있던 서류를 뒤집었다.
까만 잉크로 가득한 글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흰색 백지 위에 빙글빙글, 펜을 움직여 그림을 그렸다.
“흠, 이게 뭐죠?”
“원심력.”
“예?”
나는 그림을 그리다 멈추고 펜을 든 손을 어깨까지 함께 힘차게 돌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지 나를 한참 바라보는 보리스.
이내 내 어깨와 팔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의 원이 그려지는 순간, 나는 손바닥을 펼쳐 펜에게 자유를 주었다.
쐐엑.
날아간 팬은 보리스의 이마를 때리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원심력.”
다시 같은 단어를 입에 담았다.
보리스가 입을 떡 벌리더니 말했다.
“그, 그러니까 회장님 말씀은, 원심력을 통해 로켓을 발사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설비로 된 발사 장치로 원심력을 만들고, 그 원심력으로 로켓을 허공으로 발사, 최고 지점에서 로켓의 엔진이 점화된다면, 발사 시점에서 막대한 손실을 빗는 연료량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 같군요.”
“맙소사! 왜 난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도 분명 시간이 있었으면 나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을지 모른다고 난 생각했다.
이 만화와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내가 살던 미래의 나사의 아이디어였으니까. 스페이스 X가 출발시킨 새로운 로켓기술에 대한 나사의 답변이나 마찬가지였던 아이디어.
“원심력이라니! 원심력!”
바닥에 떨어진 펜을 얼른 주워들은 보리스가 다시 서류에 코를 박았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지, 적의 레이더를 피해서 비행은 가능한지 따위를 묻고 싶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실제로 러시아 상공에 핵을 떨굴 일은 없을테니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싶었다.
“그럼 고생하세요.”
보리스는 집중한 나머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웃기게도, 나는 변태가 아닌데 그런 보리스의 모습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
UN긴급총회.
그것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러시아가 당장 3일뒤 선전포고를 하는 날부터 총회가 소집되었고 2일만에 대한민국의 서울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있게 판매하고 있는 것들은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무기와 수자원 일부가 전부인 상황.
굳이 전 세계의 정상들이 모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UN긴급총회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결의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저,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 모이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본래의 미래에는, NATO. 그러니까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가장먼저 러시아를 향한 경제제재를 가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상임이사국이 있는 상황, 세계의 정세가 많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총회의 날짜는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한 3일째 날.
그러나 서울 SKY 호텔의 최상층에는 이미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상임이사국의 정상들이 모여있었다.
모두까기 인형, 세상에서 프랑스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국민성에 맞춰, 독불장군같은 모습을 보이는 마카롱이 팍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프레지던트 록펠러의 말씀은, 러시아가 판매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구입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인어른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습니다.”
“맙소사. 그건 우리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암흑속에 살게 하는 짓이라는 걸 모르시지 않을텐데요?”
역시 제 할말을 하며 주도권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익숙해서 그런지 입에 필터링이 없었다.
공식적인 석상도 아니고, 각국의 정상들만 조용하게 참석해 있으니 그가 저렇게 얘기한다고 외교적으로 실례가 되지는 않았다.
영국의 총리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입을 뗐다.
“후우,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동유럽국가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서유럽국가들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최소가 38퍼센트 입니다.”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영국의 총리.
“이란과 사우디, 그리고 OPEC의 여러국가와 호주와 캐나다 역시,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넘겨 줄 것입니다.”
“당장 설비를 지어야 하는 일부터 문제가 산더미입니다. 서유럽이 쓸 수 있는 가스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고, 서유럽의 시민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이란에 미국의 셰일 기업들이 대거 투입된 상황입니다. 당장 1년후부터는 터키를 거쳐 서유럽의 지근거리까지 천연가스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건 1년 뒤가 아닙니까? 당장 앞에 있는 1년이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장인어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쳤지만 사실, 이 동맹이라는 것은 참 유리와 같은 것이라 언제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깨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현재 상황이 그랬다.
앞으로 러시아는 점점 더 가스와 원유등으로 유럽을 컨트롤하려 할 것이고 영향력을 늘리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장인어른이 날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프랑스의 대통령과 영국의 총리가 ‘너는 왜 여기 있는데?’하는 얼굴로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찰나였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그 부분은 내가 얘기하겠습니다.”
공식석상이기에 나는 나 스스로는 낮추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 누구도 나보다 위에 설 수 없다는 나의 비지니스 철칙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 지금껏 지켜나가던 철칙이다.
누구보다 오롯이 위에 서 있는 자.
그것이 나의 목표가 아니던가.
할아버지나 장인어른은 나의 표현에 개의치 않으셨다. 두분 역시 이 자리가 사적인 ‘가족’의 자리가 아닌 공적인 ‘비즈니스’의 자리라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
“어떤 부분이요? 아니 대체, 각국의 정상들이 비밀스러운 회담을 하는 자리에 기업인은 왜 있는 겁니까?”
마카롱 대통령의 따가운 혓바닥에 웃음이 튀어나올뻔 했다. 이름은 달콤하고 부드러울 것 같은데, 그의 혀는 영 딴판이지 싶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을 잇지 않고 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파라락.
빠르게 꺼냈기에 마구 흔들리며 흩날리는 그것.
그러나 종이보다는 단단하기에 이내 제 모습을 찾는 그것.
“그게 뭡니까?”
영국 총리가 흥미를 보였다.
“페브로스카이트, 앞으로 유럽의 에너지원을 해결할 신소재입니다.”
이제는 페브로스카이트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낼 순간이 되었다.
< 제 426화. > 끝